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문 이야기

나를 위한 넓고 방대한 지식 : 채사장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by Keaton Kim 2018. 6. 22.

 

 

 

나를 위한 넓고 방대한 지식 : 채사장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우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방법부터 생각해보자. B는 창고에 가득 쌓인 구두 재고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시장을 찾아 떠나기로 했다. 그래서 배를 한 척 구입한 다음 창고에 쌓여 있던 구두를 모두 실었다. 그러고는 멀고 먼 길을 항해해 아마존에 도착했다. B가 듣기로는 아마존에 있는 사람들은 아예 신발을 신지 않는다고 하니, 그곳은 정말 블루오션일 것이다. 배 구입비용, 인건비 등 시간과 비용이 매우 컸지만, 모두 해결하고도 큰 이익이 남을 것이다. 배가 해안에 도착하자 머리에 깃털을 꽂고 나뭇잎으로 하반신만 가린 원주민들이 환영했다. B가 말했다.

 

 

"구두 팔러 왔어."

 

 

원주민 족장이 말했다.

 

 

"줄 게 없는데."

 

 

생각해보니 그렇다. 원주민들은 가진 게 없어서 구두와 교환할 만한 게 없다. 그때 원주민들 뒤로 소들이 지나가는게 보였다. B가 말했다.

 

 

"소 한 마리당 구두 다섯 켤레로 하자."

 

 

원주민 족장이 준비한 듯 그 말에 대답했다.

 

 

"나는 당신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 소에게는 우리 선조들의 영혼이 깃들어 있으며, 우리 종족과 함께 수천 년을 아름다운 자연의 어머니 품에서 성장한 형제다. 형제를 사고 판다는 것은 가족을 사고 파는 것이며, 지금까지 지켜온 우리의 아름답고 성스러운 영혼의 연대를 사고 파는 것이다.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일이다."

 

 

B가 준비해온 총을 뽑아서 족장과 함께 나온 원주민 중 한 명을 쐈다. 원주민 족장이 말했다.

 

 

"일곱 켤레로 하시죠."

 

 

시장이 개척되었다.

 

 

이후 B는 원주민들에게 구두를 공급하고 소를 대가로 받았다. 그리고 대가로 받은 소를 잡아서 가죽을 벗기고 그 가죽으로 구두의 원료를 충당했다. 원주민이 제공한 원재료로 구두를 가공하고, 가공된 구두를 원주민에게 되파는 효율적 구도가 형성되었다. B의 공장은 계속해서 구두를 생산할 수 있었다. 소비는 원주민을 협박하면 된다. 이제 원주민들은 비록 옷은 안 입었지만 구두는 두세 켤레 정도 갖게 되었다.

 

 

식민지를 개척하는 제국주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1권 p.68 근대자본주의의 전개 - '공급과잉이 시작되었다' 중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다른 이에게 재미있고 알기 쉽게 이야기하는 건 매우 가지고픈 능력입니다. 특히나 저같이 말하는 거에 별루 취미가 없고 그래서 말해야 하는 하는 상황이 닥치면 어버버거리다 끝나버리는 사람에게는 말입니다. 공급과잉으로 위기를 맞은 자본주의가 식민지를 개척하여 위기를 타파하고 식민지가 된 원주민들이 몰락하는 과정을 이처럼 단순하고 명확하게 설명하다니, 저자의 내공을 알 만 합니다.

 

 

 

새로운 지식을 알아가는 것과 자신이 아는 것을 타인에게 설명하는 능력은 별개인데, 어쩜 이렇게 공감가도록 잘 썼을까 궁금했습니다. 저자는 한 라디오 강연에서 그 비밀을 밝혔는데, 답은 이랬습니다. '대한민국 중위층이 이 책의 독자입니다. 그 분들을 대상으로 글을 썼습니다.' 울나라에서 소득을 신고하는 사람을 줄을 세워 딱 가운데 사람에게 얼마를 버냐고 물었더니 한 달에 130만원 이라고 했습니다. 믿기지 않겠지만 그렇댑니다. 저도 설마~~ 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썼으니 책이 어려울 수 없습니다. (물론 소득이 교양의 수준을 결정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상당한 영향을 줄겁니다). 복잡한 현상을 단순하게 만들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제들도 명확하게 정의했습니다.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팟캐스트인 <지대넓얕>을 책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아주 유명한 팟캐스트인데 나는 아직이다) 1권은 역사에서 시작하여 경제, 정치, 사회, 윤리와 같은 현실 세계를 다루고 2권은 진리를 구하는 여러 방면인 철학, 과학, 예술, 종교, 신비 등 현실 너머의 세계를 다룹니다.

