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양이 혹은 진돗개 동영상을 보는 이유 : 유발 하라리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이 대머리 아자씨의 전작들은 그야말로 쇼킹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여태껏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였다. 그런 문제를 제기하고 명쾌한 해답도 내놨다. 놀라울 따름이었다.
과거에 우리 인간들은 어떠했냐는 질문에 <사피엔스>로 답했다. 지구 한쪽 구석에서 보잘것 없이 찌그러져 있던 인류가 이야기의 힘을 믿고 인지, 농업, 과학 이 세 가지의 혁명을 거치며 지구를 평정했다는 이야기다. (농업혁명은 거대한 사기극이었다고 거침없이 내뿜는 대머리 아저씨의 사이다는 덤이다.) 그럼 인류의 미래는 어떻게 될 건가? 라는 질문에 <호모 데우스>로 답했다. 기아, 질병, 전쟁과 같은 위협을 물리치고 과학 기술에 힘입어 인류는 불멸과 같은 신의 영역에 도전할 정도가 되었으며, 그것이 역설적으로 인류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과거와 미래가 그렇다면 현재는 어떤가? 지금 세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 이 책이다. 원제는 <21 Lessons for the 21st Century>, Lessons를 제언이라 순화했다. 인류 3부작의 완결편이라 한다.
책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인류 너거는 조.옷.됐.어.다. 지금의 시대는 정보가 곧 권력이고, 그래서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거고, 인공지능은 곧 우리의 영혼까지 탈탈 털거다, 니 차 고르는 것도 구글에 물어봐야 된다..... 뭐, 그런 내용이다.
뭐, 큰일났다구? 그럼 우째야 되는데? 라고 물었더니, 내가 누구인지 계속 질문하고, 인생에서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게 뭔지 끊임없이 탐구하고, 인간다움을 잃지 말라고 하는 하나마나한 대답을 해준다. 내 그럴 줄 알았어. 시이발ㅋㅋㅋ.
개인적으로 가장 와닿은 부분은 19장이다. 1,000년 전이면 고려시댄가? 암튼 1020년의 사람들은 1050년이 되어도 그들의 생활이 그리 변하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그래서 남자 아이들에게는 벼를 심고 비단을 짜고 유교 고전을 읽고 붓글씨를 쓰게 했고, 여자아이에게는 조신하고 순종적인 주부가 되도록 가르쳤다(p.389). 하지만 현재를 사는 우리는 2050년에 뭐가 어떻게 되어 있을지 전혀 알지 못한다. 지금 아이들이 배우는 것의 대부분은 2050년에는 별 소용이 없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너무나 많은 학교들이 이 학생들에게 정보를 밀어넣는 데만 열중하고 있다. 과거에는 일리가 있는 방법이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지금 우리 주변은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로 넘쳐난다. 잘못된 정보가 온천지로 날아다니며 하찮고 말초적인 것들이 우리의 주의를 분산시키느라 바쁘다(p.390). 클릭 한 번으로 지구 반대편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지만, 상충되는 설명이 너무나 많아 무엇을 믿어야 할지 알기가 어렵다. 그것 말고도 무수히 많은 뉴스가 쏟아져 내려 주의를 집중하기가 어렵다. 정치나 과학도 너무 복잡하다.
그래서 내가 즐겨보는 건 고양이나 진도개 동영상, 스포츠 하이라이트, 유명인의 가십, 바둑, 그것도 아니면 포르노다. 점점 개나 고양이 수준이 되어 간다.
이런 세상에서 교사가 학생들에게 전수해야 할 교육 내용과 가장 거리가 먼 것이 바로 '더 많은 정보'다. 정보는 이미 학생들에게 차고 넘친다. 그보다 더 필요한 것은 정보를 이해하는 능력이고,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의 차이를 식별하는 능력이며, 무엇보다 수많은 정보 조각들을 조합해서 세상에 관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이다. (p.391)
나도 이젠 안다. 그게 우리에게 제일 필요한 능력이라는 걸. 그래서 대머리 석학에게 묻고 싶다. 그니까 그 능력을 어떻게 키우냐고요오오오?? 그걸 알려달라구요오오오!! 제언이라매요오오오!!
섹시한 대머리 아자씨. 이번 책은 좀 불만이에요. 일단 제목이 맘에 안들어요.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에 이어지는 제목이라면 <에어리언 반격의 서막>쯤은 되어야 하지 않나요?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이라니, 머에요? 이런 왕촌빨 제목은ㅋㅋㅋ. 그리고 글자가 눈에 잘 안들어와요. 눈으로 본 활자가 그래로 머리 속을 들어와 어떤 연상 작용이 되어야 하는데 눈에서 머리 속으로 들어오다 사라져버려요. 아무래도 전작 땜시 기대가 넘 컸나봐요. 뉴발 바라리의 이 책이라면 '오오~~' 정도는 됐을텐데요.
인상적인 구절
2012년 3월 일본 관광객 세 명이 호주 연안의 작은 섬으로 당일치기여행을 가기로 했다. 그들은 차를 몰고 가다가 그대로 태평양에 뛰어들었다. 운전을 했던 21세 유주 노다 씨는 나중에 자신은 GPS 지시를 따랐을 뿐이라고 했다. "GPS가 우리한테 그쪽으로 곧장 갈 수 있다고 했어요. 길로 안내해줄 거라고 계속 말하더군요. 그러다 꼼짝없이 빠졌지요." 그와 비슷하게 사람들이 GPS 지시만 믿고 차를 몰고 가다가 호수에 빠지거나 철거된 다리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여러 차례 일어났다.
