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 : 신영복 <담론>
# 1.
초등학생들과 시 암송 모임을 하는 선생님이 계십니다. 비싼 과외 못하는 애들을 모아 놓고 시를 암송하는 공부 모임입니다. 그 중 한 아이의 학교 소풍 때였다고 합니다. 학생들이 앞에 나와서 각기 장기자랑을 하는 순서였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나와서 유행가도 부르고 유명 그룹의 춤도 멋지게 흉내 내는 등 화려한 장기자랑을 펼쳐 보였습니다. 그 아이 차례가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시 암송 모임에서 공부한 윤동주의 <서시>를 암송했다고 합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놀랍게도 그것이 그날을 석권했음은 물론이고 그 후 그 가난한 아이가 일약 스타가 되었다고 합니다. 시가 없어지는 세월 속에서 우리가 시를 멋지게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p.56)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는 문사철의 추상력과 시서화의 상상력을 유연하게 구사하고 적절히 조화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라고 한다. 춤을 추고 악기를 다루고 운동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를 통해 감수성을 키우는 것은 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마땅히 즐겨야 할 일이다. 산이는 운동을 잘 하고 들이는 춤을 잘 추고 강이는 악기 연주를 잘 한다. 우리 아이들이 시도 즐겨 읽으면 좋겠다는 바램이지만 그게 안되더라도 시를 즐겨 읽는 아이들을 인정하고 잘 어울렸으면 좋겠다.
# 2.
화동和同 담론을 재조명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의 통일 담론으로서도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나는 통일統一을 '通一'이라고 쓰기도 합니다. 평화 정착, 교류 협력만 확실하게 다져나간다면 통일統一 과업의 90%가 달성된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평화 정착, 교류 협력, 그리고 차이와 다양성의 승인이 바로 통일通一입니다. 통일通一이 일단 이루어지면 그것이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통일統一로 가는 길은 결코 험난하지 않습니다. (p84)
평창 올림픽에 북한이 선수를 보내고 단일팀이 만들어지고 있다. 얼마나 고맙고 다행한 일인가. 통일에 관한 신영복 선생의 단상은 참으로 옳은 말씀이다. 대박도 좋고 벼락같은 통일도 좋지만 우선은 서로 알아가야 된다. 서로가 가진 각기 다른 점을 인정하고 다양성을 포용하는 길이 그 첫걸음이다. 일단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야 한다. 그게 시작이다. 개성공단을 폐쇄한 박그네를 생각하면 어휴.
사진 출처 : http://blog.aladin.co.kr/corelk/2380652
# 3.
제가백가의 사상적 스펙트럼은 아주 넓습니다만 그것을 크게 두 부류로 대별한다면 노장老莊을 한 편으로 하고, 나머지 모든 제자백가를 다른 한 편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노장의 세계는 분명한 차별성을 보입니다. 제자백가 사상을 유가가 대표하고 있듯이 인본人本 문화文化 성장成長의 패러다임입니다. 인류 문명사의 보편적 구조입니다. 인간의 적극적인 실천[爲]을 통해 문화를 만들어 내고 경제를 발전시키고 사회 진보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노장은 이와 반대입니다. 사람 중심이 아니라 자연 중심입니다. 위爲가 아니라 무위無爲를 주장합니다. 문화가 아니라 반문화反文化입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진進이 아니라 근본으로 돌아가는 귀歸입니다. (p.122)
최고의 완성을 마치 비어있는 듯 하고, 최고의 기교는 마치 졸렬한 것과 같으며, 최고의 언변은 마치 더듬는 것과 같다(大成若缺 大巧若拙 大辯若訥)는 말도 노자에서 나왔다. 최진석 교수가 맨날 외치는 '해야 할 일은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자 하는 일을 해라' 라는 말도 물론 노자다. 지금은 제자백가가 활약하던 시대보다 훨씬 더 한 패권의 시대이며 우리는 그런 상황에 내몰려 있다. 몸을 낮추고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노자의 말들이 귀에 쏙 들어오는 이유다. 그건 그렇고, 이 냥반들이 활약하는 시대는 무려 2500년 전이다. 호랑이가 담배 먹던 시절이다. 그 시대의 철학을 우리는 지금도 공부한다. 칸트가 등장하고 맑스가 등장하고 아인슈타인이 등장했음에도 말이다. 대단한 냥반들이다.
