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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이야기

집은 곧 문화다 : 주부의 친구의 작아도 기분 좋은 일본의 땅콩집

by 개락당 대표 2015. 1. 9.

 

 

집은 곧 문화다 : 주부의 친구의 작아도 기분 좋은 일본의 땅콩집 

 

 

 

신혼집을 도쿄에서 꾸렸습니다. 완전 도심은 아니지만, 야마노테센 山手線 중에서도 중심인 시나가와 品川 역에서 두 정거장 거리이니, 그래도 꽤 도심축에 속하는 지역입니다. 신밤바 新馬場 라고 하는 이름도 좀 이상한 역에서 걸어서 오분 거리에 있는 조그만 다세대주택 3층입니다. 일본 대부분의 집이 그러하듯, 무척이나 좁은 집입니다. 6장 다다미 방이 하나, 또 그만한 크기의 주방과 거실의 겸용, 그리고 사람 하나 겨우 들어갈 만한 화장실..... 6평 정도의 집이었습니다.

 

 

하지만 신혼부부가 살기에는 조금의 불편도 없었습니다. 더우기 집 바로 앞으로는 실개천이 흐르고, 그 주위로 벗꽃나무들이 줄지어 있고, 멋스런 다리가 있고, 그 다리를 건너면 이름 모를, 그러나 꽤 오래된 듯한 신사가 있고, 집 뒤의 골목길은 책에도 나오는 아주 유명한 시타마치 (下町 : 일본의 서민들이 많이 모여사는 오래된 지역이나 동네) 입니다.

 

 

 

 

오옷.... 요기가 바로 그 추억의 그 동네여......

 

 

집에서 현장 (그 당시 도쿄 출입국 관리국을 지었다)까지 자전거로 십여분 걸렸습니다. 퇴근무렵이면 아내가 자전거를 타고 마중나옵니다. 물론 맛난 저녁거리를 해놓구요.... 중간지점 정도에서 만나 집으로 돌아가 그래서 둘이서 알콩달콩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하고.... 첫째인 산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아내에게 대접받고 살았습니다. 행복하고 애틋하던 시절입니다. 뭐, 딱 거기까지 이긴 하지만... 그 이후로는 쭉 잡혀살고 있습니다. ㅎㅎㅎ

 

 

이야기가 잠깐 샜습니다만, 일본의 주거문화는, 아파트 VS 아파트가 아닌 것 으로 분류되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다양합니다. 그리고 개성도 강합니다. 그것들이 조화를 이루어 아기자기한 도시 경관을 연출합니다. 좁디 좁은 공간을 잘 활용하는 지혜를 보여줍니다. 그런 사례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책입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도쿄 시내 한복판에서 정말 많은, 다양한 단독주택을 만났다는 것이다. 도시가 발전하면 아파트로 주거방식이 바뀔 수 밖에 없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던 터라, 게다가 유럽의 고도시도 아니고 전후 거의 재건된 도시 도쿄였기에, 작지만 하나하나 공들여 지근 단독주택들을 보는 순간 새롭고 놀랍고 부러웠다. '도시의 발전과 단독주택이 이렇게 공존할 수 있구나!'..... 중략......"일본은 어떻게 세계적인 건축가들을 한두명도 아니고 그리 많이 배출할 수 있을까?" 이 의문은 그저 평범한 시민들이 살아가는 작은 주택들을 보면 해결됐다. - 건축가 이현욱의 책 소개글 중에서

 

 

이 책, 그냥 술술 넘어 갑니다. 그림도 많습니다. 전문가(대학때 집 짓는 공부를 전공으로 하고, 집짓기로 십수년 동안 밥먹고 살지만, 스스로 전문가라고 부르기엔 자신이 엄따....ㅠㅠ)의 시각으로는 그냥 다 아는 내용인데, 단지 그것들의 예시가 잘 나와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창의 모양과 위치의 변화로 다양한 효과를 내는...... 그런 부분은 좀 인상적이었습니다.

