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도시를 만들고 도시는 사람을 길들인다 : 경향신문 특별취재팀 <나는 이 도시에 살고 싶다>
방학이 되면 아이들을 데리고 외국에 가서 한 달씩 살고 오는 지인이 있습니다. 이 양반이 올 겨울에 다녀온 곳은 독일인데요, 프라이부르크에 대해 쓴 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자전거의 성지라 불리는 이 곳은 인구 22만 명에 자전거가 26만 대라고 합니다. 자전거의 대수만 많다고 성지라 불리진 않겠죠. 자전거를 안전하고 편리하게 탈 수 있는 환경이라 그럴 겁니다. 도로와 분리된 신호등 없는 자전거 전용도로와 기차역마다 있는 자전거 주차장, 주요 시설의 접근 동선 등이 모두 자전거 이용자가 편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네덜란드의 하우턴이라는 도시도 그랬습니다. 자전거를 탄 채 들어가는 세계 유일의 기차역이 있다는군요. 독일과 네덜란드는 가보진 못했지만, 가까운 일본도 자전거 타기 참 좋은 나라였습니다. 우리는 도시와 도시를 잇는 도로를 만드는데 돈을 썼습니다. 여태 자동차가 달리기 좋은 인프라를 만들었습니다. 이제는 바꿀 때도 되었습니다. 우리 아이가 자전거로 안전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는 도시, 걸을 수 있는 환경이 잘 조성되어 있는 도시, 내가 사는 곳이 이런 곳이 되기를 바랍니다.
프라이부르크 기차역과 연결된 자전거 전용주차장
기차역과 트램 정류장에 자전거 주차장이 곧장 연결되어 있다.
트램과 차도와 인도와 자전거 도로
자동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좀 불편하더라도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편리하게 만들면 자전거 이용자가 저절로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이제는 걷는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만드는 것이 대세다.
사진 출처 (지인의 뉴스 기사)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_w.aspx?CNTN_CD=A0002509356&CMPT_CD=P0001&utm_campaign=daum_news&utm_source=daum&utm_medium=daumnews
파리의 남동쪽 끝에 톨비악이라는 동네가 있습니다. 센 강 하구를 끼고 있는 이 곳은 한 때 수많은 배와 상인들로 늘 북적이는 활기찬 동네였다는군요. 하지만 산업구조가 바뀌면서 도시는 쇠락의 길을 걸었고, 사람들은 모두 떠나버렸다고 합니다. 그렇게 이 동네는 1980년대까지 거의 폐허가 된 채 방치되었습니다.
1980년대 프랑스는 프랑스 대혁명 200주년 기념으로 새로운 도서관을 짓기로 하고 공모전을 열었습니다. 도미니크 페로(이화여대에 가면 잘 드는 칼로 예쁘게 썰어놓은 듯한 건물 ECC를 설계한 냥반이다)가 당선이 되었고 이 톨비악에 도서관을 세웁니다. 12억 유로를 들여 7년간의 공사 끝에 140만 권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거대한 도서관이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도서관을 중심으로 주거지역과 오피스지구를 만들며 도시를 새롭게 바꾸었습니다. 이 동네가 문화의 중심지가 된 건 말할 것도 없겠죠. 사람들이 다시 몰려오고 수준 높은 이웃들이 생겼습니다.
산업화 이후에 모든 것이 밀물처럼 빠져나간 텅 빈 동네를 문화로 채웁니다. 문화가 만든 이야기가 다시 사람을 부르고, 동네의 가치는 올라갑니다. 문화로 얻은 정체성은 지속가능한 동력이 됩니다. 도시 재생의 큰 흐름입니다.
70여 미터의 거대한 책 네 권을 직사각형의 땅 꼭지점에 직각으로 맞춰 세워 놓은 형상을 하고 있는 미테랑 도서관. 이 동네 사람들은 도서관에 자주 가진 않지만, 좋은 이웃이 생겼고, 동네가 깨끗해졌으며, 기분 좋은 산책길이 생겼다고 좋아한다.
승효상의 책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에서도 이 건물이 나왔다. 공모전 최종작을 미테랑 대통령이 직접 심사했다며 전문가들도 판단을 맡길 만큼 대통령의 식견이 높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도 미테랑 도서관이다.
