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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이야기

노년은 내가 여태 살아온 삶의 거울이다 : 김영옥 <노년은 아름다워>

by Keaton Kim 2017. 6. 10.

 

 

 

노년은 내가 여태 살아온 삶의 거울이다 : 김영옥 <노년은 아름다워> 

 

 

 

노년을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노년의 삶을 들여다 본 적은 있습니까? 그도 아니라면 당신이 그리는 노년의 이미지는 어떤가요? 태극기 집회나 어버이 연합으로 대표되는 냄새나는 꼰대들인가요? 아니면 최근 졸혼이라는 제법 시크한 이미지에 포장된, 그러나 알고 보면 그닥 반길 수도 없고 외롭기만 한 백일섭 아저씨의 모습인가요? 그도 아니라면 꽃보다 할배의 그 중후한 멋스러움인가요? 혹은 채현국 선생으로 대표되는 시대의 어른의 모습이 떠오르시나요?

 

 

 

"노인들이 저 모양이라는 걸 잘 봐두어라. 너희들이 저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까딱하면 모두 저 꼴 되니 봐주면 안된다."

"늙으면 지혜로워진다는 건 거짓말이다. 농경 시대의 꿈같은 소리다. 늙으면 뻔뻔해진다."

 

학교법인 효암학원의 이사장이자 거리의 철학자, 살아있는 천상병이라 불리는 채현국 선생이다. 이 책에서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채현국과 어버이연합 빼고는 아예 노년이 없어 보일 지경"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우리 시대의 대표 어른의 상징이다.

 

사진 출처 : http://www.kgreens.org/news/%EC%8B%9C%EB%8C%80%EC%9D%98-%EC%8A%A4%EC%8A%B9-%EC%B1%84%ED%98%84%EA%B5%AD-%EC%84%A0%EC%83%9D%EB%8B%98%EA%B3%BC%EC%9D%98-%EB%8C%80%ED%99%94/

 

 

 

 

 

저마다 연상되는 노년의 이미지는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인식되는 노년은, 외롭고 가난하고 늙고 병들었으며 고지식하고 불통인 이미지가 강합니다. 한마디로 '추하다' 라는 말에 귀결됩니다. 장유유서의 유교 나라에서 이게 웬말인가? 지혜롭고 공경받는 노인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라고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노년이 이런 이미지를 가지게 된 연유가, 오직 젊음이 아름답고 늙음은 추하다 라고 강조한 자본주의적 세태 탓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는 지금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노인 스스로가 만들다는 점은 부정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대오각성하라. 앞서 소개한 채현국 선생의 저 어록이 확 와닿은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노년의 아름다움에 대해 강조합니다. 제목을 봐라.  이 책 <노년은 아름다워>는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의 대표이자 운영자인 저자 김영옥이 우리 시대에 노년을 제대로 보내고 있는 7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삶을 보여줍니다. 저자는 아름다움의 기준을 '젊음'에서 찾기 보다 다양한 노년의 삶속에서 찾고자 했습니다.

 

 

 

돌봄 노동이 진보정치라고 믿는 최현숙, '나는 언제나 내 인생의 주인공'임을 자각하며 자서전을 쓰는 여자 최영선, 돈버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시골의 작은 집에 '홀로의 자유'를 누리며 글을 쓰는 남자 김담, 세월호 유가족의 어깨를 감싸안고 도닥여 줄 품을 지닌 여행자 이영욱, 언제까지나 현역으로 활동하고자 하는 화가 윤석남, 투쟁하기 딱 좋은 나이라며 거리로 나가는 밀양 할매들, WE21 Japan의 이사장이자 지역 운동가인 군지 마유미와 여성 인권의 전사 다지마 요코가 그 주인공입니다.

