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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이야기

뒤돌아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 승효상 <노무현의 무덤, 스스로 추방된 자들을 위한 풍경>

by Keaton Kim 2017. 5. 23.

 

 

 

뒤돌아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 승효상 <노무현의 무덤, 스스로 추방된 자들을 위한 풍경> 

 

 

 

죽은 자를 기념하는 장소

 

 

 

# 스웨덴 스톡홀름 '우드랜드'

 

 

 

우드랜드 공동묘지. 스웨덴 스톡홀름 외곽 시립묘지로 화장시설과 예배당, 묘지가 자연경관 속에 스며들어가듯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유명하다. 에릭 군나르 아스플룬드와 시구르트 레베렌츠의 공동작업. 1915년 설계를 시작하여 무려 25년만인 1940년에 완성됐다.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묘지 건축의 걸작.

 

글 및 사진 출처 : http://m.ajeju.co.kr/board/bbs/board.php?

 

 

 

우드랜드 안의 '회상의 숲'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공의 언덕과 열두 그루의 느릅나무는 레베렌츠가 만든 경건한 신전이며, 여기서 '부활의 교회'까지 1Km에 이르는 길은 긴장과 이완을 교차시키며 산 자와 죽은 자를 경건한 의식 속에 만나게 하는 여로다. 걷는다는 것은 여기서 한 편의 아름다운 서사시였다. 땅의 변화와 나무와 풀들은 그의 유용한 도구였으며 때로는 울창한 나무 사이로 떨어지는 햇살이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가르친다.

 

글 출처 : http://news.joins.com/article/341957

사진 출처 : http://m.ajeju.co.kr/board/bbs/board.php?bo_table=story&wr_id=139&sfl=&stx=&sst=wr_hit&sod=asc&sop=and&page=1

 

 

 

 # 스페인 보트보우 '발터 벤야민 메모리얼'

 

 

 

발터 벤야민(1892~1940)은 유대계 독일인으로 마르크스주의자이자 문학평론가이며 철학자이다. 2차 세계대전 중에 나치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하던 중 스페인의 포트보우에서 발각되어 자살했다. 발터 벤야민 메모리얼은 1990년 스페인 까딸루니야 연방정부와 독일정부에서 지원하여 이스라엘 조형가 대니 카라반이 벤야민 사후 50주년을 기념하여 포트보우에 만들었다.

 

 

 

바다로 향하는 추모 작품 <통로 Passage>는 해안 절벽에 붉은 코르텐 강판의 튜브를 바다쪽으로 꽂아 넣었다. 이 통로는 바다를 향해 있지만 마지막에는 유리로 가로막혀 결국 바다로 나갈 수는 없다. 개인의 자유로운 의지와 정신을 가로막는 모든 강압과 폭력을 관람자 스스로가 느끼고 체험하게 하였다.

 

위의 두 사진 출처 : http://receep.com/tour/?tour_id=16140

 

 

 

 # 인도 델리 '라즈가트'

 

 

 

델리에서도 올드델리에 있는 장묘공원 중에서 특별히 '라즈가트'라 이름 붙인 구역이 바로 간디의 추모공간이다. 그러나 그 공간은 결코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사진으로 보면 웅장해 보이지만 오히려 간디의 유명세와 그를 존경하는 인도 사람들의 사랑에 비기면 초라할 정도다.

 

 

 

간디는 화장을 했다. 그래서 그는 무덤조차 없다. 참으로 간디답다. 하지만 그를 화장한 자리에 저 검은 대리석 제단을 만들었다. 그를 기리려는 수많은 인도인, 그리고 외국인들이 참배할 곳은 있어야 했을 것이다. 저 소박한 제단에 연간 1000만명이 참배하러 온다고 한다. 제단 앞에는 간디의 유언 "신이여!" 라는 짧은 말을 새겼다. '라즈가트'는 화려하지 않다. 대신 평온하고 차분하다. 위대한 지도자는 무덤이 아니라 존경할 만한 언행으로 그를 사랑하는 대중들의 마음속에 남는다. 간디의 추모장은 규모는 세계 그 어떤 정치 지도자의 무덤보다도 작을 지 모른다. 그러나 누가 간디만큼 인류에 많은 메시지를 남겼겠는가?

 

글 및 사진 출처 : 구본준 블로그 http://blog.hani.co.kr/bonbon/16634

 

 

 

 #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 미켈레 섬'

 

 

 

산 미켈레 섬은 19세기 초 베네치아 시민들의 공동표지로 지정됐다. 섬 전체가 공동묘지이다. 본토의 무덤자리가 모자랐기 때문이었다고도 하고 전염병으로 죽은 시신이 병을 퍼뜨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고도 한다. 전통은 현대까지 이어져 여전히 공동묘지로 쓰인다. 유명인사의 무덤도 있지만, 대부분은 베네치아에 사는 사람들의 무덤이다. 저승으로 가는 영혼은 강을 건너게 된다는 공통적인 믿음이 여기서도 겹친다.

