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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이야기

이 시대 우리의 건축 그리고 문화 풍경 : 승효상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

by Keaton Kim 2019. 2. 27.

 

 

 

이 시대 우리의 건축 그리고 문화 풍경 : 승효상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

 

 

 

지식인은 경계 밖으로 끊임없이 스스로를 추방해야 하는 자다. 그는 애국적 민족주의와 집단적 사고, 계급과 인종에 관한 의식, 성적인 특권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경구로 이 책은 시작한다. 다른 이의 집을 지어주는 고유한 직능을 가진 건축가는, 새롭게 삶을 시작하는 사용자와 새 땅을 만나 사색과 성찰로 작업해야 하며, 그렇기에 스스로 경계 밖으로 추방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다. 건축 설계는 우리의 삶을 조직하는 일이므로 기술적인 일이라기 보다는 인문학적 일이다. 사람들의 삶을 살피는 것이 먼저다. 건축가가 지식인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이 책은 2014년과 2015년에 걸쳐 경향신문에 칼럼으로 연재한 글을 모아 정리한 것이다. 지식인이자 건축가인 저자가,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이 땅에서 이루지고 있는 건축, 이 시대에 건축가의 역할 등에 대해 자신의 생각과 소신을 썼다.

 

 

 

 

 

 

건축가 이종호의 이야기가 나온다. 강원도 양구의 박수근 미술관을 설계하신 분이다. 무엇보다 건축이 들어서게 될 장소의 역사성과 사회성에 주목하는 작업을 하기 원했고, 사람들의 삶에 대해 늘 깊이 생각하는 건축가라고 했다. 그런 분이 횡령의 누명을 쓰고 그 억울함에 2014년 2월 차가운 밤바다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 죽기 직전에 승효상에게 메일을 보냈고 그 메일을 아직도 지우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슬픈 스토리다.

 

 

 

이종호 선생이 설계한 건축물을 찾아봤다. 박수근 미술관과 노근리 기념과, 이순신 기념관,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 바른손 센터 등이 선생의 작품이다. 인터넷에 나와 있는 몇 장의 사진으로 선생의 생각이 담긴 작품을 이해하기엔 무리다. 언제고 한번 가봐야 할 곳들이다.

 

 

 

건축가 정기용이 "건축이 어떻게 '건물'을 넘어서 훼손된 땅을 치유하며 작은 도시가 어떻게 '문화'의 이름으로 새롭게 생성될 수 있는지 하나의 사례를 만들어주었다."고 극찬한 박수근 미술관이다. 이종호는 작가의 그림을 담는 미술관이기에 앞서 청년 박수근을 만들었던 풍경을 방문객이 함게 느끼는 장치로서의 미술관이기 바랬다고 했다. 

 

사진 출처 : http://goodmorning.bluechips.co.kr/bbs/board.php?bo_table=tour&wr_id=16

 

 

 

1955년 미국 세인트루이스에 세워진 당시 최고의 주거 공간 '프루이트아이고'도 책에 상세하게 나온다. 합리와 이성을 절대 가치로 믿는 모더니즘을 시대정신으로 하여 야마자키 미노루(911로 무너진 뉴욕의 세계무역센터도 이 냥반이 설계했다)의 설계로 11층 33개동 2870가구의 주거단지를 만들었다. 이 마스터플랜은 꼬르뷔 할배의 도시 철학 연장선으로, 모더니즘 건축의 상징이자 미래 세계의 실현이라며 극찬을 받았다.

 

 

 

하지만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언제나 불가능이다. 도시의 인구는 점점 줄고, 중산층과 백인들은 단지를 나갔으며, 관리도 되지 않았다. 벽에 금이 가고, 유리창은 깨진 채로 방치되었으며 엘리베이터는 움직이지 않았다. 당연히 건물은 빈집으로 전락했고 범죄의 온상이 되었다. 절망의 공동체가 된 이 '미래도시'를 보다 못한 세인트루이스시 정부는 1972년 단지 전체를 폭파시킨다. 건축역사가 찰스 젱크스는 '모더니즘이 끝난 순간'이라고 했으며 마스터플랜이라는 도시를 만드는 방법은 서구에서 폐기되고 말았다고.