# 4.
오늘날 우리 현실을 생각해 보면 법가의 원칙이 관철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여러분도 모르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대부 이상은 예로 처벌하고 서민들은 형으로 처벌하는 것이 우리의 사법 현실입니다. 정치인이나 경제사범은 그 처벌도 경미하고 또 받은 형도 얼마 후면 사면됩니다. 내가 교도소에서 자주 보기도 했습니다만 입소해도 금방 아픕니다. 병동에 잠시 있다가 형 집행정지로 석방됩니다. 휠체어로 검찰과 법정에 출도합니다. 이러한 사법 현실도 문제이지만 더욱 무심한 것은 우리의 사회인식입니다. 정치 경제 사범은 '불법행위자'입니다. 반면에 절도, 강도와 같은 일반 사범은 '범죄인'이 됩니다. 엄청난 인식의 차이입니다. 한쪽은 그 사람의 행위만이 불법임에 반하여 다른 한 쪽은 인간 자체가 법죄인이 됩니다. 사법 현실과 사회의식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p.177)
한비자는 그 시절부터 이런 현상을 우려했는데, 아직도 그대로다. 이 정도면 온당한 법치라는 건 실현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그래도 우리나라 최고 부자가 감옥에 있고, 예쁜 조윤선 아줌마도, 대마왕 김기춘이도 다 감방에 있고, 예전에 민주화 운동이나 간첩으로 몰려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하는 사람들이 모두 다시 재판을 받아 무죄로 되는 걸 보면 법치는 확실하게 나이지고 있다. 다시 역행하는 일이 없기를.
사진 출처 : http://www.hankookilbo.com/v_print.aspx?id=f56147df93c7460fa96d8363a57a933a
# 5.
밤중에 찬 마룻바닥에 엎드려 청구회 추억을 또박또박 휴지에 적고 있는 동안만은 이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청구회 추억은 그 절망의 작은 창문이었습니다. 옥방의 침통한 어둠으로부터 진달래꽃처럼 화사한 서오릉으로 걸어 나오는 구원의 시간이었습니다. (p.218)
책에서는 고문의 고통이나 감방 살이의 고단함이 많이 나오지 않는다. 좁은 감방에서 옆으로 누워 자는 일(한쪽으로 누워 자니 팔이 아파서 단체로 방향을 바꾼다고 한다. 똑바로 누워 자는 것이 참으로 행복한 일로 묘사했다.)이나 고문으로 인간에 대한 믿음을 상실해가는 절망을 묘사하는 부분이 더러 나온다. 그것으로도 감방 생활의 어려움을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휴지에 글을 적으며 그 모든 고통을 잊는다는 말에 나는 눈시울이 빨개졌다.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신문 조각만한 햇살만으로 생은 살아있을 만하다고 여긴 선생이다. 나를 돌아보게 하고 부끄럽게 하는 구절이다.
# 6.
우리 일행이 부랴부랴 키예프 공원에 도착했을 때는 노을이 거의 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더 걱정인 것은 전승기념탑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노을은 거의 떨어지려고 하고 전승기념탑은 없고. 안내자에게 전승기념탑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가까이에 있는 동상을 전승기념탑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자 동상이었습니다. 아무려면 전승기념탑이 여자 동상이라니. 전승기념탑이면 적어도 워싱턴 전쟁기념관의 기념탑같이 완전군장을 한 해병들이 진지에 성조기를 세우는 조형이라야지. 여자 하나가 서 있는 전승기념탑이라니.
의심이 들었습니다. 재차 확인했습니다. 내가 자기를 의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안내원이 정색해서 얘기했습니다. "전쟁에서 이겼다는 것은 전쟁에 나간 아들이 죽지 않고 돌아온다는 걸 의미한다. 어머니가 돌아오는 아들을 언덕에서 기다리는 것 만큼 전승의 의미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있는가?" 나를 직시하며 이야기했습니다. 굉장히 부끄러웠습니다. 전승에 대한 나의 관념이 얼마나 천박한 것인가를 그는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기획자에게 메일을 보냈습니다. '내게 새로운 것을 기대하지 마라.' 사람이 변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님을 실감했던 아픈 기억입니다. (p.241)
나의 정체성을 내가 만난 사람, 내가 겪은 일들의 집합이라고 선생은 정의했다. 정체성을 변화시킬려면 내가 다양한 사람을 만나든지 다양한 일을 겪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내가 보내는 하루는 거의 똑같은 사람을 만나 똑같은 일을 하고 같은 말을 하고 듣는다. 나의 세계는 자꾸만 좁아져 간다. 어제와 한치도 변하지 않은 나는 제대로 살고 있다고 말 할 수 있을까. 그런 현실에서 조금이라도 나아지려면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하는가. 나는 그 답을 찾기 위해 선생의 책을 읽는다.
