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땅에 이런 건축이 있었구나 : 김봉렬의 가보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
우리 동네에 있는 은하사란 절입니다. 나름 유명해서 오래전에 '달마야 놀자' 라는 영화도 여기서 찍었습니다. 오래된 절집은 아니지만 들어가는 입구의 길은 몇번을 가도 새롭습니다. 가끔 산책하러 들러곤 합니다. 나에게는 언제라도 가보고 싶은 곳이자 머물고 싶은 곳입니다.
휘어진 나무들을 기둥으로 또는 대들보로 그대로 사용한 예는 한국 건축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고창 선운사 만세루의 대들보들은 아름드리 휘어진 나무들이다. 심지어는 두 개의 나무를 이어붙인 것도 있다. 실내로 들어가면 혼통 휘어지고 거친 들보들로 단정한 맛이라고는 없다. 그러나 여기에는 원초적이고 역동적인 감동이 가득하다. 섬세하게 단장된 다른 건물들과는 또 다른 미학이 존재하는 것이다.
자연을 인간의 모범으로 삼았던 노자의 철학에 의하면 "크게 완성된 것은 마치 찌그러진 듯하며, 크게 곧은 것은 마치 굽은 듯이 보이며, 크게 정교한 것은 마치 서투른 듯이 보인다 (大成若缺 大直若屈 大巧若拙)" 고 했다. 자연의 모습이 바로 그런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전통 건축이 가졌던 모습도 그런 것이었다. - 1권 P 144
황매산 영암사에서의 아내입니다. 한껏 포즈를 잡았지만 너무 멀군요....ㅎㅎ 깊은 산중에 있지만 영암사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막히지 않았습니다. 뒤로는 황매산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앞의 광경은 탁 트였습니다.
영암사의 쌍사자 석등을 배경으로 찍은 막내 아들입니다. 석등을 받치고 있는 쌍사자의 엉덩이 만큼이나 여전히 귀엽고 앙증맞지만, 이젠 아버지를 따라 선뜻 답사에 나서기를 꺼려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영암사가 만들어질 무렵의 절집 FM은 불국사였습니다. 불국사를 따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불국사는 평지이고 영암사는 황매산 골짜기입니다. 절을 짓는 주체도 귀족이 아니라 호족이었고, 그래서 형식은 더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화려하고 해학적인 조각과 장식이 가득한 폐허입니다. 저자는 이것을 자유로운 매너리즘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건축이란 건물과 건물들로 이루어지는 전체적인 공간적 관계다. 부석사가 아름다운 것은 무량수전 때문이 아니라 주변의 여러 건물들과 잘 조화된 관계, 더 나아가 웅대한 자연과 한몸을 이루고 있는 석축과 건물들의 관계에서 오는 감동 때문이다.
이처럼 건축은 전체적이며 집합적이다. 건물은 건축의 부분일 뿐, 건축 그 자체는 아니다. 특히 한국의 가람들에게 건물은 하나의 방에 불과하다. 대웅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불당이며, 산신각은 산신을 모신 작은 방이자 건물이다. 방을 보고 건축이라 하지 않듯이, 대웅전이나 산신각 건물을 건축이라고 보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한 그루 한 그루의 나무가 숲을 이루지만, 나무가 곧 숲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건물에 집착하면 건축은 온전한 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 1권 P 180
법주사 팔상전과 산과 들입니다. 이제는 많이 자라 때로는 의지가 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어딜 함 델고 가려해도 이제 저거가 더 바쁜 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도 같이 가자고 하면 투덜거리면서도 따라나섭니다. 나에게 가장 친한 친구들입니다. 저희들은 아마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ㅎㅎㅎ
속리산 법주사에서 가장 중요하고 유명한 건물은 역시 법주사 팔상전입니다. 현존하는 유일한 5층 목탑이고, 부처의 일생을 8가지 장면으로 그린 팔상도가 위의 사진처럼 팔상전 안에 모셔져 있습니다. 가운데 4개 기둥을 묶어서 하나의 구조체를 만들었고 다른 기둥들도 이 구조체와 연결하여 안정성을 더했습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영웅 사명대사가 이 목탑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완성하기까지 22년이 걸렸댑니다. 길어야 2~3년이면 끝날 일을 이렇게 긴 세월이 걸린 이유는 당연히 임난후에 이 정도의 목탑을 세울 돈이 없어서 입니다. 당대 최고의 스님이었던 사명과 벽암이 앞장서서 그나마 겨우 완성이 되었습니다. 오래 걸리다 보니 각층의 구조형식도 다릅니다. 그 만큼 중요했고 그 만큼 절실했고 그 시대의 최선이었습니다.
한국의 건축은 이러한 기후와 지형의 불리함, 재료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룩한 현명한 대안이었다. 장애의 조건이 다른 만큼 이웃 중국이나 일본 건축과 뚜렷하게 차별되는 까닭이기도 하다. 적절히 휘어진 처마선이나 민흘림 된 기둥들이 변형되기 쉬운 한국 소나무의 성질을 잘 극복한 기법이라면, 불국사 석가탑과 같이 추성적이고 미니멀한 석탑의 조형은 세부 가공성보다 전체적인 중량감이 뛰어난 한국 화강암의 성질을 잘 활용한 창작품이다.
