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 대통령 한 거, 가진 아이템이나 다 써보자 싶어 한 계엄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나름 치밀하게 준비한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진짜 국회를 장악하고, 언론을 장악하고, 그래서 대통령한테 조금이라도 반기를 드는 종북 반국가 세력을 처단할 계획이었습니다. 만일 시민들이 그렇게 빨리 국회에 모이지 않았더라면, 하늘길이 안 막혀서 계엄군이 좀 더 빨리 국회에 왔더라면, 국회위원들이 좀 지체해서 늦게 모였더라면 정말 아찔한 상황이 연출될 뻔 했습니다.
여태 무능하게 나라를 다스리더만, 비상 계엄도 역시 무능했습니다.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습니다. 이제 이 미친 놈이 무슨 짓거리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나쁜 마음 먹고 정은이 형아한테 미사일도 쏠 놈입니다. 계엄도 했는데 미사일이라고 못 쏘겠습니까? 얼른 끌어내리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혀만 차고 발만 구르고 있을 때, 우리 아이들은 벌써 행동에 나섰습니다. 계엄을 보고 가만히 있어선 안되겠다 싶어 간디고등학교 1학년인 이주연 학생이 시국선언을 하자고 발의했습니다. 학생회 측에서는 학생들의 의견을 모았고 학교와 의논했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해 봐!"라고 딱 한 마디 하셨댑니다. 그래서 오늘 경상남도 교육청에서 시국선언을 했습니다. 이게 놀라운 건, 간디학교 신입생 면접으로 학생들이 모두 집에 있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일사천리로 진행해서 전국 각지에 있는 학생들이 모여 지금 이 자리에 섰습니다.
우리 아이들 참 대견합니다. 어른보다 낫습니다. 아이들에게 "간디 멋지다"라고 큰 소리로 외쳤주었습니다. 애들 밥이나 사 멕일까 하고 갔는데, 보고 있자니 울컥하는 감정에 눈시울이 빨개졌습니다. 이번 사태에 여러 대학과 시민 사회에서 성명을 내고 시국선언이 일어났는데, 고등학생이 하기는 처음이라고 합니다.
옳다고 믿는 것을 실천하는 교육 환경에서 생활하는 간디 학생들, 그리고 그 학생을 믿고 응원하며 더 잘 할 수 있게 도와주는 학교, 이번 시국선언은 간디 교육의 정수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좋은 사례입니다.
이번에 계엄군으로 투입된 부대는 육군특수전사령부 707특수임무단, 제1공수특전여단, 수방사 제35특수임무대대 등이라고 합니다. 무시무시합니다. 세계 그 어느 부대와 맞짱 뜰 수 있는 그야말로 육군 최정예부대입니다. 국회에 온 그들은 야간투시경에 완전 무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 행동들은 뭔가 이상했습니다. 빠릿빠릿은 커녕 어슬렁어슬렁이었습니다. 창문을 깨고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좀도둑 마냥 어슬펐고, 국회 보좌관들이 뿌린 소화기에 물러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성난 시민들을 달래기도 했고 시민들에게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이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드러난 정황에 의하면 '전기를 차단하고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임무를 받았다고 합니다. 작전중에 명령이 바뀌었는지, 아니면 투입된 소대의 우두머리가 그 명령이 부당하다고 여겨 생깠는지, 그도 아니면 계엄군 개개인이 '어, 이건 아니잖아.'라고 생각해서 살살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암튼 다행스럽게도 큰 불상사 없이 긴박했던 시간이 흘러갔고, 계엄 해제 의결 이후에 그들은 물러갔습니다.
그런 계엄군을 보면서 문득 떠오른 인물이 '김오랑'입니다. 김오랑은 1979년 12.12 군사반란 당시 전두환을 수괴로 한 반란군에 대항하여 특수전사령관 정병주 소장을 지키려다 교전 중에 전사했습니다. 사령관을 지키던 다른 장교들은 반란군의 회유와 협박에 굴복했지만, 김오랑만은 거부하고 오직 권총 한 자루로 자신의 사령관을 사수했습니다. 영화 <서울에 봄>에서 정해인이 연기했습니다. 짧았지만 강렬했습니다.
제가 월남에 있을 때 집사람에게서 받은 편지 속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스위스의 루체른이란 도시에 가면 빈사의 사자상이란 조각상이 있다고 합니다. 프랑스 혁명 때 왕과 왕비를 끝까지 지키다 죽은 스위스 용병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그때 다른 군인들은 모두 도망쳤지만 그들만은 최후까지 남아 끝내 목숨을 바쳤습니다. 자신들마저 도망치면 훗날 누가 스위스 사람을 용병으로 쓰겠냐는 말을 남겼다고도 합니다. 그들을 상징하는 사자는 괴로운 표정으로 죽어가는 모습의 조각상이 되었습니다. 죽음이라는 것이 삶의 마지막 좌절이라고 할 때 누군가에게는 후회 없는 무너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58쪽)
이 책은 김오랑 평전입니다. 김해에서 태어나 삼성초등학교, 김해중학교, 김해농업고등학교 등의 학창 시절, 육사에 입학하고 졸업과 동시에 임관하여 수색중대와 베트남 파병, 그리고 파병 시절에 펜팔로 백영옥 여사와 사랑을 키우는 시절, 귀국하여 육군대학을 거쳐 특전사로, 그리고 특전사령관의 비서로 발령을 받아 12.12사태로 하늘의 별이 된 김오랑의 일생을 오롯이 담았습니다.
그리고 김오랑의 전사 이후 관련 자들의 행적, 아내의 죽음, 김오랑의 명예 회복의 그 더디고 지난한 과정들이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저자는 김오랑 중령의 특전사 후배이자 <김오랑 중령 추모회>를 이끄는 김준철입니다. 특히 저자는 김오랑의 육사 25기 동기이자 국회위원인 강창희, 황진하, 권경석 등을 만나 김오랑 중령의 훈장 추서 및 육사와 특전사에 추모비 건립 등을 건의했지만, 그들 모두 12.12를 군사반란으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그래서 미온적이라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김오랑은 우리 지역의 인물입니다. 책에 그가 다녔던 활천고개나 김수로 왕릉에서 찍은 사진이 나오는데 무척 반가웠습니다. 2014년에 김해 삼성초등학교와 삼정중학교 사이에 김오랑 중령 흉상이 설치되었습니다. 추모사업추진회와 지역의 뜻 있는 여러 분들이 힘을 모아서 이루어냈습니다. 현재는 김해인물연구회에서 해마다 추모행사를 진행하고 있고, 인물연구회 회원인 아내는 열성적으로 참석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진실은 반드시 드러납니다. 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람들의 관심과 노력이 있으면 그러합니다. 당시 조명을 받지 못한 김오랑 중령도 비록 세월이 흐르긴 했지만 이렇게 햇볕을 받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않아 육사와 특전사에도 추모비가 세워지겠지요. 그렇게 될 것입니다. 역사의 흐름입니다. 그리고 윤씨도 곧 내려올겁니다. 벌을 받겠지요. 대한민국의 가장 못난 대통령으로 길이 역사에 남을 겁니다.
마침 좀 있으면 우리 동네에서 김오랑 중령 추모식이 열립니다. 오랜만에 김오랑 중령 만나러 가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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