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건축 이야기

프랑스 아줌마의 한국 아파트 디비기 : 발레리 줄레조의 아파트 공화국

by Keaton Kim 2016. 7. 31.

 

 

 

프랑스 아줌마의 한국 아파트 디비기 : 발레리 줄레조의 아파트 공화국

 

 

 

 

 

 

'집'이라는 주거 공간이 이렇게 획일화된 나라가 또 있을까요? '아파트'라는 이 거대한 콘크리트 공룡은 언제부터인가 하나둘 생겨나서 자리를 잡더니, 엄청난 번식력으로 대한민국의 곳곳을 다 잡아먹고 있습니다. 아파트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이젠 시골의 논밭에도 지 혼자 뻘줌하게 서 있는 공룡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이넘은 절정기를 지나 쇠퇴기에 들어갈 때도 되었는데, 전혀 기세가 꺾일 것 같지 않습니다.

 

 

 

외국인의 눈에는 이게 어떻게 비춰질까요? 한 프랑스 지리학자가 울나라에 와서 이 거대한 공룡을 첨 만나게 됩니다. 뜨악~~~ 이게 머여? 거대한 충격과 호기심으로 대한민국의 아파트를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이 공룡은 언제, 왜 태어났고, 어떻게 이렇게 왕성하게 번식할 수 있었는지, 이넘한테 주기적으로 먹이를 주고, 잘 자랄수 있는 환경을 만든 넘은 또 누구인지, 프랑스 공룡은 모두 멸종 직전에 있는데, 그럼 대한민국의 공룡은 머가 달라서 아직도 그 기세를 떨치고 있는지.... 결정적으로 이넘이 쭈욱~ 잘살지 안그러면 유럽 공룡처럼 멸종할지에 대해 졸라 연구한 결과물이 바로 이 책입니다.

 

 

 

우리집 뒷산에 올라 본 김해 내외동의 전경이다. 아파트가 많은 줄은 알고 있었지만, 사진으로 보니 더 대단하다. 내가 초등학교 중학교 다닐 때 저 동네는 다 논이고 밭이고 돼지 마구였다. 비오는 날이면 돼지 똥냄새가 진동을 하기도 했었는데..... 그 시절에 비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지금은 다들 저 안쪽의 성으로 못들어가서 안달이다. 들어간 사람들은 나름 어깨 힘 주고 산다.

 

사진 출처 : 나무위키

 

 

 

저런 아파트는 언제 생겼을까요? 해방 이후 피난민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서울로 서울로 오기 시작합니다. 인구는 급속도로 많아지고 사람들의 살 집은 턱없이 부족하게 됩니다. 1957년 우리 손으로 지은 첫번째 아파트인 종암아파트가 건축됩니다. 우리가 현재 아파트라고 불리는 형태의 주거공간은 1960년대 초의 마포아파트가 그 시초입니다. 나라에서 지은 실험적인 형태의 주택이긴 했지만,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주거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기는 별로 없었댑니다. 1975년도만 해도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기껏 전체 인구의 1.2%에 불과했습니다. 그 즈음에 한강변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정부 주도하에 건설되기 시작합니다. 지금은 모두 재개발이 되어 새로운 아파트로 거듭난 잠실의 초대형 아파트단지가 건설된게 1977년입니다.

 

 

 

그 뒤로 80년대에는 선풍적인 열기로, 신시가지 조성이라는 붐을 타고 세력을 뻗기 시작합니다. 1985년에는 8.7%, 90년 15%, 95년 29%, 2000년에는 40%가 넘는 사람들이 아파트에 살았고, 2010년에는 급기야 52%로, 울나라 사람 절반이 넘게 아파트에 거주하게 됩니다. 그러고 보니 아파트가 우리가 사는 집의 대표가 된게 채 30~40년 정도입니다. 그 전에 살았던 집, 그러니까 초가집이나 기와집은 몇백 년동안 그 수명을 이어왔는데 말이죠. 그 짧은 기간동안 우리의 주거문화는 이렇게나 바뀌었습니다.

