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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이야기

열심히 살아도 될똥말똥 한 판에 : 하완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by Keaton Kim 2018. 11. 11.

 

 

 

열심히 살아도 될똥말똥 한 판에 : 하완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제목 함 봐라, 기가 막힌다! 열심히 해도 될똥말똥 한 판에 머시라?"

 

 

 

그러게 말입니다. 열심히 해도 안되는 세상인데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니요. 이건 열심히 살고 있고 또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는 모욕?적인 말입니다. 책을 읽고 있는 나를 힐끔거리더니 아내가 던진 말입니다. 나름 열심히 살고 있는 아내로서 충분히 할 만한 발언입니다. '니도 함 읽어봐라. 공감할 걸!' 속으로 말했습니다. 아, 소심하여라.

 

 

 

 

열심히 헤엄쳐서 구조된 여자나 맥주나 마시면서 놀다가 구조된 남자나 결과는 똑같다. 노력이 아니라 노오력을 해도 안되는 세상이다. 그럼 어쩌라고? 노력하지 말라고? 저자는 노력이 우릴 배신하는 시츄에이션이 아주 많으니, 실망하지 말자고 한다. 너의 노력이 부족해서 실패한 게 아니라고 위로한다.

 

 

 

 

솔직히 글보다 그림이 더 와닿는다. 확 땡긴다. 표지 그림부터. 주인공 이넘은 항상 벗고 나오는데, 아주 편해보인다. 속세의 무거운 짐을 다 벗은 것 같은.....

 

 

 

 

다른 무엇보다 공감하는 문장은 힘내지 말고 힘을 빼자다. 잘 하고 싶어서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다. 자고로 힘이 들어가서 잘 되는 건 없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잘 쓰고 싶어서 힘이 바짝 들어간 글은 두 번 읽기 싫은 글이 된다. 잘 쓸 욕심을 버리고 자연스럽게. 읽는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지 눈치보지 말고, 내 생각을 편안하게 글로 옮기자.

 

 

 

 

이제 열심히 사는 인생은 끝이다. 견디는 삶은 충분히 살았다. 지금부터는 삶의 결과를 위해 견디는 삶이어서는 안된다. 과정 자체가 즐거움이다. 그래서 인생이 재미있다. 앞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뿅 하고 건너뛰고 싶은 시간이 아닌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지. (p.285)

 

이십 년째 견디는 삶을 살고 있는 나에게 이건 괴로운 문장이다. 얌마 하완. 니는 홀몸이라서 가능하지, 나처럼 호랑이 같은 마눌에 늑대 같은 애 셋 있어봐라, 그런 말이 나오나. 나도 견디고 싶어 견디는 게 아니라규!!

 

 

 

 

오랜 고민을 끝내고 퇴사한 소감은? 글쎄, 잘 모르겠다. 잘한 것 같기도 하고, 잘못한 것 같기도 하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내가 왜 그렇게 힘들어했지? 꽤 괜찮은 회사였는데.' 라는 마음이다. 지금 내가 주로하는(월급을 포기하면서까지) 이 에세이 쓰기도 회사를 다니면서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 때는 그런 생각도 못하고 회사 때문에 아무것도 못 한다고만 생각했다. (p.165)

 

음, 딱 내 얘기다. 회사를 그만두고서야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나. 나의 불행은 온통 회사 때문이라고, 이 놈의 회사를 때려치워야 내 인생에 여명이 밝아오리라고 생각하는데....

 

 

 

 

책에 대해, 그리고 저자에 대해 이리저리 웹서핑을 하다 저자의 사진을 봤다. 이런 쓰벌! 나도 모르게 이런 감탄사가 터졌다. 저자 하완은 조올라 잘 생겼다. 키도 훤칠했다. 뭔가 찌질이를 기대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공기가 갑자기 싸늘해졌다.

 

 

 

 

이런 류의 책이 대세다. 힘들고 각박한 세상에서 누구에게서도 위로 받지 못한 나를 위로해주는 책. 사실 이런 책을 읽는 것보다 가족이나 친구에게 위로를 받는 게 훨씬 낫다. 그렇지 못해서 이런 책을 읽는 거지만. 책 제목에 땡겨서 사 읽었는데 거의 위로 받을 뻔했다. 야매 득도 에세이라 칭할 만 하다.

 

위의 모든 그림 출처 : 작가의 브런치 https://brunch.co.kr/magazine/satori

 

 

 

 

 

 

사실 저는 이런 책 잘 안읽습니다. '니 만의 삶을 살아라', '한 번 뿐인 인생이다. 즐겨라.', '순간을 소중히 여겨라', '적당히 포기하며 살아라', '일에서 보람 따위를 찾지 마라' 등등을 캐치플레이즈로 내세우며 우리를 위로하는 책들 말이에요. 아주 중증이 아니면 이런 책 읽어도 잘 위로가 안됩니다. 위로는 커녕 짜증이 날 때도 있습니다. 원인은 이런 거죠. "나도 알아, 안다구! 근데 잘 안되는 걸 어떻게? 니가 내 상황 되어 봤어?"

 

 

 

어느날 하도 생기 없이 멍하니 앉아 있는 날 보고 아내가 말하더군요. "그럼 뭐가 하고 싶은데?" 바로 대답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걸 하고 싶어!" 요즘 거의 이런 지경에 와 있습니다. 대기업 노비로 일한지 20년, 이제는 마름의 직위까지 올랐지만 그래도 노비라는 사실을 변함이 없습니다. 이 사슬을 끊어내지 않는 한 내 삶에 빛은 없다는 걸 깨달아버렸습니다.

 

 

 

여태 나도 열심히 살았습니다. 노력에 노오력을 더했습니다.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과를 보니 착각이었습니다. 직장에서두 가정에서두요. 노오력의 결말은 대개 이렇습니다.ㅋ 역시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인가요. 이 대목에서 애쓰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살아보기로 한 저자의 실험이 조금, 아주 쪼오금 솔깃합니다. 우이씨, 이거 솔깃하면 지는 건데. 

 

 

 

그나저나 주인공 저넘의 패션 스타일은 보면 볼수록 부럽군요. 하얀 빤쮸는 빼고. 나도 그냥 훌훌 벗어버리고 싶네요. 몽땅 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