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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이야기

감응의 건축은 어떻게 완성되는가? : 정기용의 감응의 건축

by Keaton Kim 2016. 6. 12.

 

 

 

감응의 건축은 어떻게 완성되는가? : 정기용의 감응의 건축

 

 

 

나는 이 책을 건축가들이나 건축학도들만이 아니라 오히려 대한민국의 건축직 기술직 공무원들, 나아가서는 크고 작은 공공건축에 관여하는 모든 공무원들이 읽기를 바라며 특히 지방단체장인 시장 군수는 물론 지자체의회 의원들도 주의 깊게 애정을 가지고 읽기를 바란다.

 

 

그렇게 해서 농촌과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높이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는 방도를 찾고, 지혜를 모으기를 바란다. 전환기의 농촌문제는, 또한 도시에 사는 우리 모두의 문제와 맞닿아 있음을 깨달으면서 말이다. (p.5)

 

 

 

 

 

 

정기용의 무주 프로젝트

 

 

무주 공공건축 프로젝트 1996 ~ 2006 건축가 정기용

 

 

마을회관, 면사무소(주민자치센터), 공설운동장, 군청, 재래시장, 청소년수련관, 곤충박물관, 향토박물관, 천문과학관, 농민의집, 된장공장, 보건의료원, 종합복지관, 노인전문요양원, 공설운동장, 공설납골당, 버스정류장.....

 

 

 

'감응의 건축'은 정기용 선생이 무주의 산골짝에서 돈도 안되고 명예도 안되는 공공건축에, 자신이 건축가로써 자신이 가장 잘 나가던 10년의 세월을 쏟아부은 기록입니다. 그 10년 동안 크고 작은 공공건축물 30여개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그에 대한 선생의 체험과 생각과 결과물을 정리하였습니다. 책은 2008년에 나왔고, 제가 책을 읽은 것도 꽤 오래전의 일입니다.

 

 

무주에 있는 선생의 작품은 이제 1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초기 작품들은 20년이 다 되어갑니다. 시간히 흘러 녹이 좀 슬기도 했을, 나이를 먹어 어딘지 모르게 변화되었을 그 작품들을 보고자 길을 나섰습니다.

 

 

 

 

누구든 좋은 땅을 보면 그 땅에 '거주하고 싶다'라든가, 그 땅을 '갖고 싶다'라는 유혹을 느낀다. 필자 나름대로 안성면을 소유하는 방식은 이 땅을 오랫동안 보존하는 길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안성면이 놀라운 또 다른 이유는 우리에게 이야기를 걸어오는 특별한 풍경이 위안과 동시에 놀라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마치 "나 안성면이 한반도에 남은 마지막 땅인데 너 잘 만났다" 라고, "유일하게 남아있는 나를 좀 잘 지켜다오!" 라고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건축가들은, 쉽게 말하면, 땅을 바라보고 교감하는 능력을 키워온 사람들이다. 필자에게도 마찬가지로 땅을 예사롭게 보지 않는 독특한 판단력이 축적되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이 건축가들에게는 우연한 만남이지만, 안성면에 펼쳐진 흔치 않은 땅과 필자 사이의 교감은 어떤 면에서는 필연적이었는지도 모른다. 마치 한 남자가 평생 그러워하던 여인과 우연히 처음 만났을 때처럼 번갯불이 튀는 듯한 사건이라고 할까? 그런 정도의 열정적인 교감이 안성면과 필자 사이에 이루어졌다고 기억한다.

 

 

바로 이것이 한 건축가를 10여 년 동안 무주에서 일하게 한 계기다. (p.28)

 

 

 

 

"할매, 면사무소를 지을라는데, 머 필요한 거 엄는교?"

"돈 디리가 면사무소 새로 짓지말고 목욕탕이나 하나 지어 도고"

 

캐서 만들어진 안성면사무소의 목욕탕이다. 예전에 책을 읽을 때, 저 목욕탕에서 목욕 함 해보고 싶다... 라고 생각했다능.... 주말이라 그런지 문은 닫겨 있었다.

 

 

 

 

세계 최초의 면사무소 목욕탕. 짝수날은 여탕으로, 홀수날은 남탕으로 운영된다고... 지금도 계속 운영하는 지는 잘 모르겠다. 주민들의 흔적을 찾기는 어려웠다.

 

사진 출처 : 월간 스페이스 매거진

 

 

 

 

면사무소로 들어가는 진입로. 소나무가 있는 구도가 운치가 있다. 사실 목욕탕을 제외하고는 면사무소는 평범했다. 하지만 진입로와 요런 구도는 아무래도 좀 독특하다.

