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 이야기

타인이 낭독하는 그르니에의 섬을 듣다 : 장 그르니에의 섬

by Keaton Kim 2016. 12. 17.

 

 

 

타인이 낭독하는 그르니에의 섬을 듣다 : 장 그르니에의 섬

 

 

 

한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 얻는 위대한 계시란 매우 드문 것이어서 기껏해야 한두 번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계시는 행운처럼 삶의 모습을 바꾸어놓는다. 살려는 열정, 알려는 열정에 복받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그와 비슷한 계시를 제공하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상의 양식> 이 감동시킬 대중을 발견하는 데 이십 년이 걸렸다. 이제는 새로운 독자들이 이책을 찾아올 때가 되었다. 나는 지금도 그 독자들 중의 한 사람이고 싶다. 길거리에서 이 조그만 책을 열어본 후 겨우 그 처음 몇 줄을 읽다 말고는 다시 접어 가슴에 꼭 껴안은 채 마침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정신없이 읽기 위하여 나의 방에까지 한걸음에 달려가던 그날 저녁으로 나는 되돌아가고 싶다. 나는 아무런 회한도 없이, 부러워한다. 오늘 처음으로 이 <섬>을 열어보게 되는 저 낯 모르는 젊은 사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 (p.14)

 

 

 

이 책 서문의 일부를 발췌했습니다. 서문은 알베르 카뮈의 글입니다. 스승의 글에 서문을 썼습니다. 아무한테도 방해받지 않고 오로지 혼자 이 글의 즐거움을 누리려고 자신의 방으로 한달음 달려간다는 카뮈의 추천사는 이 책에 대한 더할 나위 없는 찬사입니다.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카뮈는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위대한 계시를 얻을 거라 장담했거늘,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허탈과 짜증과 자괴감이 밀려옵니다. 이런 카뮈같으니라고!! 쌩 구라를!!   읽는 것이 힘겹습니다. 미니멀한 사이즈이지만 만만치 않습니다. 평소같으면 몇번 책을 던져버리고 말았을터이나 꾸역꾸역 다 읽습니다. 사연이 있습니다.

 

 

 

 

 

사진 출처 : http://blog.naver.com/kseojeongk/220872484662  

 

 

 

독서모임에서 만난 서정씨가 낭독회를 연다고 알려왔습니다. 자신이 기획한 첫번째 낭독모임이라는군요. 혼자서 컨셉을 짜고, 장소와 게스트를 섭외하고,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그런 능력이 부러웠고 대견했고 박수를 보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낭독회의 테마가 바로 이 책이었습니다. 이런 불특정 다수가 모이는 낭독 모임은 처음이라 호기심도 생겼고, 책이 너무 어려워서 혹시 모임에 나가면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감도 생겼습니다.

 

 

 

그 때 나는 몇 살이었을까? 예닐곱 살쯤이었다고 여겨진다. 어느 한 그루의 보리수 그늘 아래 가만히 누워 구름 한점 없는 하늘에 눈을 던지고 있다가 나는 문득 그 하늘이 기우뚱하더니 허공 속으로 송두리째 삼켜져 버리는 것을 보았다. 그것이 내가 처음 느낀 무無의 인상이었다. 그 인상은 어떤 풍부하고 충만한 생존의 인상에 바로 잇따라 느끼게 된 것이었기에 더욱 생생했다. (p.27)

 

 

 

문득 공空의 자리에 충만이 들어앉는다. 내가 지나온 삶을 돌이켜보면 그것은 다만 저 절묘한 순간들에 이르기 위한 노력이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렇게 하기로 굳게 마음 먹은 것은 저 투명한 하늘의 기억 때문이었을까? 내 어린 시절, 반듯이 누워서 그리도 오래도록 나뭇가지 사이로 물끄러미 바라보았던 하늘, 그리고 어느 날 싹 지워져 버리던 그 하늘의 기억 때문이었을까? (p.33)

 

 

 

타인이 낭독하는 그르니에의 <섬>을 듣습니다. 눈을 감습니다. 혼자 읽을 땐 마구 떠돌던 글자 하나하나가 문장이 되어 나에게로 다가옵니다. 찌르르르 하고 그 문장의 의미가 피부에 와닿습니다. 내가 눈으로 읽던 장 그르니에의 <섬>과 이런 분위기에서 남이 낭독하는 장 그르니에의 <섬>은 확연히 달랐습니다. 여기에 오기를 잘 했습니다.