 

 

 

마포아파트 완공 전후의 사진. 오옷... 이건.... 꽤 멋지잖아~  서울의 인더스트리아??  국가의 주택 방향이 이것으로 정해졌다. 지금 한국의 아파트보다는 유럽의 초기 아파트 컨셉에 가깝다. 최초로 연탄 보일러를 놓고 수세식 변기를 사용했다. 좀 높게 지을려고 했는데 기술이 딸려서 엘리베이터 없는 6층짜리로 지어졌다. 딱 봐도 꼬르뷔제 할배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1991년에 철거되었고 마포삼성아파트가 저 위치에 들어서 있다.

 

사진 및 글 인용 : 나무위키

 

 

 

아파트 대량생산체제를 지탱하고 있는 국가 - 재벌 - 중산층의 이익연합에 대한 분석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저렴한 택지 공급과 급성장한 아파트 건설 시장에서 막대한 혜택을 얻어 성장한 재벌 건설사와, 중산층의 정치적 지지를 얻기 위해 주택의 대량 공급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재벌 건설사의 아파트 공급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국가가 있는 한 한국의 아파트 문제는 개선되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 중산층의 현실안주적 정향이 심화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구조 위에서 가능했다. - 책 표지 글 중에서 -

 

 

 

그러니까, "야~ 아파트에서 안 사는 넘들은 촌놈이야!" 라고 정부가 꼬시기도 했고(실제 책에서도 박정희 대통령이 그렇게 발언하는 연설문이 나온다), 거기에 넘어간 중산층들이 하나 둘 아파트에 살게 되고, 그래서 씐난 정부랑 건설사랑 짝짜꿍해서 더 넓은 택지를 개발하고 거기다 아파트를 지어 더 많이 팔아먹고, 근데 아파트에 살아보니 편하기도 하고, 안전한 것 같기도 하고, 돈도 작게 드는 것 같고 좋더라, 결정적으로 어깨에 힘도 쫌 들어가고.... 머 이런 스토리가 되는데요, 더 궁금하면 책을 읽어보셔요....ㅎㅎㅎ

 

 

 

밀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좁은 땅덩어리에 인구는 많고, 그래서 그런 조건에 적합한 집을 궁리하다 보니 아파트가 최적이다.... 라는 이야기는 완전히 틀렸다고 합니다. 오히려 예전의 달동네와 유럽의 중층 건물이 밀집된 곳들이 밀도가 더 높다는 이야기입니다. '아파트는 현대적이고 서구적이다.' 라는 명제도 우리나라 사람이 볼 때나 그렇지, 프랑스 사람의 시각에서 보니 아나꽁꽁!! 라는 대목도 흥미롭습니다.

 

 

 

한국 최초의 아파트인 충정아파트. 1935년에 지어졌다. 오옷! 팔십이 넘어셨다..... 당시엔 유럽의 최신 유행인 모더니즘 건축을 가져온 최신식 건물이었다고. 80년이 넘는 영욕의 세월을 모두 겪고도 아직 현역으로 남아있다. 최초는 임대아파트로 지어졌고, 그 뒤 미군 숙소, 호텔 등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페인트 색상이 독창적이시다.

 

사진 출처 :  http://m.blog.naver.com/sodan4/220115140524

 

 

 

프랑스에는 우리보다 훨씬 일찍부터 아파트를 지었다고 합니다. 근데 출발이 우리와는 좀 달랐습니다. 거기는 아무래도 좀 못사는 사람들의 집으로 아파트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도시 문제의 근거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주택 문제를 아파트로 해결하려는 시도는 적어도 프랑스에서는 실패했습니다. 대한민국 아파트는 임대주택이나 서민주택의 개념으로 출발한 것이 아닙니다. 첨부터 고급 주거공간을 지향했습니다. 그리고 초기에는 정부의 주도였지만, 이제는 민간 주도로 아파트는 점점 발전, 진화하고 있습니다.

