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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이야기

집에 대한 합리적이고도 독특한 단상 : 노은주 임형남 <사람을 살리는 집>

by Keaton Kim 2017. 11. 28.

 

 

 

집에 대한 합리적이고도 독특한 단상 : 노은주 임형남 <사람을 살리는 집>

 

 

 

노은주 임형남 부부는 현역 건축가입니다. 홍익대 건축과 동문으로, 1999년부터 함께 '가온건축'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가온이라는 말은 순수 우리말로 중심이라는 뜻과, 집의 평온함家穩이라는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다는 군요. 강의도 하고, 전시회도 하고, 책도 쓰고, TV에도 나오고.... 암튼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본업은 역시 집을 짓는 일입니다.

 

 

 

저자들이 지은 여러 건축물 중에서 충청남도 금산 외곽의 진악산을 마주하는 자연 깊숙한 곳에 고즈넉이 앉아 있는 작은 집이 한 채 있습니다. '금산주택'이라 불리는 2011년도에 지어진 집입니다. 이 집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굉장한 찬사를 받았고 상도 많이 받은 건축물입니다. '한국 건축의 현대적 재해석' 이라는 거창한? 평가도 받았습니다.

 

 

 

가온건축의 이 부부 건축사는 작은 집 매니아다. 이 금산주택 외에 그들이 설계한 집들은 모두 다 작은 집니다. 하지만 이 작은 집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결코 작지 않다.

 

 

 

집의 모티브는 건축가 퇴계 선생의 역작 '도산서당'이다. 천원짜리에 나와 있는 그림과 구조가 똑 같다. 제법 넓다란 마루와 좁은 방 두칸. 닭실 마을의 그 유명한 '충재'도 딱 이런 구조다. 검소하고 소박하다고 해서 검박한 집이라 부른다. 이 작은 집을 설계하는데 무려 9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그리고 2011년 한국공간디자인대상을 수상했다. '단순하고 작지만 주변과 자연스럽게 소통하고자 했으며 서양식 목구조를 적절하게 해석했다.'는 평이다.

 

 

 

거주 면적 43m2(14평), 마루 26m2(9평)의 작은 공간이지만 결코 작게 느껴지지 않는다. 방과 방, 방과 마루를 구분하는 벽을 없애고 모두 문으로 구획했다. 그래서 문을 이렇게 다 열어버리면 하나의 공간이 된다. 엄청난 공간이다.

 

 

 

창 너머 멀리 보이는 진악산의 풍경이 하나의 액자다. 시시각각 변하는 액자. 이런 걸 전문용어로 차경借(주변의 풍경을 빌려옴)이라 하는데, 우리 한옥의 전통 미학중의 하나다. 여름에 문을 열어 놓고 있으면 바람이 살살살 불어와 시원하겠다. 하지만 겨울엔 좀 춥지 않을까? 난방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진다.

 

 

 

우리나라 최고의 집은 한옥이다. 그런데 이 한옥을 현대식으로 옮기기엔 비용도 만만치 않고, 여러가지 고려할 사항들이 많다. 이 금산주택은 현대주택과 한옥의 조화, 혹은 적정성을 잘 보여준다. 구조와 디테일 뿐만 아니라 세칸 살림의 여유로움이라는 한옥의 철학까지.

 

 

 

예전에 한옥은 안방과 사랑방 행랑채 등을 구분하여 각자의 공간을 중요시했다. 이 건축가도 집이 암만 좁아도 개인의 공간은 꼭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위의 다락같은 공간은 그런 개인의 욕망을 충족시켜 준다.

 

 

 

처마와 툇마루.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있으면 우리 삶을 아주 풍족하게 해 준다. 햇볕 따스한 봄날에 이 툇마루에 앉아 책을 읽거나 차를 마시면 그야말로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분이 들거다. 발코니도 없애버리고 확장을 해버리는 현대 아파트에는 절대로 나올 수 없는 공간이다. 사실 이런 공간이 우리의 마음을 풍요롭게 해 준다.

 

 

 

해외 매체에서도 꽤 이 집을 다뤘다. 그들이 이 집에서 찾은 한국 건축의 특징은 '자유롭게 확장되고 연결되는 공간 The Space that Moves and Flows'이다. 음, 그렇군. 이렇게 정의하다니, 왠지 멋지다. 확장된 공간과 사적인 공간이 자유롭게 오고 갈 수 있는 형태.

