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 이야기

오로지 영화에 대한 절절한 사모곡 : 정성일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

by Keaton Kim 2017. 2. 19.

 

 

 

오로지 영화에 대한 절절한 사모곡 : 정성일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

 

 

 

나는 영화가 진정으로 흥미롭게 생각되는 시간은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할 때라고 믿는다. 우리는 영화를 경유해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온 다음 별달리 할 이야기가 없을 때, 심지어 영화가 끝나자마자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이미 무엇을 보았는지 생각이 잘 나지 않을 때, 그래서 내가 오늘 오후에 두 시간 동안 사실상 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영화를 보러 가기 위해서 거리를 오가면서 느낀 풍경의 아름다움만이 유일하게 위로가 될 때, 나는 영화관을 나서면서 문득 스산한 시간의 공허를 느낀다.

 

 

 

우리가 무언가 했는데 거기서 배움이 없을 때 그 시간은 죽음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p.33)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은 결코 보이지 않는다. 이 명제는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에 적용된다. 시나 소설같은 문학이 그렇다. 그림이나 음악같은 예술은 더욱 그러하고 유적이나 건축은 더더욱 그러하다. 폐사지의 아무렇지도 않은 돌맹이도 역사적 유래와 시공간의 스토리가 담기면 아름답고 감동적인 건축 유산의 일부가 된다. 영화평론가이자 감독인 저자 정성일은 영화도 꼭 그렇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한마디로 영화에 미친 사람이다. 한 분야에 어쩌면 이렇게 몰두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열살의 나이에 홍콩 영화 장철의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를 보고 그 이후로 홍콩 영화는 한편도 빠짐없이 다 보았으며, (순전히 영화관을 찾아 헤메느라 익힌 지리 감각으로 서울 시내 지리를 익혔다고 고백한다. 열살 때 말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본 영화를 영원히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일주일 내내 극장에서 살았다고 고백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우연히 본 고다르의 <기관총 부대>로 영화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의 영감을 받아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을 깨달았다고 하고 고다르의 어떤 영화는 100번도 넘게 봤다고 고백했다.

 

 

 

보통의 경우 어려서 한 분야에 너무 몰두하게 되면 반쯤은 미치광이가 되어 패가망신하기 딱 좋은 쪽으로 흘러가기 마련이지만, 저자는 자신의 호기심과 관심을 오로지 영화에 대한 애정으로 승화시켰다. 장성일 자신에게 영화란 무엇이냐는 질문에 "영화는 나에게 영원한 순정이다."라고 정의하였다.

 

 

 

외모도 어찌보면 아주 매니아스럽게 생기셨다. 이웃집 아자씨 같기도 하고.....  미치도록 빠질 그 무언가가 있고, 그것을 자기가 가장 잘 하는 것으로 만들고, 그래서 그와 관련한 직업을 가질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삶이 있을까? 책에는 영화에 대한 그의 사랑이 '애정과 열정'을 넘어 숭고한 의식과 신념으로까지 비친다. 분하지만?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사진은 채널예스에서 퍼왔다.

 

 

 

그의 글은 길고 어렵고 깊이가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물론 이 책도 마찬가지이다. 라면 받침로도 그 쓰임새가 훌륭한 두께를 지녔음은 물론이고, 영화에 취미가 없는 이가 읽기에는 단언컨대 무리다. 책에 등장하는 들어보지 못안 수많은 영화 감독들과 작품들, 그리고 영화의 촬영 기법이나 용어가 저 강 건너의 불처럼 허공을 떠돈다.

 

 

 

책은 크게 '좌표' '감각' '배움'이라는 타이틀로 나누어지고 각각은 10편 내외의 평론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평론은 영화에 대해, 영화 감독에 대해 이야기하고, 때론 영화제나 영화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며 문학이나 철학, 혹은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한다. 이들 중간에는 지아장커와 장율이라는 나름 유명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감독과의 긴 대화도 들어있다. 한 꼭지가 끝날 때마다 나오는 일러스트 정우열의 재치 넘치는 짧은 카툰은 그나마 우리에게 숨 쉴 공간을 준다.

 

 

 

싼샤의 거대한 댐이 건설된다고 발표가 나고, 그래서 그 댐이 완공되면 절경의 협곡이 다 사라진다고, 빨리 와서 보라고, 몇 천년동안 지녀왔던 이 절경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다 사라진다고 여행사에서 막 광고하던 것이 불현듯 생각났다. 지아장커 감독의 영화 <삼협호인, 영문 제목 : 스틸라이프>는 바로 이 싼샤의 도시와 싼샤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들은 지루하지만 울림이 큰 영화라고 했다. 아직 보지 않았다. 보고 나면 책에 나오는 감독과의 대화가 좀 더 가까이 있겠지.

 

 

 

그의 글이 길고 어렵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그가 보여주는 영화에 대한 '애정'이다. 오즈 야스지로, 장 뤽 고다르, 차이밍량, 허우샤오시엔, 에릭 로메르를 비롯한 책에 나오는 수많은 거장들과 그들의 작품 해설은, 물론 영화를 공부하는 이들과 영화에 관심이 많은 이들에게는 매우 유용한 글일 테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도 거장들에 대한 저자의 사랑을 담뿍 느낄 수 있다. 저자는 일관되게 '애정을 가지고 영화를 봐라. 무슨 영화를 볼 건가에 대해 고민하는 대신 영화를 통해 무엇을 보았는지를 고민하라' 라고 강조한다.

 

 

 

무엇보다도 영화에 관한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기억을 다루는 것이다. 물론 그 영화를 당장 다시 보면서 쓸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방법을 택하지 않는다. 차라리 필사적으로 기억을 찾아서 다시 생각하고, 왜 그것만이 기억에 남았는지를 생각하고, 그런 다음 왜 저것은 사라져 버렸는지를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것이 내게서 사라져 가는 시간과 남아 있는 시간 사이에서 오가는 불안과 행복 사이의 경기장이다. 나에게 영화란 그것을 보는 시간과 그것으 보러 가는 시간, 그리고 보고 난 다음의 시간, 세 개의 시간 사이에서 기억의 사용에 대한 용법과 능력의 문제이다. (p.13)

 

 

 

한 편의 영화를 보고 난 다음의 감상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그리고 그 감상의 크기는 그 영화에서 남이 보지 못한 나만의 무엇을 보았느냐에 달려있다. 남이 보지 못한 나만의 무엇을 보는 것은 결코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 지식이 있어야 하고 노력이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사랑이 있어야 그것은 비로소 보인다. 영화 뿐만 아니라 문학과 예술, 건축 등 모든 장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저자는 한편의 영화를 통해 끊임없이 복기하여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돌아보라고 한다. 그것이 영화를 만든 이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예의이자 애정이다.

 

 

 

그렇다. 적어도 나는 이 책을 통해 그렇게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