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35년 남았습니다 : 미치 앨봄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은 인기가 많은 스포츠 칼럼니스트이자 방송 진행자입니다. 그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유명 인사입니다. 돈도 많이 벌고 이름도 날리게 되었지만 너무나 바쁜 일상으로 애인과의 사이도 멀어지고 오직 세속적인 성공을 위해 사는 사람이 되어버렸죠. 그런 그도, 한 때 부자는 모두 나쁜 사람이며 와이셔츠와 넥타이는 죄수복이고, 오토바이를 몰고 바람을 맞으며 파리 뒷골목을 누비거나 티벳에 들어갈 자유가 없는 것은 행복한 삶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미치가 우연히 TV를 보다가 대학 시절에 자신이 잘 따랐던 모리 교수가 루게릭 병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고 16년 만에 그는 교수를 찾아갑니다. 모리 교수는 마치 그저 긴 방학을 보내고 돌아온 것처럼 반갑게 맞이합니다. 그리곤 이렇게 묻죠.
마음을 나눌 사랑을 찾았나?
지역 사회를 위해 뭔가를 하고 있나?
마음은 평화로운가?
최대한 인간답게 살려고 애쓰고 있나?
죽어가는 늙은 교수의 얼굴만이라도 한 번 보려고 했던 미치 앨봄은 이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하기 위해 매주 화요일마다 1000Km 이상을 날아서 자신의 스승 모리 슈워츠 교수를 만나러 옵니다. 그리고 스승과의 마지막 수업을 시작합니다. 오직 한 명의 학생을 위한 수업을 말이죠. 그는 이 수업을 통해서 자신이 살아온 지난 길을 돌아보게 되고 스승의 삶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배웁니다. 그가 들려주고 싶은 스승의 모습과 말들이 이 책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 실려 있습니다.
미치 앨봄과 그의 스승 모리 슈워츠
사진 출처 : http://www.ctpost.com/entertainment/article/Tuesdays-with-Morrie-celebrates-20th-12312525.php
"언젠가 자신이 죽을 걸 안다면 언제든 죽을 준비를 해 둘 수 있어. 그게 훨씬 낫지 않은가? 그렇게 되면 사는 동안 자신의 인생에 훨씬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거든."
"죽을 준비란 어떻게 하나요?"
"불교도들이 하는 것처럼 하게. 매일 어깨 위에 작은 새를 올려놓는 거야. 그러곤 새에게 '오늘이 그날인가? 나는 준비가 되었나? 나는 해야 할 일들을 제대로 하고 있나? 내가 원하는 그런 사람으로 살고 있나?' 라고 묻는 거지." (p.140)
"하지만 나이 먹는 게 그렇게 귀중한 일이라면 왜 모두들 '아,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갔으면....' 하고 말하는 걸까요? 누구도 '빨리 예순 다섯이 되면 좋겠다.'라고는 하지 않잖아요."
"그게 뭘 반영하는 것인지 아나? 인생이 불만족스럽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거야. 성취감 없는 인생, 의미를 찾지 못한 인생 말일세. 삶에서 의미를 찾았다면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아. 오히려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 하지.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어 하게 돼. 아마 예순 다섯 살이 되고 싶어 견딜 수 없을걸." (p.185)
"의미 있는 삶을 찾는 것에 얘기한 걸 기억하나? 적어두기도 했지만 암송할 수도 있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을 바쳐라. 자기를 둘러싼 지역 사회에 자신을 바쳐라. 그리고 자기에게 목적과 의미를 주는 일을 창조하는 데 자신을 바쳐라.' 거기에 돈 따위가 끼어들 틈이 없다는 걸 알겠지?" (p.195)
"그리고 우리가 용서해야 할 사람은 타인만이 아니라네. 미치, 우리 자신도 용서해야 해."
"우리 자신을요?"
"그래.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가 하지 않은 일들에 대해서 용서해야 하네. 했어야 하는데 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 말이야. 일이 이러저러하게 되지 않았다고 자신을 탓할 수만은 없지. 나 같은 상황에 빠지면 그런 태도는 아무런 도움이 안 돼." (p.243)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명제는 절대 진리이긴 하지만, 누구나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합니다. 내일 당장 죽을 수도 있는데 말이죠. 멀쩡하던 연예인이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해 죽었다는 소식, 혹은 알고 지내던 동료가 갑작스런 병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접해도, 그저 안타깝지만 남의 일일 뿐이었습니다. 내가 내일 죽는다는 생각은 아무도 안합니다.
저의 기대수명을 찾아봅니다. 다른 이보다 좀 더 건강하다는 가정하에, 대략 2053년 1월까지 살 수 있습니다. 음, 35년이 남았군요. 이 중에서 10년 정도는 나의 수족이 내 말을 안듣는 기간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그렇긴 합니다만....) 그럼 나의 의지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기간은 25년 정도입니다. 조바심이 나는 군요. 지금도 대부분의 시간을 남의 시간으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시간 전부를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기는 아직도 멀었습니다.
모리 슈워츠 교수는 루게릭병이라는, 수족을 쓰지 못하다가 결국 숨쉬기도 힘들어지는, 희귀병을 앓으며 죽음을 앞둔 환자입니다. 그런 그가 책에서는 어쩐지 편안해 보입니다. 마치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경구 마냥요. 본디 강하고 고운 영혼을 가진 분일 수도 있지만, 그는 죽음을 준비하면서 진정한 삶의 평온함을 찾은 것 같습니다. 그런 그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삶의 지혜는 그냥 쉽사리 지나칠 수가 없습니다.
늙은 스승이 미치와 첫 만남에서 했던 질문을 다시 떠올려 봅니다. 그 질문에 당당하게 "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인생이라면 아마도 모리와 같은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까지 그러하지 못했다면 이제부터라도 그래야 한다고 늙은 스승은 말합니다.
이제 35년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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