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 '자자, 이년아!' 라고 말해볼까? : 이수경 <차라리 혼자 살 걸 그랬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할 때는 누군가에게 사랑받는다고 확신할 때이다. - 빅토르 위고 (p.110)
아내와의 사이가 예전 같지 않다 라고 느낀 건 나만 그런 걸까? 서울에서 일할 땐 그래도 매주 집에 내려갔었는데, 현장으로 근무지를 옮긴 후엔 한 달에 겨우 한 번 얼굴을 보게 되었다. 그러면 더 애틋한 사이가 되어야 정상 아닌가? 그런데 그렇지 않다. 이젠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것 같다. 전화로 하는 대화도 아이들 이야기 아니면 별 의미가 없는 일상의 사건들에 대한 보고 정도가 다다.
이번엔 무려 5주 만에 집에 갔더랬다. 맛나는 거도 많이 해 먹고 알콩달콩 재미있게 보내리란 맘으로 발걸음은 무척 가벼웠다. 그런데 아주 오랜만에 만난 아내의 반응은 어제 본 듯 별 감흥이 없다. 그러고 보니 나를 보며 활짝 웃는 모습을 본 기억이 가물거린다. 함께 밥을 먹고 영화를 봐도 그저 그런 모양이다. 그리곤 저녁에 친구와 모임이 있다며 나간다. 쳇, 이 여편네가 진짜!
내가 누구 좋으라고 타향 만리에서 그 고생인데, 일주일에 한 번 오는 것도 아니고 한 달에 한 번 집에 오는 건데, 친구들은 나 없을 때 만나면 누가 머라 그래? 오랜만에 오는 남편이랑 놀아주는 게 부부의 의리아냐? 그리고 다른 사람 앞에서는 그렇게 하하호호 잘 웃고 애교도 부리면서 남편한테는 목석이 되는 그 심보는 뭔데? 도대체 나란 존재는 당신한테 뭐야? 라고 외치고 싶었으나 한 달만의 휴일을 망칠까 싶어 애써 참았더랬다.
"우리는 이제 그런 부부가 되었네요. 아무런 재미도 없고 애들 말고는 대화 거리도 없는. 당신은 당신 일 하고 나는 내 일 하고. 서로 따뜻한 말 한 마디도 안 나누었군요. 어제 밤에는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들어서 그런 식으로 사람을 대하나요. 나는 마음이 많이 상했소. 집에 자주 오는 것도 아니고 한 달만에 와도 당신은 그냥 똑같네요."
나에게 그 소중한 시간을 속만 끓이다 다시 현장 숙소로 올라가는 고속버스 안에서 아내에게 위와 같이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답이 없다. 나도 신경 쓰기가 귀찮아 일부러 다른 생각만 했다. 다음 날 아침에 "춥다. 따시게 잘 지내." 라고 문자가 왔다. 대화가 싸움이 될지언정 그래도 자꾸 대화를 해서 풀어야 할 지, 그냥 좀 내버려두고 잠자코 있어야 할 지.....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머! 관셈보살.....
그건 아내를 사랑한 게 아니라 자신을 사랑한 것입니다. 아내가 내 기준과 기분에 맞을 때는 사랑을 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지적하고 비난하고 미워했다면, 그건 아내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사랑한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아내상을 그려놓고, 아내가 거기에 합당할 때는 사랑을 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미워하지 않았나요. 그것은 아내가 아니라 자신의 우상을 사랑한 것이죠. (p.113)
그렇다면 나는 아내에게 잘 하고 있나? 집에서 나의 역할은 생계를 맡은 거 외에는 없다. 멀리 떨어져 있어 가족들을 자주 볼 수도 없다. 산이의 농구 전국대회 응원도 못 갔고, 들이의 공연도 못 봤으며, 강이의 섹소폰 연주 대회도 가지 못했다. 아내랑 마주 앉아 둘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 받은 지가 언젠지 까마득하다. 그래도 아이들과 아내와도 자주 통화하고 대화도 이어간다. 라는 건 나의 생각일 뿐. 이렇게 살다가 돈 버는 능력이 다하면,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팽! 되는 거, 너무 빤한 스토리아냐?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약간의 위기감이 생겼고, 또 약간의 충고와 위로가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는 책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서점으로 향하고 한 권의 책을 골라 샀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추천사가 다섯 개가 있었다. 예감이 좋지 않다. 두 시간만에 다 읽었다. 역시 당연한 소리만 해댔다. 나도 다 안다고. 다 알고 있다고! 이론과 실천은 다른 법이라고!! 그렇긴 하지만 의미심장한 대목도 더러 있었다.