 

 

 

과정이 어찌되었건, 지금 울나라 절반 이상의 국민이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단지 어깨에 힘 줄라고 아파트에 사는 건 아닐 겁니다. 그만큼 아파트가 주거 공간으로서 장점이 많다는 증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파트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서로 다른 계층이 섞여 역동성 있는 도시가 되어야 하는데 아파트는 그걸 방해합니다. 또 끼리끼리만 놀게 됩니다. 다양성이 없는 도시가 되고 경관도 아름답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아파트만 짓는다면 건축가는 밥 굶어 죽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 라는 개념을 만든 사람은 바로 그 유명한 '르 꼬르비제'다. 그가 바꾼 건 건축뿐만 아니라 도시도 포함된다. 당시 유럽의 도시들은 좁아터지고 더럽고 혼잡했다. 산업혁명으로 도시화와 인구 집중은 극심한데 건물은 중세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는 확 갈아엎었다. 사는 곳과 일하는 곳, 노는 곳을 분리했다. 더 많은 녹지와 레저 공간을 만들기 위해 고층 빌딩을 만들고 자동차의 흐름에 맞춘 도시를 도시를 계획했다. (이 이론은 당시엔 획기적이고 타당한 이론이었으나 현대에는 좀 많이 바뀌었다. 오히려 사는 곳, 일하는 곳, 노는 곳을 합치는 추세다.) 사진은 콘크리트 틀 속에 23개 유형의 복층 아파트를 집어 넣어 개별 빌라로 만들어 주택문제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으로 제시한 '위니떼 다비따시옹'이다. 마르세유에 있고 1952년 완공되었다.

 

사진 출처 : http://m.blog.naver.com/aldus_06/150175536774

 

 

 

그래서 앞으로 아파트는 어찌되능겨? 더 많이 생기능겨? 아님 싸그리 없어지능겨?

 

 

 

사실 이게 제일 궁금합니다. 지금도 맹렬한 기세로 전 국토를 휘젓고 있는 아파트입니다만, 언젠가는 그 기세가 멈출 것이고 사그러들겠죠. 그 언젠가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요. 책에 나온 저자의 대한민국 아파트에 대한 생각은 비관적입니다. 주택이 유행 상품처럼 취급되는 것이 놀라운 일이며, 대단지 아파트가 서울을 오래 지속될 수 없는 하루살이 도시로 만들고 있다는 비판도 합니다.

 

 

 

아파트를 대신 할 만한 여러 대안들이 모색중에 있습니다. 땅콩집이 될 수도 있고 무지개떡 건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대안들은 많으면 많을 수록 좋습니다. 여러 다양한 것들이 어울려야 문화가 발전할 수 있다는 다양성의 원칙은 분명 주거 문화에도 적용이 되고 또 되어야 합니다. 아파트 말고도 우리가 살 수 있는 여러 형태의 주거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좀 더 나은 사회가 됩니다. 아파트 말고 다른 것들도 좀 지어보자!!

 

 

 

책 이야기 하다 엉뚱한 데로 빠졌습니다. 좀 흥분했습니다. 아파트에 대해서는 거의 애증의 관계라 할 말이 많아서리..... 사실 울나라에서 아파트에 대한 담론은 별루 없었습니다. 투자 대상으로의 아파트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엄청나다. 술 마실 때 안주거리로도 나온다. 대학 때도 아파트에 대해서는 안 배웠습니다. 아파트 짓는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아파트의 근원적인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웬지 터부시하는 그런 분위기입니다. 책은 거의 논문 수준이라 꽤 딱딱했지만, 무릎을 칠 만한 대목도 꽤 있었습니다. 전공자의 시각으로 볼 때 상당히 참고가 될 만한 책입니다. 울나라 사람들도 하기 어려운 일을 프랑스 아줌마가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객관적으로 우리네 아파트를 기술했습니다. 좋은 공부거리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