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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이야기

아부지한테서 편지 왔는데 또 책 읽으래 : 정약용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by 개락당 대표 2018. 8. 8.

 

 

 

아부지한테서 편지 왔는데 또 책 읽으래 : 정약용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조선 오백년의 기간 동안 가장 뛰어난 천재를 꼽으라면 이분이 다섯 손가락 안에 무조건 들어갈 겁니다. 그 시절의 주류 학문이었던 유학부터 시작해서 정치면 정치, 법이면 법, 철학과 행정, 그리고 과학까지, 학자이면서 엄청난 저술가였고 엔지니어이기도 했습니다. 스무살에 우주간의 모든 일을 다 깨닫고 그 이치를 완전히 정리해내려 했다고 하니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잘 안됩니다. 이런 천재와 함께 동시대를 같이 산 사람들은 복 받은 겁니다.

 

 

 

하지만 이 분과 조선 탑 쓰리의 왕이 만났음에도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전세계적으로 대변혁의 시기였으며 조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내리막이던 조선의 역사를 반짝하고 다시 일으켰으나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막장을 달리다 조선은 사라집니다. 우리가 굴기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여서 더 안타깝게 여겨집니다. 제갈량이 하늘의 뜻을 바꾸지 못했듯이, 민중의 힘이 동반되지 않고 몇 명의 인물로 시대의 흐름을 바꾸는 것은 무리인가 봅니다.

 

 

 

그 천재는 다신 정약용(1762~1836)입니다. 한창 자신의 포부를 펼칠 삼십대의 끝자락에, 선생의 후계자였던 정조가 세상을 떠나자 나라의 위계를 무시하는 서양의 종교를 믿었다는 이유로 집안은 폭망을 하고 그도 유배를 떠납니다. 유배지에는 선생은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과 집안 걱정으로 편지를 씁니다. 유배를 당한 폐족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생각을 글로 만들어 멀리 떨어져 있는 자식들과 형님 그리고 제자들에게 보냅니다. 그 편지를 정약용 전문가이자 다산연구소 이사장인 박석무 선생이 엮어서 펴낸 책이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입니다.

 

 

 

 

 

 

오직 독서만이 살아나갈 길이다

 

또한 나는 천지간에 의지할 곳 없이 외롭게 서 있는지라 마음 붙여 살아갈 것이라고는 글과 붓이 있을 뿐이다. 문득 한 구절이나 한 편 정도 마음에 드는 것을 만났을 때 다만 혼자서 읊조리거나 감상하다가 이윽고 생각하길 이 세상에서는 오직 너희들에게나 보여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너희들 생각은 독서에서 이미 연나라나 월나라처럼 멀리 떨어져나가서 문자를 쓸데 없는 물건 보듯 하는구나. (중략) 너희들이 독서하는 것이 내 목숨을 살려주는 것이다. (p.39)

 

 

 

꼭 읽어야 할 책

 

너희들은 도와 덕이 완성되고 세워졌다고 여겨서 다시는 책을 읽지 않으려 하느냐. 금년 겨울에는 반드시 <서경>과 <예기> 중에서 아직 읽지 못한 부분을 다시 읽는 것이 좋겠다. 또한 사서(논어, 맹자, 대학, 중용)와 <사기>도 반드시 익숙하게 읽는 것이 옳다. 역사책을 읽고 자신의 견해를 적는 '사론'은 그동안 몇 편이나 지었느냐? 근본을 두텁게 배양하기만 하고, 얄팍한 자기 지식은 마음속 깊이 감추어두기를 바라고 바란다. (p.33)

 

 

 

책 읽는 방법

 

옛날 서적이 많지 않았을 때는 독서하여 외우는 데만 힘썼는데, 지금은 경經, 사史, 자子, 집集만 해도 대단히 많으니 어찌 일일이 다 읽을 수 있겠는가? 오로지 <역경> <서경> <시경> <예기> <논어> <맹자> 등은 마땅히 숙독하여야 한다. 그러나 모름지기 뜻을 갈구하고 고찰하여 그 정밀한 뜻을 깨달았으면 깨달은 바를 수시로 기록해두어야만 바야흐로 실제 소득을 얻게 된다. 진실로 외곬으로 낭독하기만 하면, 실제 소득은 없을 것이다. (p.309)

 

 

 

게으르지 말고 사치하지 말라

 

집안을 다스리는 요령으로 새겨둘 두 글자가 있으니, 첫째는 근(勤)자요, 둘째는 검(儉)자다. 하늘은 게으른 것을 싫어하니 반드시 복을 주지 않으며, 하늘은 사치스러운 것을 싫어하니 반드시 도움을 내리지 않는 것이다. 유익한 일은 일각(一刻)도 멈추지 말고 무익한 꾸밈은 일호(一毫)도 도모하지 말라. (p.291)

 

 

 

문명세계를 떠나지 말라

 