 

 

 

인간 세계의 역사는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사이의 투쟁이라고 저자는 정의했습니다. 이전에는 땅을 가진 왕, 영주와 그렇지 못한 농노, 노예간의 투쟁이며 근대에 들어와서는 자본과 공장을 가진 부르주아와 그렇지 못한 노동자가의 대립이 역사의 큰 줄거리로 전개되어 왔다는 겁니다. 공감이 됩니다. 조물주 위에 있다는 게 건물주 아니겠습니까! 현대에 와서도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는 신 위에 있다고 쳐줄만큼이나 중요합니다.

 

 

 

그런 역사와 연계하여 현실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분야는 바로 경제입니다. 경제 또한 두 가지의 입장으로 구분됩니다. 하나는 자본가를 옹호하여 시장의 자유 경쟁를 추구하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정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가진자에게 세금을 많이 매겨 노동자의 복지를 향상시키는 입장입니다. 사람들이 다 같이 평등하게 잘 살자는 입장에서 보면 두번째가 당연한 듯 보이나, 지금의 세계는 세금을 낮추고 무한 경쟁으로 성장을 목표로 하는 신자유주의가 복지를 통한 분배를 강조하는 수정 자본주의를 니킥으로 물리치고 아주 지대로 활개치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가진 이는 더 가지게 되고 가난한 이는 더 가난해지는데도 말이죠.

 

 

 

이게 정치로 넘어오면 보수와 진보의 구분이 됩니다. 세계에 대한 이해로 보자면, 세상은 안정적이고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회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개인의 책임으로 보는 시각이 보수이며, 반대로 세상이 문제가 많고 불안정하며 그렇기에 사회 문제의 책임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라고 보는 시각이 진보입니다. 이걸 경제 관점에서 보면,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면 보수며 수정 자본주의를 옹호하면 진보라고 저자는 아주 명쾌하게 구분하였습니다.

 

 

 

자, 그러면 나는 노동자인가 자본가인가, 혹은 나는 진보인가 보수인가에 대한 해답이 나옵니다. 자본가이면서 보수, 혹은 노동자이며 진보는 합리적입니다. 보수가 지향하는 경제는 자본가의 이익을 대변하고, 진보는 복지를 통해 노동자의 이익을 늘여주니 당연한 선택입니다. 자본가이면서 진보는 어떨까요? 과거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우리 선조들이 이랬습니다. 자신의 이익에는 반하지만 사회적 약자를 돕는 것이 더 정의롭다고 판단한 사람들입니다. 마지막으로 노동자이면서 보수는, 사실 이런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아직 많이 계신데, 저자는 한마디로 어리석다고 했습니다. 배우지 못해서,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판단을 한다고 말입니다.

 

 

 

 

1차 세계대전은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세르비아계 청년에게 암살당한 사건을 계기로 발발했다. 이 사건을 빌미로 오스트리아와 독일이 러시아를 상대로 한판 붙자고 했으며 러시아의 동맹국인 영국과 프랑스가 전쟁에 참전하고 나중에 나도 붙여줘 하면서 미국도 달라들었다.

 

만약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암살당하지 않았다면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저자는 확고하게 '노'라고 답한다. 글의 서두에서 말한 자본주의의 가장 기본인 '공급과잉'의 해결책으로 앞선 국가들은 모두 식민지라는 해결책을 가지고 있었지만 뒤늦은 독일은 식민지가 없었다. 힘으로 빼앗아 와야 했다. 그게 전쟁이었다. 1차 세계대전의 근본 원인을 이렇게 단순하고 명확하게 몇 줄로 설명했다.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산업혁명이라는 엄청난 과학혁명으로 문명은 급속도로 발전하게 되었고, 그래서 그 동안 인간이 가지고 있던 여러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해줄 줄 알았는데, 문명의 이기가 최악의 결과로 나타나고 만 것이다. 전쟁 기간 동안 인류는 생지옥을 경험했지만, 슬기로운 인간 사피엔스는 몇십 년을 못가 다 까먹어버리고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다.

 

사진 출처 : https://inosmi.ru/world/20140705/221452643.html

 

 

 

2권에서는 현실 너머에 있는 세상을 탐구합니다. 주제는 진리입니다. 진리? 아이고, 어렵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여기는 어디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이 바로 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여하간, 이 진리를 대하는 데는 '진리는 반드시 존재한다' 라는 태도와 '그런 것은 없는 거시여' 하는 태도, 그리고 '쓰벌, 모르것어' 라는 태도와 '졸라, 나랑 무슨 상관이여!' 라는 네 가지 태도가 있다는 군요. 그런데 울 나라는 마지막 태도가 강한 나라라고 합니다. 딱 맞습니다. 저자 날카롭습니다. ㅋ

 

 

 