 

 

 

책에 소개된 이 노년들은 무엇보다 뚜렷한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소년, 청년, 장년, 노년 중에서 노년을 가장 열정적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 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가 젊었을 때, 혹은 중년 장년에 화려한 삶을 살았다 하더라도 노년이 즐겁지 못하면 성공한 인생이라 보기 힘듭니다. 그저 그런 청장년을 보내 왔다 하더라도 열정적인 노년을 보낼 수 있다면 죽을 때 별로 후회가 남지 않는 삶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노년의 사람들이 행복하려면 '친구' '돈' '도반'이 있어야 된다고 책은 말한다. 도반은 살가운 친밀성을 공유하는 파트너다. 딸이 될 수도 있고, 마눌이 될 수도 있고, 남편은 절대 안된다. 심지어 반려동물이 될 수도 있다. 예전 농경사회에서는 동네의 마음 맞는 이웃이 다 도반이었다. 지금의 사회에서는 이 도반을 만들 수 있는 사회가 결코 아니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공동체라는 것이 현대사회에 더 필요하다.

 

책에서 소개된 열정적인 노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도 아주 의.아.스.럽.게.도 배우자와 아름다운 노년을 보내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그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와지면서 제대로 된 노년을 보낸다는 입장이었다. 마눌과 해로하며 서로의 도반이 되어주는 노년이 되기가 이토록 힘들다! 위의 사진은 포토샵이란 말인가

 

사진 출처 : http://blog.daum.net/650803/12822577

 

 

 

무연無緣사회. 책에 등장하는 단어입니다만, 일본은 이제 무연사회로 들어섰다고 합니다. 전체 가구 중 삼분의 일이 나홀로 가족이며 1년에 고독사가 3만2천건이 된다고 합니다 (EBS 지식채널 e - 무연사회의 내용 중에서).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서 혼밥 혼술이 대세가 되어가고 있는 현상은 곧 혼자 죽는 미래도 멀지 않았다는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책 속의 주인공들은 새로운 관계를 계속 만들며 살아갑니다. 

 

 

 

노년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고, 노년의 삶을 들여다 보기도 싫었습니다. 주위를 봐도 모범을 보일만한 삶을 살고 계신 노년을 발견하긴 쉽지 않습니다. 나의 노년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 자체가 아직은 어쩐지 낯설고 두렵습니다. 혹시 잘 풀리지 않아 혼자 밥 먹고 혼자 테레비 보고 혼자 자는 나의 늙은 모습은 상상만 해도.....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중년도 제대로 못 치뤄내고 있는데 노년이 웬말입니까. 노년은 일단 이 위기의 중년부터 넘기고 생각하자. 그저 잘 우리 부모님의 지금 모습보다는 잘 되겠지 라는 근거없는 긍정으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왔던 게 지금의 내가 인지하고 있는 노년의 이미지입니다. 언젠가는 나에게도 닥쳐올 미래인데 말이죠.

 

 

 

저자는 노년의 아름다움으로 '자기답게 사는 것'을 손꼽았습니다. 저자가 소개한 아름다운 노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도 모두 자기답게 살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 말은 모든 세대에 통합니다. 나답게 사는 청년, 나답게 사는 중년.... 자기답게 살아온 시간이 많은 이들은 노년도 자기답게 살 것입니다. 결국 삶에 대한 태도에 관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낯설고 두려운 노년에서 자글자글 주름이 아름답게 보이는 노년으로 만드는 것, 그리고 책에 나온 주인공들도 못다 이룬, 마눌님과 해로하여 즐겁고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마지막에 한쪽이 죽으면 슬피 울어주는 것, 이런 게 한낱 꿈과 희망으로만 남지 않기를 바래봅니다.

 

 

 

PS

 

신체적으로 피로가 몰려오고, 건망증이 심해지며, 성관계에 자신을 잃고, 체중이 불어난다. 심리적으로 짜증이 늘고 결단력이 없어지며, 우울한 기분에 자주 사로잡힌다. 인간관계에서 친밀한 우정을 원하지만 고립감에 빠지고, 가정에서 아내와 자식에게 잘해주고 싶지만 거슬리는 것만 유독 눈에 띈다. (p.290)

 

여자만 갱년기가 있는 게 아니다. 남자도 갱년기가 있다. 책에 나오는 남자 갱년기의 증상이다.

 

딱 지금의 나다. 갱년기가 노년으로 접어드는 첫 징후라는데....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