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에 새겨진 인간의 뜨거운 흔적 : 하영식의 얼음의 땅 뜨거운 기억
데카브리스트 혁명
1825년 12월 러시아 제국의 일부 청년 장교들이 입헌군주제의 실현을 목표로 일으킨 혁명. 여기서 데카브리스트란 개혁을 부르짖으며 혁명을 일으켰던 청년 장교들을 총칭해서 부르는 말. 이 혁명을 진압한 니콜라이 1세는 자유주의 운동에 위협을 느껴, 전제 정치를 더욱 강화하게 된다. - 위키백과
반란이 진압된 뒤 봉기의 지도자들은 개인적으로 겨울궁전에서 황제와 개인적인 면담을 가졌다. 체포된 지도자들에게 황제는 언제나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수사에 최대한 협조만 해주면 당신 목숨을 살려 줄 수도 있다." 어떤 이는 황제의 발 앞에 매달려 울면서 목숨을 구걸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장교들은 혁명정신으로 "그렇게 말하는 걸 보고서 다시 한번 우리가 옳았음을 깨닫습니다. 전하는 법 위에 있으며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원했던 것은 우리의 운명이 법에 의해 결정되는 미래였지 전하의 기분에 의존하는 미래가 아니었습니다." 라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 P 67
자유를 꿈꾼 댓가는 댓가는 혹독했다. 데카브리스트 핵심 지도자들은 목이 잘려나가거나 시베리아로 추방당해 카르토가형(중노동형)을 받았다. 사진은 러시아 페테르부르그의 페트로파블로프스카야 요새의 강 건너편에 있는 데카브리스트 봉기 기념탑이다.
사진 인용 : P 87 사진 출처 : 위키백과
당시 최고의 상류층 귀족인 데카브리스트는 짜르에 협조만 하면 되었습니다. 아니 그냥 침묵만 하더라도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누리고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프랑스대혁명 이후의 그 진리와 자유를 맛보았습니다. 진리와 자유의 힘에 비하면 그들이 가진 부귀와 영화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혁명을 일으켰고 그 혁명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실패한 그들이 보내진 곳이 바로 척박한 땅, 수고의 땅, 고난의 땅 시베리아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데카브리스트는 귀족이자 유럽 최고의 학문을 배운 지식인들이었습니다. 척박하고 낙후된 땅에 문화와 문명의 싹을 심고 틔웠습니다. 학교와 병원을 세우고, 새로운 농사법을 연구하고 보급하고, 지역의 행정문제에 관여하여 여러가지 조언을 했습니다. 힘든 삶의 속에서도 이들은 여전히 최고의 인간성과 고귀한 정신, 순결한 이상을 간직했을 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도 언제나 견지했습니다. 데카브리스트 혁명은 실패한 혁명이었지만, 결코 실패하지 않은 혁명이었습니다.
자유를 택한 청년들도 멋지지만, 그 청년들을 택한 여인들도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중노동형을 살고 있는 남편이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그녀들은 수도 페테르부르그의 모든 특권을 포기하고 기어이 혹독한 곳으로 떠납니다. 그리고는 이 얼음의 땅으로 와서 남편의 고난에 동참합니다. 그 청년에 그 여인들입니다. 마리아 볼콘스키, 예카테리나 트루베츠코이, 폴린 아넨코프 같은 여인들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혁명에는 실패했지만 그들은 이르쿠츠크에서 그들의 문화를 이루어내고 발전시켰다. 이르쿠츠크가 시베리아의 파리라고 불리는 이유다. 사진은 이르쿠츠크에 있는 세르게이 그레고리예비치 볼콘스키가 살았던 집이다. 물론 그의 아내 마리아 볼콘스키도. 현재는 데카브리스트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사진 출처 : http://blog.naver.com/granado92/220202656180
지금에 와서 중국에서의 생활을 돌이켜보아 참 아쉬운 것 중의 하나가 '만저우리' 라는 도시에 가 보지 못했다는 겁니다. 처음 저 도시의 이름을 본 것은 소설 '토지' 였습니다. 책의 마지막에 있는 지도의 가장 북쪽에 있는 도시였습니다. 그 후로 만저우리는 저의 로망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도시는 몽고와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이 만나는 곳에 있습니다. 직접 가 보리라 맘을 먹고 인터넷 상으로 찾아 본 그 도시는 그리 매력적으로 보이진 않았습니다. 그 매력적이지 않은 것을 눈으로 확인하겠다는 일념으로 텐진에서 26시간이나 걸리는 기차표를 사러 역까지 갔으나, 우여곡절 끝에 결국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울나라에서 배로 따롄으로 들어가서 열차로 치치하얼을 거쳐 만저우리를 갑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국경을 넘어 러시아의 자바이칼스크까지 가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이르쿠츠크로 향합니다. 책의 첫머리에 나오는 저자의 행로가 그러했습니다. 배로, 미니버스로, 그리고 좁은 침대칸 열차로 이동합니다. 몇장 읽지 않았는데 저자의 엄청난 내공이 느껴집니다. 나도 정말 그렇게 해 보고 싶었는데.... 좀 분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지금은 현실로 될 날을 기다리며 내공 수련에 게을리 하지 않을 뿐입니다.
