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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이야기

다 같이 돌자 서울 한 바퀴 : 차현호, 최준석의 서울 건축 만담

by Keaton Kim 2015. 10. 27.

 

 

다 같이 돌자 서울 한 바퀴 : 차현호, 최준석의 서울 건축 만담 

 

 

 

따르르르릉~~~~

"나 회산데, 너 본사로 올라올 생각 없냐?"

 

 

이 한통의 전화로 며칠을 고민합니다. 본사로 올라가면 일단 급여가 줍니다. 혼자 살 집도 마련해야 합니다. 매주 집으로 내려오는 차비도 만만찮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싫습니다. 사람 빽빽한 지하철을 타는 게 싫고, 노숙자들 보는 것이 싫고, 공기 탁한 것이 싫고, 표정없는 회색 콘크리트 건물 숲이 싫고, 거리에 온통 생기없는 눈을 가진 사람들을 보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민끝에 OK라고 대답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배울 수 있는 좋은 여건때문이었습니다. '서울'은 내가 배우고자 하는 열의만 있으면, 그런 열의를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 무진장합니다. 그리고 아주 사소한 이유 중의 하나는 가볼만한 건축물이 많습니다. 건물 구경하는 걸 취미로 가진 저에게는 지방에서 역부러 비싼 차비를 들여서라도 와서 볼 건축물이 수두루빽빽합니다.

 

 

(라고 쓰고 최고의 현대건축 20을 찾아보니 인천국제공항, 의재미술관-광주, 미메시스미술관-파주, 그리고 제주도의 포도호텔과 스페이스닷원, 요렇게 다섯개가 지방에 있는 건물이네요. 생각보다 많군요. 최악의 현대건축 20은 천안에 있는 독립기념관을 제외하고는 모두 서울에 있네요. 역시나 대단한 서울입니다.)

 

 

 

 

 

 

책은 건축 일로 밥벌이를 하는 두 중년 아저씨 (저자는 아저씨라는 말을 아주 싫어한다. 그럼 머, 삼촌이라고 해주랴? 아저씨 맞다. 받아들이시라!) 들이 맥주에 치킨을 뜯어며 서울의 거리와 풍경, 그리고 건축물에 대해서 노가리를 까십니다. 근데 그게, 대단한 이빨들이라 상당한 재미를 주기도 하고 신빙성도 있게 들립니다. 술자리의 뒷담화로 건축물이라..... 그러기엔 건축이라는 게 아직은 너무 높은 곳에 있다고 하면서 기꺼이 우리의 안주꺼리로 내려와야 한다고 합니다. 물론 치킨 뜯는 작가가 한 말입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작가들의 글이라 술술 잘 읽힙니다. 저 처럼 집짓는 일로 밥 묵고 사는 전문가?에겐 그냥 장난 같습니다. 라는 건 완전 거짓말이고ㅎㅎㅎ, 저도 몰랐던 건물이 가지고 있는 사연이랄지, 내력이랄지, 머, 여하간 그런 스토리에다 아키텍트의 지성?이라는 약간의 소스와 작가의 터무니없는 상상력이 버물려져 상당히 맛깔나는 글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파주에 있는 알바루 시자의 미메시스 미술관. 가장 실용적인 내부공간을 만들고 보니 예술이 되는 형태의 건축물이 되었다. 고 작가는 말한다. 확인하러 가야겠다.

 

 

 

80년 동안이나 사람의 삶을 담는 그릇이었던 충정아파트. 1930년, 화려한 아파트로 태어나 전쟁 때는 학살 장소로, 광복 후는 흥겨운 파티가 열리는 호텔로, 그리고 수명이 다 할 때 쯤엔 다시 하층민들의 낡아빠진 보금자리로..... 건축이란 삶을 담는 그릇이라는 명제를 완벽히 수행한 건축물.

 

 

 

다 같이 돌자 서울 한 바퀴.....  고향에 있는 애들 다 불러서 한번은 돌고 말테야.... - 서울 성곽길

 

 

 

아빠, 저 우주선은 왜 만들었대여?? 응? 아빠도 잘 몰러. 우째 만들다 보니 우주선이 되어버렸어...... 어쩌다 우주선까지 되어 버린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책은 모두 32개의 꼭지로 되어있고, 두 작가가 번갈아 가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32개의 건축물이 주된 내용이지만, 딱히 건축물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건 아닙니다. 서울의 풍경과 그 풍경이 만들어진 배경, 그리고 그 풍경들이 만들어 내는 표정들에 대한 감상도 재미있게 표현하였구요, 집 짓는 전문가답게 건축으로 시대를 비판하는 예리한? 문구들도 나옵니다.

 

 

내용으로 들어가보면,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온그라운드 스튜디오, 윤동주 문학관, 환기미술관, 안중근의사 기념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등에 대해서는 아낌 없는 찬사를 보냅니다. 왜 찬사를 보낼 수 밖에 없는가에 대한 해설도 잘 나옵니다. 반대로 서울시청사,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청와대, 광화문 광장, 세운상가 등에 대해서는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시원하게 까주십니다. 그 외에도 선유도공원, 한강, 북촌의 골목길, 갤러리 팩토리, 비욘드 미술관, 담양 소쇄원, 마포대교 - 생명의 다리, 김포공항, 숭례문 등이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도성의 둘레는 40리나 되는데 도성을 한 바퀴 빙 돌아서 도성 안팎의 화류를 구경하는 것은 멋있는 놀이이다. 새벽에 출발해야 저녁 종 칠 때쯤에 다 볼 수 있는데, 산길이 깍은 듯 험해서 지쳐서 돌아오는 사람이 많다. - 유득공의 <경도잡지>  P 207

 

 

서울 성곽길 소개에 나오는 글입니다. 유득공의 경도잡지에 나오는, 옛 사람들이 그 길을 돌고 난 후의 감상을 적은 글입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이 걸었던 길을 지금 우리가 걸을 수 있다는 것이, 건축은 '기억을 재구성하는 공간' 이라는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는 좋은 예가 될 겁니다. 정조 시대에 선비들이 걸었던 그 길을 나도 걷고 싶습니다. 굳이 서울로 와서 직장생활을 해야겠다는 사소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