 

 

 

이 책의 저자이자 금산주택의 주인공이다. 꽤 오랫동안 큰 설계사무소에서 일을 했는데 정작 사람이 사는 집을 설계하지 못해 헛헛한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아파트만 짓고 있는 나는 완전 공감. 그래서 자기가 설계사무소를 차린 이후엔 거의 주택만 짓고 계시다. 나에게 맞는, 나에게 행복을 주는 집, 살고 싶은 집에 대해 여전히 고민하고 그리고 있다.

 

사진 출처 : http://m.chosun.com/svc/article.test.html?sname=photo&contid=2011102601863

글 참조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framineffect&logNo=110185761126

 

 

 

이 책 <사람을 살리는 집>은 집에 대한 저자의 여러가지 생각을 담은 에세이집입니다. 1부에서는 자신의 가치관을 묻고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집에 대해 이야기하고 2부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 집의 구성 요소에 대해 썼습니다. 3부에서는 집에 대한 진실과 오해를 담았구요 4부에서는 건축주의 생각이 잘 반영된 저자의 프로젝트를 통해 어떻게 그 공간이 구현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저는 특히 2부가 흥미로왔는데요, 자신만의 고독과 사색의 공간이 왜 필요한지, 햇빛이 가득한 남쪽창은 어떤 효과를 주는지, 어떡하다 안방의 주인이 가전제품이 되어버리고 말았는지, 부엌이나 화장실이 왜 중요한지, 다락과 발코니, 옥상정원이 어떻게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지에 대해 자세하게 써 놓았습니다. 한번쯤은 생각했던 집의 공간에 대한 저자의 독특하고도 합리적인 시선이 돋보였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다녀왔어' 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집을 갖고 싶어." 라고 남자가 말하자, 여자는 "그럼 내가 그 집에서 기다릴게." 라고 대답합니다. 두 사람은 곧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행복하게 사는 듯 했지만, 불의의 사고로 남자가 죽고 여자는 두 아이를 혼자서 키우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 그 남편은 늑대인간이었고, 아이들도 늑대아이로 태어났습니다. 아이들이 수시로 늑대로 변하며 날마다 소란스러운 소리가 나자 의심을 품은 이웃들이 여자에게 항의하고, 여자는 아예 도시를 떠나 폐가를 고쳐서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살게 합니다. 두 아이 중 하나는 학교도 다니고 친구도 사귀며 성장하여 다시 도시로 떠나가고, 하나는 동물들에게 자연에서 사는 법을 배워 산으로 들어가고, 여자는 그 집에 남게 됩니다. 언제든 아이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이 영화가 상징하는 건 결국 우리 인간의 고단하지만 추억을 쌓아가는 삶의 여정입니다. 함께 살을 맞대고 성장해가는 가족의 소중함, 그리고 그 가족이 함께 뒹굴고 쉴 수 있는 '집'이라는 장소의 의미를 다시금 일깨워주는 영화입니다. (p.37)

 

 

 

저는 우리의 집이라는 곳이, 우리의 동네라는 곳이 지금처럼 이렇게 각박해진 가장 큰 이유는, 현재의 사람들에게 집이라는 곳, 동네라는 곳이 잠시 있다가 금세 옮기는 임시 거처라는 의식이 팽배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한번 뿌리를 내린 동네에서 몇 대에 걸쳐 살았고, 그 뿌리는 사람의 한 생에 걸쳐 변하지 않는 본성 같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 생산 수단과 사회 환경의 변화로 '공동체'라는 것이 여러 가지 의미로 붕괴되면서 사람들은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살게 되었습니다. (p.39)

 

 

 

그들은 평생에 걸쳐 꽤 많은 집을 짓고 꽤 많은 기록들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특이한 점은 여러 채의 다양한 건축물을 지은 후 제일 마지막에 지은 집이 세 칸, 혹은 네 칸짜리 아주 작은 집이었다는 것입니다. 퇴계는 도산서당을, 남명은 산천재를, 우암은 남간정사를 남겨놓았습니다.

 

모두 작고 검박한 집들입니다. 작기만 한 것이 아니라 아주 단순하기 그지없는, 고승이 마지막으로 '할'을 하듯 외마디 비명 같은 집을 지어놓고 그들은 그 안에서 인생을 마무리했습니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여태까지는 연습~'이었다는 것처럼 정신적 풍요와 맑은 생활과 나아가서는 인생의 완성을 보는 것만 같습니다. 그들에게 그 집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p.71)

 

 

 

