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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빈곤층은 왜 미래를 위해 저축하지 않고, 왜 절박한 순간에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고, 왜 자신의 계급적 이해와 배치되는 선택을 하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가난하다는 것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재화가 없음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많고 사회적 존재가 일상적으로 위협받는 상황을 의미한다.
이에 대처하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많이 소모해야 한다. 즉, 생존 자체에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들어가서 합리적 판당을 하고 미래 지향적 사고를 할 에너지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게 된다. 그래서 빈곤층이 전략적 사고나 내명의 강인한 힘을 갖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제목이 상당이 도발적이다. 가난한 아이들이 어떻게 어른이 되다니, 가난한 아이들은 가난한 어른이 되겠지, 라고 속으로 툭 내뱉었다. 사실 정답이다. 가난한 아이들은 가난한 어른이 되고 부유한 아이들은 부유한 어른이 된다.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가난은 단순히 불편한 것에 그치지 않고 아이들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큰 장벽이라는 것이다.
위에 인용한 것처럼 가난은 여러가지 시도를 해볼 수 있는 가능성을 없애며, 무엇보다 생존 자체에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모해버려 꿈과 미래를 앗아간다. 그럼 왜 그들은 가난한가. 책에 나온 아이들의 가정은 대개 불우했다. 여러 사정으로 부모의 생계가 어렵거나, 한부모 가정이거나, 뿔뿔히 흩어진 비정상가족인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니 가난했다. 가난만 하면 좋으련만 단란하지 못했다. 그런 '정상가족'에 대한 결핍이 동력이 되어 열심히 사는 아이들도 있었으나 솔직히 보기에 딱했다.
그래도 책에 나온 아이들은 잘 된 케이스다. 이들이 정상적으로 자라게 된 데에는 한 명의 어른, 한 명의 교사, 한 명의 상담자가 있었다. 자신을 믿고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관계망이 있었다. 누구나 그렇지만 특히 청소년기에는 힘을 내고 노력하는데 혼자만의 결심과 욕구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한 사람이 변화를 만든다. 주위에 흔히 볼 수 있는 지역아동센터가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책을 읽고 나니 아동센터에서 근무하시는 지인이 달라보였다.
저자가 강조하는 다른 하나는 '성찰하는 힘'이다. 가난에서 자립한 친구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난 덕목이다. 자의든 타의든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신의 탓으로 돌리지 않았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신의 욕망과 사회적 위치를 판단하여 열등감과 위축감 없이 자라는데 성공했다. 성찰하는 힘은 어떻게 얻을 수 있나? 학교나 도서관, 혹은 다양한 청소년 프로그램, 독서, 심지어 유튜브도 가능하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것도 누군가 손을 내밀어줘야 한다.
책을 다 읽어도 여전히 가슴이 무겁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을 방법이 쉽지가 않다. 가난하고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당연하게도 다른 이들에 비해 더 좋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적다. 그러니 가난한 어른으로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공공의 영역에서 이들을 돕는 것도 한계가 있다. 가난하더라도 오손도손 화목하면 내적인 힘을 가질 수 있으련만, 그건 판타지에 가깝다. 가난은 물질적 굴레이자 동시에 정신적 굴레다. 사회의 힘은 아직 미비하고 개인이 풀기에는 너무 힘겹다.

내가 가난하니 우리 아이들도 가난하다. 서울에서 알바를 하며 살아가는 아이들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꿈을 찾으려고 좌충우돌 뛰고 있다. 내가 경제적인 뒷바침을 해주면 꿈을 좀 더 수월하게 찾고 이룰 수 있을까?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지금의 힘듦이 나중에 성장할 밑거름이 될 것이라 믿으며 경제적으로 도와주지 못하는 나를 합리화하고 있는 건 아닌가. 사실 어느 것이 옳은 일인지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지 못하는 아빠가 미안하고, 그럼에도 잘 살고 있는 아이들이 대견하다. 가난한 아이들은 대체로 가난한 어른이 되겠지만, 가난 속에서도 풍요롭게 사는 지혜를 깨우치길 소망한다. 나도 우리 아이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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