 

 

 

이 섬의 특징 중의 하나는 사이프러스 나무다. 섬의 곳곳에 짙은 초록색의 길쭉길쭉한 지중해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우거져 있다. 고흐가 특히 사랑한 사이프러스 나무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부터 죽음을 애도하는 의미로 무덤가에 심어졌다고 한다. 그 전통이 이어져 유럽의 묘지에는 대개 사이프러스 나무가 있다. 그 어떤 나무들보다 힘차게 하늘로 솟아있는 상록수 사이프러스가 묘지용 나무라니 이상한 일이다. 어쩌면 재생과 부활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죽은 이들의 못다한 꿈이 창공으로 솟아오르기를 바라면서 사이프러스를 무덤가에 심었을지도 모르겠다.

 

출처 : http://koreajoongangdaily.joins.com/news/article/article.aspx?aid=2913114

사진 출처 : http://videolog.blog.naver.com/PostView.nhn?blogId=fungirl&logNo=100188645119&parentCategoryNo=138&categoryNo=&viewDate=&isShowPopularPosts=false&from=postList

 

 

 

# 터키 앙카라 '아느트카비르'

 

 

 

터키를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하고 재건해 낸 초대 대통령이자 현대 현대 터키 공화국의 국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1881~1938)의 묘지이다. 아느트카비르는 추모의 묘지 라는 뜻이다. 1941년 터키 정부가 아타튀르크의 묘를 만들기 위한 디자인 대회에서 선정된 건축가인 에민 오낫과 조교인 아흐멧 오르한 아르다가 설계했다. 사진은 참배의 길인 라이언 로드이다.

 

 

 

아느트카비르가 위치한 곳은 이전에 전망의 언덕이라 불리는 지역이었다. 이 곳은 앙카라 중앙에 위치하여 앙카라의 모든 곳을 볼 수 있다. 아타튀르크는 생전에 자신이 우상시되는 걸 극도로 꺼리는 인물이었고 자신이 죽을 때에도 무덤은 평범한 시민들처럼 공동묘지에 쓰길 바랬으나 아타튀르크의 전우이자 후임자인 이스멧 이뇌뉘가 가볍게 생까고 거대하고 웅장한 작품으로 만들었다. 물가가 비싼 터키에서 이곳만큼은 모든 이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한 것만 봐도 그를 생각하는 터키인들의 마음을 알 수 있다.

 

사진 출처 : http://info.hanatour.com/getabout/content?&contentID=1000053005101

 

 

 

# 러시아 모스크바 '레닌 영묘'

 

 

 

레닌의 묘는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 있는 크렘린의 한쪽 담 옆에 있다. 붉은 크렘린의 담처럼 붉은 돌로 피라미드처럼 단을 쌓아 만든 건축물이다. 러시아 혁명을 완수한 이후 1924년 레닌이 사망하자 그의 유해를 마지막으로 보기 위해 수많은 추모의 물결이 몇 주 동안 한겨울의 추위를 뚫고 몰려왔다. 여기에 영감을 받은 후임자 스탈린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어머니 곁에 묻어달라던 레닌의 유언을 무시하고, 레닌의 아내이자 혁명 영웅인 크룹스카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엠버밍(박제)을 결정했다.

 

 

 

혁명의 지도자 동지를 우상 숭배하듯 기리는 모습은 사실 자본주의 국가 사람들에겐 공산주의 국가들의 촌스러움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다가온다. 따지고 보면 어느 나라나 건국의 아버지, 초대 대통령, 또는 민족주의적 독재자들을 숭배하긴 마찬가지인데도 말이다. 미국이 워싱턴을 기념하는 으리으리한 공간을 지어놓은 것이나 한국의 수구들이 박정희를 기리는 것이나 저 레닌을 방부처리해 놓는 것이나 중요한 역사인물을 기리는 점에서 본질적인 차이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현대의 미이라를 보는 것은 묘할 수 밖에 없었다. 흥미로운 점은 레닌에 대한 러시아 사람들의 숭배 열정에 견주면 묘는 그리 화려하거나 거대하지 않다는 점이다. 작은 규모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크지도 않다. 처음 붉은 광장에 가면 저 레닌 묘는 빨리 눈에 들어오지 않는 편이다.

