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건축학 개론서 : 서현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저 건물은 멋있는 겁니까?"
이 질문은 잘못된 것이다. 잘못되어 있지 않다면 위험하다. 이 질문의 대답은 질문자 스스로 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두 눈으로 보아야 한다. 대상의 감상과 판단은 스스로 하여야 한다.
건축의 가치은 멋있다고 표현될 수 있는 것 너머에 있다. 건축은 우리의 가치관을, 우리의 사고 구조를 우리가 사는 방법을 통하여 보여주는 인간 정신의 표현이다. (p.321)
사진 출처 : SPACE Magazine
사진 출처 : http://badabooks.tistory.com/299
김옥길 기념관은 콘크리트 건물이다. 콘크리트로만 만들어진 건물이다. 아니 콘크리트와 빛과 그림자로 이루어진 건물이다. 이것은 건축가의 집요한 작업 결과물이다. 건축가는 창틀조차 거부하고 콘크리트 벽을 파낸 홈에 유리를 직접 끼워 넣도록 했다. 간단해 보이는 이 선택은 설계와 시공 과정에서 엄청난 치밀함을 요구한다.
창틀 없는 유리창은 콘크리트의 순수함을 부각시킨다. 그리고 실내로 들어오는 빛의 모양도 그만큼 말끔하고 명료하게 만들어준다. 우아하면서도 박력 있는 이 건물의 아름다움은 콘크리트, 빛, 그림자의 순수함을 통해 구현된 것이다. (p.196)
응? 김옥길 기념관이라고? 누구신지? 고 김옥길(1921~1990) 여사는 이화여대 전 총장이자 문교부 장관을 지낸 한국 여성계의 거목이라고 나와있다. 조금 더 살펴보니 연세대학교 명예교수인 김동길 박사 그래, 그 김동길 맞다. 가 누님을 기리기 위해 건축가 김인철에게 의뢰해서 만든 작품이다. (음... 그래서.... 역시나.... 김인철 선생은 논현동에 가면 동그란 빵구멍이 슝슝슝 난 명물 어반하이브를 만드신 분이다.)
건물 이름은 기념관이지만, 기념품이나 전시물은 하나도 없다. 사람들과 차 마시기를 좋아하는 고 김옥길 여사의 뜻을 받들어 작은 찻집으로 운영되고 있다. 위치는 이화여대 후문 근처라고 한다. 독특한 외관도 외관이지만, 내부 공간에서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앙상블은 어떨까? 저 곳에서 차라도 한잔 마시며 공간의 변화를 느끼고 싶다.
건축 서적 코너에서 문득 이 책이 눈에 띄었습니다. 아, 참 오래전에 읽었던 책인데.... 내용은 기억이 하나도 안나고 재미있게 읽었다는 기억만이 남아있는 책입니다. 스윽~ 한번 훑어보고는 바로 샀습니다. 어떤 내용인지, 왜 재미있었는지... 그런게 궁금했더랬습니다.
완독하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습니다. 풍부한 그림과 다양한 사례로 지루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책은, 말하자면 건축학 개론서입니다. 공간을 만드는 것부터 책은 시작합니다. 그리고 건축을 이루는 부재들, 기둥 벽 지붕 바닥에 대해 말하고 건물을 지탱하는 구조와 재료(돌과 벽돌, 나무와 철, 유리 등이 등장한다. 콘크리트의 끝없는 억울함이라는 소제목 편이 있는데... 무척 공감되었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건축에 관한 이야기는 도시로 확장되고 이데올로기와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대표 선수에 대한 자세한 소개가 이어집니다.
사진 출처 : http://blog.daum.net/hellopolicy/6984106
건축은 공간을 다루는 예술이라고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회화가 예술이라고 하여도 모든 그림이 예술 작품이 될 수는 없다. 공간을 다루었다는 사실로 모든 건축이 예술 작품으로 불릴 수도 없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공간을 이렇게 다루면 예술이 된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건물이다. 그 안에 보관된 내용물 못지 않은 가치를 지닌 작품이다. (p.265)
저자가 소개한 훌륭한 건축물 첫번째 대표 선수로 나오는 것이 바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이다. 김태수 선생과 김인석 선생의 작품이다. 건축가는 의도적으로 건물을 숨겨 놓았다고 한다. 진입로를 돌아돌아 우회하게 만든 것이다. 이는 건물의 배경이 되는 것이 푸른 산과 하늘이기 때문이라고 책은 설명한다. 건물을 보기 전에 자연을 실컷 봐라고, 그 전까지는 건물은 안보여준다고. 마침내 진입로의 끝에 나타난 미술관은 보석처럼 시리게 빛난다고....
최근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개관하여 과천관, 덕수궁관과 함께 미술관 삼형제가 되었다나 어쨌다나....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옛 기무사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살려 미술관으로 재탄생시키기도 했다는데.... 아~~ 가볼 곳 많구나!!
저자 서현이 설계한 주택. 제주 <해심헌> 2007년 제주건축문화대상 수상작
사진 출처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leecorb&logNo=120160371277
책에도 소개된 저자의 작품이다. 사진은 오랜만에 이용재 선생의 홈페이지에서 퍼왔다. 서현 선생과 이용재 선생은 일면식이 있었던 사이인 모양이다. 외장재가 현무암이다. 이주 독특하다. 건축주는 저자의 지인인데, 어떤 요구사항도 없이 건축가에세 100% 위임했다고 한다. 건축가가 만든 집에 맞춰 살겠다는 요지다. 내공이 엄청나다.
저녁이 되면 얇게 오려 붙인 현무암의 공극 너머로 빛이 번져 나오면서 바닥에 깔린 물에 반사된다고 한다. 역시 건축은 디테일이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가 대학 졸업반 정도 되었을 겁니다. '옳나구나, 니가 바로 건축학 개론이구나!' 라고 느꼈을 게 분명합니다. 그 시절 책을 읽고 포스코센터의 투명함을 느끼려 직접 갔던 기억도 다시 떠오릅니다. 하지만 그때의 감상과 20년 가까이 흐른 지금의 감상이 같을 리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지금도 이 책은 훌륭한 건축학 개론서라는 겁니다. 20년 간 베스트셀러가 될 만 합니다.
서두에서 건축은 인간 정신의 표현이다 라는 장엄한 문구를 옮겨 왔습니다만, 사실 모든 건축이 그러한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제대로 된 건축가가 설계하여 제대로 시공된 건축은, 지어지는 건물의 5%도 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바꿔 말하면 지어지는 100개 중 서너개 정도의 건물은 볼 만한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저 건물은 멋있습니까? 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기 위해 저자는 이 책을 지었다고 했습니다. 그게 이 책 한권 읽는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닙니다. 아직 건물이 멋있는 줄 모르면, 넘이 멋있다고 한 건물을 기웃거리는 것도 훌륭한 방법입니다. 책에서 이렇다 저렇다 해도 직접 가서 보고 만지고 느끼는 것이 건축을 감상하는 가장 빠른 방법입니다. 그렇게 하는데 이 책이 도와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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