아, 이제 우리는 서로에게 투명하게 변해 가는구나.
아내는 얼마 전부터 자신의 일이 생겼고, 그 일에 푹 빠져 있다. 거기다가 남편은 멀리 있고,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는 아이들 셋을 건사한다. 책에는 '가정 경영자'라는 말이 나오는데, 대부분의 가장이 그렇다고 한다. 그러나 예외도 있다. 추신수 형님네의 가정이 그렇다. 신수 형님은 돈 벌어다 주는 사람이고 실제의 가정 경영자는 신수 형님의 마눌인 하원미씨다. (내 말이 아니고 책에서 그렇다고 한다.) 물론 우리집도 울 마눌이 '가정 경영자'다.
'가정 경영자'를 믿고 따르며 그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 아내 혹은 아이 엄마가 아니라 독립된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는 것. 내가 바라는 아내상이 아니라 할 지라도 그것이 그녀의 일부분임을 인정할 것. 책에서 말하는 이 훌륭한 정석이, 현실에서 존중과 인정이라는 명목 하에 무관심으로 점점 서로 공유하는 것을 잃어가는 것과 어쩌면 아주 평행선일지도 모른다. 서로를 열렬히 사랑하는 건 아주 꽁꽁 서로를 동여매는 것과 다르지 않으며, 평등한 개인으로 자유로운 관계는 마냥 느슨해져 서로의 단점에 대해서도 그냥 지나쳐버려 마침내 거의 남이 되어버리는 것과 평행선이다.
그리고 나는 그 평행선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P.S.
위에서 예를 든 교수 부부의 경우 집에서도 서로 근엄하게 격식을 차리다 보니 두 사람은 부부라기보다 동거인에 가까웠습니다. 집에서도 늘 의관정제하고 서로 한 침대에 앉아 책만 읽다가 잠자리에 들곤 했답니다. 그러다 보니 부부이면서도 부부관계를 안 한 지 몇 년이 됐다고 하네요. 서로 편하고 익숙하기는 하지만 두 사람은 점점 삶의 의욕을 잃어갔습니다. 한마디로 사는 게 재미가 없어진 거죠.
그 얘기를 듣고 누군가 이렇게 코치를 해줬습니다.
"사모님. 이제부터 '교수님'이라고 부르지 마시고, 침대에 기대서 책 보시다가 잠잘 때가 되면 남편에게 '자자, 이 자식아'라고 해보세요. 그러면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거예요."
아내는 깜짝 놀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에이, 말도 안 돼요. 어떻게 그런 말을 해요?"
그러나 그날 이후 그 말은 자꾸만 아내의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속으로 몇 번인가 연습을 했습니다. 며칠 후 평소처럼 부부는 침대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불을 끄려고 하자 아내가 남편에게 외쳤습니다.
"자자, 이 새끼야!"
"자자, 이 자식아!" 라고 한다는 게 그만 실수를 해버린 거죠. 속으로 '이제 큰일 났다. 이걸 어쩌지?' 하며 걱정하고 있는데 남편이 처음에는 황당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웃으며 아내에게 이렇게 응수했습니다.
"그래, 이년아!"
순간 두 사람은 동시에 빵~ 터져버렸다고 하네요. 그날 밤 부부는 몇 년 만에 황홀한 운우지정을 나눴다고 합니다. (p.204)
오오~, 이거 재미있겠는 걸. 나도 한번 해볼까? 근데 해보나 마나 아내는 "미친 거 아냐?" 라고 더 사납게 굴 게 뻔 해. 따귀라도 안 맞으면 다행일 듯. 역시 책과 현실은 다른 거야.
근데, 맞을 땐 맞더라도 한번 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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