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런 책을 썼나?
피렌체의 노련한 정치가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피렌체의 군주인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바친 책이다. 여기서 로렌초 데 메디치는 피렌체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그 '위대한 자' 로렌초가 아닌 그의 손자다. 이름이 같다. 메디치 가문은 피렌체를 통치하다시피 했는데 위대한 로렌초의 아들이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쫓겨났고, 이후 손자 로렌초가 햇병아리 군주가 된다. 이 어린 군주에게 바친 책이다. 당시 마키아벨리는 모략으로 감옥에 갔다가 풀려나 낙향해서 피렌체와 자신을 위해 '주먹으로 책상을 치면서' 이 책을 썼고 왕에게 올렸다. 하지만 왕은 슬쩍 보고 치웠다.
책의 내용은 '군주는 이러해야 합니다.'가 아닌, '군주는 이렇습디다.'이다. '내가 여러나라를 다녀보고 역사도 많이 공부했는데, 그 나라의 왕들은 대체로 이러이러합디다. 또 왕이 이렇게 하면 나라가 흥하고 이렇게 하면 나라가 망합디다.' 라는 내용을 썼다. 사실에 입각한, 그리고 개인의 의견을 최대한 배제했다.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누구인가?
어린 시절부터 굉장히 똑똑하고 총명했다. 역사와 외교에 관심이 많았다. 29살에 피렌체의 외교부 4급 과장으로 발탁되었다. 그 후 뛰어난 통찰력으로 주변 이탈리아의 여러나라들, 그리고 프랑스와 스페인과 외교협상을 진행했다. 여러나라를 다니며 피렌체가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공부했고 깨달았다. 외교관으로 승승장구하다 메디치 가문 암살 모의에 휘말려 감옥에 가게 되고 심한 고문을 받았다.
다행히 결백이 인정되어 사면되었고, 고향으로 내려와 1513년에 <군주론>을 썼다. 이 책을 바치면서 공직에 복귀하기를 꾀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5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떴다.
당시 이탈리아는 어떤 시대였나?
이탈리아는 5개의 나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베네치아 공화국, 밀라노 공국, 피렌체 공화국, 로마 교황령, 나폴리 왕국이다. 이름 뒤에 붙은 것으로 알 수 있듯 체제가 다 달랐다. 베네치아 공화국은 메디치 가문이, 밀라노는 스포르차 가문이 대체로 지배했다. 이 다섯 나라들은 매일 치고 받고 싸웠고, 주위의 강대국인 프랑스와 독일, 스페인이 이 이탈리아 반도를 놓고 싸웠다. 이탈리아의 다섯 나라들은 살아남기 위해 어제는 프랑스와, 오늘은 스페인, 내일은 독일과 손을 잡았다. 당시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이탈리아를 먹기 위해 군침을 흘렸다.
나라도 붕괴하고, 당시 유럽 사회를 지배했던 카톨릭도 붕괴하던 시기다. 르네상스도 이 때 막을 내렸다. 기존의 질서가 모두 무너지고, 새로운 이념 체계는 아직 생기기 전의 그야말로 대 혼돈의 시대였다.
책은 어떤 내용이야?
마키아벨리는 이 나라 왕은 어떻고 저 나라 왕은 어떻고, 또 옛날 어느 나라의 왕은 어떠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들은 나라의 기초를 닦았고, 흥했으며, 어떤 이는 그러지 못하고 멸망했다고 썼다. 몇 가지를 요약하여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이 책의 해제 인용)
3장. 타국을 점령하여 혼합군주국을 세우려는 군주는 전쟁을 회피하거나 지연하지 말라. 필요한 경우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치명적인 피해를 주어야 한다.
5장. 자유로운 도시의 삶에 익숙한 국가를 통치하는 비결은 반란을 획책할 가능성이 있는 유력자를 사전에 멸절하는 것이다.
8장.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악행을 불사해야 한다. 악행을 잘 사용하는 방법은 단번에 해치우는 것이다. 악행은 단숨에, 선행은 조금씩 지속적으로.
13장. 타인의 힘에 의존하는 지원군은 용병보다 더 위험하다. 그들은 당신을 노린다. 자국군을 편성해 스스로 무장하는 군주가 되라.
14장. 군주는 훈련과 공부로 탁월함을 연마함으로써 신민들에게 경멸을 받지 말아야 한다.
17장. 사랑을 갈구하는 나약한 군주가 되지 말라. 차라리 공포의 대상이 되어 신민을 보호하는 현명한 군주가 되라.
