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 이야기

엄니가 해주시던 맑은 조기탕이 생각나누나 : 박찬일 <미식가의 허기>

by Keaton Kim 2018. 6. 8.

 

 

 

엄니가 해주시던 맑은 조기탕이 생각나누나 : 박찬일 <미식가의 허기>

 

 

 

한겨울 새벽에 장을 보면, 내가 먹는 밥도 아닌데 목이 멜 때가 있다. 막 짐을 부려놓고 추운 길가에서 식은 밥을 먹는 사람들이 보이는 까닭이다. 시장이란 본디 툭 터진 노상이라 바람 가릴 막조차 없게 마련이다. 배달받아서 먹는 그들의 밥상이 초라해 보이지는 않지만, 먹먹해지는 감정은 어쩔 수 없다. 그나마 배달이라도 받아 뜨신 밥을 드는 축은 낫다고 할까. 시장 노점에서 초라한 도시락밥을 꺼내어 국물도 없이 삼키는 할머니들을 보면, 아 이놈의 세상이라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p.244)

 

 

 

노가다라는 직업의 특성상 삼시세끼를 모두 밖에서 먹는다. 아침은 고봉민 김밥집에서 주는 아침 정식을 먹는다. 김치와 가지무침, 멸치볶음 같은 기본 반찬에 된장국이 나온다. 계란 후라이도 함께. 점심은 금수레 식당이라는 함바(밥집의 일본말)에서 해결한다. 구운 생선과 오이무침, 깻잎에다가 시레기 국이다. 밥은 자기가 먹을 만큼 알아서 푸면 된다. 저녁까지 함바에서 먹기 좀 그래서 보통 근처 순대국밥집 혹은 곱창 집을 이용하거나, 삼겹살을 구워먹기도 한다. 이도저도 귀찮을 땐 얼른 숙소로 와서 햇반에 고추참치로 때울 때도 있다.

 

 

 

그래서 나는 집밥에 집착한다. 2주마다 집에 와서는 꼭 집밥이다. 근데 그게 잘 안된다. 아내는 아내대로 그 동안 집밥을 먹었으니 남편이 왔을 때 외식을 하자고 한다. 여태 식당 음식을 먹었는데 집에 와서도 또 식당밥을 먹자니, 한때 이걸로 많이 다투었다. 해답은 내가 집밥을 만들면 된다. 아내는 바깥밥이 먹고 싶은 게 아니라 차려주는 밥이 먹고 싶었던 게다. 집에 오면 자연스럽게 주방은 나의 차지가 된다. 나도 아내도 만족한다.

 

 

 

그렇게 고집하는 집밥이란 어떤 걸까? 내가 내리는 정의는 이렇다. 일단 밥이 맛나야 한다. 갓 지은 밥이 정답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슬고슬하고 윤기가 나는 뜨거운 밥. 이러면 반찬은 대충이어도 맛나다. 식당의 푸석하고 거친 밥은 암만 먹어도 허기지다. 그리고 반찬은 하나라도 갓 무친 싱싱한 것이 나와야 한다. 오이무침이든 콩나물무침이든 시금치무침이든. 생선이라면 갓 구운 것이면 더욱 좋고. 갓 구운 김이 더해지면 이건 뭐.... 적고 보니, 집밥의 기준이란 미리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라 지금 이 한 끼를 위해 금방 만든 음식이네.

 

 

 

식당에서 이런 밥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지도 모른다. 판교 현장에 있을 때 집밥에 아주 가까운 밥집을 찾았는데 '찬장'이라는 이름의 식당이었다. 한끼 밥값이 만원에서 만삼천원 정도였다. 바깥에서 집밥을 먹으려면 그 정도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말이다. 박찬일의 이 책에서도 6천원짜리 밥에 이것저것 떼고 나면 실제 재료비는 빤하니 너무 많은 걸 요구하지 말자고 얘기했다. 그럼에도 반찬 하나라도 정갈하게 해서 갓 지은 밥을 먹고 싶은 맘은 어쩔 수 없다.

