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사람을 닮는다 : 유현준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하비브하우스 HABIB HOUSE 라고 혹시 들어보셨나요?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정동길로 들어가다 보면 항상 경찰 아자씨들이 높은 담벽락 아래에서 뭘 하는지 모르지만 늘 있습니다. 그들이 지키고 있는 것이 이 '영원히 팔린 땅, 하비스하우스' 인데요, 미국 대사관 사저입니다. 중명전과 덕수궁 사이에 있고, 높다란 벽으로 가려 놓아 안은 들여다 볼 수도 없습니다. 다만 꽤 넓겠구나 라고 짐작은 합니다.
미국 대사관은 다들 알고 계시다시피 광화문 광장에 붙어 있습니다. 여기도 경찰 아자씨들 졸라 많습니다. 거기다가 미국 비자 좀 받아 보려고 하는 사람들까지 항상 복작거립니다. 광화문 거리 혹은, 종로 구청 근처를 거닐다 보면 이 경찰 아자씨들때문에 짜증이 좀 납니다. 미국 대사관 근처에 왜 우리 경찰이 그렇게 항상 많이 있어야 되는지도 좀 불쾌한 일이고, 미국 대사관이 경복궁 코 앞에 꼭 있어야 하는지는 더 불쾌한 일입니다.
하비브하우스가 있는 땅은 옛 덕수궁이었습니다. 그 좋은 정동길을 버젓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미 대사관도 마찬가지이구요. 역사적으로 그 시설들이 중요한 시기도 있었지만, 이젠 그렇지 않습니다. 넓은 곳에 새로 지어주고, 지금의 공간은 마땅히 시민들에게 돌려주어야 하고 우리가 그 공간을 즐겨야 합니다. 광화문 광장이 제대로 역할을 하고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려면, 세종문화회관 앞과 미대사관 앞길 1층에 앉아서 광장을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는 카페나 식당이 생겨야 한다고 책의 저자는 말합니다. 완전 공감입니다. 지금의 광장은 세종대왕 혼자 버티기엔 너무 삭막한 공간입니다.
광화문 광장의 미 대사관. 지킬 것이 뭐가 그리 많은지 항상 경찰들로 둘러 싸여져 있다. 다행히 2017년에는 용산의 어느 캠프로 이전한다고 한다. 참 잘한 일이다. 이전 후의 이 공간 사용에 대해 한창 논의 중이라는데.... 부디 광화문 광장과 같이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하비브하우스 안으로 들어가면 이런 건물이 있다고 한다. 역시 훌륭하다. 일년에 한번은 개방을 한다고.... 덕수궁 돌담길도 항상 이 곳을 지키는 경찰들이 거슬렸다. 대사관이 이사가면 대사관저도 옮겨가지 않을까? 이 곳도 우리가 물려 받아서 중명전과 함께 사람들이 즐겨 모일 수 있는 공간으로, 또 우리의 근대사를 같이 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지면 참 좋을텐데......
사진 출처 : http://kwon-blog.tistory.com/76
이집트에 가면 피라미드 앞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파리에 가면 에펠탑, 중국에 가면 자금성, 로마에 가면 콜로세움에서 인증샷을 날립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건축물이 그 나라와 장소이 정체성을 대표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시대 사람들의 땀과 노력과 기술의 결정체가 바로 건축물입니다. 그리고 건축물은 사람이 만든 공간이자 살아가는 공간이므로, 이것의 수준이 올라가면 당연히 사람들의 삶의 질은 올라가게 되어있습니다. 우리가 건축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입니다.
책은 건축에 관한 이야기이자 도시에 대한 단상입니다. 그 도시를 만드는 건 사람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도시는 다시 사람을 만듭니다. 그렇기에 도시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실상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15가지의 흥미로운 주제를 가지고, 썰을 푸시는데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간략하게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1장. 왜 어떤 거리를 걷고 싶은가?
명동거리와 신사동 가로수길은 사람들이 무지 많다. 애인과 손잡고 거닐고 싶은 길이다. 테헤란로, 코엑스 광장, 광화문 광장은 전혀 그렇지 않다. 차들이 다니지 않고, 골목골목 볼거리가 많고, 시간이 느리게 가는 거리.... 우리가 사는 도시에 필요한 거리다.
2장. 현대 도시들은 왜 아름답지 않은가?
