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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이야기

지도는 언제나 나에게 말을 건다 : 팀 마샬 <지리의 힘>

by 개락당 대표 2025. 6. 5.

 

이 책은 지리라는 타이틀이 붙긴 했지만, 지리의 관점에서 본 국제 정세의 이야기다. 나라간의 싸움은 지리때문에 일어난다고 저자는 말한다. 여기서 지리라 함은 강이나 산맥, 바다 같은 물리적 지형뿐 아니라 기후, 천연자원, 인구, 문화, 민족, 종교 등도 포함한다. 어릴적 보던 사회과부도도 그랬던 것 같다.  

 

책은 중국, 미국, 유럽, 러시아를 포함하여 한국과 일본을 거쳐 북극까지 총 10개의 지역으로 나눠 설명하는데, 책을 펴자마자 우리나라부터 읽었다. 첫 페이지에 우리의 상황을 두어 문장으로 짧게 정리했는데, 통찰력이 보통이 아니다.  

 

161p

중국은 북한의 행위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는 건 바라지 않지만 그렇다고 통일 한국의 국경, 즉 자신들의 코앞에 미군이 주둔하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미국도 남한을 위해 싸우고 싶은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지만 그렇다고 우방을 저버리는 짓을 할 수도 없다. 한반도 개입에 있어서는 오랜 역사를 지닌 일본은 어떤 사태가 벌어지더라도 모른 체할 수는 없는 입장이기에 되도록 조심스럽게 행동할 것처럼 보여야 한다. 

 

해결책을 타협이겠지만 남한은 이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고 북한의 지배층 또한 이를 받아들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향후 전망은 누구도 알 수 없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 상황은 마치 지평선 너머에 있는 보이지 않는 풍경과도 같다. 

 

별로 친하지 않은 이웃에게 우리집 냉장고 안을 보인 것 같다. 간결하지만 너무도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도 없다. 특히 통일에 대해 우리나라가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옆구리를 찌른다. 우리의 미래가 지평선 너머의 보이지 않는 풍경이라니, 슬프지만 멋진 표현이다. 그래도 저자는 우리의 통일을 부정적으로만 보고 있지는 않다. 

 

174p

통일에 드는 대부분의 경제적 비용을 남한이 감당해야 한다. 이 비용 때문에 통일된 한반도의 경제는 한동안 후퇴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 시기만 잘 넘기면 석탄, 아연, 구리, 철과 같은 북쪽의 풍부한 천연자원과 현대화된 프로그램 등이 시동을 걸 것이다. 다만 그 기간 동안 세계 최고로 발전된 국가 가운데 한 곳이 번영을 포기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가에 대한 복잡한 입장이 있다. 

 

그치, 통일이 결국 우리에게 좋은 기회가 될 터인데, 주변 강대국들이 가만히 보고만 있겠냐 라는 문제가 남는다. 팀 마샬 이 냥반, 예리하다.

 

 

조선 태종 때 만든 세계지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알릴레오 북스 <지리의 힘>편에 나온 김이재 교수는 당시로서 꽤 정밀한 지도라고 하며, 신라, 고려에 이어 조선초까지도 세계 여러나라들의 정보를 수집하고 국제 정세를 살폈다고 말했다. 한반도 아래에 있는 게 일본이고 맨 왼쪽은 아프리카, 그리고 홍해와 아라비아 반도다. 이집트와 나일강도 있으며 심지어 킬리만자로 산도 등장하는 최첨단 지도다. 사진 출처 : 위키백과

 

 

우리나라의 위치는 지금봐도 절묘하다. 단군 할아버지는 하필이면 왜 이곳에 자리잡았을까. 만나게 되면 한번 물어보고 싶다. 할배가 터잡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늘 강대국 사이에 있었다. 지하자원이라곤 물 밖에 없는 땅이고, 시베리아 뺨치는 추위와 아프라카 저리가라는 더위가 함께 있는 나라다. 바꿔 생각하면 그런 강대국들의 힘을 이용하면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고 4계절도 누릴 수 있는 나라다. 여러 나라를 가봐도 우리의 기후는 상위 10%안에는 무조건 든다. 강대국들이 탐낼 만하다. 사진 출처 : https://brunch.co.kr/@andy7gv4/153

 

 

저자는 우크라이나 전쟁도 정확하게 예견했다. 크림 반도의 세바스토폴은 러시아의 유일한 부동항이라 러시아가 포기할 리 만무하다. 우크라이나가 세바스토폴 항의 임대차 계약을 지키고 나토와 유럽연합에 가입하지 않고 중립을 지킨다면 평화가 계속 유지되었을 것이다. 러시아는 몇 번이나 경고했는데 우크라이나는 결국 사고를 치고 말았다. 그 결과가 무려 전쟁이었다. 물론 러시아가 나쁜 넘이긴 하지만, 우크라이나도 멍청했다는 말이다. 