현대에 와서 진리라는 것은 '이성에 기반한 합리성'이 그 해답으로 오랜 시간을 누려왔었는데 그게 무너지고 있다고 합니다. 인간이 가진 이성이 인간이 가진 여러 문제를 해결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안되더라는 겁니다. 저거끼리 지지고 볶고 싸우고 하더라는 거지요. 거기다가 수학과 물리학에서마저 불확정성이 증명되어버리고 맙니다. 여태 중요시 해왔던 가치들에 비해 잊혀진 것들이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포스트모던입니다. 포스트모던이 제 전공과목인 건축에 미친 영향에 대해 작가가 쓴 글을 소개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네모난 고층 아파트의 모습은 근대 이성중심주의의 효율성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이러한 건축물은 효율성의 측면에서는 뛰어나지만, 오늘날에 와서 그것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인간적이지도 않다. 근대 건축이 대한 전면적 저항이 해체주의 건축이 추구하는 바다. 그래서 해체주의 건축은 비효율적이다. 둥근 형태를 띠거나 균형 잡히지 않아서 마치 무너질 듯하고, 공간을 낭비하여 비용을 증가시킨다. 물론 이러한 건축은 극단적인 효율성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한국 사회에 적합하지 않은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해체주의는 우리에게 잃어버린 건축적 아름다움을 돌려주고, 질서와 효율로 숨 막히는 도시 속에서 우리를 사유하게 하며, 사람들 간의 관계를 회복해주는 구심점 역할을 한다. (2권 p.49 '진리란 무엇인가' 중에서)

 

 

 

르 꼬르뷔지에를 배운, 근대 이성중심의 효율적 건축물을 배운 저로서는, 비효율적이며 공간을 낭비하는 건축물은 '나쁜 건축'이라는 생각이 반사적으로 떠오릅니다. 그러니 저자의 저 글이 인상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 그러면 이제 '나는 누구이며 여기는 어디인가?'에 대한 해답을 한번 살펴볼까요? 철학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너 자신을 알라'고 했다가 근대에 와서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정답이라고 여겼고, 최근에는 비트겐슈타인이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라.' 라는 답을 내놓았습니다. 과학에서는 뉴턴이 '그래도 사과는 떨어진다.' 라고 했습니다만, 양자역학의 시대인 요즘은 '내가 떨어지는 사과를 볼라치면 사과는 안떨어질 수도 있다.' 라는 희한한 답을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종교에서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번뇌'라며 그것조차 극복해야 해탈할 수 있다고 얘기합니다.

 

 

 

 

상자에 있는 나(고양이)는 죽었을까? 살았을까? 상자안에는 입자가속기가 있어 1시간 후에 알파입자가 방출될 확률이 50%다. 물론 입자가 안나올 확률도 50%이고. 알파입자가 나오게 되면 그 입자에 반응하는 망치가 독가스 병을 깨뜨려 고양이는 죽을 것이다. 한 시간 후에 고양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정답은 물론 "상자를 열어봐야 안다"이다. 스티븐 호킹이 총으로 쏴버리고 싶은 기분이 든다고 한 유명한 슈뢰딩거의 고양이다.

 

해답은, 살아있는 상태와 죽어있는 상태가 <중첩>되어 있고 상자를 여는(관찰하는 행위) 순간 결정된다고 한다. 죽은 고양이와 산 고양이가 동시에 있고 우리가 보는 순간 결정된다는 이야기다. 뭔 말이여? 그 어렵다는 양자역학의 토대가 되는 실험이며, 현대 과학이 불완전하다는 것이 증명되는 실험이기도 하다. 나도 이해가 안되므로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ㅋ

 

사진 출처 : https://brunch.co.kr/@brunch2jyt/4

 

 

 

 

2권의 '예술' 챕터는 오히려 쉬웠습니다. 서양미술사에 대한 설명이었는데, 내가 알고 있는 서양건축사랑 거의 흡사했습니다. 이성을 중시하는 절대주의의 흐름과 감성을 중시하는 상대주의의 흐름이 교차하며 나타났고, 대상을 해체하여 나타난 입체파와 더 극단적이 추상미술은 포스트모더니즘 건축과 똑같았습니다. 그래서 의외로 쉽게 이해했습니다.