사진 출처 : http://www.ddanzi.com/ddanziNews/3808391
이런 스토리, 즉 쇠퇴한 산업도시가 문화로 다시 번성한 대표적인 도시는 스페인의 빌바오입니다. 그 유명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이 있지요. 울나라 종묘를 극찬한 프랭크 게리가 설계하였습니다.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도 이 분의 영향을 받았다는 설이 있습니다. 빌바오는 한때 조선 산업의 메카였습니다. 그러다 울나라 때문에 파탄이 났죠. 조선업의 경쟁력을 잃고 쇠락한 공업도시로 전락했습니다.
그리고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이 등장하면서 도시는 완전히 바뀌었다.... 는 뻥이구요, 한 도시의 성쇠가 미술관 하나로 바뀔리가 만무합니다. 빌바오는 꾸준하게 도시의 재생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중앙 정부와 자치 정부, 공공기관과 민간이 손을 잡고 강을 깨끗하게 만들고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를 만들었습니다. 강 주변 환경 개선에 쓴 돈이 구겐하임 미술관 유치 비용의 여섯 배가 넘는다고 합니다. 미술관은 도시 재생의 일부였습니다. 그 문화 시설이 결과적으로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었지만 말이에요.
길이 130미터, 폭 30미터, 티타튬 판으로 표면을 장식한 구겐하임 미술관은 멀리서 보면 강에 떠 있는 거대한 범선처럼 보인다. '메탈 플라워'라는 별명이 이해가 된다. 아래 사진은 거대한 거미 조형물 '마망'의 야경이다.
사진 출처 : https://blog.hmgjournal.com/TALK/Story/Reissue-spain-bilbao.blg
책에는 알롱디가Alongdiga라는 문화센터 이야기도 나온다. 1909년에 지어져 거대한 와인 물류창고로 사용되다가 1999년 외벽만 남겨두고 내부를 모두 재구성하는 리노베이션을 했다. 그리고 빌바오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놀이터가 되어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영국의 테이트모던 미술관도 그렇지 않았나. 원래는 발전소였지 아마. 아래 블로그에 들어가면 알롱디가가 자세히 나온다. 우리도 당인리 화력발전소를 이렇게 바꿀 거라고 한다.
1990년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 중심부에 45층짜리 금융센터가 지어집니다. 주요 투자자인 다비드의 이름을 따서 토레 데 다비드(Torre De David, 다비드의 탑)라는 별명으로 더 알려진 이 건물은 이 나라에서 세 번째로 높은 빌딩이라는군요. 그러나 1994년 베네수엘라 금융위기로 건물주가 파산하고 이 거대한 빌딩의 건축은 중단됩니다. 80% 정도를 지었는데 말이죠. 그렇게 10여 년을 흉물로 방치됩니다.
2007년 비가 내리던 밤, 갈 곳 없는 카라카스 빈민들이 이 건물로 모여듭니다. 경비원들은 비에 젖은 많은 사람들을 보고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어주었다고 합니다. 그 후 이 거대하고 텅 빈 건물에 대한 소문을 급속도로 퍼져나갔고 사람들은 자꾸 몰려와 700여 가구, 3000여 명이 모여 살게 됩니다. 토레 데 다비드는 세계에서 가장 높고 거대한 빈민촌이 되었습니다.
무허가 빈민층 공공체의 모습을 어땠을까요? 영화에서 나올 법한 무법 천지라고 예상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연대하고 그룹을 만들어 청소를 하고, 나무를 심고, 난간을 설치하고, 자체 규율도 만들며 공사가 중단된 건물에 살면서 생기는 여러 문제를 슬기롭게 헤쳐나갔습니다. 건축가 그룹 '어번싱크탱크 Urban Think Tank'는 토레 데 다비드의 주민들이 만든 이 삶의 공간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 2012년 베네치아 건축비엔날레에 출품했고,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게 됩니다. 그들은 수상 소감으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창의적인 디자인으로 건축가가 이름을 날리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도시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건축가가 나서야 할 때다.
그들은 그들이 구할 수 있는 것으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 만큼 자신들의 공간을 디자인했다. 버러져 있던 공간은 여기에 사는 사람들로 인해 의미를 갖게 되고, 이들도 소중한 보금자리를 갖게 되었다. 공간은 사람들과 그들의 삶으로 채워졌을 때 완성된다.
