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아파트 경비원 민수는 1995년 교통사고로 오른쪽 다리를 절단한 이후 줄곧 의족을 착용한 채 일했다. 2010년 12월 민수는 근무하던 아파트 단지의 눈을 치우다 넘어졌고, 그 일로 의족이 파손되고 말았다. 업무 중 의족이 부서졌기에 민수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했다. 산재보험법에 따르면 근로자가 업무와 관련하여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린 경우에 산재에 해당된다. 민수의 산재 신청 결과는?
# 2.
23살의 무용수 승희는 2013년, 우연히 보스턴 마라톤 대회가 열리는 코스 근처에 있었고, 폭탄 테러에 휘말려 다리 하나를 잃었다. 승희에게 잃어버린 다리는 좀 더 특별했다. 그는 단순히 다리 하나를 잃은 게 아니라 춤을 추며 살아왔던 시간과 앞으로 춤을 추며 살아갈 날들에 대한 꿈을 잃었다. 하지만 춤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승희는 포기하지 않고 춤을 출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첨단 과학의 시대라 '스마트 의족'이라 불리는 새로운 다리를 끼워 넣으면 춤을 다시 출 수 있다. 다른 방법은 다리가 없는 나를 인정하고 하나인 다리로 출 수 있는 춤을 출 수도 있다. 승희의 선택은?
# 3.
키가 163센티미터인 정관이는 키에 대해 특별히 콤플렉스를 갖거나 키 때문에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왔다. 작다고 딱히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다만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약간의 뒷담화는 신경이 쓰이기도 했으나 무시했다. 어느 날 셀트리온에서 남자의 키를 188센티미터까지 자라게 하는 신약이 개발되었다. 분명 이 약을 복용해서 키가 커지면 사회경제적으로 더 유리한 조건에서 생활할 것이고 남들의 시선도 확 달라질 것이다. 정관이는 약을 먹을 것인가? 아니면 "나는 키를 늘릴 수 있는 약 따위는 먹지 않겠다"라고 외칠 것인가?
# 4.
원영이는 대학병원 정형와과를 한 살 무렵부터 열다섯 살까지 다녔다. 열 번이 넘는 수술과 매년 4,5회의 정기검진을 받았다. 중학교부터는 내내 휠체어에 앉아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중학교는 특수학교를, 고등학교는 일반학교를 나왔다. 좋은 교육을 받고 노력해서 지금은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그가 해외 여행 중에 이상한 주전자를 하나 주웠는데, 슥 닦으니 지니가 나왔다. 지니는 원영이를 보더니 "너, 다리가 불편하구나. 내가 너를 정상으로 만들어줄 수 있어." 했다. 원영이 "혹시 얼굴을 박보검으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니?" 라고 물으니 "가능해. 하지만 계속 휠체어를 타야 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휠체어를 버리고 정상 다리로 살 것인가? 아니면 계속 휠체어로 생활하지만 박보검 얼굴로 살 것인가? 원영의 선택은?
동네 책방 <생의 한가운데>에서 지역 서점 문화활동 지원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책도 주고 작가도 직접 오셔서 강의를 한다고 해서 후다닥 신청했더랬습니다. 책 제목을 보고는 영화 <엘리시움>, <알리타>와 같은 미래의 사이보그를 다룬 소설인줄 알았습니다. 아이고 부끄럽. 책은 보청기를 사용하는 후천적 청각장애인 김초엽 작가와 휠체어를 타는 김원영 작가가 장애에 관한 과학기술에 대해 비판하고 검토하고 고민한 담론입니다. 위 질문은 책에 자세히 나와 있는데요, 답을 한번 보시죠.
1번은, 근로복지공단에서는 민수가 의족이 파손되었을 뿐 부상을 당한 게 아니라면서 산재를 거절했습니다. 여기서 부상이란 '신체'에 상처를 입는 것을 의미하고, 의족은 신체가 아니기 때문에 이 판결은 정당한 것이죠. 1심과 2심은 모두 이렇게 판결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에서는 그 판결을 뒤집었습니다. 장애인은 일상의 대부분을 의족을 착용한 상태로 생활하고, 물리적 기능적으로 의족은 다리를 대체하고 있으며 탈부착이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의족을 '신체'라고 규정했습니다. 민수의 산재 신청은 통과했습니다. 장애인들의 보조 장비나 수단은 이제 장애인들의 신체가 되었습니다.
