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 스스로 추방을 택한 망명자 : 에드워드 사이드 <지식인의 표상>
제가 생각하는 지식인의 모델은 스스로 추방을 택한 망명자입니다. 지식인에게 망명과 추방의 의미는 관례적인 단계를 거쳐 '성공'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삼는 보통 삶의 경로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망명은 언제나 주류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여, 지식인으로서 수행하는 일은 미리 정해진 행로를 밟아갈 수 없기에 스스로 꾸려나가야만 합니다.
에드워드 사이드 (1935 ~ 2003)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난 미국의 사상가. 현대 중동학에서 가장 인정 받고 있는 학자 중의 하나로, 대표적인 저서 <오리엔탈리즘>으로 제국주의에 근거한 서양 위주의 사고방식을 비판하였다. 평생 조국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위해 노력하였다.
글 출처 : 위키백과
사진 출처 : https://historyofpalestine.wordpress.com/145-2/
참고로 읽을 거리 : http://www.sisapress.com/journal/article/89155
<오리엔탈리즘>의 번역자인 박홍규 교수가 에드워드 사이드 타계 후 쓴 기사 (에드워드 사이드의 삶과 사상)
지식인은 어떤 사람일까요? 많은 책에서 지식인이란 마땅히 이래야 된다고 써 놓았지만 별로 명쾌하지가 못하고 추상적입니다. 그럼 지식인이라 부르는 선생들을 쭉 나열해 놓고 그 분들의 공통점을 찾아보는 방법은 어떨까요?
우리 시대의 지식인으로 제일 먼저 꼽을 수 있는 분이 리영희 선생입니다. '전환 시대의 논리'는 그야말로 도끼로 내리찍는 듯한 충격이었습니다. 신영복 교수, 유홍준 선생,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 문익환 목사, 소설가 황석영 선생, 도올 선생, 손석희 아나운서, 건축가 정기용 선생, 만화가 허영만 선생, 서경식 교수, 이덕일 교수, 유시민 선생, 구본준 기자와 김제동 등.... 퍼뜩 떠오르는 지식인들을 적었는데, 음~ 공통점은 잘 안보이는 군요. 김제동을 빼면 다들 잘 생기셨기는데.... ㅎㅎ
이전에 지식인이라 함은 자기 분야에 정통한 사람으로 다른 사람에게 지식을 전파하는 사람을 일컬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의 지식인은 이것만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일반 대중이 따를 만한 무언가가 있어야 합니다. 한창 방송에 많이 나오는 이동진 선생이나 설민석, 황교익, 백종원과 같은 이들도 자기 분야에 아주 정통한 사람이자 우리에게 재미나고 다양한 지식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런 분들도 진정한 지식인이라 불리울 수 있을까요? 의견이 분분할 겁니다.
이 책은 영국 BBC에서 세계적인 지식인을 초청해서 여는 대중 강좌인 리스 렉쳐 (Reith Lectures)에서 1993년에 에드워드 사이드가 지식인이란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강연한 것을 갈무리하여 엮은 글입니다.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나 조국에서 살지 못하고 망명객으로 살아야 했던 이 '이방인'이 얘기하는 지식인을 통해, 내가 그리는 지식인을 구체화하고 우리 시대 지식인의 모습을 찾고자 합니다.
지식인은 제대로 대변되지 못하고 잊혀지거나 무시되는 약자들의 편에 설 것인지, 아니면 권력을 가진 이들의 편에 설 것인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p.40)
더 이상 고향이 없는 사람에게 글쓰기는 거주가 된다. (p.71)
내가 말하려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식인이 실제의 망명 상태와 같이 주변화된 자, 길들여지지 않는 자가 되는 것은 권력자보다는 여행자에 가깝고, 관습적인 것보다는 임시적이고 위험한 것에 가까우며, 현 상황에 주어진 권위보다는 혁신과 실험에 가깝게 반응한다는 의미입니다. 망명자적인 지식인의 역할은 관습의 논리에 따르지 않고 대담무쌍한 행위에, 변화를 표상하는 일에, 멈추지 않고 전진해 가는 일에 부응하는 것입니다. (p.77)
오늘날 지식인은 아마추어가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아마추어란, 한 사회의 분별력 있고 사려 깊은 구성원이 되고자 한다면 가장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행위에서조차 그 행위가 자신의 국가와 관련되고 그 국가의 권력과 관련되며 다른 사회와의 상호작용 방식은 물론 자국 시민들과의 상호작용 방식과 관련될 때, 그 핵심에서 도덕적인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자격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p.98)
내 생각에 가장 비난받아 마땅한 지식인의 사고 습관은, 옳은 일인 줄 알지만 선택하기는 어려운 원칙적 입장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책임을 회피하는 습성입니다. (p.115)
(이 예시로 에드워드 사이드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거론한다. 응당 소신을 밝혀야 했던 수많은 지식인들이 주춤거리거나 편향되거나 침묵을 지켰다.)
지식인의 표상은 가난한 이들의,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이들의, 대변되지 못하는 이들의, 힘없는 이들의 표상이어야 한다. (p.142)
서경식 교수는 <내 서재 속 고전>에서 이 책을 자신의 고전에 올려놓았습니다. 서교수와 에드워드 사이드는 마음속의 조국이 따로 있는 '이방인'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하는 지식인의 표상은, 서경식 교수가 되고자 하는 그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스로 추방을 택한 망명자, 스스로 주류에서 벗어난 자, 이 운명을 고통으로 여기지 않고 자유로 여기는 자를 지식인이라 했습니다. 권력에 기댄 전문가가 아니라 자발적인 아마추어가 되라고 합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전문성이 이윤이나 보상, 기득권이나 권력에 휘둘리지 말라는 그의 경고는 늘 되세겨야 할 구절입니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글은 소화하기에 쉽지 않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지식인을 나름대로 구체화시키는 것도 어렵습니다. 내가 그리는 지식인 역시 멀기만 합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말하는 지식인과 부합되어 연상되는 몇몇 인물들이 있었습니다. 스스로 추방된 자들을 위한 풍경도 떠올랐습니다. 그가 말하는 지식인이란 어쩌면 시대가 요구하는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년 쯤 뒤에 이 책을 다시 읽는다면 그 때는 좀 더 쉽게 읽을 수 있을까요? 그가 말하는 지식인에 나는 얼마나 다가서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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