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으로 인간다운 생활은 가능한가? : 바버라 에런라이크 <노동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사회운동가입니다. 어느날 모 잡지사의 편집장과 저녁을 먹으면서 자신이 기고할 글에 대해서 얘기하다 최저임금을 받고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 하는 주제에 이르렀습니다. 바버라는 "이런 건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몸으로 취재해야 해." 라고 선빵을 날립니다. 그럼 누가? 편집장이 웃습니다. "당신이 해야지!" 이런, 아뿔싸.
이미 뱉은 말, 주워담을 수도 없고. 우씨~. 바버라는 우아한 저널리스트에서 최하층 육체 노동자로 변신합니다. 식당 종업원, 호텔 청소부, 요양원 보조, 월마트 매장 직원으로요. 1998년부터 2000년까지 3년에 걸쳐 당시 미국의 최저시급인 시간당 6~7달러를 받고 일을 합니다. 그 개고생을 하고 나서 내가 최저임금으로 살아보니 이렇더라는 이야기를 글로 씁니다. 이 책의 내용입니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빈곤을 경험한 적이 몇 번 있었기 때문에 빈곤은 관광 목적으로 체험해 볼 만한 것이 아니라는 걸 너무나 잘 알았다. 빈곤은 공포와 비슷한 냄새를 풍긴다. (p.17)
저자가 이 실험을 한 시기는 2000년 전후로 미국이 한참 잘 나가던 시기였습니다. 우리로 치면 IMF가 터기지 전에 버블이 무르익어 가던 시절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그런 때임에도, 최저시급으로 산다는 건 아주 힘든 일이었습니다. 우선 일 자체도 쉽지 않았습니다. 쉬는 시간도 없고 물리적인 일의 양이 많았습니다. 식당의 웨이트리스 일을 하다 너무 힘들어 아무 것도 챙기지 않고 그대로 나와버리는 장면은 공감 백퍼였습니다. 물론 다른 종류의 일들도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일한 댓가로 받은 금액은, 가장 저렴한 숙소를 구해서 주당 거주비를 내고, 가장 저렴한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며, 남은 돈으로 필요한 물품을 겨우 꾸릴 수 있는 정도의 벌이였습니다. 제대로 된 집은 비싼 보증금 때문에 들어갈 수가 없었기에 싼 숙소에서 단기로 살았고, 그 안에서 음식을 제대로 해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인스턴트 음식으로 대충 때웠습니다. 몸이 아파도 벌어야 하기에 무리해서 일을 했고, 그러다 큰 병이 나면 비싼 의료비 때문에 제대로 치료받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결론은 열심히 일해도 먹기 살기 빠듯하다는 말입니다. 인간다운 생활을 절대 불가능하며 그저 하루하루 먹고 사는 거 정도만 가능하더라는 얘깁니다.
한달 생활비 얼마면 될까요?
거의 20년 전 미국은 저러한데, 오늘날 울나라에서는 어떨까요? 나라에서 정한 최저임금으로 열심히 일하면 인간답게 사는 건 가능할까요? 어느 정도의 생활이 가능할까요? 그리고 대체 최저임금이란 건 누가 어떻게 정하나요? 저자인 바버라처럼 직접 전선에 뛰어들어 체험을 해보면 가장 정확하겠지만, 그건 불가능하고 피상적인 수치상으로만 살펴보겠습니다.
자료 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853252.html
최저임금은 최저임금위원회라는 곳에서 정합니다. 노동자측과 사용자측이 모두 포함되어 있지요, 스물 몇 명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 냥반들이 모여 다음 해의 최저임금을 정하는데, 그 때마다 아주 난리 부루스를 춥니다. 서로가 주장하는 바가 전혀 다릅니다. 노동자측에서 주장하는 건, 최저임금은 '인간다운 생활'이 가능하게 하는 금액이어야 된다는 겁니다. 반대로 사용자측에서는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한 필요 생계비라고 주장합니다. 자, 그럼 얼마를 받아야 '인간다운 생활'은 가능할까요?
울나라 비혼단신근로자가 한달에 얼마를 쓰는지 살펴봤더니 올해 기준으로 186만원이었습니다. 많이 쓰는 사람과 적게 쓰는 사람의 평균치입니다. 최저임금으로 한달 열심히 일하면 이 정도는 벌어야 된다는게 노동자측의 주장입니다. 올해 최저임금인 7530원으로 하루 8시간씩 한달 일을 하면 157만원을 버는 군요. 차이가 좀 있습니다. 최저임금으로 8920원을 받으면 186만원을 벌 수 있습니다.
반면 사용자측에서는 생계비 지출액 가운데 하위 25%에 있는 사람들이 쓰는 정도면 된다고 주장합니다. 너거가 그거 가지고 한달 함 살아봐라. 1인가구 기준 중위소득(100명을 줄 세워서 50번째 사람이 받는 소득)이 167만원이니, 그보다 훨씬 작겠죠. 참고로 중위소득의 50% 미만이면 빈곤층으로 분류한다고 합니다.
나라에서 정한 최저임금이란게 정말 생계를 이어나가는 최저 생계비가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열심히 일을 하면 적어도 제대로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죠. 법에서 정한 임금으로 열심히 일해도 평생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그건 일종의 지옥입니다. 평균 생계비 정도는 벌 수 있는 임금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노동자측의 의견이 타당하게 들리는 까닭입니다.
저임금으로는 열심히 일해도 가난을 벗어날 수가 없더라는 주장은 실제 저임금 노동자들이 해야 하는데 왜 그러지 못할까 라는 생각을 했더랬다. 근데 책을 읽어보니 바로 알겠다. 그들은 그저 살기에 급급했다. 먹고 살기에도 빠듯한데 나 못살겠소 라고 시위를 하거나 저자처럼 글로 표현하기는 무리였다. 합리적으로 주장할 여유가 없었다.
이 책이 가치가 있는 건 그래서다. 자발적으로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생생하게 그려낸다. 그들이 하고 싶었던 말을 저자가 대신 해준다. 특유의 위트를 잃지 않고 말이다. 덕분에 여러 사람에게 읽히고, 결국 최저임금의 인상이라는 기적을 낳았다. 글쓰기가 세상을 바꾸는 기적 말이다.
저자는 이 책에 이어 <긍정의 배신>을 썼으며, 그 후 <희망의 배신>까지 써서 배신 3부작을 완성했다.
사진 출처 : http://sse.pe.kr/95
열심히, 부지런히 일하면 부자가 된다는 말은 거짓말입니다. 마트 매장의 아줌마나 편의점 사장님이나 중소 기업에 다니는 회사원이 부자가 되지 않는 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열심히 일을 해도 인간답게 살기 힘든 사회라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갑갑하고 어려운 얘기입니다. 책 후기에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임금을 너무 적게 주지 말고, 그들이 원한다면 더 나은 임금과 더 나은 노동환경을 얻기 위해 조직을 결성할 권리를 주자' 라는 말이 자꾸 맴돕니다.
아, 참. 그리고 나도 백수 혹은 저임금 노동자가 되면, 최저 생계비로 살아남기, 최저 생계비로 애 셋 키우기, 혹은 최저 생계비만 벌고도 마눌에게 구박받지 않고 살아가는 법.... 뭐 이런 글을 함 써 볼까요? 힘들지만 재미는 있을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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