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출산율은 0.72입니다. 지금 한국인이 100명 있다고 가정해보죠. 여자는 절반인 50명입니다. 그럼 50명이 0.72의 출산율로 아이를 낳으면 36명이 됩니다. 100명의 한국인이 한 세대가 지나면 36명이 됩니다. 같은 방법으로 한 세대가 더 지나면 13명이 됩니다. 한국인 100명이 있었는데, 손자 손녀들은 13명이 된 겁니다. 그 다음 세대까지 계산해보면 5명입니다. 한 세대가 약 30년이라고 잡으면, 90년 후는 현재 인구의 5%가 되는 겁니다.
무슨 안드로메다 숫자 같이 느껴지지만, 허무맹랑한 소리가 아닙니다. 제가 출생한 1972년도에는 약 95만3천 명이 태어났습니다. 첫째인 산이가 세상에 나온 2002년엔 49만6천 명이 태어났구요, 2024년엔 24만8천 명입니다. 제 아이의 세대엔 저의 절반이구요, 지금은 절반의 절반입니다. 우리나라 인구는 2020년 5,183만 명을 기록하고 이후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 출생율로 계속 가면 2060년 우리나라 인구는 3,580만 명이 됩니다. 매년 30만 명씩 줄다가 2040년부터는 매년 50만 명씩 줄어듭니다. 제가 살고 있는 김해의 인구가 대략 50만이니 매년 김해시가 사라지는 셈입니다. 2060년에는 두 명 중 한 명이 65살 이상입니다. 25살 이하는 전체 인구의 10%입니다.
2060년엔 국민연금도 모두 고갈됩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아주 쪼금 남아있습니다. 당초 2056년에 연금이 소진될 예정이었는데, 바로 저번 달에 국민연금 보험요율이 9%에서 13%로 연금개혁 합의안이 통과되면서 고갈 시점이 2064년으로 8년 연장되었습니다. 국민연금도 내후년부터 적자로 돌아섭니다. 적립되는 돈보다 주어야 하는 더 많아집니다. 미래 세대에 돌아갈 것을 지금 당겨 쓰는 셈입니다. 이야기가 조금 길어졌는데, 노인의 삶은 더욱 힘들어진다는 말입니다. 영구적인 경기 침체에 새로운 문화가 없는 사회가 되는 겁니다. 그리고 더욱 참담한 사실은 이 출산율이라는 것이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는 이 모양이 되었을까요? 우리나라는 극도의 경쟁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임금은 낮고 생활비는 높습니다. 우리나라 남자의 가사 노동과 육아 부담율은 선진국 중에서 가장 낮습니다. 더 이상한 것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인류 역사상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제가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일 과학 채널인 쿠르츠게작트에서 지난 4월 2일에 만든 유튜브 영상의 내용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 확인해보니 천백만 뷰가 넘었습니다. 쿠르츠게작트는 세계의 여러 이슈를 다루는데, 보통은 대책도 충분하게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 영상에서는 '한국은 끝났다'며 대책이 없어 더 큰일이라고 했습니다. 슈카월드에서 이 내용을 다시 다루었는데 쿠르츠게작트의 원본보다 더 재미있습니다.
슈카는 영상 말미에, 사랑의 중요성, 아이의 기쁨, 가족의 가치에 대한 외면이 오늘의 참사를 불러왔다고 말했습니다. 행복한 가정과 사랑스런 아이의 가치를 모두 돈으로 환산하고, 그래서 "너는 가진 게 그것 뿐인데 아이를 낳아서 어쩔려고?", "아이 낳고 언제 집 사고 돈 모으고 할거냐?" 라고 조롱하는 사회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출산율로 나타난 것이며, 그런 잣대를 가진 우리 모습이 부끄럽다고 했습니다. 네, 슈카는 가끔 아주 멋진 말을 합니다.
