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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이야기

굿바이 마이 딜쿠샤 : 최예선 정구원 <청춘남녀, 백년 전 세상을 탐하다>

by Keaton Kim 2017. 4. 29.

 

 

 

굿바이 마이 딜쿠샤 : 최예선 정구원 <청춘남녀, 백년 전 세상을 탐하다> 

 

 

 

그것은 한 장의 오래된 흑백 사진이었다.

 

제법 높다란 언덕에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다. 그 뒷편으로 꽤 큰 벽돌풍의 2층집이 있다. 교회에서나 볼 수 있는 길고 높은 창, 뾰족 지붕, 고상한 자태이지만 어딘지 모를 친근감이 있다.

 

앞쪽으로 난 문으로 금방이라도 금발의 아이들이 뛰어나오고 그 뒤를 따라 웃음을 머금은 마음씨 좋은 부부가 담소를 나누며 마당으로 나올 것 같은 분위기다.

 

언젠가 꿈에서 본 궁전이 바로 저 모습이려나....

 

 

 

사진 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85202

 

 

사진 출처 : http://article.joins.com/news/blognews/article.asp?listid=11090893

 

 

 

딜쿠샤

 

 

 

오래된 사진의 주인공은 그 서양식 집이었지만, 결코 낮설지 않았다. 아마도 집이 앉혀져 있는 구릉과 뒷 배경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산과 아래쪽에 어렴풋이 보이는 초가집 때문일 것이다.

 

그 집의 이름은 '딜쿠샤'였다. 엉? 이름이 딜쿠샤라고? 집의 이름 치고는 희한했지만, 그 어감은 왠지 좋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상향' '매혹' 이라는 뜻의 힌디어라고 한다. 집을 지은 사람의 아내가 결혼 전에 방문했던 인도의 러크나우 지역에 있는 궁전의 이름인데, 하도 아름다워서 자기도 나중에 집을 짓게 되면 이름을 '딜쿠샤'라고 짓으리라 마음 먹었다고 한다.

 

 

 

1896년 21살의 청년 알버트 테일러는 광산업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서 조선으로 건너온다. 아버지와 함께 금광과 탄광을 운영하며 막대한 부를 쌓았다. 1908년 아버지가 죽고 난 뒤에도 그는 계속 이 나라에 남았다. 아마도 조선을 사랑했을 것이다.

 

1919년 3월 1일, 아내 메리 린리 테일러는 세브란스 병원에서 몸조리 중이었다. 바로 전날 아이를 낳아 몽롱한 가운데에 만세 운동의 격변을 경험했다. 한 간호사가 어수선한 분위기에 종이 뭉치를 자기의 침대보에 넣는 걸 보았다. 독립선언서였다.

 

미국 통신사의 통신원의 업무도 겸하고 있던 남편은 이 사실을 기사로 썼고 동생을 불러 기사를 일본으로 가져가 세계에 알렸다. 3.1 독립선언이 전 세계에 처음 알려지는 긴박한 순간이었다.

 

1923년 인왕산 자락에 터를 잡았다. 권율 장군이 심었다는 오래된 은행나무가 마음에 들었다. 빨간 벽돌로 2층 양옥집을 짓고, '딜쿠샤'라 불렀다.

 

 

 

한 세기가 가까운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는 그 집을 보러 나섰다. 경희궁을 가로 질러 사직터널을 지나 주택가의 골목길을 따라 올라갔다. 이쯤에 있어야 될 딜쿠샤는 보이지 않았다. 단지 짐작의 그 은행나무로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겼다.

 

주택가 모서리를 돌자 그 자태가 나타났다. 반가운 마음도 잠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와락 덮쳤다. 크고 낡은, 이제는 수명을 다한 딜쿠샤의 늙은 모습이었다.

 

쓸쓸하고 안타까운 아름다움이다.

 

세월의 상흔을, 그간의 사정을 벽면에 붙어 있는 여러 안내문이 집을 대신해 말해 주었다.

 

 

 

 

 

 

 

 

 

 

테일러 부부는 이 집에서 20년이란 시간을 보냈다. 그들은 행복했을 것이다. 미국으로 추방되고 곧 남편은 사망했으나, 생전에 꼭 여기에 묻어달라는 유언으로 그의 부인이 유골을 가져와 양화진에 묻은 걸 보면, 분명 여기 생활이 그 집의 이름과 같지 않았을까.

