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진짜 공간'은 무엇인가? : 홍윤주 <진짜공간>
상대적으로 오래된 동네를 가면 왠지 신이 나서는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뛰듯이 걷고 있는 날 발견했다. 건축 전문가들이 훌륭하다고 하는 곳에서 느끼지 못했는 흥미를 이런 곳에서 느꼈고, '나중에 건축할 때 따라 해봐야지' 하는 것들도 이곳에 훨씬 더 많았다.
내가 그 곳에서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한 번에 계획해서 만들어질 수 없는 어떤 것, 건축가가 통제한 조형이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이 그때그때 필요해서 직접 덧붙인 공간과 장치들이었다. 사람들의 생활과 밀착되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공간. 건축가가 지은 작품으로서의 건축은 태어난 형태 그대로 죽지만, 얘네들은 죽기 전까지 꿈틀거리고 살아 움직인다. 참 멋지지 않은가. (p.15)
동대문 아파트의 중정. 도르레로 빨래를.
녹사평 대로의 지하도
천안의 한 옛날 건물
용산 미군기지 담벼락
삼선동 한 건물의 외관. 철갑을 두른 듯.
구례의 어느 가게. 간판의 가벼움, 그리고 정자가 된 대문
우리 동네 수퍼.
기차 선로 옆 어느 건물
이태원 아웃백의 정면과 후면. 정직한 입면
건물의 자유로운 확장
그리고 딜쿠샤
해방촌 어느 담벼락의 민화
필동 무지개떡 입면
후암동 일대의 어느 풍경
위의 모든 사진 출처 (진짜공간) : http://jinzaspace.com/
<건축가 홍윤주의 생활 건축 탐사 프로젝트> 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을 첨 보았을 때, 좀 황당했습니다. 아니, 이런 공간을!! 이라는 추임새가 절로 나는, 찌질하고도 남루한 그러나 따뜻한 풍경의 사진이 가득했습니다. 영화의 한 장면에서나 볼 수 있는, 아직 남아 있으라곤 짐작하기 힘든, 우리의 뒷골목 풍경이었습니다.
더 놀란 건, 작가가 운영한다는 '진짜공간' 웹사이트에 접속했을 때였습니다. 책에서 보았던 것의 몇 배가 되는 책의 연장들이 가득했습니다. 이런 것들은 기록해서 뭘 하지? 딱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2011년부터 저자는 저자가 생각하는 진짜 공간에 대해 탐구했고 그것을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그리고 그 6년간의 압축이 바로 이 책입니다.
사실 직업의 탓에 저런 공간은 많이 보아왔습니다. '아, 이 동네도 얼른 재개발을 해야겠군.' 이라고 짧게 넘겼던 공간입니다. 건축을 전공한 이의 의식도 이럴진대, 일반인들이야.... 사실 이런 공간은 우리 주위에 아직 많이 존재합니다. 우리가 눈여겨 보지 않았을 따름이죠. 이런 분야에 대해 체계적으로 탐사하고 그것을 기록하는 것으로도 대단합니다. 이 공간에 대해 책을 쓸 수도 있다는 건 더 놀랍구요.
우리가, 우리네 이웃이 살고 있는 공간을 책에서, 웹에서 다시 유심히 봅니다. 저자가 주장하는 "진짜 공간"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건축가 홍윤주을 다시 한번 봅니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분야에 여러 고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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