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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이야기

친구가 어떤 것인지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 이오덕, 권정생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by Keaton Kim 2018. 7. 26.

 

 

 

친구가 어떤 것인지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 이오덕, 권정생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이오덕 선생님. 다녀가신 후, 별고 없으셨는지요? 바람처럼 오셨다가 제弟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고 가셨습니다. 일평생 처음으로 마음 놓고 제 투정을 선생님 앞에서 지껄일 수가 있었습니다. (p.9, 1973년 1월 30일 권정생)

 

 

 

거기 일직교회는 햇볕이 앉을 곳도 없었던 것 같던데 얼마나 추울까요. 약을 계속해서 잡수셔야 할텐데 걱정입니다. 어디 돈을 빌려서라도 약을 잡수시면 제가 가서 갚겠습니다. 그렇게 쇠약하신데도 책을 읽고 싶어 하시니, 저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게 반성됩니다. (p.124, 1979년 11월 9일 이오덕)

 

 

 

1973년 1월, 학교 선생님이자 아동문학가인 이오덕 선생이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을 찾아갑니다. 마흔 아홉의 이오덕 선생과 서른 일곱의 권정생 선생은 띠동갑 친구가 됩니다. 권정생 선생은 홀로 사는 외로움과 지병의 아픔과 자신이 쓰고 있는 동화에 대해서 글로 써서 부쳤고, 이오덕 선생은 그런 권정생 선생을 걱정하는 마음과 따뜻한 격려를 편지로 썼습니다. 편지는 이오덕 선생이 돌아가시는 2003년까지 30년 동안 이어졌고, 그 편지는 아름다운 이야기 꽃이 되어 제 머리맡에 있습니다.

 

 

 

 

 

 

이오덕은 온 힘을 다해 권정생을 알렸고, 권정생은 죽을 힘을 다해 글을 썼다.

 

 

 

선생님, 백번 죽었다 살아난대도, 저는 역시 가난하게 살면서 가난한 아이들의 곁에 있고 싶습니다. 이대로 죽으라면 죽겠습니다. (p.56, 1974년 4월 22일 권정생)

 

 

 

배우지 못한 것이 제일 슬프고 고통스럽습니다. 책 한 권을 읽는 데도 사전을 펼쳐 놓고 봐야 되니, 글 한 편 쓰는 데야 말할 나위 없지요. 그래도 자꾸 틀립니다. 어려운 말을 쓰는 것도 어렵지만, 쉬운 말로 쓰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계속 글은 쓰겠습니다. 앉아서 배길 수 있는 힘만 있으면, 무엇이곤 쓰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니까요. 아무와 얘기할 것이 없으니, 자연 책에 눈이 가고, 하고 싶은 말을 쓰지 않을 수 없지요. (p.60, 1974년 5월 6일 권정생)

 

 

 

요즘 라디오를 듣고 있으면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어지러운 것 같아요. 조용한 것보다는 좋다고 봅니다. 과감하게 행동하고 문제를 계속 일으키고 그래서 많이 자라면 눈은 뜨여지기 마련입니다. 젊은 학생들의 저항 의식이 계속 살아서 움직여야만 국가는 병들지 않을 것입니다. (p.204, 1980년 5월 13일 권정생)

 

 

 

가장 절실한 인간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위대한 장군이나 성직자가 아닙니다. 지금 배고픈 사람, 지금 추위에 얼어 죽어 가는 사람, 지금 병으로 괴로워 몸부림치고 있는 사람, 온갖 괴로움 속에 허덕이는 사람만이 진실을 말 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 자신을 속이지 말고, 정직하게 앞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p.233, 1981년 11월 19일 권정생)

 

 

 

십여 년 전에 안동 조탑동엘 갔더랬습니다. 탑이 많아 이름도 조탑동인 이 동네 자랑거리 5층 전탑을 보러 갔지요. 탑을 보다 일직교회도 만났습니다. 아, 저기가 권정생 선생이 종을 쳤다는 그 교회네..... 하며 지나쳤던 기억이 있습니다. 선생이 아직 살아계실 시절이라 조금만 발품을 팔았더라면 뵐 수도 있었을텐데요.