 

 

  

 

 

 

 

 

 

 

나는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것을 수없이 꿈꾸어 보았다. 그러면 나는 겸허하게, 아니 남루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그렇게 되면 <비밀>을 간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 자신에게 대하여 말을 한다거나 내가 이러이러한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보인다거나, 나의 이름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바로 내가 지닌 것 중에서 그 무엇인가 가장 귀중한 것을 겉으로 드러내는 일이라는 생각을 나는 늘 해왔다. 무슨 귀중한 것이 있기에? 아마 이런 생각은 다만 마음이 약하다는 증거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즉 단순히 살아가는 일뿐만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확립하기>위하여 누구에게나 반드시 필요하게 마련인 힘이 결여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환상에 속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이 같은 타고난 부족함을 무슨 드높은 영혼의 발로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런 비밀에 대한 취향이 남아있다. 나는 오로지 나만의 삶을 갖는다는 즐거움을 위하여 별것 아닌 행동들을 숨기기도 한다.

 

비밀스러운 삶. 고독한 삶이 아니라 비밀스러운 삶 말이다. (p.78)

 

 

 

사람들은 여행이란 왜 하는 것이냐고 묻는다. 언제나 충만한 힘을 갖고 싶으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여행이란 아마도 일상적 생활 속에서 졸고 있는 감정을 일깨우는 데 필요한 활력소일 것이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한 달 동안에, 일 년 동안에 몇 가지의 희귀한 감각들을 체험해 보기 위해여 여행을 한다. 우리들 마음속의 저 내면적인 노래를 충돌질하는 그런 감각말이다. 그 감각이 없이는 우리가 느끼는 그 어느 것도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p.95)

 

 

 

가장 달콤한 쾌락과 가장 생생한 기쁨을 맛보았던 시기라고 해서 가장 추억에 남거나 가장 감동적인 것은 아니다. 그 짧은 황홀과 정열의 순간들은 그것이 아무리 강렬한 것이라 할지라도 - 아니 바로 그 강렬함 때문에 - 인생 행로의 여기저기에 드문드문 찍힌 점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순간들은 너무나 드물고 너무나 빨리 지나가는 것이어서 어떤 상태를 이루지 못한다. 내 마음속에 그리움을 자아내는 행복은 덧없는 순간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단순하고 항구적인 어떤 상태이다. 그 상태는 그 자체로서는 강렬한 것이 전혀 없지만 시간이 갈수록 매력이 점점 더 커져서 마침내는 그 속의 극도의 희열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그런 상태인 것이다. (p.101)

 

 

 

 

 

 

진행자는 <섬>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평범한 일상속에서 그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대상에 대한 사유, 그리고 여유로운 산책이라고 했습니다. 그저 일상적인 것들로 이렇게 깊은 사색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어렵게 쓸 수 있다는 것도...  이런 깊은 사유를 한번 읽고 이해하려는 건 욕심이겠죠. 여러번 곱씹어야 제 맛이 날 겁니다. 낭독만으로도 혼자 읽을 때와 많이 달라졌습니다.

 

 

 

책을 잘 이해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서평을 보기도 하고, 혹은 논제를 뽑아 치열하게 토론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떤 책은 낭독으로도 훨씬 잘 이해되기도 합니다. 라고 이 낭독 모임에 함께 참가한 지인이 말했습니다. 남이 읽는 것을 듣는 것으로, 내가 소리내어 읽는 것으로 책은 더욱 나에게로 다가옵니다.

 

 

 

이 책과 알베르 카뮈의 <결혼, 여름>,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이 프랑스의 지적 3대 문집으로 꼽힌다고 합니다. 단번에 너무 높은 수준의 책을 읽었나요? 자발적으로는 절대 손을 대지 않을 책이지만, 이런 기분 좋은 일탈로 새로운 경험을 합니다. 장 그르니에를 만날 일탈, 낭독회에서 그의 문장을 듣는 일탈, 골똘하게 생각하는 문장을 만날,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분위기를 만나는 일탈.... 그리고 이런 일탈은 사뿐히, 가볍게, 경쾌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