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것 : 김명식 <건축은 어떻게 아픔을 기억하는가>
<건축은 어떻게 아픔을 기억하는가>는 우리 중 누군가 겪어야만 했고 여전히 경험하고 있는 슬픔, 고통, 비극을 함께 하며, 그 기억이 공간화되고 건축화된 현장으로 걸어 들어가는 여정의 시작입니다. 조금이라도 타자의 고통을 이해하고 아름다움의 근원을 헤아려보기 위해서지요. 이 책의 목적입니다. (p.9 서문 중에서)
영국의 비평가 러스킨은 고통을 이해하고 아름다움의 근원을 헤아려보는 것이 예술의 두 가지 목적이라고 했습니다. 고단한 근현대사를 가진 우리는 역사적으로 많이 아팠습니다. 아픔이 많았으니 그것을 기억하려고 만든 공간도 꽤 많습니다. 고통을 기억하려고 만든 공간에서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은, 러스킨의 저 말이 아니더라도 하나의 예술입니다. 건축이 예술이 되는 장면입니다.
건축가 김명식의 이 책은 우리 역사의 아픔이 서린 건축물에 대한 답사기입니다. 김근태와 박종철이 고문을 당했던 남영동 대공분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서대문 형무소, 노란 리본 물결이 넘실거리는 세월호 추모관 등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공간에 잠들어 있는 이름들을 불러냅니다.
# 남영동 대공분실
이곳은 음각과 양각의 비례로 계획된 입면, 접힌 모서리, 벽감으로 만든 출입구, 잘 분리된 동선, 심리적 고통을 배가시키는 나선형 계단, 고문을 은폐하기 위해 특별히 계획된 19개의 창문, 고문에 효율적인 공간 구성과 집기 디자인과 마감재로 만들어진, 현대 건축물 중 가장 악의적인 공간을 품고 있는 건물입니다. (p.61)
사진 출처 : http://www.vop.co.kr/A00001176016.html
사진 출처 : http://870114cheol-a.org/nyd-national-security-ananalysis/
사진 출처 : 위키디피아
건축가 김수근은 한국 현대건축을 기틀을 놓았다고 평가받는 1세대 건축가입니다. 그가 지은 공간사옥은 최고의 현대건축 순위에서 항상 1등을 먹는 걸작입니다. 그 외에 잠실 종합운동장, 국립진주박물관, 청주박물관, 세운상가, 샘터사옥, 경동교회, 마산 양덕성당 등이 그의 작품입니다. 하지만 그가 대표적인 악의 공간인 남영동 대공분실을 설계한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입니다. 그것도 대충 설계한 것도 아니고 아주 치밀하고 섬세하게 고문에 적합한 시설을 만들었습니다.
남영역 바로 옆, 기차를 타고 가면 매번 보이는 남영동 대공분실은 본래 간첩을 잡아 심문할 용도로 지어졌으나 실제는 민주인사를 잡아 고문했던 곳입니다. 이 곳은 유신정권의 핵심인 당시 내무부 장관 김치열이 기획 발주하고 당대의 거장 김수근 건축가가 지었습니다. 천재적인 재능으로 악마적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저자는 아주 대놓고 시원하게 김수근 선생을 비판했습니다.
김중업 선생과 함께 우리나라 현대건축의 기틀을 잡은 건축가로, 건축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추앙받는 김수근 선생을 비판하는 것은 금기시 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다른 측면에서 바라봅니다. 독재정권과 내밀하게 접촉하여 승승장구한 사람일 수도 있다고요. 저는 직업 정신이 투철했다는 관점에서만 봤지, 한 건축가의 이면이라는 관점에서 적은 이런 글을 처음 봤습니다. 아주 시원하게 깠습니다ㅎ. 저자의 배포가 대단합니다.