 

유럽은 이제 늙은 나라이고 점점 더 늙어가고 있으며 이를 극복할 현실적이고 유일한 방안은 이민자를 수용하는 것인데, 영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유럽이 반이민 정서의 기세가 누그러지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비록 공격적인 말이라도 죽을 때까지 하고 싶은 말을 할 권리를 옹호했던 볼테르의 주장을 인용하며, 이민자들의 말을 묵살하는 유럽의 행태를 풍자했다.

 

중국은 대양 강국을 꾀하고 있고, 동쪽에서 들어오는 바닷길의 유일한 통로인 말라카 해협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인근 나라 대다수와 영유권 분쟁을 하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티베트와 신장위구르 지역을 비롯하여 많은 소수민족의 독립과 인권을 힘으로 누르고 있다.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향후 중국이 G2의 지위를 굳건히 하리라 보았다. 다만 14억 중국인들의 먹고 사는 문제를 정부가 해결하지 못하면 전대미문의 대규모 사회적 동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염려의 견해도 함께 내놓았다.

 

가장 안타까운 건 역시나 아프리카다.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의 분쟁은 58,000% 유럽, 특히 영국과 프랑스 때문이다. 심지어 그런 분쟁을 이용하여 자국의 이익을 꾀하기도 했다. 얼른 이 악연의 쇠사슬을 끊어내고 성큼성큼 앞으로 가야 하는데, 현실은 여전히 쉽지 않다. 눈여겨 볼 나라로 아프리카 정중앙에 있는 콩고민주공화국, 서아프리카 최강국 나이지리아, 동아프리카 패권을 두고 경쟁하는 케냐와 탄자니아 등을 꼽았다. 저자는 아프리카가 역사와 자연이 점지한 힘의 싸움에서 이제는 우세를 점하리라는 희망을 이야기했다.

 

인도의 인구는 14.3억 명, 파키스탄은 2.4억 명으로 인구 순위 1등과 5등이다. 동쪽의 방글라데시는 1.7억 명으로 9등이고 파키스탄 옆의 아프가니스탄은 0.41억 명이다. 인도와 그 주변의 나라들은 바글바글 그 자체다. 면적 대비 바글바글은 우리나라가 지존. 하지만 서로 으르릉대는 사이다. 중국과도 크르릉이지만 그마나 히말라야가 자연벽을 만들어줘서 싸움이 덜하다. 종교로 나라를 나눴지만 그 안에서도 통합이 쉽지 않다. 지금도 힘겹지만 앞으로 개선될 여지도 많지 않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나라들이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크다. 예전 중동 사막에서 일할 때, 스탭들은 인도와 스리랑카, 그 아래 인부들 대부분은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 사람들이었다. 험상궂은 생김새와는 달리 성품은 순수 그 자체였다. 개인적으로 꽤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도 있었다. 또한 '오래된 미래'로 유명한 라다크도 카슈미르 지역에 있다. 라다크는 옛 티베트 왕조로 중심도시는 레다. 모든 여행자들의 마지막 목적지이자 나의 여행 로망이기도 하다. 아참, 잊고 있었던 훈자도 있다. 저기 파키스탄령의 카슈미르인 길깃 발티스탄에 있다. 

 

 

라다크의 레, 네팔, 부탄, 무스탕왕국, 방글라데시의 슬픈 해변 콕스바자르, 파키스탄의 라호르와 페샤와르, 스리랑카의 시기리야, 남티베트라 불리는 아루나찰 프라데시와 미얀마 국경지대.... 예전에서 가고 싶어서 하루 종일 지도만 봤던 곳이다. 다리에 힘이 빠져 지열망은 많이 가셨지만 아직도 포기하진 않았다. 사진 출처 : https://m.blog.naver.com/jdogg88/222267322161

 

 

 

 

어릴 때 사회과부도 보는 걸 좋아했다. 지구본을 보는 것도 좋았다. 새로운 도시를 만나면 소리내어 말해보기도 하고 나름의 상상력을 펼쳤다. 지리는 더 재미있다. 어떤 강과 어떤 산맥이 어떤 역할을 했고, 어떤 민족이 어떤 종교를 믿으며 사는가를 공부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리고 그 공부보다 직접 가보는 것이 훨씬 재미있다는 것도 경험을 통해 알았다.

 

저자는 지리를 통해 본 여러 나라들의 관계를 설명했다.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졌다. 어찌해서 미국이 미국이 되었으며, 또 러시아는 왜 그리 남쪽에 집착하는지, 중국은 신장과 티베트에 왜 그리 예민한지, 궁금했던 것들, 그리고 알고 있던 사실들도 책을 통해 확인했다. 

 

지도를 펴놓고 도시와 지명을 살펴가며 책을 읽었다. 더 궁금해지면 구글링을 통해 실제 거리 풍경과 도시의 모습을 확인했다. 그리고 순간 이동을 구사하여 구글 속 낯선 곳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나는 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고, 그 동네에서 파는 먹거리를 먹고, 시장 구경을 하고, 낯선 풍경을 쉼없이 눈에 담았다.

 

지도는 언제나 나에게 말을 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