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탄핵 심판이 한창 진행중이다. 계엄령 부역자들에 대한 재판 및 청문회도 진행하고 있다. 계엄과 관련하여 명령을 한 자들, 명령을 받아 수행한 자들, 그리고 그 명령을 거부한 자들이 증인으로 나왔다. 주무 장관들, 장관 밑에 있던 차장들, 국정원의 요원들, 그리고 군인들이 나와서 계엄 상황을 설명하고 자신들의 입장을 밝혔다.
헌법을 위반한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으면서도 그럴 작정이 전혀 아니었다고 변명했다. 계엄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고, 사태의 심각성을 몰랐으며, 자신의 행동에 대해 옮고 그름을 판단한 시간적 심리적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말들이었다.
이 책에서 유시민 작가도 언급했지만, 나치의 핵심 권력자이며 홀로코스트 기획회의에도 참가했고 유대인 학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아이히만이 떠올랐다. 아이히만은 명령을 잘 따르는 충실한 공무원이었다.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잘못을 "자기 머리로 사유하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TV에 나온 거의 모든 증인들은 한국의 아이히만들이었다.
하지만 모든 증인들이 아이히만은 아니었다. 명령을 거부한 자들이다. 예를 들면 선관위 서버 압수를 반대한 윤비나 방첩사 법무실장, 계엄 관련 비상 회의를 거부하고 사직서를 던진 류혁 법무부 감찰관, 체포 명단을 받고 이들의 검거를 거부한 홍장원 국정원 1차장, 국회의원을 끄집어내라는 명령을 거부한 조성현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장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부여받은 임무가 정상적이지 않은 것이라고 판단했고, 명령 이행을 고민했고, 결국 자신의 신념에 따라 그 명령을 거부했다. 지금 이들은 국민들에게 환호와 지지를 받고 있다. 이들이 위대한 영웅인 것은, 명령을 거부함으로서 자신들이 받을 거대한 불이익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 결정을 했다는 점이다. 만약 계엄이 성공했더라면 이들은 분명 총살이나 감옥에 오래 있어야 할 게 분명했다.
어떤 이는 명령에 충실히 따른 아이히만이 되었고, 어떤 이는 명령을 거부한 영웅이 되었다. 그들은 왜 달랐을까? 어떤 교육을 받았고, 어떤 환경에서 자랐으며, 어떤 책을 읽었고, 뭘 먹었길래 다른 판단을 했을까? 그게 궁금하다. TV에 나온 많은 부역자들을 보며 "저런 아이히만 같은 넘들" 이라고 욕을 하지만, 내가 만약 그 상황에 놓였다고 상상해보면 어떤가? 솔직히 자신은 없다. 그러니 더 나은 판단을 할 수 있게 부단히 자신을 벼리는 수 밖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어떤 사건이 일어난 배경과 원인, 그리고 결과, 그 결과가 미치는 영향 등 전반적인 것을 파악하면 옳은 판단을 할 수 있으나 단편적인 부분만 가지고는 한계가 있다. 이럴 때 나는 지성인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인다. 리영희 선생님, 신영복 선생님께 기댔고, 노무현 대통령과 김근태 아재의 말과 글에 의지했다. 지금은 유시민 작가다.
유시민 작가는 요즘 꽤 과격해졌다. 민주당의 잠룡들, 그러니까 김경수, 김동연, 임종석, 김부겸, 김두관에게 쓴 소리 하는 것을 피하지 않았다. 이 분들은 모두 과거에 훌륭한 업적을 가지고 있고 민주당에서도 자기의 지분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유시민 작가도 이분들과 친분이 있음에도 신랄하게 비판했다. 비판하는 말을 듣고 있자면, 뭐 하나 반박할 수 없다. 다 맞는 말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신이 가진 이상과 신념이 바뀔 수도 있다. 그게 사람이다. 한국 정치에서 너무 많이 봐왔다. 그래도 유시민 작가는 그 자리에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처럼 어떤 게 옳은 것인지 헷갈려 하는 사람들에게 나침반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주었으면 좋겠다. 오래도록.
우리는 더 나은 국가, 더 많은 자유, 더 유능한 정부를 원한다. 사회를 '최대 민주주의' 쪽으로 이끌어가는 대통령이 필요하다. '그놈이 그놈'이란 말은 입에 담지 말자. '누가 해도 똑같다.'는 말은 틀렸다. 어떤 사람이 권력을 쥐느냐에 따라 사회의 상태와 국민의 삶은 크게 달라진다. 누가 다스려야 하는가? 플라톤의 질문은 의미가 있고 중요하다. (27쪽)
기자는 월급을 받고 상사의 지시에 따라 일하는 회사원일 뿐이다. 기자가 자본과 정치권력의 간섭과 횡포에 맞서 언론 자유와 편집권 독립을 위해 싸우던 시대는 지나갔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사실 그런 시대는 있지도 않았다. 그런 것처럼 보인 때가 잠깐 있었을 뿐이다. (97쪽)
김어준은 대한민국 최강 저널리스트다. 언론이 연일 대서특필하는 일을 그는 한마디로 정리한다. '이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모든 언론이 모른 체하는 사건을 매일 다루면서 말한다. '이건 중요한 뉴스입니다.' (120쪽)
육군과 육사가 광복군과 신흥무관학교를 뿌리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역사의 사실과 당위를 뒤섞는 것이다. 국군의 사명을 '반공'과 '반북'으로 한정하고 육사의 정체성을 '반공전사 양성'으로 제약하는 것도 그렇다. 우리 육군과 육사는 분단시대인 지금이나 통일을 이룬 후에나 변함없이 광복군을 자신이 뿌리로 여겨야 한다. 이것이 헌법의 명령이다. (181쪽)
나는 싸우는 조국을 보는 게 기쁘다. 죽었던 남자가 무덤에서 나와 자신을 죽인 권력자와 대결하는 광경을 보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221쪽)
윤석열 정권이 끝나면 무엇이 오는가? 대한민국의 미래에 희망은 있는가? 더 자유로운 사회, 더 민주적인 정치, 더 유능한 정부를 만들 수 있는가? 확신하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희망이 없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이천오백여 년 전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말이다. "국가가 훌륭해지려면 시민이 훌륭해야 하고, 훌륭한 시민이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 주권자의 수준이 국가의 수준을 좌우한다는 말이다. (2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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