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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이야기

보통 씨가 말하는 아름다움, 그 끝 없는 사유 : 알랭 드 보통 <행복의 건축>

by 개락당 대표 2017. 6. 23.

 

 

 

보통 씨가 말하는 아름다움, 그 끝 없는 사유 : 알랭 드 보통 <행복의 건축> 

 

 

 

 

 

 

알랭 드 보통은 파리 2구의 한 작은 호텔에서 여름을 보낸 적이 있다. 오래된 국립도서관에서 돌을 던지면 닿을 만한 거리였다. 호텔 옆에는 여행 안내 책자에서 자주 본 듯한 느낌을 주는 '셰 안투안'이라는 까페가 있었는데, 꽤 활기차다. 이 까페에 앉아 여기에 들러는 우아한 여자와 학생들과 경찰관과 학자, 정치가, 매춘부, 관광객을 보고 있자면 며칠 동안 누구하고도 말 한 번 나누지 않았음에도 전혀 소외감을 느끼지 못했다. 영원히 파리에 살면서, 도서관에 다니고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셰 안투안'의 한쪽 구석 탁자에 앉아 세상을 지켜보며 살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이 없겠다고 상상했다. (p.256)

 

 

 

이런 동네를 20세기의 가장 똑똑하고 영향력이 있는 건축가가 다이너마이트로 확 밀어 부수어 버리고 그 자리에 격자형 도로와 공원같은 녹지 위에 십자형의 60층 타워 18동을 박아넣을 생각을 했다. 유명한 부아쟁 계획 Plan Voisin이다.

 

 

 

한 도시의 위대한 미래 : 

르 꼬르뷔지에, 파리를 위한 부아쟁 계획, 1922년. (p.257)

 

사진 출처 : http://myriammahiques.blogspot.kr/2009/11/slums-clearances-by-fire.html

 

 

 

당시 파리는 그야말로 시궁창이었다. 1800년에 64만명이 살았는데 약 100년 후인 1910년엔 3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바글거리며 살았다. 공장과 작업장이 거주지 한가운데 있었으며 매연과 폐수를 방출했고 거리는 차량으로 숨이 박혔다. 말과 버스가 충돌하고 전염병의 위협은 곳곳에 도사렸다.

 

 

 

르 꼬르뷔지에는 자신의 새롭고 현대적인 건축 형태가 사람들의 삶의 질을 끌어 올리는 혁신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의 계획은 의외로 단순하다. 사람이 사는 곳과 일하는 곳을 철저히 분리시키고, 주거지는 가능한 한 위로 지어올려 모든 사람에게 충분한 공간을 주고 도시의 땅은 거대한 공원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 <빛나는 도시>는 새롭고 위대한 도시를 만들기 위한 혁명과도 같은 플랜이었다.

 

 

 

천재 건축가의 이 혁명적인 계획은 실현되었을까? 그랬다면 서두에 적은 알랭 드 보통이 파리2구의 어느 활기찬 골목길에서 느낀 행복감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계획은 정작 파리에서는 물거품이 되었지만, 넓은 땅을 가진 미국과 구시가지 등을 개발하게 될 개발도상국들로 전파되었다. 특히 인도 펀자브 주의 새로운 주도인 찬디가르 건설에서 그의 '빛나는 도시'를 거대한 규모로 이식했다.

 

 

 

1947년 길었던 영국의 식민지배에 벗어난 인도는 독립 인도를 알리기 위한 프로젝트를 준비하는데, 바로 인도에 세계적 규모의 계획도시를 세우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프로젝트는 꼬르비지에 할배와 그의 사촌 피에르 잔느레가 실현했다. 찬디가르 프로젝트는 할배의 건축적 역량이 총체적으로 구현된 것이자 인도의 국가주의적 모더니즘의 이상을 보여준다.

 

사진은 장식없는 콘크리트의 매력에 빠진 르 꼬르뷔지에의 콘크리트 미학을 잘 보여주는 찬디가르 국회의사당이다.

 

사진 출처 : http://culturebox.francetvinfo.fr/arts/architecture/le-corbusier-nouvelle-candidature-a-l-unesco-pour-le-classement-de-son-oeuvre-188233

 

 

 

대한민국도 꼬르뷔지에 할배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나라 중의 하나다. 1970년대의 울나라 계획도시, 신도시들은 기본적으로 이 개념을 받아들여 자동차를 중심으로 업무지구와 주거지구로 나누고, 넓은 녹지를 두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고, 21세기가 한참 지난 요즘까지 이루어지고 있는 재개발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와 도시는 여전히 할배의 영향 아래에 있다.

 

 

 

르 꼬르뷔지에가 생각했던 공간에 대한 이 엄청난 발상은 그 자체 만으로는 옳다 그르다를 논하기 어렵다. 파리는 실현이 안되어서 옳았고, 찬디가르는 실현이 되어서 옳았다. 대한민국에서 그의 계획은 1970년대는 옳았고 2017년 오늘날엔 옳지 않다. 어떤 훌륭한 계획도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달라지고 그것을 실현하는 과정에서도 달라진다.

 

 

 

세련된 여인과 클래식한(당시엔 최신식) 자동차, 그리고 배경으로 보이는 현대식 건물.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3종 세트다. 르 꼬르뷔지에와 피에르 잔느레의 2중 주택을 배경으로 1927년에 만든 벤츠 광고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안락한 자동차 광고에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안락한 현대 주택을 넣었다. 르 꼬르뷔지에는 모더니즘 건축의 상징이다.