 

 

 

마지막 장 '신비'에서 다루는 건 사후 세계입니다. 사람은 죽고 나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네가지의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영원히 사는 겁니다. 육신은 죽지만 정신은 천국이나 지옥 혹은 구천에서 계속 지속되는 것이죠. 기독교적 사후관입니다. 둘째는 다시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도 있고 개나 소로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주호민의 만화 '신과 함께'를 보면 죽음 후에 저승에서 재판을 받고 육도문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재미있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세번째 가능성은 죽음 후엔 아무것도 없다는 겁니다. 죽음은 '완전한 끝'이라는 것이죠. 사람의 이성이 지배하는 근대에 와서 나온 것이며 현대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마지막이 좀 으스스한데요, 죽고 나면 나로 다시 태어나 내가 살았던 생애를 똑같이 산다는 겁니다. 니체가 주장한 '영원회귀'입니다. 내가 지금 늦잠을 자고, 담배를 피우고, 마눌이랑 니가 잘났니 내가 잘났니 싸우는 이 현실을 죽고 나서도 계속 반복한다는 겁니다. 지금 내가 행동하는 게 죽고 나서 무한대로 반복된다면, 지금 이 세상을 사는 것이 앞으로 사는 무한반복의 기준이 된다면, 게으름으로 누워 있다가도 벌떡 이불킥을 하고 일어납니다.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알려주는 사후관입니다.

 

 

 

몇백 년 후에 과학이 아주 발달하면 죽음 이후의 여정에 대해서도 밝혀낼 수 있을까요? 천국이나 지옥이 있는지, 저승사자와 염라대왕이 있는지, 독사지옥을 지키는 변성대왕은 진짜 긴 흑발의 미녀인지, 그도 아니라면 죽음 이후는 진짜 아무것도 없는 것인지..... 그걸 과학이 알아낸다면 아마 우리의 현실 세계도 아주 확 바뀔텐데요. 그럼 지금보다 사는 게 더 재미있어 질까요? 아니면 그 반대일까요? 아주 궁금해집니다.

 

 

 

 

영원회귀는 니체의 공상적인 관념으로 생은 원의 형상을 띠면서 영원히 반복되는 것이고, 피안의 생활에 이르는 것도, 환생하여 다음 세상에서 새로운 생활로 들어가는 것도 모두 부정하고, 항상 동일한 것이 되풀이된다는 사상이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 640만 번째라고? 그렇다면 미래를 생각하기 보다 이 순간을 정말 행복하게 보내야 한다. 지겨움과 허무와 권태에 빠질 시간이 없다.... 라고 저자는 아주 강력하게 말했다. 매 순간이 시작점이고 모두가 중심이다. 순간순간이 소중하다. 지금 내 행동이 앞으로 2400억번 반복되는 기준이다. 헐~~~

 

http://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18129

 

 

 

이 책이 한창 전성기를 구가할 때, 읽지 않았습니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으나, 마음속으로는 그런 얕.은. 지식은 나도 지니고 있다고 땡깡을 부린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랬는데, 옆자리의 권과장 책상이 얌전하게 꽂혀 있는 이 책을 아무 생각없이 스스륵 봤습니다. 제일 앞에 시간에 대한 개념이 나와있더랬는데, 이게 재미있었습니다. 응? 이렇게 재미난 책이었어? 바로 서점으로 달려가 1,2권을 다 샀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에 다른 책은 거덜떠보지 않았습니다. 책을 읽고는 채사장의 강연을 나도 모르게 찾아보았습니다.

 

 

 

지적 대화를 위한 책이지만, 이런 주제를 놓고 타인과 대화를 할 기회가 있을까요? "야, 김대리, 내 말 좀 들어봐봐. 지금 집권당인 민주당은 보수와 진보로 따지면 중도 우파에 가깝다고. 진보라고 할 수 있는 건 정의당인데, 그것도 중도 좌파야. 진정한 진보는 빨갱이라고 낙인찍힌 얼마전 내란음모로 해산한 진보당 정도라고 할 수 있지." 이렇게 얘기하다간 왕따되기 쉽상입니다. 가장 친한 마눌하고도 이 책에 나온 주제를 놓고 대화하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타인과 지적 대화를 하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나를 위한 책입니다. 나를 둘러싼 이 현실 세계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여기까지 왔으며, 그래서 앞으로는 어떻게 될 건가,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어떤 생각으로 살아야 좀 더 나에게 유리하게 살 수 있나? 이런 궁금증을 풀어주는 책입니다. 혹시, 저자의 주장이 옳은가, 그의 견해가 진리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면 그것은 그 세부 사항들에 대해 추후에 개인이 좀 더 공부해보면 됩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세상과 그 너머의 세상을 단순하고 명확하고 알기 쉽게 설명하여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곳의 가이드가 됩니다. 그런 점이 저는 참 좋았습니다.

 

 

 

괜히 베스트셀러가 된 게 아닙니다. 채사장, 강연에 나온 걸 보니 나이도 그리 많지 않아 보이더마, 참 똑똑하군요. 어쩜 이런 책을.... 내 머리 속 상자에는 존경과 부러움과 시기와 질투의 감정이 중.첩.되어 있습니다. 정확한 감정은 상자를 열어봐야.....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