 

 

 

먹고 사는 건 지엄한 일이라고 했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이 먹는 일을 때운다고 표현한다. 식당에서 거친 밥을 우걱우걱 퍼 넣으며 지엄한 일을 해결한다. 속으론 따신 집밥을 갈망하면서. 김태리가 집에 있는 재료로 정성을 다해 만든 한끼가 그리운 이유, 삼시세끼에서 한끼를 위해 온종일 잡고 따고 만들고 볶고 애쓰는 모습이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 이유가 여기 있다.

 

 

 

 

 

 

나는 냉면을 내리던 옛 제면 노동자의 무너진 어깨를 생각한다. 화상으로 가득한 요리사의 팔뚝을 떠올린다. 칼에 신경이 끊어진 어떤 도마 노동자의 손가락을 말한다. 그뿐이랴. 택시 운전사의 밥때 놓친 위장과 야근하는 이들의 무거운 눈꺼풀과 학권 마치고 조악한 삼각김밥과 컵라면 봉지를 뜯는 어린 학생의 등을 생각한다. 세상사의 저 삽화들이 떠받치는 말, 먹고살자는 희망도 좌절도 아닌 무심한 말을 입에 굴려본다.

 

 

아비들은 밥을 벌다가 죽을 것이다. 굳은살을 미처 위로받지 못하고 차가운 땅에 묻힐 것이다. 다음 세대는 다시 아비의 옷을 입고 노동을 팔러 새벽 지하철을 탈 것이다. 우리는 그 틈에서 먹고 싸고 인생을 보낸다. 이 덧없음을 어찌할 수 없어서 소주를 마시고, 먹는다는 일을 생각한다. 달리 도리 없는 막막함을 안주 삼아서. (p.5 프롤로그 중에서)

 

 

 

이 아저씨를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파주에 사는 친구 갑수(우리나라 3대 여행 작가라고 지입으로 말한다)의 집에서 우리 가족 모두가 일주일 정도를 묵었는데, 그 때 홍대 앞에 파스타집엘 데려갔었다. 친한 형이 그 집 요리사라 인사를 시켜줬고, 우리는 그가 만든 파스타를 맛나게 먹었고 얼마 후 그가 쓴 책이 나와서 사보기도 했다. 노란 표지가 인상적인 <보통날의 파스타> 라는 책이었다. 그 책의 지은이가 박찬일이다. 거의 10년이 된 오래전 이야기다. 

 

 

 

문예창작과를 나와 잡지기사로 밥벌어 먹다 사람을 만나 듣기 싫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싫어서 '죽어서 아무 말이 없는' 재료를 다루는 요리사가 되었다는 저자는 벌써 열몇 권의 책을 낸 칼럼니스트다. 주방에서 남들보다 고단한 노동을 하고 난 후 글을 쓰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을텐데. 역시 남다른 사람은 남다른 노력이 있다. 그래서 그에겐 '글 쓰는 셰프' 라는 별칭이 붙었다. 스로 B급 주방장이라고 주장하지만.

 

 

 

요리사의 책이지만, 음식은 이렇게 하는 거라든지, 어딜 가면 뭐가 맛나다든지 하는 내용이 아니다. 비루하고 고단한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 입으로 들어가는 한끼의 밥에 대한 찬사와 그 재료를 기르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 우리의 정이 묻어나는 음식 문화가 사라져가는 데 대한 아쉬움, 감성적인 눈으로 바라본 주방노동자와 그 회한, 획일화 되어가는 음식과 그것을 요리하는 사람 사이의 정치적 관계와 그 인간미 없는 관계에 대한 푸념 등, 오랜 사색 끝에 나올 수 있는 글들이 기자 출신답게 신랄하고 단호한 필치로 가득 차 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저자가 말하는 <미식가의 허기>를 알겠다. 도시 생활에 배가 고파 내려왔다는 '리틀 포레스트'에 나오는 김태리의 허기, 내가 바깥에서 암만 맛나는 걸 배부르게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그 '허기' 말이다. 나는 나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그렇게 집밥을 갈구한다.

 

 

 

엄니가 해주시던 맑는 조기탕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