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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이야기

옛집의 툇마루는 왜 그리도 편안할까 : 함성호의 철학으로 읽는 옛집

by Keaton Kim 2015. 2. 6.

 

 

옛집의 툇마루는 왜 그리도 편안할까 : 함성호의 철학으로 읽는 옛집 

 

 

 

언제부터인가 나에게 여행이란 <답사踏査>가 되었습니다. 그것도 옛 건축물에 대한 답사입니다. 아마도 유홍준 선생의 구라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꼭 그것만은 아닌 듯 합니다. 크던 작던, 옛 건물의 툇마루에라도 가만이 앉아 있어보면, 복잡하고, 꼬이고, 긴장이 되어 있던 맘이 어느새 부드러워지고 평온해집니다.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았을 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더 옛 건축물만 고집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때문에 우리 아이들은 따라가기 싫어서 죽을라고 하지만서두요....ㅋㅋㅋ. 하긴 아이들이 그런 맛을 알 나이는 아니지요.

 

 

한 때는 우리 건축물에 대한 약간의 실망감도 있었습니다. 서양의 저 멋들어진 건물에 대해 보고 공부하고 그러면서, 우리는 왜 그런 건물이 없을까, 우리 건물의 양식은 왜 다 비슷할까... 하는 약간의 자격지심 같은 거 말이죠. 지금은 그런 거 별루 없습니다. 우리 건축물을 잘 모를 때 이야기이고, 지금도 알고는 있으나 못가본 건물, 혹은 내가 아직 모르는 참 잘 지어진 우리 건물이 많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병자호란때 죽어도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던 정온 선생이 낙향하여 죽을 때 까지 지냈던 모리재. 정온 고택에서 차로 10여분 거리지만, 산속으로 올라가는 길은 만만치 않다. 그 위의 사진은 모리재의 대문이자 누각인 화엽루.... 나는 이 마루에 하루 종일도 앉아 있겠더마, 아이들은 10분도 못 참고 내려가잔다. 이넘들에겐 그냥 산속에 있는 옛날집이다. 재미없는..... 그래도 나는 이넘들을 데리고 다시 옛집들을 찾아나선다.

 

 

 

함성호 선생은 르네상스, 로마네스크, 고딕, 바로크 등의 양식으로 구분하는 서양 건축과는 달리 우리 건축에서는 양식으로 시대를 구분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럼 무엇으로?? 한국 건축사는 당대의 지배 이념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고 선생은 말씀하십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 건물이 있는 자리와 주변에 어떤 것들이 있는가 하는 것이 건물이 어떻게 생겼냐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포인트다.. 라는 말입니다.

 

 

한국의 건축은 항상 자연 속에 묻혀 있고 싶어 한다. 조건이 그렇지 못할 때는 일부러 나무를 심어 그렇게 보이도록 하고, 심지어는 돌을 쌓아 그렇게 만들기도 한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항상 주변의 산들을 덮고 있어야 안심이 된다. 어떻게 하면 자연을 닮느냐 하는 것이 한국 건축의 충수다. 왜냐하면 동양철학에서 자연은 그 자체로 안정(자연스러움)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 P 79 -

 

 

우리의 우수한 건축가는 다 학자였습니다. 그것도 성리학자입니다. 독락당과 향단의 이언적 선생이 그렇고, 도산서당의 퇴계선생, 녹우당과 부용동 원림의 윤선도가 좋은 예입니다. 안빈낙도의 정신세계를 강조한 선비들의 영향으로 건물도 화려하고 과시적이기 보다는, 검소하고 소박하고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을 조건으로 지었습니다. 서두에서 우리의 옛집에 가면 마음이 푸근해지는 것은, 어떤 마법이 아니라 이런 이유에서 입니다.

 

 

 

 

나도 그런 집을 짓고 텃밭이나 갈고 책을 읽으며 지내고 싶다.... 아내가 들으면 또 정신빠진 소리라고 일갈을 하겠지요.....ㅎㅎ 그런 소박한 꿈이 있습니다만, 책에 나오는 정약용의 시를 보면 또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 가난貧 - 정약용 >

 

안빈낙도 하리라 말을 했건만,

막상 가난하니 안빈이 안 되네.

아내의 한숨 소리에 그만 체통이 꺾이고,

굶주린 자식에겐 엄한 교육 못하겠네.