 

사진 인용 p.68

사진 출처 : http://beruehrungspunkte.de/blog/raumpioniere-modefotografie-und-architektur/

 

 

 

본질적으로 디자인과 건축 작품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그 내부나 주변에서 가장 어울리는 생활이다. 이 작품들은 그 거주자들에게 장려하고 또 유지하려 하는 어떤 분위기에 관해 말한다.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고 기계적인 방식으로 우리를 도우면서도 동시에 우리에게 특정한 종류의 사람이 되라고 권유한다. 행복의 전망에 관해 이야기한다.

 

 

따라서 어떤 건물이 아름답다고 묘사하는 것은 단순히 미학적으로 좋다는 뜻 이상이다. 그것은 이 구조물이 그 지붕, 문손잡이, 창특, 층계, 가구를 통해 장려하고자 하는 특정한 생활방식의 매력을 내포한다. 아름답다는 느낌은 좋은 생활이라는 우리의 관념이 물질적으로 표현되었을 때 얻는 것이다. (p.79)

 

 

 

건축의 역사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과정이었다. 로마네스크와 고딕, 르네상스를 거쳐 바로크와 로코코, 그리고 신고전주의 등으로 건축의 양식은 바뀌지만 그것은 곧 조화와 비례의 아름다움에서 수직성을 강조한 아름다움으로, 화려한 조각과 장식의 아름다움으로 건축의 형상이 바뀌어 온 것이지, 그 속내는 어떻게 하면 더 아름다운 건축을 만들까 하는 궁리가 바탕에 깔려 있었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이 천재 건축가는 아름다움에 대한 개념을 전혀 달리했다. 그에게 건축이란 기능이 우선한 것이었다. 가장 아름다운 비행기는 가장 잘 나는 비행기이듯 아름다운 건축은 그 기능을 가장 충실히 이행하는 건축물이다. 오죽 했으면 "집은 살기 위한 기계다" 라고 했을까. 수백년 동안 건축의 스타일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던 것에서 이젠 기능에 충실하고 사용하기 편한 건축이 곧 아름다운 건축이 되었다. 우리는 이를 모더니즘 건축이라 부른다. (그 모더니즘의 상징인 빌라 사보아에 물이 엄청 새더라 라는 이야기도 책에 잼나게 나온다. "특별히 아름답기는 하지만 사람이 살기는 힘든 생활용 기계"라고 호사가들은 비꼬았다.)

 

 

 

리처드 노이트라가 캘리포니아에 지은 강철과 유리로 된 건물. 거주자에게 해방감과 투명성을 경험하게 해준다. 모더니즘 건축 하면 상상하는 딱 그 정형의 건물. 카우프만 하우스. 1946년. (p.215)

 

사진 출처 (최예선의 근대문화유산기행) : http://sweet-workroom.khan.kr/4

 

 

 

우리는 우리 환경이 우리가 존중하는 분위기와 관념을 구현하고, 우리에게 그것을 일깨워주기를 은근히 기대한다. 건물이 일종의 심리적 틀처럼 우리를 지탱하여,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유지해 주기를 기대한다.

 

 

어떤 장소의 전망이 우리의 전망과 부합되고 또 그것을 정당화해준다면, 우리는 그 곳을 '집'이라는 말로 부르곤 한다. (p.111)

 

 

 

우리는 우리가 있는 공간에 영향을 받는 존재들이다. 장소가 달라지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사람은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기대하고 나와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공간에 머무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다고 베네치아에 사는 사람들이 도시 덕분에 타 도시의 사람들보다 더 교양이 있다는 근거는 없으며, 위의 사진에 나오는 아름다운 집 카우프만 하우스에 사는 부르주아 부부도 격렬한 부부싸움이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용적이고 아름다운 건축은 그 나름의 방식으로 기여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비율과 곡선이 지루함을 밀어낸다. 건물을 아름답게 하는 요소, 질서 (p.204)

존 내시, 영국 런던, 파크 크레센트 Park Crescent, 1812년

 

사진 출처 : http://mapio.net/s/37285855/

 

 

 

이 책 <행복의 건축>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이며, 아름답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며, 우리가 어떤 것에 아름다움을 느끼는 지 건축을 매개로 이야기한다. 건축을 소재로 아름다움에 관한 저자의 생각을 자유롭게 펼쳐나간다. 아주 수준 높은 혼자 놀기의 진수다. 그래서 아무리 건축 전공자라 하더라도 그의 사고를 따라가기에는 쉽지가 않다. 아주 오래 전 이 책을 처음 읽을 때보단 그마나 이해가 되는 부분이 많지만, 여전히 보통씨가 하는 언어의 유희를 좇아가기엔 벅차다. 

 

 

 

다만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이 시대에 따라 건축에서 어떻게 다르게 적용이 되었는지, 또 어떤 요소들이 건물을 아름답게 만드는 지에 대한 보통씨의 설명은 꽤 설득력이 있다. 여려운 문장을 보완하여 거의 매 페이지에 들어가 있는, 시대와 장소를 대표하는 건축에 대한 다양한 사진들은 썩 훌륭한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