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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이야기

그 많던 궁궐은 어디로 갔을까? : 우동선 박성진 외 <궁궐의 건축, 백년의 침묵>

by Keaton Kim 2016. 12. 16.

 

 

 

그 많던 궁궐은 어디로 갔을까? : 우동선 박성진 외 <궁궐의 눈물, 백년의 침묵>

 

 

 

궁궐에 가면 가장 멋진 위치에 제일 크게, 제일 폼나게 자리잡은 건물이 있는데, 이걸 정전正殿이라 부릅니다. 경복궁의 정전은 근정전(부지런히 백성을 돌봐라)이구요, 창덕궁의 정전은 인정전(인자하게 백성을 돌봐라)입니다. 창경궁은 명정전(밝게 백성을 돌봐라)이구요, 덕수궁의 정전은 중화전, 경희궁慶熙宮의 정전은 숭정전崇政殿입니다.

 

 

 

근데 경희궁의 정전인 숭정전은 두개랩니다. 설마라구요? 저도 안믿었습니다. 심지어 그 숭정전이 동국대학교 안에 있댑니다. 그럴리가?? 왜?? 이런 건 직업 눈으로 확인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생전 갈 일이 없는 동국대학교에 가 봤습니다.

 

 

 

이게 오리지날 숭정전이다. 응? 현판은 정각원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렇다. 이 건물은 동국대학교 안에 있는 정각원인데, 원래는 경희궁의 숭정전이 맞다. 믿을 수 없다고? 그럼 아래 사진을 보시면 된다.

 

 

 

정각원 아래에 이렇게 떡하니 숭정전이라고 표지판이 있다. 그 옆에는 석등도 있다!

 

이게 우찌된 일이고 하니, 일제시대 남산 자락에 조계사라는 일본절(지금의 조계사와 다른 절이다.)이 있었는데, 이눔에 절이, 좋다는 궁궐 건물을 막 사가지고 자기네 절터로 옮겨 세웠는데, 그 때 옮겨진 건물이 경희궁의 숭정전과 회상전, 풍경궁의 황건문 등이다.

 

사실 숭정전의 훼철은 그 이전부터 시작되었다고 책에서 말한다. 일제가 일본애들 교육시킬라고 1910년 경희궁에다 경성중학교를 만들었는데, 숭정전은 교실로 사용되었다!! 조계사로 매각, 이건되어서는 절의 본당으로 사용되었고, 1945년 조계사가 혜화불교전문대학(현 동국대학교) 소관이 되자 다시 강의실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1977년 동국대학교가 대대적인 시설 확장을 하면서 지금의 위치에 확정되었고, 1980대 말에 경희궁을 정비하면서 옮길까 새로 지을까 쪼금 고민을 했는데, 소유권 문제도 있고 번거롭기?도 했고, 손상도 될까봐 1989년 경희궁 자리에 숭정전을 새로 지어 복원하였다. 그래서 졸지에 숭정전은 두개가 되어버렸다. (p.129) 

 

 

 

한낱 절 건축의 난간이 이리도 화려할까? 나는 한 궁궐의 정전이오! 라고 소맷돌의 짐승들이 말하는 듯 하다.

 

경희궁 숭정전은 1617년에 창건되었다고 나온다. 광해군 시대다. 시간의 흐름이 혹시나 기둥에 남아 있으려나 싶어 자세히 둘러보았지만, 무심한 나무 기둥은 말을 해 주지 않는다. 다만 난간의 소맷돌은 그 시절의 운치가 조금이라도 남아있었다.

 

 

 

해태인지 사자인지 뚱땡이인지 모를 녀석이 나를 보고 비웃는다. 이건 썩소다. 기분이 살짝 나빠질라 그런다. 웃어! 짜샤~~~

 

 

 

사진으로 봤을 때나 멀리서 봤을 땐, 그 공간감이 와 닿지 않더니, 가까이서 보니 꽤나 웅장하고 기품이 있다. 비록 대학교 안의 법당이지만, 궁궐 정전의 품격이 느껴지는 건물이다. 지붕에 걸터 앉은 잡상들까지 품위 있어 보인다.

 

 

 

1970년대 초의 동국대학교 사진이다. 동국대학교에는 숭정전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평양에 풍경궁이라고 아주 근사한 궁궐이 있었는데, 그 궁궐의 정문이 황건문皇建門이다. 이 황건문도 조계사로 팔려와 숭정전과 비슷한 운명이 된다. 사진에는 동국대학교의 정문으로 쓰인 황건문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 출처 : 동대신문 http://www.dgupress.com/news/articlePrint.html?idxno=12054

사진 인용 : 이 책 p.128

 

 

 

책에 나오는 황건문의 사진은 아름답고 장대하고 기품이 있었다. 그러나 동국대 정문으로 쓰인 위 사진의 황건문은 훼손이 심해 보인다. 이마저도 1971년 학생회관이 옆에 신축되면서 학교당국에 의해 해체, 철거 되었다. 남한 내 유일하게 남아있던 평양 풍경궁의 유산인 황건문은 그렇게 사라졌다. 동국대학교의 흑역사 중 하나다.

