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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이야기

보다 나은 도시 만들기의 대안 :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

by Keaton Kim 2016. 2. 18.

 

 

 

보다 나은 도시 만들기의 대안 :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

 

 

 

'아파트'는 잘못된 선택이었다.

 

 

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좀 다르다. 여전히 아파트는 지어지고 있고 아마 앞으로도 상당 기간 그러할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도 각종 매체는 수도권 일대에서 대규모의 주택 공급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연일 보도하고 있다. 그중 3분의 2가 아파트다. 아파트의 시대가 갔다면서, 이제 아파트는 안 된다면서, 왜 아직도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아파트만 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을 단 하나만 꼽으라면 밀도다. 주어진 땅에 얼마만큼의 사람들이 살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아파트가 만들어내는 밀도를 비슷하게라도 달성하지 못하는 일체의 대안은 사회적 유용성이 없다고 봐야 한다. 보편성이 결여된, 사회 구성원 중 극히 일부만을 위한 특수해에 불과하다. 단독주택이나 타운하우스, 혹은 땅콩주택과 같은 여러 가지 대안적 주거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은 것은 물론 알고 있으나, 그 혜택을 입는 사람들이 사회 전체로 보면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것으로 아파트를 얼마나 대체할 수 있을까? - 무지개떡 건축 P 7

 

 

 

문제의 핵심은 밀도. 이 밀도를 잘 해결하는, 그렇지만 결코 환영받지 못하는 대표적인 건물의 사진이다. 나는 저기서 땅을 파고, 기초를 치고, 골조를 올리고, 마감을 하고, 준공 검사를 받고, 저 건물에서 살 사람들이 입주를 할 때까지 43개월동안 저 건물과 동고동락을 했다. 세월이 한참 지난 지금 1년에 한두번쯤 저 건물을 지나쳐 가는데, 건축가의 입장에서야 물론 아쉬움이 많겠지만, 내 청춘의 땀이 담뿍 묻어 있는 건물이라 그런지, 쫌 폼난다. 뿌듯하기까지 하다. 아~~~ 이 노가다 근성!!

 

 

 

아하~~ 그렇습니다. 황두진 건축가는 아파트의 최대 장점을 밀도라고 봤습니다. 저는 아파트의 생명력을 경제성과 편리성으로 생각했습니다만.... 여하간, 아파트는 밀도를 잘 해결하긴 하지만, 밀도만 해결합니다. 허름한 도시 가운데 높이 솟은 아파트 단지들은 도시의 흐름을 막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조성된 아파트 단지는 대개 직장과 가까이 있지 않습니다. 출퇴근의 비용이 발생합니다. 물론 환경적 비용도 포함해서 말이죠.

 

 

 

도시에서 밀도 다음의 문제는 복합입니다. 일하는 건물, 잠을 자는 건물이 완전히 분리된 것이 아니라 말그대로 유동인구와 상주인구를 모두 수용하는 건축물이 필요하다고 작가는 말합니다. 그래서 밀도와 복합을 모두 포괄하는 건물을 생각합니다. 일단 5층 정도의 건물입니다. 파리의 예를 들며, 5층 내외의 중층건물로 200%의 용적율을 만들수 있다고 합니다. 암튼, 이 5층짜리 건물에 지하는 주차장과 갤러리, 1층은 까페같은 상업시설, 2층과 3층은 일을 하는 사무실 즉, 업무시설을 넣고, 4층과 5층은 주거시설로 만듭니다. 물론 옥상에는 한옥의 다공성에 따온 옥상마당이 필수구요.... 요게 층층이 다른 색의 떡이 쌓아올려져 만든 무지개떡과 같은 개념이라 무지개떡 건축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중층 고밀도 복합건축 일명 '무지개떡 건축'의 개념도. 뭔가 그럴싸하다.

 

사진 출처 : http://media.daum.net/economic/industry/newsview?newsid=20151225070205899

 

 

 

황두진 건축가. 보기에는 이래도? 서울대 건축과에 예일대 석사 출신이다. 이런~~~  저자는 이 무지개떡 건축이야말로 우리가 살고 있는 회색 도시의 미래라고 말한다.