너희들은 항상 심기를 화평하게 하여 벼슬길에 있는 사람들과 다르게 생활하지 말거라. 자손대에 이르러서는 과거에 응시할 수도 있고 나라를 경륜하고 세상을 구제하는 일에 뜻을 두도록 마음을 먹어야 한다. 천리(천리)는 돌고 도는 것이니 한번 넘어졌다고 반드시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하루아침의 분노를 이기지 못하여 서둘러 먼 시골로 이사 가버린다면 무식하고 천한 백성으로 일생을 끝마치고 말 뿐이다. (p.162)

 

 

 

술 마시는 법도

 

참으로 술맛이란 입술을 적시는 데 있다. 소 물 마시듯 마시는 사람들은 입술이나 혀에는 적시지도 않고 곧장 목구멍에다 탁 털어넣는데 그들이 무슨 맛을 알겠느냐? 술을 마시는 정취는 살짝 취하는 데 있는 것이지, 얼굴빛이 홍당무처럼 붉어지고 구토를 해대고 잠에 곯아떨어져 버린다면 무슨 술 마시는 정취가 있겠느냐? 요컨대 술 마시기 좋아하는 사람들은병에 걸리기만 하면 폭사하기 쉽다. 주독이 오장육부에 배어들어가 하루아침에 썩어 물크러지면 온몸이 무너지고 만다. 이것이야말로 크게 두려워할 일이다. (p.100)

 

 

 

편지에서 자식들에게 거듭거듭 강조하는 것은 책읽기입니다.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이고도 상세하게 설명합니다. 두 아들에게 쓴 독서에 대한 글은 책망이 애원이 함께 있습니다. 처절하기까지 합니다. 선생이 밤낮으로 빌고 원하는 것은 두 아들이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부지런히 책을 읽는 것이며 그것이 자신을 살리는 길이라고 협박?합니다. 당시에 자신이 처한 상황과 가족이 폐족의 형틀에서 세상으로 나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책을 읽는 거라 그렇게 강조한 게 아닐까 생각도 해봅니다.

 

 

 

그리고 꼭 몸에 익혀야 하는 것으로는 부지런함과 검소함을 당부했고, 술 마시는 법도 세세하게 알려줍니다. 아내가 이걸 읽어야 하는데.... 가족들이 폐족으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힘들어 깊은 산 속으로 도망가지는 않을까 염려하는 문장도 있습니다. 집안이 세상에 떳떳하지 못한 상황에서 선비의 도리와 마음가짐도 자세히 썼습니다.

 

 

 

 

내가 강진에서 귀양살이 몇 년이 지났을 때, 부인 홍씨가 낡은 치마 여섯 폭을 보내왔다. 세월이 오래되어 붉은 빛깔이 변했기에 가위로 잘라서 첩을 만들어 두 아들에게 물려주고, 나머지로 이 작은 족자를 만들어 딸아이게 물려준다. - 순조 13년(1813) 7월 14일 열수옹이 다산동암에서 쓰다. (p.139)

 

그런 연유로 외동딸의 결혼 선물로 그린 매조도입니다. 시집 잘 가서 남편과 즐겁게 지내고 후손도 많이 낳아서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라는 아버지의 마음이 담뿍 담긴 선물입니다. 이걸 받은 딸은 또 눈물을 한바가지는 흘렸겠지요.

 

사진 출처 : http://www.daegucity.net/bbs/board.php?bo_table=B25&wr_id=10

 

 

 

이백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세상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선생이 꼭 읽어라고 했던 책도 이젠 거의 읽지 않습니다. 그 시대엔 지식과 즐거움을 주는 것이 오직 책 뿐이었다면 지금은 엄청나게 다양해졌습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배우는 영어나 수학도 백년 후면 아무도 공부하지 않은 과목이 될 수도 있고, 지금 내가 진리라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세월이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백년 전의 세계관이 좀 답답해 보이듯이 지금 나의 세계관도 틀에 박힌 게 아닐까 의심이 듭니다.

 

 

 

하지만 그 시대에 진리인 것이 지금에도 여전히 진리인 사실들이 있습니다. 근검은 여전히 우리가 몸에 익혀야 하는 좋은 습관이며, 몸을 움직이고 말을 하고 얼굴 빛을 바르게 하는 학문하는 자세는 다산 선생의 시대보다 오히려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들이 되었습니다. 마음의 저 깊은 곳을 망치로 치는 깨달음의 구절들이 책 전반에 즐비합니다. 지금부터 또 이백 년이 지난 후에 읽는 이도 그럴 겁니다.

 

 

 

다산 선생의 편지를 받은 두 아들의 답장도 보고 싶네요. 그들의 심경도 들어보고 싶구요. 그런 아버지를 어떻게 여겼는지 궁금합니다. 가까이 하기에 엄두가 나지 않는 대학자였지만 아이들에게는 자상했는지, 아니면 편지에서 느껴지듯 추상같은 아버지였는지 말이에요. "우이씨, 아부지한테서 편지 왔는데 책 안 읽는다고 또 머라구 그래. 아, 짱나!" 설마 이러진 않았겠죠ㅋㅋ. 편지에서 깐깐한 아버지라고 느껴지는 건 아마도 선생이 유배라는 특수한 상황이어서 자식들에게 더 엄하게 대해서 그런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나도 아내와 자식들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집니다. 책 쫌 읽으라구! 편지를 받은 아이들의 반응이 벌써부터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