 

 

 

 

천천히 면사무소를 둘어보았다. 책에 나와 있는 선생의 글을 보면 아주 천천히 걸었다. 면사무소가 바라보는 안성면의 들판을 나도 같이 바라보며 담배도 한대 태우고. 세월의 때가 이제 많이 묻어, 선생의 열정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선생의 작품으로 보러 나는 여기에 왔고, 세월이 흘러도 나 같은 이가 있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너거뜰은 햇볕 피할 수 있는 본부석에 앉고 우리 백성들은 땡볕에 앉아야 되는데 당신 같은면 오겠냐?" 이런 주민들의 반응을 해결하기 위해 탄생한 등나무운동장. 서울에는 잠실운동장이 있고 무주에는 등나무 운동장이 있다.

 

 

그리고 특별하게 무주에서 배우게 된 중요한 사실은 바로 사람과 식물과 시간이라는 요소에 관한 것이다. 이 세 가지는 어떻게 보면 무주 프로젝트의 핵심을 이루는 큰 줄거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축은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과 식물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지, 건축가가 처음부터 다 건축을 완성시키는 것이 아니다. 바꿔 말하자면, 사람들의 삶은 변하고 식물은 자라난다. 변화하는 사람들의 삶과 식물의 삶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정지된 건축은 생명력 있는 건축으로 전환된다. 이것이 바로 건축을 지속 가능케 하는 힘이다. (p.43)

 

 

사람과 사람이 감응하고 자연과 사람이 감응하는 감응의 건축 표본이다.

 

 

 

 

이제 변화된 무주시장에서 무주 읍내의 서쪽 끝의 길은 시장 건물 속으로 침투하고, 햇볕을 차단하는 차양과 큰 그늘을 만드는 천막도 펼쳐져 있다. 막혀 있던 길이 열리고 시장 바닥과 벽체가 단정하게 벽돌로 교체되면서, 그 옛날 버려진 창고 같던 건물들이 새롭게 변신한 것이다. 밤에는 적절히 조명등이 켜지면서 시장을 찾는 사람에게 즐거움을 더해 준다. 기본적으로 시장의 환경을 최소한으로 개선하는 일은 그 자체로도 필요할 뿐만 아니라 중요한 일이 아니겠는가. (p.162)

 

 

 

 

무주 시장이다. 장날이 아닌 날의 휴일의 시장은 한가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시골시장 풍경이었다. 선생의 손길이 미치기 전의 상태와 새로 단장한 시장을 보지 못해서 지금의 이 시장 풍경이 어느 정도의 위치에 와 있는 가늠하기는 어려웠다.

 

 

참고로 무주 시장에 가면 맛난 순대와 순대국이 있다.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은 터라 다시 먹기는 그래서 좀 싸들고 집에서 먹었다. 맛났다. 시장에서 직접 먹었으면 훨씬 더 운치도 있고 맛도 더했을테지.

 

 

 

 

무주 서창마을 적상산 기슭에 있는 향토박물관. 적상산은 가을의 단풍이 여인의 붉은 색 치마를 두른 것 같다 하여 赤裳山이다. <조선왕조실록>이 오랜 기간동안 적상산 사고에 보관될 만큼 예사롭지 않은 땅이다. 선생은 그 땅에 건물을 짓는다면 건축이 너무 두드러지지 않으면서 땅을 최소한으로 사용하고, 어설프게 조화롭기보다는 공간의 영역을 확실하게 구분하는 건축으로 설계하고 만들었다.

 

 

사람들로 하여금 박물관이 그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적상산 기슭의 전체 풍경과 총체적 관계를 맺는 건물로 인식되게 하였다. 이 점이 향토박물관 건축의 가장 중요한 기획 의도라 할 수 있다. 향토박물관의 주인은 누가 뭐래도 적상산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계하다가 여러 문제에 봉착했을 때마다 필자는 적상산에 물어보곤 했다. (p.212)

 

 

 

 

그 향토박물관은 이제 없어지고 개인의 갤러리로 변했다. 건물도 곳곳에 때가 묻었으며 만들었을 때의 작가의 의도는 많이 퇴색되었다. 책 속의 사진과 같은 건 이 건물앞에 있는 큰 나무뿐.

 

 

 

 

선생은 건물이 적상상의 전체 풍경을 해칠까 염려해서 그토록 조심해서 접근하였건만, 이 건물 맞은 편엔 꽤 대규모의 팬션이 들어섰다. 선생의 건물은 이미 닳고 닳아 설계의 의도와 완전이 다른 용도, 다른 건물로 사용되고, 주위의 건물은 적성산 풍경중의 하나가 아닌 자신이 주인공인양 외양을 뽐내고 있다. 선생이 이 몰골들을 다시 못보시는게 다행이다. 여기의 주인은 이 건물이 선생의 작품이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건 아닌지.....