 

 

 

선생은 가난했습니다. 전쟁으로 가족을 뿔뿔히 흩어졌고, 선생은 가난으로 결핵에 걸렸지만 제대로 먹지 못했고 치료도 받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몸이 아파서 결혼도 못했으며 조탑동에서 홀로 평생을 사셨습니다. 책에서도 선생이 외롭게 지내는 장면이 꽤 나옵니다. 그리고 외로움과 육신의 아픔을 이겨내려고 치열하게 글을 썼습니다.

 

 

 

이오덕 선생과 권정생 선생. 마흔 아홉과 서른 일곱에 처음 만나셨으니, 아마도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찍은 사진인 듯 하다. 잘생기셨다. 두 분 다.

 

사진 출처 : https://brunch.co.kr/@woonee/11

 

 

 

산골에 있어도 할미꽃 한번 못 보고, 진달래꽃 한번 찾아가 보지 못하는 일과입니다. 며칠 전에도 여기를 오다가, 어느 골짜기 양지 바른 산허리에 살구꽃 봉오리가 발갛게 부풀어 올라 아침 햇빛에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 것을 보고 눈물이 날 뻔하였습니다. (p.21, 1973년 4월 14일 이오덕)

 

 

 

권선생님, 편지 감사합니다. 얼마나 수고가 많으십니까. 선생님의 어려운 형편을 생각하지도 않고 지내온 것이 죄스럽습니다. 우편환으로 7천 원 부쳐드립니다. 또 어려우시면 편지 주십시오. 제가 직접 가지 못해 안됐습니다. 3월 중순까지는 틈이 안 날 것 같습니다. 우선 급한 대로 양식과 연탄 같은 것 확보하십시오. (p.43, 1974년 2월 13일 이오덕)

 

 

 

이 세상에 악이 승하도록 버려두어서는 안됩니다. 더구나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우리 주변의 일 아닙니까. 장자같이 살아가는 것은 결과적으로 도피입니다. 우리는 루쉰을 배워야 합니다. 꼭 몇 자 적어 주세요. 저는 그걸 도저히 묵인할 수 없습니다. (p.189, 1979년 7월 6일)

 

 

 

여기는 어제 아침에 벌써 된서리가 내리고 얼음이 꽤나 얼었습니다. 그 허술한 방에서 무더운 여름을 지나게 하고, 또 겨울을 보내도록 해서 참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사람 같지 않게 살고 있는 나 자신이 한없이 미워집니다. 선생님의 새 동화집을 모든 아이들이 읽을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하고 빌 뿐입니다. 부디 조심하시고 쉬어 가면서 천천히 쓰시기 부탁입니다. (p.229, 1981년 10월 16일)

 

 

 

"부디 무리하지 마시기 부탁드립니다.", "부디 음식을 좀 낫게 잡수시도록 부탁합니다.", "계속 좋은 글 써 주시기를 빕니다.", "어려운 일 있으면 편지 주세요." 이오덕 선생의 편지는 항상 이런 식으로 끝납니다. 가난하고 병들고 외로운 권정생 선생을 진심을 다해 보살피려는 마음이 편지 내내 이어집니다. 권선생을 진심으로 알아주고 아낀 분입니다. 그리고 가끔 아동 문학과 한국 문단에 대한 이오덕 선생의 대쪽 같은 성품도 이 글에서 보입니다.

 

 

 

1974년 12월 27일 이오덕 선생의 편지에 한국아동문학상 제1회 수상자로 권선생이 내정되었다는 소식을 전한다. 너무 반가워 급히 알려드린다고 썼는데, 이오덕 선생의 기뻐하는 모습이 선하다. 정작 받는 본인은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지 의심이 간다고 하는데 말이다. 이오덕 선생이 계셨기에 권정생 선생의 주옥 같은 작품이 나왔다.  