빨래가 사라진 도시는 아름답지 않다. 도시는 사람이 사는 냄새가 나야 한다. 우리네 아파트는 심지어 배란다마저 막아 버려 빨래를 널 공간도 없다. 건축은 기능이기도 하지만, 기능만으로는 사람이 만족 못한다. 사람의 정취가 있는 건축, 감성을 불러 일으키는 건축이 많아질 때 도시는 아름다워진다.
3장. 팬트하우스가 비싼 이유
'팬옵티콘'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것을 본다 라는 의미인 이 말은 사실 감옥이다. 특정의 일부 사람이 많은 사람을 감시?하는 구조이다. 정기용 선생의 기적의 도서관이 설계되기 전에 대부분의 도서관도 이런 구조였다. 팬트하우스는 특정의 일부 사람이 많은 사람을 내려다 볼 수 있는 특정 공간이다.
4장.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뉴욕 이야기
남대문은 재료가 오래된 나무이기 때문에 문화재가 아니라 그 건축물을 만든 생각이 문화재인 것이고, 그 생각을 기념하기 위해서 결과물인 남대문을 문화재로 지정한 것이다. 따라서 건축이란 공간은 재료가 교체되고 복원되고 사용되면서 보존되는 것이 옳다.
5장. 강남은 어떻게 살아왔는가 : 사람이 만든 도시, 도시가 만든 사람
도시는 인간이 만들어 낸 인공물이다. 하지만 동시에 도시는 실제로 설계자의 의도대로가 아닌 자연 발생적인 방식에 의해서 오랜 시간에 걸쳐 진화해 왔다는 면에서는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기보다는 자생적인 유기체라고 할 수 있다.
베트남 기념관은 자체가 가지고 있는 어두운 기억을 최소한의 건축적 장치를 통해서 아름다운 자연과 주변 컨텍스트를 이용하여 기가 막한 한 편의 드라마를 연출한 기념관 중 최고라 할 수 있다. - P 158
사진 : 워싱턴 DC의 베트남 기념관
사진 출처 : 익스피디아
6장. 강북의 도로는 왜 구불구불한가 : 포도주 같은 건축
강북의 거리가 강남의 거리보다 아무래도 친숙하다. 도로가 직선이 아니라서? 근데 그런 길이 좋다. 담배 태우기도 훨씬 쉽다. 그리고 강남의 예쁜 언니는 밤에만 나온다. 아~ 이야기가 옆으로 샜다.
7장 교회는 왜 들어가기 어려운가
내 말이 그말이다. 절은 아무나 쓱 하고 들어가서 부처님께 절도 하고 그러는데, 교회에서는 왜 안되느냐 말이다. 니가 곧 부처다라는 불교와 나만 믿어라는 기독교의 차이긴 하지만, 그렇기때문에 교회라는 건축은 더 개방성이 필요하다. 이 땅에는 누구나 가서 쉴 수 있는 교회가 필요하다.
8장 우리는 왜 공원이 부족하다고 말할까
서울 숲, 남산, 한강 고수부지, 그리고 뉴욕 센터럴 파크와 보스턴 코먼. 문제는 얼마나 쉽게 그 공원에 갈 수 있냐는 거다. 쉽게 갈 수 있고, 즐길 거리가 있는 공원..... 나는 공원도 필요하고 같이 공원 갈 언니도 필요하다. 아~~ 또 샜다.
9장 열린 공간과 그 적들 : 사무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사람은 멍때리고 있는 순간에 창의적이 된다. 뇌 연구가들이 한 말이다. 나도 그렇다. 그렇다고 하면 멍때릴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특히나 사무실은. 구글의 사무실이 좋은 이유가 다른 데 있지 않다. 스마트폰을 보며 무언가 일을 처리하는 동안에는 결코 창의적이 될 수 없다.
10장. 죽은 아파트의 사회
우리의 도시는 유럽의 저 오래된 도시에 비해 안 아름답다. 특히나 건축적으로 더 그렇다. 오래된 건물이 별로 없어서다. 건축의 수명은 사람보다 길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비로소 건축은 사람의 삶을 담아내고, 그래서 사람 냄새가 배어나게 된다. 울나라에서 30년 쯤 된 아파트는 살기에 위험하다는 걸 자랑스레 표현한다. '안전진단 통과' 라는 현수막이다. 아파트 공화국의 우리는 그래서 건축적으로 아름다운 도시는 가지려면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릴거다.
