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않는 붉은 장미, 로자 룩셈부르크 일대기 : 케이트 에반스의 레드 로자
고용주와 임금의 노예들 대신, 자유로운 노동자 동지들이 있는 겁니다! 누군가의 괴롭힘 때문이 아니라 각자의 할 일이어서 하는 노동! 사회적 의무를 다하는 사람들 모두가 인간답고 정직한 삶을 누리는 겁니다.
이제 사회주의는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공산당선언>은 허물어지고 있는 자본주의사회의 요새 위로 타오르는 불길같은 징조입니다.
사회주의인가 야만인가! - P 156
"사회주의인가 야만인가!"
로자 룩셈부르크가 독일 사람들에게 외친 말입니다. 그로부터 한 세기가 흘렀습니다. 우리는 야만을 택했고, 그 야만은 한 때 그나마 나은 길을 가는 듯 하더니 요즘은 과거 어느 때 보다 더욱 강력한 힘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그 야만의 야만적인 힘에 괴로움을 당하는 사람은 더욱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를 택한 나라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로자가 말하는 진정한 사회주의가 아니었습니다. 볼세비키의 러시아는 이제 완전히 야만의 길로 들어섰으며 중국은 무늬만 사회주의 국가입니다. 베네주엘라를 비롯한 남미의 몇몇 나라들은 아직 사회주의를 고집하고 있으나 여전히 신음중에 있습니다. 야만에 대항할 새로운 이론 혹은 혁명은 요원해 보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지금을 사는 우리가 로자 룩셈부르크를 다시 돌아보게 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로자 룩셈부르크 (1871 ~ 1919) 폴란드 출생이었고 유대인이었으며 어릴 적 앓은 병으로 다리까지 절었다. 결정적으로 그녀는 여자였다. 그 시대에 소수자가 가져야 할 요건은 두루 갖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격동의 20세기에 명멸했던 수 많은 사회주의 혁명가 중에서 가장 빛나는 별이 되었다. 진정한 사회주의자는 로자 룩셈부르크 단 한사람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자의 혁명은 권력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 따뜻한 봄 날에 꽃잎이 떨어지는 나무 아래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책을 한 권 골랐습니다. 그것도 만화책입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펼쳤습니다. 첫장을 펼치는 순간 책에 빠져 들었습니다. 책 속에서 허우적거렸습니다. 어찌나 집중해서 보고 있었던지, 옆에서 보고 있던 딸이 "아빠, 책 뚫어지겠어요" 했습니다.
가볍게 시작했지만 결코 내용은 가볍지 않았습니다. 전에 읽었던 어떤 책보다 자본론에 대해 현실감있게 설명이 되어 있으며, 세상이 가장 크게 요동치던 20세기에 유럽의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해설서였으며, 인간과 자유를 위해 혁명에 몸 바쳤던 위대한 여인의 일대기가 생생하게 그려져 있었습니다. 200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 짧은 만화였지만, 내용은 그 어떤 사회 과학서적이나 철학서 보다 묵직했습니다.
자본주의는 스스로 파멸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모든 산업 형태를 지배하게 되는 종점에 다다르면, 스스로 무너져 내릴 수 밖에 없다. 내부 모순으로 분열이 일어나고 더 이상 존재가 불가능해진다. - P 113
로자가 저렇게 말한지 100년이 지났다. 자본주의는 아직 모든 산업 형태를 지배하지 못했단 말인가. 내부 모순으로 더 이상 존재가 불가능해진다는 자본주의는 지금이 가장 절정기에 이르렀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더 지나야 자본주의는 스스로 무너지는가. 아니면 누군가가 불꽃처럼 일어나서 자본주의를 무너뜨려야 하는가!
사진 출처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moonygulbang&logNo=220666126319
인류의 최대 실험인 사회주의 혁명은 이제 실패한 것으로 판명이 났습니다.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별명으로 세계의 모든 물질을 자본화하고 있습니다. 물질적으로 조금은 더 나아졌을지 모르지만, 로자가 외쳤던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사회, 노동자가 자본에 구속되지 않고 스스로의 의지로 노동하는 사회는 더욱 멀어졌습니다. 그래서 고통받는 이는 더 많아졌습니다.
어찌보면 그 시절은 사회주의라는 대안이 있었습니다. 제대로 된 사회주의를 이룩하면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지금은 그 시절에 비하면 그런 희망은 오히려 사라졌습니다. 혁명의 정신도 사라졌습니다. 자본주의라는 거대 악을 걷어 차기보다 그 안에서 먹고 사는 것과 개인의 발전을 도모하고자 합니다.
자본주의가 절정인 지금에 와서 마르크스가 다시 살아나고 로자 룩셈부르크가 재조명을 받는 것은 그런 이유일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야만이 만든 불합리하고, 불평등하고, 구속하고 억압하는 사회의 벽에 갇혀 있습니다. 로자의 외침이, 로자같은 뜨거운 혁명가가 지금 필요한 이유입니다.
베를린의 프리드리히스펠데 공원 묘지. 로자가 잠들어 있는 묘지에는 커다란 비석이 있는데 거기에 쓰여진 문구는 "DIE TOTEN MAHNEN UNS - 죽은 자가 우리에게 경고한다." 이다. 섬뜩하다. 그 경고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볼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녀가 죽은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녀의 사상에서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 느낌이다. 지금부터 다시 한 세기가 지난다면 달라질까.
사진 출처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naneunjong&logNo=70173860641
로자가 살았던 시대에 대해서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유럽의 사회주의 운동에 대해서 다시 살펴봤습니다. 볼세비키 혁명에 대해서도 또 한번 들여다 보았습니다. 레닌과 로자의 다른 점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짧은 한편의 만화이지만 이 책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화두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 봄날에 차 한잔이 주는 여운을 느끼면서 책의 화두 - 인간과 자유, 뜨거운 혁명가의 삶과 사랑 - 에 대해 천천히 그리고 곰곰히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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