 

사진 출처 : https://www.tumblbug.com/letterproject

 

 

 

영원할 것 같았던 두 분의 연애 편지는 나이가 많이 드신 이오덕 선생이 돌아가시면서 끝이 납니다. 이오덕 선생은 권정생 선생의 건강을 염려했지만, 이오덕 선생의 건강도 좋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말년엔 음식을 거의 못 먹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 이선생을 두고 권정생 선생이 어떻게 해서라도 밥을 먹어야 한다고, 나도 죽기살기로 먹었다고 격려합니다. 이오덕 선생이 돌아가시기 두 달 전에 쓴 시에 그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그 부분에서 울컥하고 말았습니다. 친구란 어떤 것인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이오덕 선생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그날 저녁 권정생 선생은 마지막 편지를 씁니다. 자기를 진정으로 알아주었던 친구에게 말입니다.

 

 

 

<중략> 선생님이 가진 곳은 어떤 곳인지, 거기서도 산길을 걷고 냇물 돌다리를 건너고, 포플러나무가 서 있는 먼지 나는 신작로 길을 걸어걸어 씩씩하게 살아주셨으면 합니다. <일하는 아이들>에 나오는 그런 개구쟁이들과 함께 별빛이 반짝이는 하늘 밑 시골집 마당에 둘러앉아 옥수수 까먹으며 얘기 나누시는 그런 세상이었으면 합니다.

 

 

 

아직 이승에 남아 있는 우리들은 선생님이 남기신 골치 아픈 책들을 알뜰히 살피며 눈물 나는 세상 힘겹게 견디며 견디며 살 것입니다. 사이 좋다가도 토라지기도 하면서요. <우리말 바로쓰기>, <우리 문장 쓰기>는 국어 공부하는 사람이면 어쩔 수 없이 누구나 책꽂이에 꽂아 두고 봐야 할 필독서가 되었습니다.

 

 

 

선생님, 이담에 우리도 때가 되면 차례차례 선생님이 걸어가신 그 산길 모통이로 돌아가서 거기서 다시 만나 뵙겠습니다. 부디 큰 눈을 더 부를뜨셔서 이승에 남아 있는 우리들을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살아 생전처럼 호되게 꾸지람하시고요.

 

 

 

선생님의 영전에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진달래꽃 한 다발 마음으로 바칩니다. (p.369, 2003년 8월 25일 권정생)

 

 

 

책에서 가끔 까메오로 등장하시는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의 전우익 선생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권정생 선생은 여전히 고무신이네. ㅎ

 

진 출처 :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2107179&CMPT_CD=AMP1#cb

 

 

 

책을 읽으면서 영혼의 화가 고흐와 그를 보살핀 동생 테오의 편지글이 떠올랐고, 관포지교의 주인공인 중국 제나라의 명 재상 관중과 그를 알아준 친구 포숙아의 일화도 생각이 났습니다. 권정생 선생은 평생 힘들게만 살아왔다고 알고 있었는데, 자신을 알아준 진정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보통의 사람이 경험하지 못한 행복감을 느꼈을 듯 합니다. 부럽습니다.

 

 

 

두 분이 돌아가신지 10년이 훌쩍 넘었고, 책에 나오는 편지는 그보다 훨씬 이전의 것이지만, 바로 지금 나에게 들려주는 글 같은 울림이 있습니다. 진심이 묻어나기 때문일테지요. 어쩜 이토록 아름다운 우정이 있을까요. 사람이 사람에게 받을 수 있는 가장 깊은 교감과 가장 따뜻한 위로를 이 책에서 보았습니다.

 

 

 

아, 권정생 선생의 생가 평상에 앉아 따뜻한 햇볕을 쬐고 싶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