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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이야기

유토피아 라다크에 드리워진 빛과 그림자 : 헬레나 노르베리-호치 <오래된 미래>

by 개락당 대표 2020. 9. 17.

 

 

 

유토피아 라다크에 드리워진 빛과 그림자 : 헬레나 노르베리-호치 <오래된 미래> 

 

 

 

나는 공동체와 땅과의 긴밀한 관계가 물질적인 부나 고급기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인간의 삶을 풍부하게 만들 수 있음을 보았다. 나는 삶의 다른 길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p.241)

 

 

 

 

 

 

'작은 티베트'라고 불리는 라다크는 비록 인도 영토의 일부로 편입되어 있지만, 천년 넘게 독자적인 언어와 티베트 불교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자급자족의 삶을 꾸려가고 있는 공동체입니다. 1975년 라다크는 인도 중앙정부의 결정에 따라 외국 관광객에게 문호를 개방하기 시작합니다. 스웨덴 출신의 여성학자 헬레나 노르베리-호치는 이 해에 라다크를 찾아간 소수의 서구인 중의 한사람입니다.

 

 

 

헬레나는 라다크 말을 배우고 그들을 들여다 봅니다. 거칠고 황량한 풍토 속에서 근본적으로 건강하고 평화로운 공동체를 유지하고, 내면적으로 평온함을 누리며, 물질적으로도 크게 불편을 느끼지 않고 살아가는 이 수수께기 같은 사회에 매료됩니다. 그녀는 애초의 계획을 바꾸어 장기체류를 결심하고 16년 간 라다크에 머무릅니다. 책에서 보여준 라다크의 아름다운 모습을 소개합니다.

 

 

 

내가 라다크에 온 지 얼마되지 않아서 나는 개울에서 옷을 빨고 있었다. 내가 더러운 옷을 막 물에 담그려고 할 때 일곱살도 채 안된 어린 소녀가 물길의 위쪽에서 왔다. "그 물에 옷을 넣으면 안돼요." 하고 그 소녀가 수줍어하며 말했다. "저 아래쪽 사람들이 그 물을 마셔야 돼요." 아이는 적어도 한마일 정도 떨여져 있는 아래쪽 마을을 가리켰다. "저쪽에 있는 물을 쓰면 돼요. 저것은 그냥 밭으로 가는 거예요." (p.45)

 

 

 

늙은 사람들은 죽는 날까지 활동을 한다. 어느날 아침에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집의 여든두살 된 할아버지가 지붕에서 사다리로 달려 내려오는 거슬 보았다. 그는 활기에 차 있었고, 우리는 날씨에 대해서 한두마디 이야기를 나우었다. 그날 오후 세시에 그는 죽었다. 그는 잠든 것처럼 평화롭게 의자에 앉아있었다. (p.59)

 

 

 

통데에 있을 때 나는 오랫동안 일이 어떻게 조작되는지 알아내려고 애를 썼다. 일들은 의논도 필요없이 이루어지는 것 같았고, 일정한 틀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앙축과 돌마의 집 부엌에 앉아있으면 안무를 하지 않은 춤을 보는 것 같았다. 아무도 "네가 이걸 해라" 라든지 "제가 그 일을 할까요?"라고 말하는 일이 없는데도 자연스럽고 우아하게 해야 될 일이 이루어졌다. (p.91)

 

 

 

내가 라다크에 도착했을 때 내게 강한 인상을 준 것 하나는 여자들의 커다란, 아무런 거리낌없는 미소였다. 그들은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개방적이고 조금도 자의식이 섞이지 않은 태도로 남자들과 얘기를 하고 농담을 했다. 어린 소녀들은 때때로 수줍어 보이긴 했지만 일반적으로 여자들은 커다란 자신감과 강한 성격과 위엄을 보여주었다. 과거에 라다크를 여행한 사람은 거의 모두 여성들이 예외적으로 강한 지위에 대해 언급했다. (p.93)

 

 

 

 

 

 

 

 

 

사진 출처 : http://cafe.daum.net/sunlee59589/n9Q3/199?q=%EB%9D%BC%EB%8B%A4%ED%81%AC&re=1

 

 

 

이런 아름다운 곳에도 서구화의 바람이 붑니다. 개발이라는 명목 아래에서 자행되는 여러가지 활동으로 라다크의 건강한 공동체는 점차 훼손되고 분열되어 갑니다. 서구화는 먼저 교육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라다크 사람들은 야크 가죽으로 신발을 만들고 양털로 옷을 만드는 방법, 진흙과 돌로 집을 짓는 방법을 배우며 성장했는데, 이러한 지식 중 어떤 것도 현대의 학교에서는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전통적인 라다크 사회에서는 무엇하나 버려지는 것이 없었습니다. 가축의 분뇨도 거름이나 연료로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야크털 신발이 값싼 현대식 신발로, 청동항아리가 분홍색 플라스틱 양동이로 대체되면서 이 곳에서도 쓰레기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물이 부족한 라다크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수세식 화장실을 만들었습니다. 