그러나 다만 단열과 기밀성을 너무 중심에 가져다 놓고 보다 보면 공기의 쾌적성을 유지하기는 힘들게 된다는 사실을 간과하게 된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패시브 하우스라는 개념은 무척 좋은데 물 좋고 산 좋고 공기 좋은 한적한 전원에 가서, 냉기와 바람을 잡고 에너지를 절약하겠다고 꽁꽁 막아버리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진정한 환경친화는 자연과의 조화입니다. 자연의 사이클을 끊지 않고 자연스럽게 인간이 그 사이클 안에 들어가서 같이 운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생활에서 자연의 사이클에 순응한 우리의 옛 방식은 정말 모범적인 정답이 아닌가,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p.147)

 

 

 

아파트의 가장 큰 장점은 모든 공간을 아주 치밀하게 구성해놓고 쓸데없는, 허투루 낭비되는 공간을 극단적으로 줄여놓은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아파트는 한때 이른바 '데드 스페이스(Dead Space : 이용되지 않는, 혹은 이용 가치가 없는 공간이나 틈)'의 최소화가 최고의 목표였습니다. 같은 면적에서 가장 많은 방을, 가장 넓은 거실을 뽑아내는 것이 그 건설사의 실력으로 측정되었습니다. 결국 방과 방 사이, 공간과 공간 사이의 간섭이 극단적으로 축소된 스페이스가 완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아파트의 가장 큰 단점 역시 그 지점입니다. 우리는 이제 좀 '쓸데없음'에 가치를 두어야 합니다. (p.161)

 

 

 

기호를 평균화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 무척 위험한 일이기도 합니다. 20세기 현대로 들어서는 시점에서 서양의 모더니즘 건축은 그런 평균적인 공간과 형태를 추구했습니다. 그리고 수사(rhetoric)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건축도 공장에서 만들 듯 대량으로 생산해낼 수 있다고 꿈꿨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혜택을 준다는 이상적인 꿈이긴 했지만, 이런 가장 중요한 핵심은 어느새 바지고, 기계적이고 인간적인 온기가 없는 대량생산이라는 수단만 남았습니다. 즉 불특정 다수를 위한다는 명분이 기계적 대량복제로 이어지면서, 현대의 많은 공간들은 공간의 주인을 인간에서 자본이나 효율로 바꿔버렸습니다. 학교, 사무공간, 공장 등 사람이 평생을 살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장소들이 가장 극단적으로 평균화된 공간으로 꾸며진 것입니다. 비극적인 상황입니다. (p.192)

 

 

 

 

 

 

우리가 여태 집에 대해 한 번도 생각지 못했던, 그러려니 하고 살았던 것에 대해, 건축가로서 경험한 합리적이고도 독특한 시선으로 재평가합니다. 집은 응당 그저 잠시 머무르는 곳이 아니라, 즐겁고 편안하고 나아가 나를 살리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하며, 그런 역할을 하는 집의 가장 기본적인 가치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예전, 그러니까 50년 전까지만해도 한 집에서 한 평생을 살았더랬습니다. 우리집도 그랬습니다. 울 할머니가 새로 집을 짓고 그 집에서 울 아부지를 낳았습니다. 그 집에서 제가 태어나고, 또 그 집에서 우리 딸이 나왔습니다. 그러니, 그 집에 대한 추억이 어마무시합니다. 지금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전체 인구의 60%에 육박하고, 또 그 아파트의 수명이 고작 30년에서 40년 정도이고, 한 아파트에서 아파트의 수명이 다 할 때까지 사는 사람도 없습니다. 길어야 10년 정도입니다. 집을 고를 때 경제적 가치가 가장 우선으로 고려하는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집이라는 본질을 이야기하는 이 책은 재미있고 유익합니다.

 

 

 

이 분들, 실력도 있고 철학도 있는 건축가인 동시에, 저술가이기도 합니다. 집을 짓는 거 만큼 글도 잘 쓰십니다. 하루아침에 건축가가 된 것이 아닌 것처럼 하루아침에 저술가가 된 것도 아닐겁니다. 그들의 글이 반짝반짝 빛납니다.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습니다.

 

 

 

PS.

 

 

재미있고 유익한 건축책의 저자는 대부분이 건축가입니다. 실제 건축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긴 하지만, 집을 짓는데 있어 건축가만으로는 어렵습니다. 건축가의 생각을 잘 실현해주는 엔지니어 즉 시공자의 역할도 꽤 중요합니다. 그 둘이 잘 조화를 이루어야 훌륭한 집이 탄생합니다. 그런데 시공자가 지은 건축책은 별루 없습니다. <건축시공이야기> 정도입니다. 집에 대해 할 말이 아주 많을 텐데 말입니다. 항상 건축책을 읽을 때마다 좀 안타깝습니다. 엔지니어가 지은 좋은 건축책들도 많이 나왔으면 합니다. 참, 저도 집을 짓는 엔지니어입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