 

해방과 한국전쟁, 그리고 자유당 정권을 거치는 동안 '언덕위의 행복한 궁전'은 '귀신의 집'으로 전락했고, 그 후 갈 곳 없는 여러 사람들의 보금자리가 되기도 했다.

 

얼마 전까지 여기에 살던 12가구와 퇴거 협의로 시끄러웠지만, 지금은 인기척을 느낄 수 없다. 사람이 살기엔 위험하다는 안전진단 등급 표지만이 쓸쓸히 벽면에 붙어 있다. 그리고 언제 시작할지는 모르지만, 다시 복원되어 3.1운동의 딱 100년 되는 해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한참을 딜쿠샤 옆에 앉아 있었다.

 

이층에서 서울 시내을 바라보는 테일러 부부를 본다. 경희궁 터가 바로 아랫마당처럼 보였을 것이다. 은행나무 옆에서 뛰어노는 아이의 모습도 보인다. 서울에 온 서양인들을 불러 같이 저녁도 먹었다. 딜쿠샤도 같이 기뻐하고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담배를 한 대 태우고 딜쿠샤을 애워싼 크고 작은 주택과 빌라를 찬찬히 바라본다. 시간이 흐르면서 공간도 뒤틀려 버렸다. 저 멀리 그 때의 은행나무가 서 있지만, 그 역시 건물에 둘러싸여 불편해 보인다.

 

시간이 지나면 공간도 변한다.

 

건축물은 그 시절의 흔적을 간직하여 이어주고, 그래서 우리가 예전의 시간과 공간을 기억해 내는 매개체가 되지만, 낡고 쓸쓸한 딜쿠샤가 백 년 전의 풍경을 되돌리기엔 어딘지 버거워 보인다.

 

 

 

육중하고 늙은 건물이 마지막 숨을 토해내듯 그가 살아온 시대의 이야기를 오랫동안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의 모습과 이야기가 내내 기억에 남을 것이다. 복원이 되기 전에 오길 잘했다.

 

 

 

 

 

 

나는 할머니가 겪어온 그 시절을 조금이라도 엿보고 싶었다. 우리 모두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아낸 시간 속에서 그들이 남긴 것들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세월의 흐름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낡아가는 건물들을 돌아보고 그 속에 있었던 삶의 진실을 보고 싶었다. 어느새 세월 속에 감쪽같이 사라져버릴 것들이라 조금이라도 존재할 때 보고 느끼고 기록하고 남기려고 한다. 그리고 내가 본 것들을 영원히 기억하려 한다. 남아 있는 것과 사라지는 것 사이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그것이다. 기억하는 것. (p.7)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 대구 이상화 고택, 빛살 미술관, 김제 이영춘 가옥, 하시모토 농장 사무소, 벨기에 영사관, 홍난파 가옥, 공업전습소 본관, 벌교 보성여관, 성공회 강화읍성당....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이다. 19세기 말부터 일제 강점기 시대에 세워진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우리 건축물이다.

 

 

 

이 책은 청춘녀 최예선, 청춘남 정구원씨 부부가 직접 발품을 팔아 찾은 우리 근대문화유산을 소개한다. 건축은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았기에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다. 오직 살아남은 건축물이 그가 간직한 사연을 이야기하고 그가 거쳐온 시대를 말한다.

 

 

 

우리의 곁에 언제나 있었으나 별로 관심이 없던 근대 건축물을 소개하는 이 책은, 이제는 늙고 변해버린 오래된 건축이 지닌 사연을 맛깔나는 필치로 풀어낸다. 그리고 그 사연이 작가의 감성과 어우러져 훌륭한 문장으로 우리 곁에 다가온다. 그 건축이 품고 있는 스토리를 알게 되면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사람과 마찬가지로.

 

 

 

전통건축과 현대건축을 이어주는 이 근대라는 요상하고도 쌉싸름한 이름의 시대의 건축을 소개하는 자료는 많지 않다. 이 책을 발견했을 때, 마치 숨은 보석을 찾은 기분이었다. 반가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