아래의 사진은 역시 김수근 선생의 작품인 경동교회입니다. 이 건축물 역시 울나라 최고의 현대 건축 순위 다섯 손가락 안에 듭니다. 어떤 이들은 가우디 성당의 축소판이라고도 합니다. 가장 경건하고 성스러운 공간인 이 교회를 설명하며 악의적인 공간인 대공분실과 대조하여 보여줍니다. 한 건축가가 이렇듯 전혀 다른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서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이 떠오릅니다. 저자의 의도입니다.
사진 출처 : http://kimjaekyeong.com/en/Architecture/Details/eef6cc9c-07bd-40f4-aff6-f25bbdecbb73
#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정대협이 '일본군 위안부'가 겪어야만 했던 고통의 아품과 이야기를 'Herstory'로 고유명사화하고 있는 것처럼, 이곳은 소녀에서 할머니에 이르는 과정, 즉 '그녀의 이야기'로 지은 건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p.115)
사진 출처 : https://sandeulkang.tistory.com/entry/My-dad-is-love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면서 그들의 평화 메시지를 알리기 위한 장소입니다. 나라에서 운영하는 것이 아닌 사립박물관입니다. 지을 장소가 마땅치 않아 마포구 성산동의 주택가에 자리잡았으며, 지을 돈이 마땅치 않아 기존 주택을 리모델링하여 만들었습니다. 짓게 된 스토리 자체도 하나의 아픈 역사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위의 사진 출처 사이트에 들어가시면 나와 있습니다. 딸과 함께 박물관을 다녀와서 적은 글입니다.
건축은 그것이 세워지는 땅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더우기 이처럼 상징성이 아주 큰 건축물은 위치가 매우 중요합니다. 이 건축물이 도심 한가운데 세워졌다면 보다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킬 수 있었다는 점을 저자는 아쉬워합니다. 애초에 계획되었던 서대문 독립공원이나, 일본 대사관 옆 소녀상과 연계하여 광화문 광장은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장소였겠지요.
저자는, 공공건축은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며 그렇기에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이 그 위치에 있다는 건 우리 사회가 고통의 기억에 대해서 딱 그만큼만 보여주는 것이다고 잘라 말합니다. 백퍼센트 공감합니다.
#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이 새겨져 있는 현재의 공간입니다. 이런 구체적인 역사의 공간은 과거와의 대화를 통해서 더 나은 현재의 삶과 미래의 삶을 그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 시대를 살고 간 이의 기억, 역사적 사실로 존재하는 사건은 그 어떤 문자적 서술보다도 강력한 형태로 남아 우리를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p.159)
사진 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undefined
여기에 갇혀서 고통받거나 순국하신 위인들의 면모를 보자면 어마어마합니다. 허위, 강우규, 김구, 안창호, 김원봉, 한용운, 유관순 등 일제 강점기 시대에 기라성 같은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이 보입니다. 이 형무소는 서울 구치소의 이름으로 1987년까지 운영되었습니다. 419와 516의 시국사범, 잃어버린 진보의 꿈 조봉암 선생과 인혁당 사건의 도예종, 김근태 선생과 같은 민주 투사도, 6월 항쟁에 선두에 섰던 분들도 이 형무소에 잡혀왔습니다. 이토록 오랜 기간동안 비극의 장소로 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비견할 만 합니다.
예술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서대문 형무소는 과거의 비극을 온전하게 우리에게 보여주면서 우리의 현재의 삶을 돌아보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곳은 아주 훌륭한 예술품입니다.
# 유럽의 학살된 유대인을 위한 기념비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광장)
독일의 베를린은 성찰과 기억의 도시로 불립니다. 베를린 장벽을 비롯하여 2차 대전 당시 나치의 만행을 기록하고 희생된 이들을 기념하는 공간들이 곳곳에 산재합니다. '유럽의 학살괸 유대인을 위한 기념비'는 미국의 건축가 피터 아이젠만이 2005년에 만들었습니다.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담은 거대한 추모의 공간이 베를린 심장부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어이, 아저씨. 거기 올라가면 안돼여!ㅋㅋ. 아이들은 여기서 숨박꼭질도 한다고.
