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사람의 눈으로 보고 옛 사람의 마음으로 느낀다 : 오주석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위 그림은 단원 김홍도의 그림입니다. 잘 보고 다음 물음에 답을 해보세요.
1. 이 씨름은 누가 이길까요?
2. 씨름하는 사람들은 어디로 넘어질까요?
3. 다음 판에 나올 선수는 누구일까요?
4. 씨름 시합을 한 지는 얼마나 되었을까요?
5. 계절은 어느 때일까요?
6. 현대 씨름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7. 틀린 그림을 찾아보세요.
8. 구경꾼 중에서 빠진 사람은 누구인가요?
9. 이 그림은 주로 누가 볼까요?
아는 만큼 보이는 법입니다. 폐사지에 굴러 다니는 돌맹이들도 그 유래를 알면 제대로 달리 보입니다. 내가 가장 잘 아는 건축도 마찬가지입니다. 건축물의 유래와 담긴 사연을 알고 형태와 구조, 재료에 대해서 알면 눈에 들어오는 것이 많아집니다.
그런데 그림은?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을 통털어 우리 옛 그림은 이러이러하니 이렇게 보면 더 잘보인다고 말해 주는 이 하나 없었습니다. 굳이 자책을 하자면, 알려고 하면 알 수도 있었으나 사실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습니다. 박물관에서도 그저 훌쩍훌쩍 설렁설렁이었습니다. 다 비슷하기도 했구요. 근데 나 같은 이가 어디 한둘이겠습니까? 그러나 좀 알게 되면 흥미가 생기는 법입니다. 오주석 선생은 몰라서 즐기지 못하는 우리에게 아주 친절하고 상세하게 가르쳐주십니다. 우리 옛 그림은 이렇게 보는 거라고.
그림 대각선의 1 ~ 1.5배 정도 거리에서 천천히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쓰다듬듯이
옛 사람의 눈과 마음으로 찬찬히
자, 그러면 위의 씨름하는 그림을 선생이 말씀하시는 대로 다시 한 번 봐 보세요. 답이 좀 보이십니까? 오른쪽 가장 위에 있는 사람은 입을 헤 벌리고 재미있게 구경을 하고 있습니다. 몸이 씨름판에 곧 들어갈 기세입니다. 그 옆의 상투를 튼 어린 총각?은 팔베게를 하고 누웠습니다. 처음부터 눕진 않았을테고, 씨름이 한창 진행되어 거의 막바지에 왔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왼쪽 위의 부채들고 갓을 쓴 사람도 다리가 저리는 가 봅니다. 역시 시간의 경과를 알 수 있습니다.
그 아래의 두 사람은 생긴 것이 꼭 닮았습니다. 눈도 부리부리하고 다부집니다. 신도 벗고 깍지를 낀 것으로 보아 약간 긴장한 듯도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두 사람은 다음 판에 나갈 선수들입니다. 지금 판을 유심히 관찰하여 다음 판에서 어떤 기술을 쓸 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갓도 벗고 신도 벗어 가지런히 놓았습니다. 다음 판에 나갈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지금은 빤쮸만 입고 씨름을 하는데 예전에는 옷을 다 입고 버선까지 신은 채 씨름을 하는 군요. 땀이 많이 날텐데요. 그래도 옷을 벗지 않습니다. 그리고 관중들이 다 남자입니다. 그 시대의 여성은 씨름을 좋아하지 않았을까요? 남정네들이 어울려서 하는 씨름이 꽤 재미있는 구경거리였을텐데. 옷을 함부로 벗지 않는, 남자와 여자를 가리는 법도가 지금보다는 훨씬 엄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자, 나머지 답은 책을 직접 읽어보시면 다 나옵니다.
오주석 선생이 세계 최고의 호랑이 그림이라고 극찬한 김홍도의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와 그 중 호랑이 그림을 확대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호랑이 자체가 우선 크고 아름답고, 육중하면서도 동시에 민첩하고 유연해 보이는 그것을 아주 생동감 있게 그려냈다고 설명한다. 아래 그림에서 실바늘 같은 선을 수천 번 반복해서 그렸음을 알 수 있다. 털 하나하나가 살아있다. 아마 김홍도는 이 그림을 그렸을 때 팔이 빠졌을 거다.
(조선 범은 조선 사람을 빼 닮았다고 한다. 터럭이 작고 팔다리가 짧은데, 극한의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장 진화된 형태라고 하셨다. 나, 맨날 등이 길다고 마눌한테 놀림받는다. 선생의 글이 위로가 되었다.)
사진 출처 : http://blog.daum.net/micropsjj/17038287
<송하맹호도>가 세계 최고의 호랑이 그림이라면 위의 그림은 세계 최고의 초상화라고 오주석 선생은 우기신다. 그림은 전 <이재 초상>이다. 주인공의 인물에 엄숙하고 단정한 기운이 배어 있고 형형한 눈빛을 보고 있자니 저절로 똑바로 서지고 두 손이 단정하게 모아지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고 고백한다.
사진 출처 : http://blog.daum.net/micropsjj/17038287
문화,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보람, 특히 지금 이 땅에 사는 이유, 그리고 우리가 우리인 까닭, 바로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한 나라의 문화는 빼어난 사람들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문화인, 예술가들이 아무리 피나는 노력을 해도 한 나라의 문화 수준이란 결국 그것의 터전을 낳고 함께 즐기는 전체 국민의 눈높이만큼만 올라설 수 있습니다. (책 표지글)
다정다감한 선생님이 우리 그림에 대해 아주 친절하고 세세하게 가르쳐 주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렵고 복잡한 작품을 이렇게 알기 쉽게 설명하는 것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닐텐데 말이죠. 좀 더 일찍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는 선생을 만났더라면 내가 더 풍부한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을까요?
선생이 책이 나온지 벌써 십 수년이 흘렀고, 이 책의 저자인 오주석 선생도 오래 전에 돌아가셨다. 하지만 선생의 강의는 여전히 이렇게 남아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나처럼 우리 그림에 관심이 전혀 없던 사람들에게 선생의 책을 알리고 싶군요. 문화를 즐기는 국민의 전체의 눈높이가 바로 문화 수준이라는 선생의 말씀이 콕 하고 찌릅니다.
"산아, 들아, 강아, 저 호랭이 그림 함 봐봐, 호랭이가 너보고 뭐라고 그래?" 아이들과 당장이라도 책을 펴 놓고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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