사진 출처 : https://storyfunding.daum.net/episode/16659
# 7.
결혼을 앞둔 여인이 친구로부터 그 사람과 결혼하기로 결심한 이유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 여인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 사람과 함께 살면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야." 인간관계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정곡을 찌르는 답변입니다. (p.284)
나는 아내를 더 좋은 사람으로, 우리 아이들이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하는 존재인가. 아이고 자신이 없네. 하물며 내가 만나는 사람을 더 좋은 사람으로, 나아가 우리 사회를 더 나은 사회로 만들어 가는 사람이냐고 물어 무엇할까.
# 8.
여행은 떠나고 만나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떠남과 만남과 돌아옴 중에서 가장 결정적인 것은 만남입니다. 떠나는 것도 그것을 위한 것입니다. 내가 쓰는 붓글씨 중에 춘풍추상春風秋霜이란 글귀가 있습니다. 봄바람과 가을 서리라는 뜻입니다만 방서에 원문을 부기합니다. '대인춘풍待人春風 지기추상持己秋霜'입니다. 남을 대하기는 춘풍처럼 관대하게 하고, 반면에 자기를 갖기는 추상같이 엄격하게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대체로 반대로 합니다. 자기한테는 관대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까다로운 잣대로 평가합니다. (p.324)
선생은 춘풍추상의 상징으로 자기변명 없이 욕먹으면서도 침묵하는 감방 동료를 들었다. 구구절절 자기 사정을 늘어놓은 사람치고 썩 좋은 사람을 못봤다면서. 하지만 조직 생활에서는 남에게 엄격하고 자신에게 관대한 자가 살아남는다. 욕먹으면서 침묵하는 사람은 무능한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사람이 좋다. 나도 대부분 그러하기 때문이다. 이거 내 자랑?
# 9.
내가 구사하는 일상적 개념의 연상세계는 매우 관념적이었습니다. '실업'이란 단어에서 연상되는 것은 이러저러한 경제학 개념이었습니다. '빈곤'은 엥겔계수가 연상되었습니다. 메마른 이론과 개념으로 뒷바침되고 있는 생각이란 얼마나 창백한 것인가. 창백한 것에 그치지 않고 얼마나 비정한 것인가라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실업이나 빈곤이란 단어에서는 이론이나 개념에 앞서 실업자와 가난한 사람이 연상되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사상捨象된 사상思想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었습니다.
(중략) 연상세계를 바꾸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우선 '실업'이라는 단어의 연상세계에 사람을 심기로 했습니다. 내가 잘 아는 실업자 친구의 얼굴을 연상세계에 앉히는 작업입니다. 온 종일 행상과 막노동으로 고달픈 삶을 이어 갔던 그를 실업의 연상세계에 심으려고 했습니다. '실업'이란 단어와 그 친구의 얼굴이 동시에 떠오르면 나의 생각 자체가 훨씬 더 인간적인 것이 될 듯했습니다. '실업'이란 단어뿐만 아니라 분단 민족 양심 등 내가 자주 만나는 단어에 지인들의 얼굴을 심는 작업을 해 나갔습니다. (p.412)
아, 신영복 선생은 아무도 없는 독방에서 저러고 노셨구나. 심심하지는 않으셨겠는걸.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그 영향에서 벗어나기도 어려운 연상세계까지 바꾸려고 하셨구나. 이건 극도의 고차원적인 놀이다. 오직 생각으로만 나를 바꾸는 연습이라고 이해했다. 내 현실의 비루함과 구질함을 마주 할 때 나도 좋은 기억들만을 떠올리려 노력한다. 실은 잘 안된다. 그래서 인간은 본질적으로 고단한 존재라고 위로하기도 한다.
선생이 돌아가신지 벌써 2년이 되었습니다. 예전에도 즐겨 읽었지만, 요즘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아무래도 선생의 글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고 사는 게 비루하고 구차한 요즘 더 감응되는 것 같습니다. 응? 그런 거야? 제자백가들의 사상에 대한 강의도 좀 어려웠지만 재미있었구요, 감옥에서의 경험를 토대로 관계와 인간 이해에 대한 강의는 더 좋았습니다. 무리하지 않고 하루에 한 챕터씩 읽었었는데, 어느 순간 책에 빠져 며칠에 나눠 읽어야 할 분량을 모두 읽어버리고 말 정도였습니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혼자 비 맞고 가면 처량합니다. 옆에서 함께 비를 맞고 가면 덜 처량합니다. 비를 맞고 걷다 보면 장난기도 동하겠지요. 그렇게 걷다 보면 결코 뗄 수 없는 관계가 될 겁니다. 나한테도 그런 사람이 있기를, 그리고 나도 나도 누구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자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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