축구장 3개 크기의 거대한 공터에 제각각인 2711개의 사각 기둥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모습니다. 밖에서 보면 거대한 돌덩이로 보이나 안으로 들어갈 수록 땅은 꺼지고 하늘은 까마득해진다.
아픈 역사의 한 장면을 베를린 한가운데에 '명료한 시각적 상징'으로 만들었다는 점, 더하여 전 세계 방문자들뿐 아니라 베를린 시민들에게도 조각된 하나의 공원으로 이용된다는 점이 부럽다고 저자는 말했다.
사진 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02396
#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유대인 박물관이 있습니다. 이전에도 이 자리에 박물관이 있었는데,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가 설계하여 고풍스런 옛 박물관 옆에 지그재그 모양으로 유대인의 상징인 다윗의 별을 왜곡한 형태를 한 건물로 지었습니다. 그 독특한 형태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유대인 박물관으로 유명합니다. 유대교의 역사와 나치정권 닥시 박해의 흔적과 유대계 예술가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독일인들의 일상과 문화에서 유대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다는 건 알고 있으나, 이렇게 대규모로 박물관을 지었다니. 도쿄 한복판에 근사한 조선인 박물관이 있는 셈이다. 그런 날이 올래나? 일본도 과거사에 대해 독일 반만이라도 따라간다면 주위의 국가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인정 받는 나라가 될텐데.
사진 출처 http://blog.rightbrain.co.kr/?p=4700
박물관 내부에는 감성적 체험을 극대화하는 매우 특징적인 공간이 있는데, 공백의 기억(Memory of Void)이라 불리는 곳이다. 쇠로 만든 사람 얼굴 형상을 한 오브제 1만여 개의 작품이 깔려 있다. 관람객은 이곳을 지날 때 이 오브제를 밟고 지나게 되는데, 이 쇠조각들의 마찰음이 좁고 깊은 공간에 공명하게 퍼진다.
저기에 다녀온 지인의 말을 빌리자면 유대인을 밟는 듯한 소름끼치는 경험이었다고 한다. 위의 사진은 그 지인의 아들이자 우리 산이의 친구인 민주다. 아~주 부럽다. 나도 산이랑 함께 가보고 말테야.
# 토포그래피 데스 테러 (토포그래피 오브 테러, 나치 박물관)
토포그래피 데스 테러는 굳이 번역하자면 테러의 지형학쯤 됩니다. 이름만 들어선 어떤 곳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곳은 나치의 만행을 그대로 전시해 놓은 곳입니다. 그래서 나치 박물관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본디 나치의 비밀경찰인 게슈타포와 히틀러 친위대 SS의 본부가 있던 자리입니다. 이곳을 빈 터로 남긴 채 내부가 훤히 보이는 유리로 된 단층짜리 박물관을 세웠습니다.
여기는 베를린 장벽을 가장 진지하게 관람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가장 숨기고 싶은 역사의 치부를 그대로 드러내어 사람들에게 전시한다. 그리고 다시는 이렇게 하지 말자고 알린다. 여기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의 사이트에 들어가시면 자세히 나온다. 고등학교 선생님인 지인이 여기를 방문하고 쓴 글이다.
저자가 공부를 마치고 귀국했을 때가 2014년 4월이라고 합니다. 돌아온 고국은 세월호 침몰, 밀양 송전탑 설치 반대, 제주 해군기지 설치 반대, 삼성전자 백혈병 문제 등으로 어지러웠습니다. 도처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기 힘들었다고 회고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합니다. 기억의 공간을 짚어보고, 고통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현재의 삶을 바꾸는 일. 건축가가 고통받은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이기도 합니다. 저자의 글을 읽으며 '중국의 고통이 곧 나의 고통이며 중국 사회의 병폐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고 말한 위화가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저자의 발자취를 인터넷에서 찾아봤으나 잘 나오지는 않습니다. 다만 직접 설계는 하지 않고 건축 비평과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꿈꾸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건축가가 좋아졌습니다. 언제고 저자의 강연을 꼭 한 번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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