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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이야기

반가사유상을 만나다 : 최순우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by 개락당 대표 2017. 8. 21.

 

 

 

반가사유상을 만나다 : 최순우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반가사유상이 지닌 아름다움의 특색은 사색하는 부처님으로서의 깊고 맑은 정신적인 아름다움이 인체 사실寫의 원속한 조각 솜씨와 오묘한 해화를 이루어주는 데에 있다. 슬픈 얼굴인가 하고 보면 그리 슬픈 것 같이 보이지도 않고 미소 짓고 계신가 하고 바라보면 준엄한 기운이 입가에 간신히 흐르는 미소를 누르고 있어서 무엇이라고 형언할 수 없는 거룩함을 뼈저리게 해주는 것이 이 부처님의 미덕이다.

 

 

인자스럽다, 슬프다, 너그럽다, 슬기롭다 하는 어휘들이 모두 하나의 화음으로 빚어진 듯 머리속이 저절로 맑아오는 것 같은 심정을 일으키는 것이 바로 그러한 부처님이 중생에게 내리는 제도濟度를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p.355)

 

 

** 제도 : 부처가 생과 사를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세상에서 중생을 건져내어 열반에 이르게 하는 것

 

 

 

큰 아이가 서울에 올라왔습니다. 아빠 만나러 왔냐구요? 그럴리가요. 여자친구를 보기 위해 서울에 왔습니다. 참 세월 좋습니다. 중학생 주제에 여친 만나러 서울꺼정.... 2박3일 일정인데, 서울에 있는 아빠를 위해 그래도 하루를 내어 줍니다. 물론 이틀은 여친과 보내구요. 나무라야 할지, 고마워 해야 할지....

 

 

 

아이와 온전히 하루를 보내게 되었으니 서울에서 같이 가 볼 만한 곳을 찾아봅니다. 어디가 좋을까? 궁리 끝에 용산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가 보기로 합니다. 정하고 보니 중3 남자아이가 좋아할 장소는 아니군요. 순전히 아빠가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예전에 중앙박물관은 광화문의 중앙청 건물에 있었습니다. 1995년 영삼이 아재가 '역사 바로 세우기' 정책으로 헐어버려, 이제는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옛 조선 총독부 건물 말입니다. 이후 제대로 자리를 못잡고 있다가 용산 미군기지의 일부를 돌려받아 2005년에 지금의 박물관이 세워졌습니다. 

 

 

 

 

 

 

 

 

 

 

건물의 모티브는 성벽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정림건축의 박승홍 건축가가 설계하였습니다. 한눈에 딱 봐도 깔끔하고 모던합니다. 박물관으로는 실리적 설계이지만 지나치게 합리성에 무게를 두어, 한국을 대표하는 박물관의 아이덴티티를 구현하는 데는 실패했다는 평도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해방 이후 최악의 현대건축 17위에 꼽히기도 했습니다.

 

 

 

 

 

 

 

 

"아들, 저기가 머 같냐?"

 

"어, 미국 같은데요, 예전에 미국에 갔을 때 본 거랑 비슷해요."

 

 

 

하~~ 이 녀석, 정말 예리한데.... 박물관에서 뒤쪽을 바라본 풍경입니다. 지도에 보면 박물관 뒷쪽은 아주 큰 푸른 색으로만 표시가 됩니다. 바로 용산 미군기지입니다. 평택의 미군기지가 다 완공이 되면 모두 이사가고 우리가 돌려받게 될 땅입니다. 도심중의 도심에 자리잡은, 우리의 땅이면서 우리 것이 아닌 곳을 바라보는 심정이 이상하게 묘~~ 합니다.

 

 

 

 

 

 

 

 

박물관 내부에는 탑도 있습니다. "아니, 탑골공원에 있던 원각사지 탑이 언제 이리 옮겨 왔지?" 하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국보 86호 경천사 10층 석탑' 입니다. 울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대리석으로 만든 불탑으로 고려시대에 만들어졌다는 군요. 훗날 세조 때 만들어진 국보 2호 원각사지 10층 석탑에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어쩐지..... 개성 인근 경천사 터에 있던 것을 일제가 가져갔다가 다시 총독부로, 그리고 경복궁에 전시했다가, 대리석의 오염이 심해져서 결국 박물관 내로 옮겨졌습니다. 거대한 석탑을 박물관에 통째로 옮겨놓은 경우는 전 세계적으로도 거의 없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반가사유상입니다. 국보 78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드디어 만났습니다.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이유는 유홍준 선생의 책 때문입니다. 선생의 책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에 보면 일본 국보1호인 광륭사 목조미륵반가사유상이 나옵니다. 야스퍼스가 이 불상을 보고 했던 찬사가 꽤 인상에 남아 있습니다. 언젠가 한번 보고 싶다고 생각을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불상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이 반가사유상도 아직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회한이 있었는데 오늘 그 불상을 만난 것입니다.  

 

 

 

이 불상은 중앙박물관의 하이라이트답게 방 하나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참을 눈싸움을 했습니다. 바라보고 있자니,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기운이 듭니다. 불상 옆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습니다. 어린 학생들이 지나가고, 단체 관람객이 지나가고, 중고등학생이 지나가고, 사진을 찍는 여러 무리의 사람이 이 불상을 지나갑니다. 각기 다른 이들이 하는 각기 다른 설명을 듣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어 봅니다. 여러 질문을 하고 나의 여러 사정을 이야기했습니다. 무어라 말씀은 없었지만, 희미한 그 미소가 모든 대답을 대신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의 보챔에 겨우 자리를 뜹니다.

 

 

 

 

 

 

 

 

 

 

 

 

 

박물관 밖으로 나오면 이런 탑들의 동네가 있습니다. 여름이라 산책하기엔 꽤 더웠지만 볼 만 했습니다. 선선한 바람이 불면 오히려 거닐고 싶은 야외 박물관입니다. 외국에 나가면 꼭 박물관에 먼저 가봅니다. 근데 울나라 박물관은 이제서야 왔습니다. 참 좋았습니다. 단지 몇 시간으로 모든 문화재와 교감을 나누는 것은 무리였지만 당당하게 서 있는 우리의 문화재가 자랑스러워졌습니다. 그걸 본 나도 뿌듯했구요. 큰 아들이 가져다 준 선물입니다.

 

 

 

 

 

 

박물관 안에 있는 서점에 들렀습니다. 최순우 선생의 책을 샀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이 책을 읽고, 말도 못 배운 큰 아들과 걸음마도 못 뗀 딸과 함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선 기억이 있습니다. 반가사유상에 대해 선생이 쓴 글부터 읽어봅니다. 그 오묘한 미소를 '무엇이라고 형언할 수 없는 거룩함'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렇군요. 선생은 그렇게 느꼈군요. 내가 받았던 그 느낌과 그리 달라보이지 않습니다.

 

 

 

책 속에는 내가 오늘 본 여러 문화재들에 대한 선생의 애정어린 글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내가 느낀 무어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선생은 소박하고 친숙하게 그 감정의 근원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꾸미지 않고 자연 그대로에 순응하는 절제된 한국의 미'를 재대로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그 바탕에는 우리 문화에 대한 선생의 따뜻한 사랑이 있습니다.

 

 

 

책과 함께 가 볼 곳이 또 많이 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