길 찾기 능력은 근육과 같다. 사용하지 않으면 잃는다. 배우자나 직업을 고르는 능력도 마찬가지다. (p.96)
2015년에 실시된 선구적인 설문조사에서 자율주행 차량이 여러 명의 보행자를 치려고 하는 가상의 시나리오가 제시된 적이 있었다. 응답자의 대부분은 그런 경우 주인이 숨지는 대가를 치러더라도 보행자를 구해야 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실제로 더 큰 선을 위해 주인을 희생시키도록 프로그래밍 된 차량을 구입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부분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p.107)
구글을 보자. 구글이 추구하는 최종 목표는 우리가 구글에게 무.엇.이.든. 질문할 수 있고, 그에 대한 세계 최선의 답을 얻는 것이다. 우리가 구글에 "안녕 구글. 네가 차에 대해 아는 모든 것과 나에 대해 아는 모든 것(나의 욕구와 습관, 기후변화를 보는 관점, 중동 정치에 대한 나의 견해까지 포함)을 감안했을 때, 내게 가장 좋은 차는 뭐라고 생각하니?"라는 질문까지 할 수 있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만약 구글이 그 질문에 좋은 답을 제시할 수 있다면, 그리고 우리가 경험을 통해 우리의 쉽게 조종당하는 감정보다 구글의 지혜를 더 신뢰하게 된다면 차량 광고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p.130)
인간에게는 몸이 있다. 지난 세기 동안 기술은 우리를 우리 몸으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우리는 우리가 냄새를 맡고 맛을 보는 것에 집중하는 능력을 잃어왔다. 대신 스마트폰과 컴퓨터에 빠져들었다. 우리는 길에서 일어나는 일보다 사이버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에 더 관심이 많다. 스위스에 사는 사촌과 이야기하기는 어느 때보다 쉬워졌는데 아침 식사를 할 때 남편과 대화하기는 더 힘들어졌다. 눈은 끊임없이 나 대신 스마트폰에 가 있다.
과거에는 그런 부주의를 누릴 형편이 못 됐다. 수렵, 채입인은 언제나 주의를 살피고 경계했다. 버섯을 찾아 숲속을 헤멜 때는 땅 위로 볼록하게 튀어나온 것이 있는지 예의주시했다. 행여 뱀이 숨어 있을지도 몰라 풀 속의 사소한 움직임에도 귀를 세웠다. 먹을 수 있는 버섯을 찾았을 때도 독버섯과 분간하기 위해서 최대한 주의를 기울여 맛을 봤다. 지금처럼 풍요로운 사회에 사는 사람은 그때만큼 예민한 경각심이 필요 없다. (p.141)
페이스북이 결정적 시험대에 오르는 순간은,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물건을 사는 데는 시간을 덜 쓰고 친구들과 오프라인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도록 유도하는 새로운 도구를 엔지니어가 발명할 때일 것이다. (p.144)
따라서 멕시코나 인도, 앨라배마 어느 동네의 구식 학교에 묶여 있는 15세 소년에게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은 이것이다. "어른들에게 너무 의존하지 말라." 대부분은 나름 선의를 갖고 하는 말이겠지만, 사실은 어른들 자신이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어른들의 말이 시간을 초월한 지혜인지 시대에 뒤떨어진 편견에 불과한지 결코 확인할 수 없을 것이다. (p.399)
그런 막중한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려면 우리 자신의 운영체계를 더 잘 알기 위해 아주 열심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인생에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물론 이것은 책에 나오는 가장 오래된 교훈이다. 너 자신을 알라. 수천 년 동안 철학자들과 선지자들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21세기에 와서 더없이 다급한 것이 되었다. 노자나 소크라테스 시대와 달리 지금 우리 앞에는 위협적인 경쟁자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코카콜라와 아마존, 바이두, 정부 모두 우리를 해킹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있다. 이들의 해킹 대상은 스마트폰도, 컴퓨터도, 은행 계좌도 아니다. 그들은 바로 우리 자신과 우리의 유기적 운영 체계를 해킹하는 경쟁에 뛰어든 것이다.
바로 지금 알고리즘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우리가 어디로 가고, 무엇을 하고, 누구를 만나는지 지켜보고 있다. 조만간 모든 걸음과 숨결, 심장 박동까지 모니터할 것이다. 빅데이터와 기계 학습을 통해 알고리즘은 우리를 점점 더 잘 알게 된다. 그리하여 이 알고리즘이 우리 자신보다 우리를 더 잘 알게 되면 우리를 통제하고 조종할 수 있지만, 거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을 것이다. 우리는 <매트릭스> 혹은 <트루먼 쇼> 속에 살게 될 것이다.
물론 알고리즘에 모든 권위를 넘기고 트루먼처럼 사는 게 행복하다고 여기는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 사람은 긴장을 풀고 질주를 즐기면 된다. 알고리즘이 모든 것을 맡아서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개인의 존재와 삶의 미래에 대한 통제권을 갖고 싶다면 알고리즘보다, 아마존보다, 정부보다 더 빨리 달려야 한다. 그들보다 먼저 나 자신을 알아야 한다. (p.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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