 

 

음... 안빈낙도를 하려면 그것도 경제력이 있어야 한다는 성현의 말씀입니다. ㅎㅎ

 

 

책은 우리 건축물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그 건축물을 지은 건축가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 건축가가 살았던 시대의 이야기이도 하구요.... 건축물에 대한 책이지만, 당대 학자와 그 학자의 사상에 대해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송시열과 윤선도의 예송논쟁이라던가, 화니시비 같은, 사실 지금의 상식으로 생각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이지만, 그 시절의 치열했던 지배 논리도 책에는 나옵니다.

 

 

회재의 독락당과 향단, 남명의 산천재와 퇴계의 도산서당, 고산의 세연정과 다산의 다산초당, 그리고 김장생의 임의정, 우암 송시열의 팔괘정과 남간정사, 윤증고택 등이 책에 나오는데, 아직 가 보지 못한 곳은 얼른 가봐야겠다는 조바심을, 그리고 가 본 곳은 또 다른 새로움을 불러 일으킵니다. 아이들이 머라고 하든 말든, 이번에는 추상같은 남명 선생의 절개가 있는 산천재에서 지리산에서 불어오는 이가 시릴 정도로 시원한 바람을 맞아 보고 싶습니다.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이런 류의 책을 쓰시는 분이 더 계십니다. 건축물에 대한 책이지만, 정작 건축물보다는 건축물이 만든 시대와 인물에 훨씬 많은 정성을 쏟는 분, 바로 이용재 선생입니다.  

 

 

사진은 선생의 블로그에서 퍼왔다. 이 사진은 그나마 잘 나오셨다. 대쪽같은 성품이 얼굴에 그대로 묻어난다. 일부 안티들도 있지만, 건축에 대한 선생의 열의와 기개는 존경받아 마땅하다.

 

 

이제는 더 이상 선생의 새로운 글을 볼 수 없습니다. 한창 글쓰기가 전성기인 향년 54세의 일기로 작년 6월에 별세하셨습니다. 선생이 시작한 제대로 된 집짓기도 이제 막 걸음마를 뗏는데.... 왜 그리도 일찍 데려가셨는지....... 선생을 한번도 뵌 적은 없지만, 제 글쓰기의 멘토입니다. 비단 건축분야의 Guru 뿐만 아니라 인생 살이에서도 충분히 롤모델이 될만 한 분입니다.

 

 

하나 있는 딸래미가 고등학교 시절, 선생은 대뜸 딸에게 학교 고만 댕기라고 합니다. 어안이 벙벙한 딸은 왜? 라고 묻습니다. 내가 보니 학교는 니가 댕길만 한 가치가 없다.... 이게 부모가 딸에게 할 말입니까???ㅎㅎㅎ 대신 그 딸과 함께 옛날 건축물들을 보러 댕깁니다. 딸이 너무 가기 싫어하니까 용돈으로 꼬셔서 데리고 댕깁니다. 그 딸은 지금 영국의 어느 대학에서 공부 잘 하고 있습니다.

 

 

선생의 블로그는 한국 건축물의 보물 창고 같은 곳입니다. 특히나 전통 건축에서는 아직 선생보다 방대하고 개성있는 블로그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 블로그에서 몇개의 글을 묶어 책으로도 냈습니다. 인터넷에 딸과 떠나는~~~ 이라고 치면 선생의 저서가 주르륵 나옵니다. 아마도 열 일곱 여덟권의 책을 펴냈을 겁니다. 대표작은 딸과 떠나는 건축여행 1,2,3 입니다. 

 

 

http://blog.naver.com/prologue/PrologueList.nhn?blogId=leecorb

 

 

 

 

 

주말에 어딜가지??? 예전엔 유홍준 선생이 해답을 주셨는데, 요즘은 일본편 쓰신다고 바쁘셔서....ㅎㅎㅎ  그래서 이런 책은 더욱 좋습니다. 주말에 갈 곳이 생깁니다. 상록수 심훈 선생의 생가인 필경사, 그리고 선병국 가옥도 가 보고 싶구요, 해남, 강진 땅 가본 지가 오래 되었는데 김남주 선생 생가를 핑계로 한번 가봐야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10대 정자' 라는 제목으로도 글을 쓸 작정으로 있는데, 그 전에 저 책에 있는 여러 정자들도 가 보고 싶습니다. 어무이와 아부지를 보시고 선생이 명품 건축이라고 극찬을 하신 경주의 호텔 라궁에서도 하룻밤 묵어 보고 싶습니다. 그러려고 돈 법니다.

 

 

선생의 블로그엔 뻔질나게 들어다녔습니다. 글도 사진도 마구마구 실어왔습니다. 그러나 선생의 책은 막상 두권뿐이 없습니다. 지송하구먼유~~~ 선생님. 책, 열심히 사다 읽을께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