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이 느껴지는 인간 데생 : 요네하라 마리 <프라하의 소녀시대>
버스는 거의 급사면을 올라갔다. 버스가 다 올라간 곳에서 내려 야스나가 보라는 대로 눈을 돌린 나는 숨을 꿀꺽 삼켰다. 절경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사바 강과 도나우 강이 합해지면서 생긴 예각지가 무너져가는 성벽에 둘러싸여 있다. 성벽 건너편으로 구시가지 건물들이 늘어서 있고, 그 뒤로 기복 있는 풍경이 보인다. 더 멀리로는 한적한 농촌 지대가 펼쳐져 있다.
"너무 아름다워. 터키군이 싸울 마음을 잃고 물러간 심정을 알 것 같아. 아마 저 기슭에서 짙은 안개에 잠긴 성벽을 보고 '하얀 도시!' 하고 외쳤을 거야." (p.300)
친구 야스나가 저자인 요네하라 마리에게 보여준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의 풍경입니다. 칼레메그단 성으로 가자고 했던 마리에게 아무 말 없이 반대쪽으로 가서 칼레메그단의 성벽을 보게 해주는 야스나의 진심이 담긴 장난기가 드러납니다. 요네하라 마리는 왜 이 도시의 이름이 베오그라드(하얀 도시)가 되었는지 감탄합니다.
이정흠의 <오후 5시 동유럽의 골목을 걷다>를 읽고 궁금해졌습니다. 어떤 책이길래 동유럽과는 지리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멀기만 한 한국의 20대 청년의 발걸음을 거기까지 옮기게 했는지 말입니다. 그 청년은 지구 반 바퀴를 날아 요네하라 마리가 보았던 위의 저 장소로 가서 두눈으로 칼레메그단의 하얀 성벽을 확인하고는 맙소사! 라는 감탄사를 내뱉습니다. 나도 이 책에 묘사된 아름다운 동유럽이 읽고 싶어 얼른 사 보았습니다. 그랬는데, 그랬는데 말이죠......
요네하라 마리의 아버지는 일본에서 알아주는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격동의 시기에 공산주의 혁명에 몸을 던집니다. 가족이 고생할 것도 알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좇아 가시밭길을 택한 덕에 16년이나 지하 생활을 해야 했지만 평생 청렴하게 살아갔고 그런 아버지를 저자는 누구보다 존경했다고 합니다.
1950년 생인 저자는 초등학교 3학년 때인 1959년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로 건너가 5년을 지냈습니다. 아버지가 각 나라 공산당의 이론지인 <평화와 사회주의 제 문제>의 일본 공산당 대표로 선발되어 부임하는데 가족 모두 따라갔기 때문입니다. 프라하에서 저자는 현지 소비에트 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 학교는 소련 외교부가 직접 운영하는 외국 공산당 간부 전용학교로, 마리와 같은 처지의 50여 개국 아이들이 다녔습니다. (조선인민공화국의 양수도 그 아이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 학교에서 많은 친구들을 만납니다. 한번도 가 보지 못한 조국 그리스의 쨍하고 깨질 듯한 파란 하늘을 그리워한 리차,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루마니아의 거짓말쟁이 아냐, 그리고 베오그라드의 아름다운 매력을 알게 해준 절친 야스나. 이들과 함께 작가는 행복하고 성숙한 유년시절을 보냅니다.
1964년 요네하라 마리는 귀국하고, 죽고 못 살던 친구들의 잔향은 고국의 생활에 적응하는라 점점 옅어지게 됩니다. 1968년 소련이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20만 대군을 이끌로 체코슬로바키아로 쳐들어오고 '프라하의 봄'이라 불리는 민주화 운동이 거세게 휘몰아칩니다. 마리는 친구들이 걱정되어 편지를 써보지만 답장은 감감 무소식입니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고, 90년대에 들어 동유럽의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됩니다. 이를 계기로 마리의 가슴 깊은 곳에 있던 친구들을 소환하고 직접 찾아가 보기로 마음 먹습니다. 자신이 다녔던 프라하의 소비에트 학교를 돌아보고, 친구들을 찾아 독일의 나우하임으로, 루마니아 부쿠레슈티로,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로 떠납니다. 삼십 년이라는 시간 동안 소용돌이 치는 격동의 세월을 살아온 친구들은 어찌 변해 있을까요?
31년 만에 만난 친구 야스나에게 선물로 마리가 준비한 선물, 호쿠사이의 판화 <빨간 후지> (사진 출처 : 위키디피아)
추상적인 인류이 일원이라는 건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도 존재할 수 없어. 모든 사람은 지구 상의 구체적인 장소에서 구체적인 시간에 어떤 민족에 속하는 부모에게서 태어나 구체적인 기후 조건 아래서 그 나라 언어를 모국어로 삼아 크잖아. 어느 인간에게도 마치 대양의 한 방울처럼 바탕이 되는 문화와 언어가 스며 있어. 또 거기엔 모국의 역사가 얽혀 있고. 그런 것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야. 그런 인간이 있다면 그건 종이쪽처럼 얄팍해 보일 거야. (p.195)
마리가 보냈던 1960년 초반의 프라하 소비에트 학교는 아직 찬란한 공산주의의 이상이 빛나던 곳이었습니다. 학생들은 성숙했으며 교육의 수준도 상당합니다. 마리는 돌아온 고국에서 어느 시험지고 o 혹은 ×로 답을 고르던 시험지에 의아해합니다. 소비에트 학교는 모든 시험이 논술 아니면 구두 발표 시험이었습니다. 각기 다른 민족의 학생들과 함께 수업하면서 내셔널리티에 대해서도 온 몸으로 배웁니다. 한 때는 공산주의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제대로 노력했더랬습니다.
친구들을 찾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동유럽의 역사도 흥미진진했습니다. 그 역사의 수레바퀴가 개인을 어떻게 휘둘렀는지 리차와 아냐, 야스나를 통해 보여줍니다. 결국 개인은 시대의 물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루마니아의 차우체스쿠가 축출된 이후에도 똑 같은 넘이 정권을 잡았다던가, 발칸의 내전은 나쁜 넘 세르비아만의 문제가 아니었다던가 하는, 우리 멀게만 느껴졌던 그 동네의 현대사가 손에 잡히듯 한순간에 와닿았습니다.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국가의 역사와 개인의 역사가 그대로 펼쳐진 논픽션이었습니다.
프라하에서 보낸 오년의 시간에 요네하라 마리에게 얼마나 깊은 영향을 주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30년이 지나 만난 친구들과의 재회 장면은 가슴이 쨘~ 합니다. 이 책을 이십대의 청년 시절에 읽고 동유럽으로 떠난 한국의 청년도 그의 삶이 훨씬 깊어졌겠지요. 그가 부럽웠고 한편으로는 이제라도 요네하라의 책을 만나게 해줘서 감사한 일입니다.
요네하라 마리는 2006년에 56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쉽지만 그의 모습을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거친 역사도, 그 역사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으려 했던 친구의 삶도 따뜻하고도 현명하게 바라보고자 했던 저자의 마음은 글로 남아 있습니다. 옮긴이는 이 책을 두고 '영혼이 느껴지는 인간 데생' 이라고 했습니다. 참 잘 어울리는 말입니다. 마리의 다른 책이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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