2014년 베네수엘라 정부는 여기에 사는 사람을 모두 내보내기로 결정하고 도시 외곽의 아파트로 강제 이주시켰다. 마지막 사진은 완전히 꽃단장하여 새로 태어난 토레 데 다비드다.
사진 출처 : https://www.architectsjournal.co.uk/home/venezuela-evicts-torre-de-david-squatters/8666136.article
그리고 이 책 맨 처음에 나오는 오로빌입니다. 인도 남부 타밀나두주 퐁디셰리에서 좀 떨어진 빌루푸람이란 지역에 있는, 세계 각국에서 모인 주민 2300여 명이 살고 있는 아주 특별한 도시입니다. 1968년 모든 사람이 더불어 행복하게 살자고 만들었습니다. 물이 부족한 땅에 숲을 가꾸고, 싱싱한 채소와 과일을 직접 재배하고, 태양, 물, 바람 등의 재생 에너지를 사용하고, 돈 없이도 살아가는 자급자족 경제를 만들었습니다. 오로빌 안에도 각기 다른 여러 공동체 활동들이 이루어지고 있고 있습니다. 이 실험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맨 위의 황금 골프공 사진은 오로빌의 영혼이라 불리는 마트리만디르(모성의 전당)다. 이 건물의 안은 상당히 넓은데, 천정에서 빛이 수직으로 떨어져 경건한 공간을 만든다고 한다. 이곳에 앉아 조용히 숨 쉬는 것만으로 피로가 풀린다고.
위의 사진은 공동체 마을을 소개한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의 저자, 조현 기자의 한겨레 신문 기사에서 퍼왔다.
사진 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ty/religious/783656.html
오로빌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을 찾아봤습니다. 거기에서 살고 있는 울나라 사람들도 있고, 이 실험 공동체를 배우려고 갔다 온 이도 많았습니다. 인간이 꿈꾸는 이상향에서의 생활을 봤습니다. 실제로 경험해보지 않아 정확하게 어떨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오로빌을 소개하는 책의 말미에 인구가 늘어나고 자급자족의 불균형으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개인의 탐욕을 버리고 모두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오로빌의 실험이 잘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어떤 커뮤니티를 만들고, 어떻게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잘 어울리며 살아갈까에 대한 해답을 이 오로빌에서 찾을 수 있을까? 그렇다고 생각해서 많은 이들이 여기에서 체험을 하는 것이겠지. 여기서는 사는 게 재미있을 것 같다. 나는 이미 늦었다 하더라도 우리 아이들은 가능하지 않을까?
사진 출처 : https://publy.co/content/1733
오로빌을 비롯하여 노숙자도 시 예산 편성에 참여하는 브라질의 포르투알레그리, 버려진 항구도시에서 문화의 도시로 변모한 스페인 빌바오, 자전거의 도시 네덜란드 하우턴, 동아프리카의 미래를 담은 케냐의 콘자시티, 협동조합이 마을의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이탈리아의 볼로냐와 트렌토, 자체적으로 은행과 화폐를 만들어 그 안에서 생산과 소비를 하여 모두가 혜택을 볼 수 있게 하는 브라질의 포르탈레자 등이 이 책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는 서울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세운상가 얘기가 나옵니다. 한때 전면 철거하고 거기다가 200층짜리 건물을 세운다고 개뻥을 쳤던 적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도시재생으로 방향을 전환하여 점진적인 재생을 시도중이라고 합니다. 일부 지역을 깡그리 밀어버리고 새로운 건물을 짓는 방식은 이제 유효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은 또 어디로 밀려나가 똑같은 생활을 할테니까요. 자동차가 편리하게 다닐 수 있는 도로를 만드는 대신, 도시 안에서 사람들이 걷거나 자전거를 타기 편리한 인프라를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도시를 만들었고, 도시는 그 지역에 사는 사람을 길들인다고 합니다. 도서관, 공원, 산책로, 자전거 도로 등의 하드웨어와 지역 사람들간의 소통과 연대, 함께 하는 공동체 같은 소프트웨어가 잘 갖추어진 도시. 이 책으로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도시의 미래 모습을 꿈꾸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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