 

사진 출처 : http://media.daum.net/economic/industry/newsview?newsid=20151225070205899

 

 

 

무지개떡 건축에서 더 나아가 카멜레온 건축으로

 

 

 

20세기 건축의 화두는 기능주의 건축입니다. 아름다움보다 기능의 편리함과 만족을 최우선으로 삼습니다. 미국의 건축가 루이스 설리반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고 했고, 현대 건축의 아부지라 불리는 꼬르뷔 횽님은 '집은 살기 위한 기계이다' 라고 까지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게 기술의 발달로 인해 형태는 전혀 안바뀌면서 기능은 완전히 다른 것들로 채워지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자는 우리 한옥의 대청마루를 그 대표적인 예로 들었습니다. 여름데 낮잠 자기 최고의 장소이고, 또 몇개의 소반과 방석에 식사를 내오면 훌륭한 연회장으로 바뀝니다. 그 대청마루가 요즘은 강연장으로 탈바꿉합니다. 그것도 시청각 장비를 갖춘 아주 A급 강연장으로 말이죠. 같은 장소가 시간대별로 다른 기능을 합니다. 마치 시시각각 몸의 색을 변하는 카멜레온처럼요. 저자는 이런 경향은 점점 더 확산되어 갈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런 카멜레온 건축에서 별도의 이동 없이 우리의 욕구를 모두 충족시키는게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죠.

 

 

 

전통 건축과 최신 기계문명의 접목. 이제 형태는 기능을 굳이 따르지 않아도 된다. 사진은 박영채씨가 찍은 서촌 애지헌이다. 황두진건축사사무소가 설계했다.

 

글과 사진 인용 : 무지개떡 건축 P 197

 

사진 출처 : http://media.daum.net/economic/industry/newsview?newsid=20151225070205899

 

 

 

우리의 도시를, 특히나 구도심에서, 너저분한 것들을 깡그리 밀어버리고 번듯한 아파트촌을 만들게 아니라, 이 중층 고밀도 복합의 무재개떡 건축이 소위 말하는 이해관계자를 모두 만족시키는 대안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무척이나 솔깃?합니다. 그리고 당장은 이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할 만한 실력이 저에게는 없습니다. 책을 덮고 나서 차차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저자는 이걸 무려 30년 동안이나 고민해왔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론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직접 그런 건축을 설계하고 지었습니다. 심지어는 책의 말미에 무지개떡 건축 지수를 체크할 수 있는 항목까지 만들었습니다. 다른 형태의 모든 주거를 아파트가 삼켜버리는 시대입니다. 그 기세는 아직도 맹렬하고 꺾일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이런 대안을 제시하고 직접 실현하는 모습은 참 반갑고도 반갑습니다.

 

 

 

 

 

 

개인의 행복 추구가 대세인 시대에, 가장 쉽게 지금보다 좀 더 행복해자는 방법중의 하나는 출근 시간을 더 줄이는 것이라고 합니다. 작가는 그 무지개떡 건물에 자기의 집과 사무실이 같이 있습니다. 거의 환상적입니다. 서로 다른 욕구를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그것들이 모여 하나의 군락을 이루면, 결국 걷고 싶어지고 머물고 싶어지고, 어울리고 싶어지는 공간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무지개떡 건축의 가치입니다.

 

 

 

책의 '닫는 글'에 건축으로 밥 먹고 사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격하게 공감할 만한 내용이 있어 옮겨 적습니다. 책을 통해서 제가 느끼는 바이고, 또 작가의 바램이기도 합니다. 물론 저도 같은 바램입니다. 진심으로.

 

 

 

남북한 모두 근대화 이후 한반도의 바람직한 정주 환경에 대한 기본적 모델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다. 남한은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바람직한 환경은 무엇인가에 대해 심각한 고민 없이 온 국토를 경제개발을 위한 산업기지로 전락시켰다. 반면 북한은 지속적인 경제개발 자체가 좌절되어 정주환경에 대한 고민을 제대로 하지 어려운 상화이라고 하지 않는가. 언젠가는 남북이 통일되거나 적어도 평화롭게 교류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그때 상대적으로 개발이 덜 된 북한 지역을 대상으로 그간 남한에서 해오던 무수한 시행착오를 더는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제는 있는 것은 잘 고치고 새로 짓는 것은 정말 신중하게 계획하고 만들어야 할 때다. 그래서 남북한 모두 한반도의 풍토에 맞는, 그리고 사회 구성원들에게 인간적인 삶을 누릴 수 있게 하는 정주 환경을 제공하는 것, 그것이 한반도의 건축가로서 내가 갖고 있는 가장 큰 꿈이다.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그 꿈을 나눌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