가파른 경사 지형과 유기적 일체를 이룬 영주 부석사의 석축들은 산지가 많은 한국적 지형을 오히려 장점으로 승화시킨 성취였다. 추위와 더위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 온돌과 마루를 한 집에 들여, 세계에서 유일하게 두 계절을 극복한 집이 한옥이다. - 2권 P 102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 만나게 되는 창녕 관룡사로 들어가는 돌로 된 산문입니다. 이 문 하나만으로 뭔가 범상치 않습니다. 근데 마눌님은 거기서 머하시능교??
'꽃 중의 왕' 이라는 화왕산이 관룡사의 배경입니다. 철쭉이 유명합니다. 저 너머로 보이는 게 병풍바위입니다. 사진은 약사전입니다. 중생의 몸의 고통을 덜어주는 약사여래를 모신 법당입니다. 건물이 뭔가 좀 이상하지 않나요? 네, 맞습니다. 지붕이 참 큽니다. 완전 가분수 건물입니다. 1칸 짜리 소박한 건물에 비해 맞배 지붕이 하도 커서 뒤집으면 정말 배가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과감한 지붕 내밀기는 고려시대 양식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이 건물도 몇 안되는 고려시대 건물이라 추정한다고 합니다. 근데 우리 딸은 거기 앉아 머하는 거시여??
창녕 관룡사의 하이라이트 용선대입니다. '용선'이란 '반야용선'의 준말로 이승을 떠나 극락세계에 왕생할 때 그 무한한 시공간의 바다를 건너 극락으로 태워가는 진리의 배를 뜻한다고 합니다. 그 배를 닮은 바위라 용선대라고 합니다. 이 용선대에 꼿꼿이 앉아 계시는 부처님이 바라보고 계시는 곳은 극락정토일까요? 부처님이 바라보는 곳은 저도 함께 바라봤지만 보이는 건 산과 하늘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막내이,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ㅎㅎ
건물의 시공과 소멸 과정도 마찬가지이다. 땅을 다진 후 초석을 놓고 기둥을 세우며, 그 위에 지붕을 얹고 벽을 쳐서 뼈대를 완성한다. 그 다음은 단청을 입히고 장식을 달아 건물을 치장한다. 무너질 때는 정반대의 순서이다. 색칠과 장식이 먼저 벗겨지고 지붕이 내려앉으며, 기둥이 쓰러지고 벽이 넘이진다. 그러면 땅 위에는 초석과 기단만이 남아 흔적을 남길 뿐이다.
돌과 벽돌로 쌓은 서양 건축물은 무너져도 벽이나 기둥의 많은 부분이 남아 있지만, 땅 위에 나무 구조물을 단순히 올려놓은 동양 건축물의 폐허에 남아 있는 것이란 그 뿐이다. 그래서 서양 건축의 폐허는 좀 더 입체적이고, 반면 중국계 건축의 흔적은 평면적이다. 그 모든 것이 사라진 황량한 폐허는 옛 사람들이 가람 터를 잡고 어떤 건축을 앉힐 것인지 생각을 시작할 때 대했던, 바로 그 처음의 광경인 것이다. - 2권 P 195
'천불천탑'이라 불리는 화순 운주사입니다. 탑과 부처의 모양과 크기가 다 제각각입니다. 누가 왜 이곳에 이런 거대한 서방정토를 건설했는지는 아직도 수수께끼입니다. 다만 고려시대 몽골에 대한 항쟁이 치열하게 진행될 무렵, 부처의 힘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민중의 바램이 탑과 부처로 현신했다고 추정할 뿐입니다.
요렇게 생긴 탑은 오직 운주사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가늘고 뾰족한 탑에서부터 사진에서 보는 둥근 탑, 석탑안에 두 분의 부처님이 등을 맞대고 있는 석조불감까지..... 탑 뿐만 아니라 불상도 할배불상, 아재불상, 아이불상 등 그야말로 탑과 불상의 보고입니다. 근데 그 생김새가 해학적이고 겸손합니다. 자신의 독특함을 결코 자랑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와불이 일어서는 날 새로운 세상이 열리게 된다' 라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운주사 와불입니다. 언젠가능 일어날까요? 그렇게 사람들은 빌었을 겁니다. 이 와불, 한쌍의 부부 불상입니다. 사이가 참 좋게 보입니다.^^ 부처님도 마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대단한 해학입니다. 운주사는 불상과 탑의 야외 전시장입니다. 골짜기 전체가 가람이며 법당입니다.
책은 관조 스님의 사진에서 출발합니다. 그 사진에 김봉렬 교수가 글을 붙였습니다. 관조 스님이 머리말에도 밝혔듯이, 절에 갈 때마다 참 좋은 건 알겠는데 왜 좋은지 애써 찾으려 하지 않았는데, 이 책은 그에 대한 해답을 건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렇다고 설명과 해석의 책이라고 하기는 곤란합니다. 사진에 담긴 깊이와 감동, 문장이 주는 절제와 솔직함이 있습니다.
1권과 2권을 합쳐 마흔여개의 가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책 머리에 '우리 땅에 이런 건축이 있었구나' 라고 적혀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정말 '우리 땅이 이런 건축이 있구나' 라고 느껴졌습니다. 책을 읽지 않고 가도 절은 충분히 아름답고 좋습니다. 책을 읽고 가면 절은 더욱 아름다와지고 절의 건축물은 훌륭해 보입니다.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가 볼 곳이 마흔여곳이 생겼습니다. 설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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