 

글 및 사진 출처 : 구본준 블로그 http://blog.hani.co.kr/bonbon/16634

 

 

 

 

 

 

"지식인인 한, 스스로 경계밖으로 추방하며, 관습적인 논리에 반응하지 않고, 모험적 용기의 대담성에, 변화를 재현하는 것에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것에 반응하는 자여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떠나신 지 벌써 8년이 되었습니다. 비보를 듣고 봉화마을로 바로 달려가서도 아직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말입니다. 며칠 전에 산소에 다녀왔습니다. 처음 묘역이 만들어졌을 때보다 사람들도 훨씬 많이 오고, 묘역 주위도 많이 정비가 되어 이제는 우리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볼거리가 되었습니다. 노통 묘지를 만들 때, 위에 열거한, 설계자 겸 이 책 저자가 영감을 얻었다는 훌륭한 묘지들에 비해서도 건축적으로 전혀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묘역을 설계하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책장에 있는 '노무현의 무덤, 스스로 추방된 자들을 위한 풍경'을 오랜만에 꺼내듭니다. 설계자의 의도와 설계 과정을 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내려갑니다. 그는 노무현의 삶을 자발적 추방인이며 그래서 시대의 지식인이라고 정의합니다. 기득권의 풍요를 스스로 마다하고 늘 경계밖으로 자신을 내몰았으며, 경계 안의 사람들을 향해 질타와 연대를 강조하는 삶. 곱씹어 볼 만한 구절입니다.

 

 

 

책에서도 밝혔듯이 노대통령의 유언 한 구절인 '작은 비석'을 만들기 위한 위원회에는 저자인 승효상을 비롯하여 유홍준, 황지우, 안병욱, 정기용, 임옥상, 안규철 등 당대에 내노라 하는 인물들이 모였습니다. 노통의 집을 이미 설계한 정기용 선생이 묘역마저 설계하기를 꺼려 승효상 선생이 묘역의 전체 설계를 맡았습니다.

 

 

 

 

 

"어, 피자 한 조각이네"

책을 보더니 마눌님이 한 말씀 하신다. 역쉬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유분함은 안규철 교수가 디자인해 도예가 박영숙 선생의 작품 도자기를 넣었고, 조경은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장영선 선생이 했고, 너럭바위에 새긴 '대통령 노무현'은 지관 스님의 글씨이며 바위의 강판에 새긴 글은 이젠 돌아가신 신영복 선생의 글입니다. 그리고 하이라이트인 박석입니다. 임옥상 화백이 뻗어가는 골목길 모양을 형상화하여 그 안에 시민들의 글귀를 박석으로 적어 넣었습니다.

 

 

 

전체 공간은 종묘의 월대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합니다. 월대의 공간은 비움 자체이며 절대적이며 영혼의 공간입니다. 노대통령의 묘역 공간도 우리 자신을 영원히 질문하게 하는 본질적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바닥의 박석은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로 올라가는 길에서의 기억이 주요했다고 합니다. 그 길은 그리스 건축가 데메트리오스 피키오니스가 설계한 것으로, 아크로 폴리스 주변의 폐허에 널브러져 있는 조각난 돌들을 모아 하나하나 형상에 맞추어 콜라주 하듯 길바닥에 디자인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박석은 15000명의 시민들의 마음을 모아 완성하였습니다 (박석은 모집하자마자 종료되었다. 너무나 안타깝다. 조금만 신경써서 부지런을 떨었더라면 갈 때마다 나의 글로 흐뭇했을 터인데...). 건축가는 박석에 새긴 글이 언젠가는 없어질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세월에 영구히 저항할 수 있는 건조물은 없으며, 남는 것은 기억이고, 이것만이 진실이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다시 박석에 새길 글을 모집할 때가 올 것이다.)

 

 

 

죽은 자를 기리는 가장 경건한 공간인 종묘의 하이라이트도 바로 이 월대이다. 다듬지 않은 너럭돌을 깐 이 월대로 건물은 위대한 건축이 된다.

 

 

 

 

 

 

 

 

 

오늘 노무현 대통령 8주기에 그의 가장 친한 친구 문.재.인. 대.통.령. 이 참석했습니다. 친구 문재인은 대통령으로 있는 기간에는 마지막으로 참석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며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 다시 찾아뵙겠다 고 추도사를 하였습니다.

 

 

 

국가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힘이 들 때면 노통의 묘소를 찾았습니다.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아직 노통을 마음에서 떠나보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노통의 가장 친한 동지이며 친구가 대통령으로서 노통에게 전하는 추도사를 들으며, 아 이젠 떠나 보내도 되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왠지 그래도 될 것 같습니다.

 

 

 

"이젠 편안히 좀 쉬세요. 당신 친구가 잘 할 겁니다."

 

 

 

사진 출처 및 문통 추도사 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Ew2jaMg6W9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