 

 

 

서구에서는 폐기된 마스터플랜이 우리나라엔 여전히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분당이 성공했나? 성공했다. 도시가 성공한 것이 아니라 부동산이 성공한 것이라고 저자는 비꼬았다. "이렇게 철저히 프로그램된 거주기계에서는 모험도 낭만도 없으며, 우리 모두를 구획하고 분리하여 서로 멀어지게 한다." 프랑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의 말이다. 도시는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생물체처럼 늘 변하고 진화한다는 저자의 말에 완전 동의한다. 다행히도 우리나라도 서서히 변하고 있다. 모두 무너뜨리고 새로 짓기보다는 조금씩 개선하고 바꾸어 나가는 방식으로 말이다.

 

 

 

 

 

아이고!

 

프루이트아이고는 무너진지 50년 가까이 되어 가건만 지금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어떤 의미로는 불멸의 건축물이 되었다.

 

지금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우리네 아파트들의 미래가 보인다. 인구가 줄어들고, 재건축의 효용 가치가 없어졌을 때, 저렇게 되겠지. 얼마 남지 않았다.

 

사진 출처 : https://namu.wiki/w/%ED%94%84%EB%A3%A8%EC%9D%B4%ED%8A%B8%20%EC%95%84%EC%9D%B4%EA%B3%A0

 

 

 

핀란디아홀은 핀란드의 토속적 아름다움을 건축의 형태와 공간으로 잘 만들어냈다고 평가받는 현대건축의 보물이다(고 저자는 평했다). 1971년 작곡가 시벨리우스를 기념하여 이 나라가 자랑하는 건축가 알바 알토가 지었다. 근데 이 옆에 또 콘서트 홀을 짓는댄다. 이유는 이 아름다운 건축물에 음향 문제가 발생했다고.

 

 

 

우리 같으면 천정 일부를 보수하거나 전면 개보수를 했을 것이다. 근데 핀란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알바 알토의 건축 원형을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웃나라 스웨덴의 군나르 아스프룬드의 스톡홀름 시립도서관도 마찬가지다. 그 예를 들며 우리나라의 초라한 건축 문화 풍경을 아쉬워했다. 

 

 

 

 

 

나라에서 얼마나 보물로 여기면 이 나라 지폐의 그림에 이 건물이 나올 정도다. 하얀 외벽은 이탈리아 산 카라라 대리석이다. 얼른 가서 만져보고 싶구나.

 

사진 출처 : http://young.hyundai.com/magazine/life/detail.do?seq=17045

 

 

 

오래된 건물, 낡은 창살, 정형화되지 않은 골목길,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가는 빈터와 마당. 이들은 우리 도시의 속살이다. 높은 빌딩과 호화로운 네온사인 뒤편에 숨은, 시간의 때가 묻은 삶터가 진정 아름답고 정직한 도시 풍경이다.

 

 

 

건축가 정기용 선생이 돌아가시고 나서 사이프러스 숲에 정기용 형을 누이고 싶다는 승효상 선생의 글을 읽었다. 선생의 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그리고 많이 읽었다. 읽다 보니 차츰 식상해져갔다. 머랄까, 너무나 옳은 말이고 마땅히 그러해야 하나 좀 가식적이고 현학적이었다. 그 후로 약간 떨어져 있었다. 그렇긴 하나 건축가로서는 더할 나위 없다. 무엇보다 노무현 대통령의 묘역을 만드신 분 아닌가.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아름다운 묘지다. 고맙기도 하고 빚을 진 기분이다.

 

 

 

오랜만에 선생의 글을 읽었다. 건축가 이종호를 알게 되었고, 공간 사옥의 쓰임새와 최근 선생이 설계한 밀양의 명례 성지도 찾아보았다(가까우니 얼른 가봐야지). 발터 벤야민이 묻힌 스페인 포르트부의 마을 묘지와 기념비는 언제고 꼭 한번 가보리라 맘 먹었으며 미테랑 대통령을 기리는 프랑스 미테랑 도서관의 사연도 읽었다. 산으로 둘러싸인 서울의 골목길과 성곽을 거닐었으며, 우리가 만들어나가야 할 도시의 풍경도 그려보았다. 선생의 글은 울림이 컸고 격정적이었다.   

 

 

 

경계 밖으로 스스로를 추방하는 지식인, 그렇게 되고자 하는 승효상 선생의 고심이 물씬 풍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