20장. 튼튼한 성채를 세우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신민의 미움을 받지 않는 것이 성공적인 통치의 비결이다. 돌을 쌓지 말고 신민의 마음을 얻으라.
22장. 군주의 능력은 얼마나 뛰어난 신하를 거느리고 있느냐로 판가름 난다.
25장. 시대의 특성에 맞춰 예측 불가능한 행운의 여신을 통제하라.
어떤 군주가 탁월한 군주인가?
시라쿠사(시칠리아 섬의 동쪽에 있는 도시) 참주 아가토텔레스는 옹기장수의 아들로 출신은 비천했지만, 현명한 판단과 과감한 결단으로 시라쿠사 군의 지휘관이 되었다. 그는 카르타고의 지휘관과 합작하여 시라쿠사 원로원과 유력 인사를 일시에 다 죽이고 권력을 잡았다. 8장에 악행도 필요다는 예로 이 아가토텔레스를 들었다.
당시 복잡한 국제 정세를 예를 들며, 강자와 타협하는 방법도 제시했는데, 중립을 지키는 것은 양쪽에게서 미움을 받으므로 반드시 한쪽 진영을 택하라고 말했다. 그리고 아주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절대로 강자와 동맹을 맺지 말라고 일렀다. 결국엔 팽을 당한다는 말이다.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는 친구도 적도 없다.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다. 자존심 따위는 개나 줘라고 충고했다. 지금 우리나라 상황에 꼭 맞는 말이다.
또한 현명한 신하를 얻으려면 왕이 현명해야 된다고 썼다. 스스로 현명하지 않은 군주는 절대로 좋은 조언을 들을 수 없는 것은 보편적인 법칙(197p)이라고 했다. 예전에 유시민 작가가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면서 A급 지도자 밑에는 A급들만 모이고, 지도자가 B급이면 그 아래에는 B급 이하의 사람들만 모인다고 했는데, 유작가는 이 책을 읽은 건가. 하긴 그 사실은 보편적인 법칙이니 알 만한 사람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군주가 경멸의 대상이 되면 몰락한다고 했다. 경멸 이전의 단계는 미움이다. 민중을 먹여살리지 못하거나 그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재산을 빼앗으면 군주는 미움을 받는다. 미움을 받은 군주가 예측 불가능하거나 상상할 수 없는 짓을 하면 경멸을 받고 몰락한다고 했다. 윤정부의 몰락 과정이 이 부분과 딱 맞다. (알릴레오 북스 <군주론>에 출연한 박구용 교수는 이 부분에서 윤석열의 몰락을 정확하게 예견했다. 뭐 생각해보면 그들의 최후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시대는 음모와 배신이 서로의 뒤통수를 때리는 전쟁의 시기였다. 제아무리 총명하더라도 불가항력적인 일이 발생하고, 마키아벨리 역시 인간사는 '행운의 여신(푸르투나)'의 지배를 받는다고 했다. 하지만 포르투나의 결정권은 절반이며 나머지 절반은 개인의 '자유의지(비르투스)'로 결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의 강국 사이에 놓인 이탈리아의 운명이 하늘만 바라보는 천수답일지라도 시대의 흐름을 잘 살펴 탁월함을 실천하면 번영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왜 지금도 군주론을 읽는가?
마키아벨리즘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권모술수로 익히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그리고 박구용 교수는) 나라의 이익과 국민의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라고 말한다. 때로는 그 수단과 방법이 도덕적이지 않아도, 교활해도, 잔인해도, 비겁해도, 속임수라도 괜찮다. 국.익.과 공.익.을 위해서라면. 이 책이 말하는 바는 이게 다다.
500년 전의 이 책이 아직도 위대한 고전으로 칭송받으며 읽히는 이유는, 권력의 본질과 인간의 본성을 치밀하게 분석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500년이 지났음에도 인간의 본성과 권력의 본질을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말도 된다. 인간의 본성이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뀌어 진보하는데 500년은 너무 짧은 시간인가.
우리나라도 내일이면 새로운 군주가 탄생한다. 그의 현명함과 탁월함을 이미 증명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이 당시의 피렌체와 꼭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피렌체를 번영으로 이끄는 데 필요하다고 마키아벨리가 강조한 군주의 덕목이 지금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로렌초 데 메디치는 못했지만, 우리의 새 대통령은 그 탁월함으로 우리나라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이끌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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