2번의 경우, 아드리안 하슬렛데이비스라는 무용수의 실화입니다. MIT의 휴 허라는 생체공학 교수가 그녀를 위해 진짜처럼 움직이고 기능하는 스마트 의족을 만들었습니다. 실제 휴 허 교수의 테드 강연에서 아드리안은 사고 후 처음으로 의족을 끼고 춤을 추었습니다. 춤추는 동영상을 김원영 작가가 보여주었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무용수 데이비드 툴은 장애의 몸을 그대로 사용해서 춤을 춥니다. 발레와 현대 무용과 콜라보도 합니다. 김원영 작가가 춤 공연 기획을 할 때 친구가 이 동영상을 작가에게 보여주면서 이런 춤을 춰야 되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는데 단칼에 거절했다는 일화를 들려주었습니다.
3번의 답은 이렇습니다. 2011년 8월 몽골의 울란바토르에서 장애인 이동권 캠페인을 벌였는데, 세계의 여러 인권 활동가들이 참가했습니다. 김원영 작가도 여기에 갔습니다. 당시 뇌병변장애를 가진 일본인 활동가를 만났는데, 그 활동가는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장애가 부끄럽습니까? 나는 장애를 고치는 약이 나와도 먹지 않을 겁니다." 이 생소한 외침은, 그러나 장애권리운동에서는 낯선 이야기가 아니라고 합니다. 장애를 부끄러워하거나 부정하지 않겠다는 강한 자기 인식에서 출발한 운동은 장애를 차이나 다름으로 여긴다는 것이죠. 장애를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키가 크고 작은 것처럼요.
4번은 작가가 자기 입으로 직접 말했습니다. 평생 시각장애인으로 살다가 수술로 시력을 되찾은 버질이라는 남자의 이야기가 책에 나옵니다. 가족들은 '기적의 순간'에 기쁨의 눈물을 흘리지만 정작 버질은 시각 기억이 없었기에 보이는 세계에 당혹감을 느낍니다. 그러다 합병증으로 2차 실명이 오고 버질은 다시 촉각의 세계로 돌아와 자신이 속해 있던 친밀한 감각을 느낀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 많은 농인들도 자신들의 세계에서 편안함을 느낀다고 합니다. 위의 4번 질문에 작가는 망설임 없이 "박보검 얼굴"이라고 말했습니다. 우스갯소리였겠지만, 대답의 의미는 '정상인이 보는 것만큼 휠체어가 불편하지 않다' 일 것입니다.
책에 KT의 광고에 대한 김초엽 작가의 생각을 담은 글을 읽었습니다. 광고의 내용은 KT가 AI 음성 합성 기술을 이용하여 농인인 김소희 씨에게 '목소리'를 선물하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이 광고를 두고 작가는 "목소리의 대상이 청인이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목소리가 아니라 청인들이 청각장애인에게서 듣고 싶어하는 목소리다"라고 비판했습니다. '너무 예민한 거 아냐?' 하면서 그 광고를 찾아보았습니다. 작가의 시각이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현대자동차의 브랜드 광고도 "감동 포르노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했다. 역경을 극복한 장애인이라는 스테레오타입이 이제는 기술의 보조를 받게 되었을 뿐이다"며 정상인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 장애인을 사물화한 것을 실랄하게 표현했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크게 한방 얻어맞았습니다. 과학 기술이 발달하면서 장애인들의 장애를 '제거'하는 게 이상하다는 견해는 충격입니다. 아이언맨이나 버키의 오른 팔 속에 감추어진 현실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 훌륭한 기술이 있더라도 그걸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이 일부 뿐이라면 그건 결코 보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합니다. 결국 멋진 의수나 휠체어나 내 몸을 보조해주는 첨단 장치를 달고 활보하기보다는 낡은 휠체어를 타고도 어디든 갈 수 있도록 5센티미터의 턱을 없애는 것, 어디에서든 정상인과 장애인이 아무렇지도 않게 지낼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드는 것이 먼저라고 책은 강조했습니다.
