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혁명가, 그때는 맞고 지금은 다르다 : 르 코르뷔지에 <건축을 향하여>
정말 비극적이다. 현대 사회는 한창 개조 중에 있다. 기계가 모든 것을 전복한 것이다. 세상은 지난 100년 동안 빠른 속도로 발전해 왔다. 그러나 제네바에서는 장막을 치고 우리의 용법과 수단, 작업 결과를 거부했다. 우리 앞은 넓게 열려 있고, 전세계는 그곳을 향해 돌진해 가는 중이다. 그러나 국제연맹은 유감스럽게도 장막 뒤로 숨어 과거로 회귀해 버린 것이다. (p.19)
르 코르뷔지에와 피에르 잔느레, 제네바 국제연맹 청사 계획안 1927.
호수에서 바라본 청사 (계획안)
우리는 궁전이 '아무나'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평범한 사람이 사용하는 데 정확하게 대응하는 기능들을 수행해 나가도록 예정되었다고 생각했다. 인간적 척도와 기능형 등을 고려한 것이다. 우리는 분석에 몰두했고, 우리가 계획했던 정원 도시, 개인 저택 및 임대 주택에 적용했던 요소들로 세밀하게 만들어진 궁전을 창조하는 즐거움을 누렸다. (p.12)
제네바 국제연맹 청사 (Palace of League of Nations, 현 유럽 UN위원회 사무국)
사진 출처 : 위키디피아
네노, 브로기, 바고가 최종 당선자로 결정되었다. 이성이 실족한 것이다.
청사는 더 이상 일하는 기계가 아니라 전형적인 영묘靈廟가 되었다. 아카데미가 승리하였다. (p.21)
책의 시작은 90년 전인 1927년 제네바의 국제연맹 청사를 건설하기 위한 설계 경기에서 시작합니다. 앞선 글에서 보았듯이 할배는 매우 설레이는 마음으로 작업했고, 결과는 낙선이었습니다. 사용자가 편리하고 주변 자연경관과 잘 어우러진 새로운 시대에 맞는 현대적 청사가 기존의 고전주의 형태를 그대로 답습한 외관상의 아름다움에 밀렸습니다. 맨 서두의 글에서 나타나듯 할배는 매우 분해합니다. '이성은 실족하였다' 라고까지 표현했습니다.
만약 그의 계획안이 당선되어 우리가 볼 수 있다면, 그래서 지금의 청사와 비교할 수 있다면, 우리들의 판단은 어떨까요?
이 책은 1923년에 초판이 출간되었고, 그 후 여러 차례 증보판이 나왔습니다. <에스프리 누보>라는, 당시의 예술가와 엔지니어들 사이에서 매우 폭넓게 읽힌 잡지에 기고한 르 코르뷔지에의 글을 묶은 책입니다. 매우 오래된 책입니다. 책에는 그 시대에 거의 혁명과 같은 글들이 적혀 있습니다. 라기 보다는 르 코르뷔지에라는 인물 자체가 혁명가였다 라는 말이 더 옳을 것 같습니다.
그는 아름다움에 대한 개념 자체를 바꾸었습니다. 아마도 그 시절까지는 고전주의 건축에 기반한 조화와 비례가 멋드러지게 어우러진 건축이 아름답운 건축이었을 겁니다. 이 책의 <보지 못하는 눈> 챕터에서 그는, 비행기의 아름다움은 비행기의 형태가 아니라 비행기의 기능, 즉 잘 나르는 비행기가 아름다운 비행기라고 주장합니다. 건축도 마찬가지죠.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도록 설계된 집이 아름다운 집이 되는 것입니다. 모더니즘 건축의 시작입니다. 주택을 '살기 위한 기계'라고 정의한 연유도 여기 있습니다.
그 밑바탕에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깔려 있습니다. 당시 프랑스의 주거 환경은 그야말로 시궁창이었습니다. 일부 계급을 제외한 거의 모든 이가 제대로 된 집 없이 거리에 내몰려 있었습니다. 집이야 말로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도구인데 말이죠. 그는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살 수 있는 도구를 만들기를 바랬고, 그것의 결과가 대량 생산 주택입니다. 그가 발표한 브아쟁 계획이나 도미노 구조에 의한 대량 생산 주택군은 그래서 나왔습니다. 이에 따라 수학과 공학의 문제가 중요하게 되었고, 엔지니어가 중심이 되는 건축이 발전하게 되었으며, 콘트리트와 철근과 같이 오늘날 건축의 주재료가 되는 것들의 비중도 커지게 되었습니다.
주택 문제는 그 시대의 문제다. 오늘날 사회의 안정 여부는 주택 문제에 좌우된다. 건축은 이 변혁의 시기에 첫 과업으로서 기존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주택의 구축 요소들을 수정해야 한다. (p.227)
할배가 제시한 것은 가장 기본적이고 올바른 해법이었습니다. 그 올바른 해법은 90년이라는 시간과 지구 반바퀴라는 공간을 뛰어 넘어 아시아 동쪽 끝의 조그마한 나라에서 여전히 적용되고 있습니다. 할배가 살았던 시절의 인간다움은 집 없는 이가 자신의 집을 가지는 소유의 개념이라면 지금은 개인에게 맞은 집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같은 형태의 대량 생산 주택에 사는 것은 이제는 아름답지도 인간적이지도 않습니다. 새로운 변화와 개혁이 필요할 때가 된 것입니다. (지금 울나라의 아파트를 보고 할배가 어떤 반응을 보일 지 매우 궁금합니다.)
할배가 그의 부인과 말년을 보낸 프랑스 니스의 작은 통나무집. 거추장스러운 장식과는 모두 결별하고 오로지 건축의 본질만 남은 작은 집이다. 그의 머리 속에는 아직도 실현하지 못한 100년분의 계획이 있다고 했는데..... 말년은 이렇듯 지중해가 보이는 이 아름답고 소박한 집에서 이상적인 세계를 꿈꾸었다.
우리집 책장에 꽂혀 그 제목만큼이나 고고한 자태를 뽐내던 이 책에 나도 모르게 손이 갔습니다. 아마도 십여 년 전에 읽었을 겁니다. 지금 봐도 여전히 단어는 입 안에서 구르고 문장은 머리속을 어지럽히기만 합니다. 전공자가 읽기에도 쉽게 소화되지 않는 건축 이론서입니다. 할배의 수준을 따라가려면 아직도 멀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이 주는 메세지는 분명했습니다. 할배의 젊은 날에, 시대를 앞서나간 진취적이고 개혁적인 사고를 엿볼 수 있었고, 지금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깨어 있어라'고 말하는 듯 했습니다. 르 코르뷔지에가 건축가라기 보단 혁명가로 여겨지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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