 

사진 출처 : 나무위키 https://namu.wiki/w/%ED%92%8D%EA%B2%BD%EA%B6%81

 

 

 

위의 사진은 동국대학교 강의실로 쓰일 시절의 숭정전이고, 아래는 조계사 정문으로 쓰일 시절의 황건문이다. 평양에서 230Km를 공수해 올 정도로 건축적으로 아름다웠다고. 풍경궁의 위상이 경희궁보다 낮음에도 불구하고, 그 정문인 황건문은 경희궁의 정문인 흥화문보다 건축적으로 우수했다고 한다.

 

사진 출처 : SPACE Magazine.

사진 인용 : 이 책 p.142

 

 

 

경희궁의 정문인 흥화문이다. 경희궁의 정전 숭정전이 조계사의 법당으로 팔려갔다면, 경희궁의 정문이 흥화문은 박문사博文寺(이등박문 : 이토오 히로부미의 그 박문이다.)라는 절의 정문으로 팔려가 경춘문이라는 간판을 붙이고 사용되었다. 광복 후 박문사는 혜화불교전문학교의 기숙사로 사용되면서 그 입구로 사용되다가 1973년 신라호텔이 들어서자, 신라호텔의 정문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다가 1988년 경희궁 복원 계획에 따라 본래 자리로 돌아올라고 그랬는데, 원 위치에 구세군회관빌딩이 들어서 있어서, 서쪽으로 230m 정도 옮겨서 지금의 위치에 섰다.

 

세월의 풍파를 거슬러 온 역사가 파란만장 그 자체다.

 

경희궁은 모두 후대에 새로 지은 건물이지만, 정문인 이 흥화문 만이 돌아돌아돌아 와서 원래의 건축물이 되었다. 

 

 

 

박문사의 정문 경춘문인 시절의 흥화문. 이 박문사는 흥화문 뿐만 아니라 경복궁의 신원전, 원구단 자리의 석고전까지 해체하여 옮겨왔다. 물론 지금은 둘 다 남아있지 않다.

 

사진은 경희궁 안에 '경희궁의 어제와 오늘'이라는 주제로 하는 사진 전시를 찍었다.

 

 

 

이 책의 표지 사진이기도 하다. 1909년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사진이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이라고 사진 소개에 나와 있다. 분명 경희궁의 정문인데, 흥화문 안에는 궁궐의 전각 같은 것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궁궐의 박석을 뜯어내고 농사를 지었다고 책에 나와 있었다.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아픔이다.

 

 

 

(4) 라고 표시된 게 흥화문이다. 정문만 달랑 있다. (2) 라고 표시되어 있는 게 새문안교회라고 하니, 그 새문안교회가 지금의 새문안교회가 맞다면 이전의 경희궁 넓이를 가늠할 수 있다. 참고로 그 새문안교회 바로 옆에 지금의 대우건설이 있다. 겨우 100여 년 전의 사진인데, 왜 이리 정감이 갈까.

 

 

 

 

경희궁의 정전 숭정전이다. 원래 있던 숭정전이 옮겨 가고, 1980년대 후반부터 복원된, 최근에 지어진 건축물이지만, 당당하고 기품이 있다. 창건 당시에는 이름 있는 전각만 해도 120채가 넘었고, 부속 건물까지 합하면 수천 칸에 이르렀다. 서궐도안을 보면, 지금의 경희궁은 도안상의 경희궁 10분지 1정도다. 옛 궁궐들만 제대로 있었어도 서울에서의 볼 거리 즐길 거리가 엄청날텐데.... 

 

 

 

경희궁은 광해군 시절에 지어져 인조 대에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임금이 잠시 거처하는 궁궐이었지만, 영조는 치세의 절반을 이 곳에서 보냈다. 도성의 서쪽에 있다고 서궐이라 불리기도 했다. 경복궁 중건과 함께 방치되기 시작해서 1868년에 궁궐의 빈 땅을 경작시로 분배되어 궁궐의 권위를 완전히 상실하였다. 1911년 경희궁의 모든 토지와 건물은 총독부에 인계되고, 그나마 얼마 남아있지 않던 전각들마저도 이건되고 변용되었다. (p.125)

 

 

 

새로 깔린 박석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저렇게 잘랐을까? 아니면 생긴대로 맞췄을까? 규칙성이 없는 박석이 오히려 조화롭다.

 

 

 

 

팔려 가기 전의 숭정전이다. 즉, 동국대학교 안에 있는 숭정전이 바로 이 건물이다. 이것 역시 옛 경희궁의 사진을 전시해 놓은 것을 찍었다.

 

 

 

이전에는 여기가 서울고등학교가 있었댄다. 교사 뒷편으로 막 짓기 시작한 숭정전과 숭정문이 보인다. 그랬다. 그 당시만 해도 경희궁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나마 이만큼이라도 복원한 것이 참 잘한 일이다. 이것 역시 경희궁에 전시된 사진이다.