엄청난 스케일로, 여행을 꿈꾸는 누구나가 한번쯤 타보고 싶어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이다.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톡까지 9334Km에 7박 8일이 걸린댄다. 근데 주구장창 열차만 탈 건 아니잖아??!! 시베리아의 어느 이름 모를 역에 내려 이름 모를 아가씨와 뜨거운 하룻밤 은 아니고, 적어도 어떤 이름의 도시가 시베리아에 있고, 그 도시는 어떤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나. 치타, 노보시비르스크, 예카테린부르그, 옴스크, 크라노스야르스크.... 첨 듣는 도시의 이름이자 따라 읽기에도 어렵다. 그런 도시들을 이 책에서 첨 만나봤다.
시베리아 여행기로 생각하고 책을 펼쳤지만, 책은 데카브리스트로 시작한 러시아와 시베리아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파스테르나크와 같은 러시아의 대문호와 문학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그들과 시베리아를 겹쳐 보여줍니다. 자유노조와 바웬사도 덤?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가끔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풍경과 감상과 에피소드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저자는 시베리아의 그 기차여행이 이제 더 이상 특별한 여행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되어버렸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이나 아시아로 가는 여행길은 여전히 유혹적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인간들이 남겨놓은 흔적때문입니다. 데카브리스트가 남긴 뜨거운 혁명의 흔적이 있고, 도스토옙스키를 비롯한 문호들이 남긴 자취들이 시베리아에 있습니다. 특히나 그것들은 자유를 향한 투쟁의 흔적들입니다.
뜨거운 청년들이었던 데카브리스트 혁명의 주인공들과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닥터 지바고의 작가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그리고 노동자로 태어나 자유노조의 지도자로, 더 나아가 폴란드의 대통령까지 지냈던 노동운동의 전설 레흐 바웬사의 사진이다. 책을 읽기 전과 읽고 난 후에 보이는 표지의 인물들은 확연히 달랐다.
'얼음의 땅 뜨거운 기억'은 시베리아 역사서이자 러시아 문학가의 생의 한 장면에 대한 작가의 소고, 그리고 자유를 얻기 위한 혁명사에 관한 책입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의 자그마한 에피소드가 나오긴 하지만 아주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제가 읽었던 어느 여행기보다 더 뜨겁고 감동적인 여행기로 읽혔습니다. 한때 노동운동에 몸 바쳐서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이력을 가진 작가가 그런 마음과 눈으로 보고 경험한 시베리아에 대해 적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어려운 시절에 청춘을 바치고, 그 후 여행가로 살아가는 이의 발걸음 어떠할까요? 작가는 얼마전에는 분쟁지역 전문기자로 변신하여 IS에 관한 책도 낸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좀 더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열정과 좀 더 자유로운 개인으로 일생을 살아가고자 하는 일념이 잘 드러나는 구절이 있습니다. 공감하고 또 공감합니다.
왼편의 작은 광장에는 천사가 나팔을 부는 상이 우뚝 솟아 있었다. 흰 눈을 맞으면서도 나팔을 부는 천사와 나, 단 둘만이 한적한 거리의 주인공들이었다. 어두워진데다 눈이 내려 인적이 거의 끊긴 낯선 거리를 홀로 걷는 이방인, 그것도 리투아니아라는 알려지지 않은 작은 나라의 한 모퉁이에서 거칠게 몰아치는 눈을 맞으면서 걷는 나 자신의 초상. 나의 걸음은 자유를 향한 전진이지만 홀로 걸을 수 밖에 없는 외로움의 길이다. 결국에는 나 하나만 남는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을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왔는가. 그런 시간도 인생의 한 과정이라 자위하면서 자신을 변호해온 자존심까지도 사실을 완전히 내버려야 하는데 그것까지는 쉽지 않다. 그러니 아직도 더 걸아야 할 것 같다. - P 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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