 

 

 

전통적인 농업법도 점차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정부는 화학비료를 사용을 권장했고, 라다크의 환경과 맞지 않는 환금 작물 재배를 강제하였습니다. 새로운 농업이 도입되기 시작하면서 노인들의 경험은 점차 쓸모가 없어졌습니다. 이런 서구화 과정에서 라다크 사람들이 여태 한 번도 생각지 못했던 사실, 즉 자신들의 문화가 서구에 비해 열등하다는 생각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저자인 헬레나는 라다크의 이런 변화를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라다크의 건강한 공동체 문화가 무너져가는 모습에 안타까워 하며 라다크의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했습니다. <오래된 미래>의 전반은 라다크 사회의 아름다움에 대해 적었고, 후반은 서구화의 미명 아래 변화하기 시작한 라다크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라다크의 변화 과정을 오랫동안 지켜본 그녀가 내린 결론은 아래와 같습니다.

 

 

 

나는 전통사회에서의 유대관계와 책임이 부담이기는커녕 내면의 평화와 만족감을 위한 전제 조건인 깊은 안정감을 제공했다는 사실에 확신을 갖는다. 나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개발이 있기 이전에 훨씬 더 행복했다고 확신한다. (p.167)

 

 

 

 

 

 

 

 

 

 

위의 사진은 레를 비롯한 라다크의 여러 곳을 자전거로 여행한 분의 블로그에서 퍼왔다. 자전거라니, 놀랍고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볼 거리와 읽을 거리가 꽤 많이 있다. 그의 글 말미에 <오래된 미래>의 그 레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고 썼다. 그저 좀 덜 발전된 불편함이 있을 뿐이라고.

 

사진 출처 : https://www.iwooki.com/544?category=864654

 

 

 

 

저는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동네 형들이랑 칡을 캐러 다니고 미꾸라지 잡으러 다녔습니다. 겨울이면 연날리기 시합을 했구요, 명절이면 동네에서 노래자랑이며 자치기 시합과 같은 여러 놀이들을 했더랬습니다. 책에 나오는 라다크와 그리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죠. 하지만 동네에 공장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고, 동네의 젊은 사람들은 모두 도시로 나갔습니다. 채 30년도 되지 않아 노인들만 사는 동네로 전락했습니다. 그러다 얼마 전 산업단지로 편입되어 동네 자체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울나라의 많은 시골의 모습이 우리 동네와 비슷한 과정을 밟았습니다. 개발이라는 기치 아래 변화를 시도했지만, 좋은 방향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헬레나도 이 책에서 '풍요'와 '편리'를 추구하는 서구화가 반드시 정답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저자의 이 말은 우리의 시골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이 책을 읽으니 라다크의 변화가 더 아쉽고 안타까왔습니다.

 

 

 

'지속 가능한 마을 공동체'는 이미 울나라에서도 중요한 화두입니다. 사라져 가는 마을 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한 여러 활동들이 활기차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농촌의 개발이 한창 진행될 때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활동도 함께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늦은 감이 있지만 꼭 필요한 활동입니다. 지속 가능한 마을 공동체의 목적과 방법 등을 요즘 고민하고 있습니다. 책꽂이에 있던 이 책을 다시 읽으며 저의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 했습니다. 

 

 

 

책의 마무리에 라다크의 전통 문화를 이어가려는 라다크 사람들이 늘고, 그런 사람들의 자치 모임도 여럿 생겼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책이 나온 햇수를 보니 벌써 24년이 지났습니다. 지금 라다크의 모습은 어떻게 변해있을까요? 궁금합니다. 언젠가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진정한 미래는 오랜 옛 지혜 속에 있습니다. 라다크에서 확인했습니다. 라다크의 미래, 그리고 나와 우리 마을의 미래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