 

 

 

이 책의 궁궐 전각의 이건 및 변용 사례 분석이라는 표에 의하면 옮겨진 궁궐이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달랑 다섯개다. 경희궁의 숭정전과 흥화문, 황학정, 그리고 경복궁의 융문당과 융무당. 융문당과 융무당은 전남 영광군의 원불교 영산성지로 이건되었다.

 

황학정黃鶴亭은 1899년 고종이 세우고 일반인에게 개방했다. 쇠락한 궁술은 중흥?하려고 만들었다는데.... 뭐 그렇다고 해두자. 1922년 지금의 위치인 인왕산 자락으로 옮겼다. 모든 창을 들어열개로 구성한 정자 건축의 고유한 특성을 그대로 지녔는데, 마침 보러간 그 날도 문을 활짝 들어 완전한 정자의 형태를 보여주었다.

 

 

 

현재 황학정은 국궁의 메카라고 하는데, 아니나다를까 사람들이 마침 활을 쏘고 있었다. 색다르게 이쁜 처자도 활을 쐈다. 오호...  과녁이 제법 멀리 있어 화살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화창한 일요일에 활을 쏘는 사람들.... 왠지 이 신선 놀음이 부러워 보였다.

 

 

 

1895년 고종의 마눌님이 일본군바리들한테 살해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다. 이듬 해 2월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망가고... 공사관에 있던 1년 동안 고종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1987년 경운궁으로 환궁하면서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자신은 황제임을 선언한다. 그리고 본래 중국의 사신을 맞이하던 중국풍 별관 "남별궁"을 부수고 그 자리에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내는 원구단을 짓는다.

 

사진은 나무위키에서 퍼왔는데, 원래의 모습을 3D로 재현한 것이다. 금색 지붕이 원구단이고 그 뒤에 원구단의 상징물로 팔각 3층짜리 황궁우이다.

 

 

 

 

하지만 1910년 나라는 일본으로 넘어가고 1913년 일제가 환구단 자리에 '조선철도호텔'을 신축한다는 훈령을 발표하고 환구단을 철거한다. 철거된 자리에는 철도호텔 건물이 서고 이 호텔은 현재의 웨스틴 조선호텔로 이어간다.

 

원구단은 도심 속에 숨어 있다. 보려고 하지 않으면 절대 안보인다. 남아있는 것도 그리 많지 않다. 사진은 원구단에서 황궁으로 들어가는 삼문이다.

 

 

 

원구단에 설치되어 있는 석고단. 말 그대로 '돌북'이다. 환구단에 남아있는 몇 안되는 유물이다. 몸체에는 화려한 용의 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광화문 옆 해치를 조각한 석공의 작품이라고 한다.

 

 

 

황궁우는 안타깝게도 공사중이었다. 2017년 6월까지라고 되어 있다. 꼭 다시 와서 볼테다!

 

 

 

원구단의 표지. 옛 사진과 지도를 보여준다. 원구단 자리의 호텔과 황궁우로 들어가는 삼문은 거의 붙어 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그러니까 딱 원구단의 자리에 이 호텔이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삼문과 황궁우는 조선호텔 뒷 뜰인 줄 알았다. 그렇게 보이지만 사실은 문화재청에서 관리하고 있고 조선호텔은 권한이 없다고. 조선호텔을 이전하거나 황궁우를 옮겨 원구단을 복원하자는 주장이 있는데.... 호텔이 이전하기는 만무하고, 그럼 원구단을 옮기냐? 덕수궁 맞은 편의 바로 그 자리라서 더 가치가 있는 원구단을? 시간과 공간이 애매하게 흘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능....

 

 

 

이전의 조선호텔. 뒷편에 3층짜리 황궁우가 보인다. 1950년~60년의 어느 때라고 한다.

 

사진 출처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ohyh45&logNo=220656228292

 

 

 

 

 

 

이 책 <궁궐의 눈물, 백년의 침묵>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전반의 건축과 도시에 관심이 많은 건축사 연구자 여덟 명이 궁궐의 변화에 대해 집필한 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핵심은 역시 궁궐을 짓고, 경영하고, 그 궁궐이 쇠락하는 이야기입니다.

 

 

 

책에서 말하는 사실을 눈으로 보려고 하루 종일 서울 시내를 걸었습니다. 책에서 나오는 사진을 직접 확인하는 작업은 나름대로 재미있었지만, 그러면서 저 나름의 새로운 감상과 생각들이 이리저리 피어났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공간도 따라 흐릅니다. 지금 보고 있는 경희궁은 과거의 경희궁이 아니며, 미래의 경희궁도 지금의 공간과는 달라질 것입니다. 내가 보고 있는, 내가 서 있는 공간의 이전을 알고, 지금을 느끼고, 미래를 상상해 봅니다. 책을 읽고 이 책에 대한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입니다.

 

 

 

내가 여태 모르고 있는, 알아야 할 역사와 보아야 할 건축이 아직도 많습니다. 그것도 바로 내 주위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