"아이를 낳으면 돈도 주고 혜택도 줄게. 그러니 낳아라." 라는 우리나라의 저출산 해결 대책은 대실패였습니다. 지금의 출산율이 이것을 증명합니다. 돈이 있고 없고와 상관없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환경,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는 기쁨이자 행복이라는 가치관이 우선되는 사회 분위기가 있어야 합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잘 한 것을 하나만 꼽자면, 우리 아이들 산, 들, 강이를 만난 것입니다. 아이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우리 아이들과 노는 게 제일 재미있었습니다. 지금은 다 떠나고 없어서 같이 놀지 못합니다. 더 열심히 못 논 것이 아쉽습니다. 돌이켜보면 우리가 아이를 키운 것이 아니라 아이가 우리를 부축하며 걸어온 날들이었습니다. 아이란 저에게 그런 존재입니다.
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진정 어린 고민의 가장 좋은 시작점입니다.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좀 더 따뜻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아시아의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지금의 수준으로 올라가게 한 우리의 저력이 살짝 방향만 틀면 됩니다. 그러면 한국은 끝났다는 쿠르츠게작트의 저 말을 비웃을 수 있습니다. 그러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선진국 대한민국은 사회, 경제적으로 휘약한 계급, 계층, 집단의 희생에 기초하여 이루어졌고, 불평등과 양극화라는 심각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선진국이란 칭호는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이런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기대하며 미리 당겨 받은 칭호다. 이 점에서 대한민국은 '가불假拂 선진국'이다. (21쪽)
이 책의 서문에 '20대 대통령 선거 결과를 확인한 새벽에, 조국' 이라고 씌여 있습니다. 그러니까 윤석열이 막 당선되었을 때였습니다. 3년이 지났습니다. 조국은 소극적 대항에서 적극적, 아니 격렬한 대항을 했고,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딸의 장학금을 뇌물이라고 한 법원의 선고로 감옥에 있습니다. 윤석열은 조국의 예언대로 3년을 채우지 못하고 내려왔고, 이제 감옥 갈 일만 남았습니다.
조국은 현재의 대한민국의 상황을 가불 선진국이라 명칭하며, 사회권의 선진국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회권이란, 노동3권을 비롯하여, 근로의 권리,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주거권, 보건권 혹은 건강권을 말합니다. 이러한 권리들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부족하다고 하며, 현재 이 권리들의 우리나라 상황, 그리고 이것을 선진국 수준으로 올리기 위한 여러 제언을 썼습니다.
이 책 7장 '차별을 넘어 공존으로' 에서는 소수자의 차별에 대해 다룹니다. 책에서 다루는 소수자는 여성, 성소수자, 이주 노동자, 탈북민입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외국인에 대한 차별의 실례와 정부의 대처, 그리고 더 나아가 개선되어야 할 사항들에 대해 썼습니다. 그러리라 짐작은 했지만, 상황은 더 열악했습니다. 우리나라의 힘든 일을 담당하는 이주 노동자와 조선족, 탈북자들은, 그럼에도 사회권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이게 많이 아픕니다. 쿠르츠게작트가 말한 인구 감소를 막을 방법은, 물론 출산율을 올리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것이긴 하지만, 다른 선진국들이 했던 것처럼 이민자를 받는 것입니다. 이게 가장 확실하고도 현실적인 방법이며, 사실 이것 외에 다른 대안은 없습니다. 우리는 아직 노동력이 부족한 나라입니다. 3D의 업종은 더욱 그러합니다. 다행히 자국에 비해 높은 임금때문에 많은 아시아의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오고 싶어 하고, 또 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 이주 노동자에 대해 결코 관대하지 않습니다. 국적을 획득하기도 매우 힘듭니다. 이들의 '노동력'이 필요하지, '이들'이 필요하진 않다는 정책은 이제 대대적인 수정이 필요해 보입니다. 정책보다 먼저 변화되어야 하는 건, 이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이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입니다. 이들을 우리와 다른 이질적, 배타적, 차별적으로 보는 시선은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허상입니다.
해답은 있으나 실천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되겠니?' 라는 자조적인 물음만으로는 변하지 않습니다. 희망도 있습니다. 한달 남짓 지나면 새로운 시대가 시작됩니다. 시대를 역행하는 지도자를 두 번이나 끌어내린 우리의 저력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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