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이 누님, 상상력의 끝은 어디냐? : 요네하라 마리 <발명 마니아>

 

 

 

도대체 이 누님, 상상력의 끝은 어디냐? : 요네하라 마리 <발명 마니아>

 

 

 

<프라하의 소녀시대>를 읽은 후에 일명 '마리 누님'의 책들이 궁금해서 서점에 어슬렁거리던 차에 발견한 책이다. 책 제목이 <발명 마니아>라 무슨 발명에 관한 책이라고 짐작은 했지만, 두툼한 분량 전부가 이토록 구체적이고 세세하게 자신의 발명품을 설명한 책인 줄은 몰랐다. 도대체 이 누님의 상상의 끝은 어디냐? 라고 혀를 내두르며 읽다보니 벌써 끝났다. 그녀의 머리 속에 잠깐 들어가볼까?

 

 

 

보자마자 이거다! 라고 생각했다. 나도 주로 누워서 책을 보는데, 이쪽으로 누웠다가 또 저쪽으로 눕기도 하고, 팔이 아파 엎드려 읽다가, 보통 그대로 잠든다. 누워서 읽기 좋게 책을 들어주고, "다음"이라고 말하면 페이지를 넘겨주며, 잠들라 치면 나의 몸을 흔들어주는 로봇을 생각하기도 했다. 이미 오래 전 마리 누님이 생각하셨구나. 근데 왜 아직 없을까? (p.37 '한겨울에 손 시리지 않게 누워서 독서하는 법' 중에서)

 

 

 

바닷물을 담수화해서 파이프라인으로 물이 부족한 곳에 공급하는 시스템인데, 핵심은 석유를 운반하던 파이프라인을 전용해서 사용한다는 거다. 이 물로 인공호수도 만들고, 그 주위로 나무도 심는다. 이렇게 되면 많은 사람들을 굶주림으로 몰아가는 사막화를 방지할 수 있다. 물론 바닷물을 사용하기에 바다의 수면이 높아지는 일도 없다. 꿩먹고 알먹고다. (p.240 '해수면 상승과 사막화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방법' 중에서)

 

 

 

"어머 부시 손님은 뭐든지 다 어울리세요. 캡슐 폭탄 목걸이도 딱이에요." 마리 누님이 이 글을 썼을 때가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시기였다. 부시는 석유 때문에 이라크를 공격했는데, 그 이유가 석유 생산의 과잉을 막기 위해서라고. 그래야 석유 가격이 올라 부시와 거대 석유 기업이 많은 이익을 올릴테니까. 그 부시를 마리 누님은 아주 지대로 비꼬았다. (p.407 '승부에 져도 실리는 왕창 챙기는 기술' 중에서)

 

 

 

동물을 유기한 사람에게는 그 장소에 밤새 혼자 있게 하는 벌을 내리고, 시끄러운 음악을 틀어 이웃에 고소된 사람에게는 고요한 숲 속에서 클래식 음악을 듣는 벌을 내린 판사의 판결을 소개하며, 부시에게는 열화 우라늄탄이 대량 투하된 이라크 남부에 반년간 보내게 해야 한다고 마리 누님은 주장했다. 위의 사진처럼 그림으로 표현하니 그 죄가 얼만큼인지 바로 알겠다. (p.471 '아무도 감옥에 보내지 않는 창조적인 판결' 중에서)

 

 

 

위에 소개한 것 외에 자신이 기르는 개와 고양이 쉽게 쓰다듬어 줄 수 있게 천수관음의 손을 만든다던가, 승객들이 페달을 밟아 기름을 쓰지 않고 이동하는 버스라던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스킨쉽을 재현해주는 마법의 수건이라던가, 책에 나오는 그녀의 상상력은 일상에서 자연과 환경과 우주로 끝도 없이 이어진다. 책에 나오는 신박한 그림은 '아요이 야요'라는 싸인이 있는데 마리 누님이랜다. 도대체 못하는 게 뭐냐, 이 누님. 근데 이 그림, 요즘 웹툰에 올리면 아주 대박이겠다.

 

 

 

2001년의 911테러 이후 확산되는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그녀의 생각이 담긴 글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미국에서 만든 온라인 게임을 소개했는데, 'september 12'라는 제목의 게임으로, 화면에는 중동의 사막 속 오아시스에 있을 법한 평화로운 시가지가 나오고 남자와 히잡을 쓴 여자와 어린 아이들과 동물들이 걸어다닌다. 그 속에 총을 든 테러리스트가 보였다 말았다 한다. 룰은 아주 단순하다. 그 테러리스트를 조준해서 쏴 죽이면 된다. 근데 조준을 약간 잘못해서 민간인이나 개가 맞으면 유족들이나 친구들이 탄식하고 슬퍼한다. 그리고 좀 지나면 이 사람들이 테러리스트로 변한다.

 

 

 

마리 누님은 테러리스트가 화면 구석에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조준을 잘못해서 민간인이 다치는 일이 없게끔 말이다. 근데 기다리고 기다려도 누님이 원하는 곳에 테러리스트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기회만 노리고 전혀 공격하지 않자 이게 웬걸, 테러리스트의 숫자는 점점 줄더니 결국 없어져버렸다고 한다. 테러에 대해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정곡을 찌른다.

 

 

 

부끄러워서 숨기는 게 아니라 숨기기 때문에 부끄러워지고, 추우니까 옷을 입는 게 아니라 옷을 입으니까 추워진 것이기에 개에게 옷을 입히는 건 그들이 지닌 추위에 대한 내성을 퇴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하는 마리 누님. 소련에서는 애를 낳으면 매일 젖을 짜서 공동으로 이용하는 일화를 소개하며, 젖이 너무 많이 나오는 사람과 젖이 모자란 사람 모두에게 득이 되며 누구의 아이든지 건강하게 자라야 한다는 공동체를 강조하기도 했다.  

 

 

 

 

 

 

이 글에 나타난 마리 누님은 귀엽고 유쾌하다. 가려운 곳을 긁어 주고 군더더기가 없다. 아무 생각 없이 있다가 옆구리를 훅 찔리기도 했다. 발명에 관한 글이지만 발상의 전환이 돋보인다. 어쩌면 생각이 이렇게 유연한지, 자꾸 읽고 싶어진다. 예전에 읽었던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의 원작자인 다나베 세이코의 글도 이렇던데.

 

 

 

안타깝게도 마리 누님은 2006년 56세에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역시 천재는 박명인가, 아니, 미인이라 박명인가? 그녀의 새로운 글을 볼 수 없다는 건 슬프다. 하지만 남아 있는 책이 무려 15권이다. 아직 읽지 않은 누님의 책이 많이 있다는게 왜 이리 행복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