 

 

 

 

무주 태권도공원이 개관하고 나면 아마도 1년에 수백만 관광객이 찾아올 것이다. 그 중 10분의 1쯤은 이 무주 IC 만남의 광장에 와서 구경하고 즐기는 상상을 해본다. 태권도공원이 완성될 무렵이면 나무와 꽃도 충분히 자라나서 제구실을 다할 것이고, 무주 공설운동장처럼 건축은 인프라가 되고 자연이 주인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만남의 광장을 자연의 광장으로 인식하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옥외조경 계획이 중요할 터인데, 그 일을 주관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로 정성을 다해 주기를 바란다. (p.253)

 

 

 

 

책에서 보이는 이 광장만의 특징인 긴 회랑은 상인들이 가게 앞 공간을 자기 것으로 쓸 욕심에 가게 확장의 기둥으로 요긴?하게 쓰였다. 아무렇게나 붙인 간판들은 건물의 특색을 모두 가렸다. 완공 될 당시는 꽤 독특한 광장이었을텐데, 지금은 흔히 볼 수 있는 도로의 휴게소의 하나로 전락했다.

 

 

 

 

그 옆에 또 뭘 지으려는 것인지, 이렇게 준비중이다. 건축물은 설계자의 손을 떠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완성된다. 건물을 어떻게 짓느냐도 중요하지만, 지어진 건물을 당초의 의도대로 잘 사용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시간이 흘러 이 광장에 많은 사람이 모여 그 사람들이 의미있는 공간으로 여겼으면 하는 선생의 바람은 무참히 깨졌다. 이 공간은 더 이상 의미 있지도 않고 사람들도 모이지 않는다.

 

 

 

 

무주 농민의 집 옥상에는 농토를 새롭게 내려다볼 전망대가 있고, 전망대와 1층 홀의 로비 공간은 무주 읍내를 향해 건물의 몸체와 틀어져 있다. (p.231)

 

 

지어졌을 때의 사진과 현재의 모습이 가장 가까운 건물이다. 작품이 온건히 잘 사용되고 있어 기분이 좋았다.

 

 

 

 

무주 추모의 집 전경은 인삼밭처럼 경사진 면이 반복되고 뒷산과 어긋나지 않게 안정적으로 배치되었다. (p.289)

 

 

 

 

그래서 필자는 건축의 형식은 인삼밭에서 받았지만 실제로는 이 세상에서 가장 밝은 납골당을 목표로 했다. 때로는 죽은 영혼이 일어나 자신이 살던 땅, 무주를 바라볼 수도 있는 장소, 그래서 옛날 뒷동산의 묘지들처럼 삶과 끈끈한 관계가 있는 납골당을 만들고자 했다. 산 사람들이 찾아가기에 어둡고 침침하고 죽음의 냄새가 처연하게 묻어나는 곳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행복감까지도 느낄 수 있는 경건한 장소가 되기를 원했다. 산 자와 죽은 자 모두 자신이 살던 땅을 새롭게 조망하고 서로 행복하게 헤어질 수 있는 장소, 그리고 다시 재회할 수도 있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밝은 집"을 떠올린 것이다. (p.288)

 

 

 

 

납골당 내부를 볼 수는 없었지만, 천천히 건물과 그 주변을 둘러보았다. 납골당에서 바라보는 무주의 산과 논과 개울은 좋았다. 선생이 바라봤을 그 논과 산과 개울이었고 그건 그리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건축가는 사회적 조절자 Social Coordinator

 

 

 

건축가는 해결사가 아니라 변화하는 다양한 현재적 삶을 더 잘 조직하기 위해 여러 분야를 이해하고, 매개하고, 조절하고, 조합하고, 그러면서 판단하고, 번역하고, 해석하고, 형태화하는 사람이다. 즉, 끊임없이 자기 혼자만의 상상력에 의존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 이외의 수많은 전문가, 수많은 사람, 기술, 경향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하는 독특한 전문가이고 조절자다. 한마디로, 건축가는 여러 곳에 감응하는 열린 사람인 것이다. (p.306)

 

 

 

선생이 무주에서 한 일은 무주의 사람과 자연과 역사 등의 모든 것을 코디네이팅해서 번역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 번역한 작품을 읽는 여행이었습니다. 그 작품들은 온전히 잘 남아서 아직 그 기능과 형태를 잘 유지하는 것이 있는 반면에, 비틀어지고 왜곡되고 훼손되어 탄생했을 때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있는 것도 있었습니다. 감동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건축은 건축가의 손을 통해 탄생되지만, 시간이 흘러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과 주위의 자연에 의해 완성됩니다. 건축의 완성은 우리 손에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