평소에 생활하면서 장애인들을 만날 기회는 거의 없습니다. 장애에 대해 깊이 생각할 기회는 더욱 없구요. 오랜만에 좋은 책을 만나 장애에 대한 여러 담론을 들을 수 있어서 의미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유쾌한 김원영 작가를 직접 만나고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더할 나위 없는 경험을 했습니다.
참, 작가는 책방에 오기 전에 산청 간디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오셨다고 했습니다. 헐, 들이가 그런 말을 안하던데. 바로 전화를 했습니다. 딸도 강의를 들었댑니다. 개학 첫날이라 약간 어수선한 상태에서 들어서 집중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간디학교에서는 강의를 학생들이 섭외하는데, 이 훌륭한 강의를 섭외한 학생은 누군지도 궁금합니다. 선생님일 것 같기도 하구요. 여튼 들이랑 할 이야기가 또 생겼습니다.
인상 깊은 구절
현실에서 기계와 결합한 존재란 아이언 맨 슈트를 입고 하늘을 날거나 온갖 화려한 차종으로 변신하는 모빌리티를 타는 존재가 아니라, 낡은 철제 수동 휠체어를 탄 이들, 오래된 전동 휠체어를 타고 배터리가 방전될까 걱정하는 이들, 3일에 한 번씩 신장 투석기에 접속하고 4시간씩 혈액의 노폐물을 걸러주느라 스케줄 조정에 곤란을 겪는 이들이다. 그러므로 '사이보그가 되어서' 스스로를 온전한 존재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언젠가 도래할 첨단의 기계와 결합하거나 기계 없이도 '정상적인 몸'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닐, 지금 당장 일상에서 사용하는 기계들과 더 안전하고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공존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p.63)
질병과 장애를 치료하려는 시도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장애를 가진 자신을 그대로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장애를 치료하기를 원할 수도 있다. 문제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손상'을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이 사회의 지배적인 관점이라는 것이다. 치료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관점은 현실에서 장애인들이 지금보다 더 잘 살아갈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지워버린다. (p.81)
나의 변형된 몸을 가급적 위장해서 최대한 '정상적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과 숨겨왔던 나의 '비정상성'을 나만의 개성으로 과감히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긴장 속에서 공존한다. (p.161)
한국의 등록 장애인 인구는 2018년 기준 251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5퍼센트를 차지한다. 스무 명 가운데 한 명이니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숫자인데도 일상에서 장애인을 마주치는 일은 흔치 않았다. 장애인들이 오랫동안 집과 시설에서 격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여 년 전부터 급진적으로 전개된 이동권 투쟁과 탈시설자립운동을 통해 많은 장애인들이 거리로 나왔고, 권리 단체를 조직했으며, 미디어와 정치권에 모습을 드러냈다. (p.211)
이 이야기는 발전한 미래, 장애를 기술로 '제거'하기를 선택할 수 있는 미래에도 여전히 장애는 복잡하고 논쟁적인 자리에 놓이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 장애를 치료하기를 원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장애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또는 치료를 선택하면서도 여전히 장애를 자신의 일부로 여길 것인지 누구도 한 사람의 삶과 경험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쉽게 말할 수 없다. 장애 정체성에는 간단히 단정 지을 수 없는 복잡하고 미묘한 여러 결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p.272)
물리적 세계에서 타인을 만나는 일은 언제나 약간의 위험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타인이란 애초에 온갖 바이러스와 세균, 편견과 다른 생각, 동의하기 어려운 이념의 운반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초래한 상황이 절실히 보여주듯이 사회적 거리두기(물리적 거리두기)는 우리의 생물학적 안전에 이롭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아는 편안한 공동체를 벗어나 바깥세상을 향할 때, 열려 있는 상호 작용의 장으로 나아갈 때, 그 위험과 불일치 속에서만이 가능한 우정, 환대, 사랑과 연대의 만남들이 있다.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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