실제로 나보나 광장의 뒷골목 어느 식당에 갔을 때 식사를 하던 위치가 과거 경기장에서 어느 좌석쯤 된 곳인가를 알려 주는 안내지를 본 적이 있다. 도미티아누스 경기장은 없어지고 바로크 시대에 베르니니에 의해서 아름다운 분수가 있는 광장으로 바뀌었지만, 말굽 모양으로 되어 있는 특이한 나보나 광장의 형태는 과거 로미 시대의 경기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P 146
사진 : 로마 나보나 광장
사진 출처 : http://www.electatravels.com/tour-item/rome/
11장. 왜 사람들은 라스베이거스의 네온사인을 좋아하는가
라스베가스의 네온사인은 장식이라서 그렇댄다. 까막눈인 우리에겐 그렇게 인식된다고.... 그럼 외국 넘들 눈에는 우리 간판도 폼 나게 보일런가??
12장. 뜨는 거리의 법칙
신사동 가로수 길이 뜬 이유. 광화문 광장을 뜨게 하려면??? 역시나 사람이다. 사람이 많이 모일 수 있게 만들어야 되는데..... 유럽의 성공적인 광장에는 두 가지 법칙이 발견된다고 한다. 하나는 랜드마크가 될 만한 건축물이 있고, 둘째로 광장 주변으로 가게들이 쫙~~~ 있다고 한다. 음미해 볼 구절이다.
13장. 제품 디자인 VS 건축 디자인
기본적으로 건축은 밖에서만 바라보는 조각품이나 그림과는 매우 다르다. 건축은 밖에서 바라보는 시선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안으로 들어가서 밖을 바라보는 관점이 더 중요하다. 전통건축에서는 특히나 그렇다. 병산서원, 소쇄원, 부석사 등은 안에서 밖을 바라볼 때 그 진가를 느낄 수 있다.
14장. 동과 서 : 서로 다른 생각의 기원
그들은 빵을 먹고 우리는 밥을 먹는다. 그들은 건조해서 밀이 잘 자라고 우리는 비가 많이 와 쌀이 잘 자란다. 그들의 땅은 딱딱하고 우리는 무르다. 그래서 그들은 벽 전체를 힘을 받는 부재로 썼다. 유럽 건축은 한마디로 '벽'이다. 우리는 땅이 물러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기둥을 세웠다. 지붕도 박공이다. 동양 건축은 '기둥'과 '지붕'이다.
15장. 건축이 자연을 대하는 방식
우리나라의 정자를 보자. 겨우 기둥과 지붕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자연이 정자고 정자가 곧 자연이다. 그래서 정자에서 보는 경치는 더 할 나위가 없다. 여기서 언니들 좀 불러 가야금 좀 치게 하고 술 한잔 땡기면, 요즘의 지하 골방 룸싸롱보다 백배는 낫다. 책에 그렇게 쓰여 있다. ㅎㅎㅎ
스위스 작은 마을의 경사진 산기슭에 페터 춤토르 Peter Zumthor 라는 건축가가 디자인한 '성 베네딕트 채플 st Benedict's Chapel' 이 있다. 이 교회는 경사 대지 위에 지어져 있다. 전체적인 모양은 타원형 평면의 실린더가 언덕에 박혀 있는 형상을 띠고 있다. 내부로 들어가 보면 나무로 만들어진 평평한 타원형의 예배당이 있다. 그리고 그 예배당 마루와 경사 대지 사이는 비워져 있다. 춤토르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이 교회 역시 건축 재료와 구법에서 높은 완성도를 보이는 훌륭한 작품이다. 규모면에서는 아주 작지만 이 작은 교회는 인간이 자연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 P 343
스위스에 가면 넘들 다가는 융프라우도 가 봐야 하지만, 줌토르 할배가 지은 이 성 베네딕트 교회에 가서 예수님한테 절 한번 하고, 발스 마을의 테르메 발스 Therme Vals 에 가서 온천을 꼭 해보고 싶다. 세계 최고의 건축가가 만든 스파에서의 휴식은 어떨까.....
사진 : 스위스 그라우뷘덴의 성 베네딕트 교회
사진출처 : http://finn-wilkie.tumblr.com/post/110939895264/peter-zumthor-st-benedict-chapel-sumvitg
교수님이자 건축사가 쓴 책이지만, 의외로 책은 쉽습니다. 평이합니다. 사진이나 스케치도 많습니다. 글을 읽는데 도움이 됩니다. 건축과 도시를 주제한 한 글이지만, 사람 이야기가 더 많이 실려 있습니다. 깊이 있는 글은 아니지만, 도시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흥미로운 주제를 발췌했습니다. 술술 잘 읽혔습니다.
사람은 도시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도시는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을 닮아갑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사람들이 도시를 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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