 

 

책의 저자는 '주부의 친구'라는 일본에서 주부에게 다양한 콘텐츠를 모아 알려주는 여성 생활 전문 출판사이고, '땅콩집'의 설계자이자 저자인 이현욱 건축가가 책을 감수했습니다. 원제는 小さくても居心地のいい家を建てる152のコツ : 작아도 살기 좋은 집을 짓는 152가지 요령...정도 될래나... 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집을 손수 지어보고, 그 과정을 그린 책은 여럿 있습니다만, 그 중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고 인상적인 것을 꼽으라면 이현욱 건축가와 한겨레 신문에서 건축을 전문으로 글을 쓰는 구본준 기자가 같이 쓴 "두 남자의 집짓기" 라는 책과 '불편하게 살자'라고 주장하는 이일훈 건축가와 국어선생님인 송승훈씨가 함께 쓴 "제가 살고 싶은 집은..." 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집에 대한 다른 생각을 잘 보여줍니다. 누구나 아파트를 벗어나 마당 딸린 자기만의 집에서 살기를 원하지만, 여러가지 이유때문에 실현되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책의 두 저자는 그 다른 생각을 직접 실현하고, 해보니 요것이 훨씬 낫더라...라는 것을 책으로 잘 보여줍니다. 그렇기에 '땅콩집'이라는 것이 더욱 화제가 되었습니다. 책에는 땅을 고르는 방법에서 부터 시작해서 집짓기의 알파와 오메가가 잘 나와있습니다.

 

 

 

 

 

단독주택에 살아보니 가장 좋아하는 건 역시 마음껏 뛰어 놀수 있는 아이들이지만, 어른들에게도 다른 의미로 반갑다. '개인공간'이 생겼다. 아파트는 아무리 넓어도 결국 큰 방 하나다. 방문만 열면 아파트 전체가 한 공간이 된다. 아파트 안에서는 식구들 사이의 간격이 너무 좁다. 사람은 각자 가지만의 영역이 필요한데, 너무 밀착되어 살아 오히려 가족간의 친밀도를 낮추는 부작용을 낳는다

 

 

아이들에게 뛰어놀 수 있는 마당을, 아무렇게나 놀아도 되는 다락방을, 여러가지로 재미있는 공간이 복도와 내부계단이 있는 그런 집을 선물해주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어른이 되기 전에 그런 집을 지을 수 있을까요? 맨날 남의 집만 짓다 끝나버리지는 않을런지......

 

 

 

'두 남자의 집짓기'가 실용서에 가깝다면, 이일훈, 송승훈의 '제가 살고 싶은 집은.....'은 조금 철학적으로 접근합니다.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인 송승훈이 이일훈 선생님한테 집 좀 지어주이소 라고 의뢰하자 어떻게 살고 싶은가요? 라고 오히려 건축가가 건축주에게 되묻습니다. 그렇게 집을 짓고자 하는 사람과 집을 짓는 사람간의 소통의 기록이 바로 아래의 책입니다.

 

 

 

 

실제로 책에서도 집을 짓는 과정은 아주 짧게 나옵니다.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한 내용은 어떤 집을 짓고 싶고, 왜 그렇게 짓고 싶으며, 그 집에서 어떻게 살것인가 라는 고민의 과정입니다. 나의 집을 짓고 싶다는 생각은 했어도 그 집에서 어떻게 살겠다라는 고민까지는 잘 하지 않습니다. 자신과 함께 늙어갈, 동반자로서의 집을 지으려면, 그 정도 고민은 충분히 해야 된다고 책에서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완성한 집의 이름은 잔서완석루殘書頑石樓 - 낡은 책이 있는 거친 돌집이다. 멋진 당호다. 사실 저 정도의 우아한 집은 바라지도 않는다. 나의 고민과 애정과 추억이 담긴 작은 집이면 나는 족하다.

 

 

집에 대해서 고민하고, 건축공부를 열심히 해서 건축가를 고르고, 그래서 맘에 드는 집을 짓고, 그 집에서 살고 있는 송승훈 선생이 집을 짓고자 하는 이에게 해 주고픈 말이 책에 나와 있습니다. 집을 짓기 전에 꼭 고민해야 될 부분이라 옮겨봅니다.

 

1. 재료보다 먼저 공간을 고민하길....

2. 큰 통창 대신에, 방에 맞창 내기

3. 데크보다 툇마루 만들기

4. 시공사보다 먼저 건축가를 찾아야....

 

 

조금 더 많은 자료는 아래로 들어가심 됩니다. 제가 찾아보고 싶은 건축가에 대해 쓴 글이 있는데, 이일훈 건축가에 대해서도 좀 써보았습니다.

 

어디까지 가봤니? 울나라 건축물 5 - 찾아보고 싶은 한국의 건축가 10인

 

 

 

지금도 남의 집을 집을 짓고 있는 저로서는 시간이 갈 수록 조금은 초조해집니다. 아이들은 점점 자라고, 정말 나의 집이 필요한 시기는 점점 지나고..... 언젠가는 나의 집을 지을 테지만 - 아무래도, 좀 늦어져서 호호할머니가 된 아내와 둘이 알콩달콩 살, 그런 때가 되어서야 겨우 집을 지을 수 있을 것 같지만..... - 너무 늦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