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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이야기

세상이 궁금한 유쾌한 글쟁이의 마지막 책 : 구본준의 마음을 품은 집

by Keaton Kim 2015. 7. 8.

 

 

세상이 궁금한 유쾌한 글쟁이의 마지막 책 : 구본준의 마음을 품은 집

 

 

 

건축에 관한 글을 무척이나 맛깔나게 잘 쓰는 기자가 있습니다. 물론 글로 밥 묵고 사는 사람이니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특히나 그의 글은 술술 잘 읽힙니다. 건축의 전문적인 용어나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쉽게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씁니다. 최초의 건축 전문 기자라는 별명도 달고 다닙니다. 땅콩집을 짓고, 짓는 과정을 책으로 엮어 소위 땅콩집 열풍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습니다. 바로 이 책의 저자 구본준 기자 이야기입니다.

 

 

건축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나 지식들을 그의 블로그에서 눈팅으로 훔쳤습니다. 그는 대단히 박식합니다. 현대 건축 뿐만 아니라 전통 건축, 그리고 해외의 건축물까지 너무나 자유롭게 넘나듭니다. 그러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의 머리속에 들어있는 건축에 관한 이야기들을 쉽고 재미나게, 그리고 겸손하게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이 책은 나온지가 꽤 되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제서야 사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저자에 대해 검색을 해보니,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화면에 떴습니다. 구본준 기자 영면! 그것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출장을 가서 심장마비로..... 향년 46세. 작년 11월의 일이었습니다. 참 인생이라는 것이 무상하고 무상합니다.

 

 

 

잘 가세요 본본.

여태 당신의 블로그 눈팅만 하고

감사하다는 댓글도 한줄 못달았습니다.

세바시에 나와서 강연하신 것도 이제서야 봤습니다.

현장에서 직접 손으로 짓는 것도 건축이지만,

건축에 관한 진솔한 이야기를 널리 알리는 것도

그에 못지 않는 가치있는 건축일이라는 걸

당신 덕택에 깨달았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 너머에서도 언제나 유쾌하시길......

<사진 출처 : 한겨레 신문>

 

 

한겨레 구본준 기자의 블로그

http://blog.hani.co.kr/bonbon/

 

 

구본준 기자의 세바시 강연

https://www.youtube.com/watch?v=TwiafdbBbTU&feature=youtu.be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습니다. 다른 어떤 장르의 문화보다 특히 건축이 그렇습니다. 건축물이 가지는 의미를 알고 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어떤 건축물을 사전 지식 없이도 땅~~ 하는 충격을 받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알고 가면 더 땅땅~~ 하는 감동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소개한 건축물이 특히 그렇습니다.

 

 

 

현진 어패럴이라는 기업을 경영하는 잘 나가는 사업가가 있었다. 두 딸이 있었는데 얼마나 애지중지 했던지, 회사 이름도 딸 이름을 한 글자씩 따서 지었다. 그런데 막내딸이 외국 공부중에 교통사고로 숨졌다는 날벼락 같은 소식을 접한다. 그 슬픔을 이겨 내려, 죽은 딸을 위해 아버지는 도서관을 지어 기증한다. 이진아기념도서관이다. 세상에 아름다운 이야기가 담긴 건축만큼 아름다운 건축은 없다.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이 집을 짓게 했다. 어느 기업도 도와주지 않아, 수십만명의 시민들이 10년 동안 모은 돈으로 지었다. 원래 서대문의 독립공원에 지을려고 했는데, 애국선열들의 명예훼손이라는 이유로 몇몇 단체들이 반대해서 마포 성산동의 주택지역에 지어졌다. 이 집 뿐만 아니라 집을 짓는 과정 자체도 분노 스토리다. 

 

 

 

인간의 욕망이 만든, 그러나 그 욕망으로 무너진 천혜의 요새, 스리랑카의 시기리야이다. 하늘에 떠 있는 성이다. 내가 스리랑카에 간다면 하나는 예전에 같이 일했던 동료를 보러 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건물을 보러 가는 것이다.

 

 

 

인간이 만든 가장 위대한 건축물은? 머 이견이 분분할테다. 피라미드, 페트라, 만리장성, 앙코르 와트 등등... 그러면 인간이 만든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은? 저자는 단언컨데, 타지마할이라고 한다. 타지마할을 지은 샤자한 왕이 그 아들에 의해 죽을 때까지 갖혀 지냈던 곳이 바로 이 아그라포트이다. 그래서 아그라포트는 운명적으로 타지마할과 함께 봐야 그 진가가 드러난다고.

 

 

 

창덕궁은 정자의 경연장이다. 여배우같이 화사한 부용정, 부채꼴의 관람정, 공예품같은 승재정, 왕실의 품격을 보여주는 존덕정, 주위와 가장 잘 어우러지는 소요정, 가장 화려한 정자 청의정, 가장 우아한 정자 태극정, 저자가 최고로 꼽는, 떼어내서 가져가고 픈 애련정까지. 언젠가는 아내와 함께 이 책을 들고 창덕궁의 후원을 거닐러 갈테야.

 

 

 

단순하면서도 햇볕 잘 드는 작은 세칸 집이면 나 한몸 거처로는 충분하리. 역시 고수 선비들이 지은 집이다. 덜어냄의 미학이다. 현대 건축의 3대 거장중의 한명인 미스 반데로에도 Less is More 라고 하지 않았던가. 경북 봉화의 닭실 마을에 있는 충재 권벌 고택의 충재이다. 호가 곧 건물이름이다. 암울한 시기를 내면을 다스리는 가장 충만한 시기로 바꾼 곳. 선비의 꼿꼿함이 이 건물에 서려있다.

 

 

 

그 외에도 정기용 선생의 기적의 도서관, 승효상 선생의 봉화마을 묘역, 가장 불행했던 아파트인 프루이트 아이고, 도동서원과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 등 전통건축, 근대건축, 현대건축을 망라해서 그 속에 얽힌 이야기들을 때론 재미있게, 때론 감동적으로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집들이 그에게 들려준 이야기들을 전해 주고 싶어 이 책을 썼다고 했습니다. 어느 정도의 내공이 쌓이면 집들이 하는 이야기를 알아 들을 수 있을까요? 또 어느 정도의 내공이 쌓이면 그 이야기를 남들에게 전해 줄 수 있을까요? 그게 자그마한? 꿈인데 말이죠.

 

 

이 빌어먹을 노가다! 라고 매일 부르짖으면서도 쉽사리 손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건축에 대한 미련때문입니다. 짝사랑이냐? 그러나 이제는 건축이라는 큰 울타리 속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이 업을 지속해 나갈 수 있다는 걸 저자의 글을 읽으며 느꼈습니다. 그것이 어쩌면 지금하고 있는 일보다 더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큰 깨달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