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으로 태어났으나 무리 짓지 않아 자유롭다 : 가토 슈이치 <양의 노래>
"그런 일은 알고 싶지 않아. 난 그저 평화를 즐기며 살고 싶을 뿐이라네." 하고 그 실업가는 말했다. "설사 안다고 한들 내가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확실히 어떻게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러니까 알고 싶지 않다'는 인간과 '그래도 알고 싶다'는 인간이 있을 것이다. 나에겐 전자가 틀렸다는 논리는 없다. 다만 나는 나 자신이 후자에 속한다는 것을 기억할 뿐이다. (p.201)
그것이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역사적으로, 유대인의 강재수용소를 몰랐던 독일인이나 베트남 전쟁의 참혹함에 무심했던 미국인, 이란과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고개를 돌렸던 유럽과 미국, 가까이는 사대강, 개성공단 폐쇄, 세월호의 진실과 촛불 혁명의 배경에 대해 외면하는 일과 알고자 하는 일의 결과는 어떻게 다를까요?
대다수가 알면 불편해 질 뿐 달라지지 않는 일에 대해 '그래도 알고 싶다'라고 끊임없이 상기하며 자신을 올곧게 세운 인물이 있습니다. '저항하는 휴머니즘'이라 불리는 가토 슈이치 선생입니다. 요즘말로 하면 모두가 '예스'라고 외칠 때 소신껏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가토 슈이치라는 인물은 서경식 교수의 <내 서재속의 고전>이라는 책에서 처음 접했습니다. 그 책에서 서교수는 <양의 노래>를 자신의 고전이라고 하며, 일본에서 드.문. '저항하는 휴머니즘'이 어떻게 자라났는지 이야기한다고 썼습니다. 여태 일본의 문화를 접하면서도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게다가 일본의 대표적인 저항하는 지식인이라 서경식 교수가 칭송한 가토 슈이치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양의 침묵>은 가토 슈이치(1919~2008)의 자서전입니다. 1968년에 처음 나왔고 우리나라에서는 2015년에 출판되었습니다. 최근에 나왔지만 꽤 오래된 책입니다. 전반부는 그의 집안 내력에서 부터 그의 학창시절과 전쟁이 한창인 시절의 일본 모습, 패전 후에 히로시마 원자폭탄 피해에 대해 실태 조사로 나간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후반부는 프랑스로 유학가서 이방인의 눈으로 본 유럽의 모습과 그가 겪은 에피소드, 그리고 그 경험으로 일본을 더 알려고 하는 모습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8월 15일 정오에 원장, 의사와 간호사, 종업원과 환자, 병원 내 모든 사람이 식당으로 모였다. 모인 이들은 마른 침을 삼키며, 저 알아듣기도 힘든 '옥음방송'에 귀를 기울였다. 방송이 끝난 뒤 크게 한번 숨을 쉬고는 "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하고 사무장이 원장에게 물었다. "전쟁이 끝났다는 얘길세" 라고 원장은 짧게 대답했다. 수십 명의 간호사 - 모두 이 지역의 젊은 아가씨였다 - 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소 점심식사가 끝났을 때와 조금도 다름없이 명랑하게 웃음소리를 내면서 금세 병실로 흩어졌다. 전쟁은 그 어떤 교육에도 불구하고 또 그 어떤 선전선동에도 불구하고, 끝내 아가씨들의 세계 내부까지는 스며들지 못했던 것이다. (p.258)
나는 내 세계로 한 여인이, 다시 말해 '타인'이 들어왔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랐다. 세계의 질서는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일은 그때까지 내 삶에는 없던 것이었다. 나는 내가 교토의 여인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것에 불과하다는 것, 아니면 혹 사랑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정말 확실히 이해하게 되었다. 새로운 경험은 나를 어디로 이끌어가려 했던 것일까? (p.389)
"당신은 신의 존재를 믿어?"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아니, 믿지 않아.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믿음에는 반대하지 않지." "그 사람들이 당신한테 신을 믿으라고 한다면?" "가만 놔두라고 하지." "당신 답네" 라고 그녀가 말했다. (p.425)
양으로 태어났으나 무리짓지 않아 자유롭다.
가토 슈이치라는 인물이 일본에서 어떤 영향을 발휘했는지, 그의 행적을 모르니 이 책이 쉽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더구나 그가 책에서 말하는 사건들은 아주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책에 나오는 가장 최근의 사건이 1968년 프라하의 봄입니다. 당연히 내용에 대한 이해가 더딥니다. 게다가 저자가 말하는 수많은 일본과 유럽의 문필가들은 들어본 적도 없는 인물이니,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 책은 놓지 못하게 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자서전임에도 불구하고 수필처럼, 혹은 소설처럼 읽입니다. 문체가 아름답고 서정적입니다. 그래서 하나의 문학 작품을 읽는 듯한 느낌입니다. 지성인이 일반 대중을 가르치려 하는 구절은 하나도 없습니다. 자신이 살아온 격동의 20세기 풍경을 맑고 부드러운, 그러나 예리하고 통찰력 있는 눈으로 바라보았으며, 느끼고 경험한 바를 상식적인 판단과 근거를 가지고 솔직하게 써내려갔습니다.
책에서 가토 슈이치는 자신을 '이방인'이라 했습니다. 돈도 권력도 없고 또 어떤 조직에 속하지도 않고 한 개인으로서 늘 일본 사회의 주변인으로 살았다고 회고합니다. 양때 해에 태어나서 스스로를 나약한 양에 비유했지만, 타협하지 않고, 늘 자유로왔으며, 자신의 양심을 따랐습니다. 그보다 더 투쟁적이고 격렬했던 다른 이가 시간과의 싸움에서 져서 무뎌져갈 때도 저자는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위하는 자리에 언제나 서 있었습니다. 생의 마지막 5년을 '평화헌법'을 수호하는데 바친 것을 보면, 그의 의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 한 권의 책으로 저자의 '저항하는 휴머니즘'에 대해 완전히 알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제 겨우 시작입니다. 가토 슈이치 라는 인물을 좀 더 폭넓게 이해하고 그가 말하는 '교양'을 좀 더 쌓고 나서 한 번 더 읽고 싶습니다. 그러면 이 책의 감상이 지금과 어떻게 다른지 벌써부터 궁금합니다.
PS
가토 선생이 돌아가셨을 때, 디아스포라의 상징인 도쿄경제대학 서경식 교수가 그의 부음에 화답하는 글을 쓰셨습니다. 그 글에서 폭력에 대한 희망은 오직 교양이라 강조하셨습니다. 아래 링크를 들어가면 볼 수 있습니다. 꼭 읽어봐 주셨으면 합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2876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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