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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야기

우한의 참상이 아닌 우한의 아름다운 일상 : 팡팡 <우한일기>

by Keaton Kim 2021. 8. 11.

 

 

 

1월 26일 봉쇄 4일 차 : 후베이성 공무원들의 모습이 바로 중국 공무원들의 평균 수준이다

 

우한의 공무원들은 사태 초기에 바이러스를 얕보았고, 봉쇄 전후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들의 무능함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고, 이는 우한 시민들에게 큰 상처가 되었다. 이 일에 대해 앞으로 자세히 쓰도록 하겠다. 하지만 지금 내가 말하고 싶은 점은 후베이성 공무원들의 이런 모습이 바로 중국 공무원들의 평균 수준이란 사실이다. 이들이 다른 지역의 공무원들보다 무능한 게 아니라 단지 운이 나빴던 것이다. (p.29)

 

 

1월 31일 봉쇄 9일 차 : 아첨을 하더라도 제발 정도는 지켜달라

 

나는 상인들에게 이럴 때 문을 열면 감염될까 무섭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들의 대답은 덤덤했다. "우리가 여기서 버티고 있어야 당신들도 버틸 수 있잖아요." 맞다. 그들이 있어야 우리도 생활해나갈 수 있다. 그런 거다! 나는 이렇게 노동하는 분들을 늘 존경한다. 그끔 그들과 대화를 몇 마디 나누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든든해진다. 우한이 가장 혼란스럽고 차가운 비바람마저 퍼부었던 그 이삼일 동안 보았던 풍경처럼 말이다. 아무도 없는 텅 빈 도로 위에서 환경미화원이 빗속에서 묵묵히 바닥을 쓸던 풍경. 누구든 그들을 본다면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며 긴장하고 불안해한 것이 부끄러워지고, 어느새 마음이 차분해질 것이다. (p.55)

 

 

2월 9일 봉쇄 18일 차 : 힘든 날들이지만, 살아갈 방법은 여전히 있다

 

우한 사람들은 시원시원하고 노련하며 의협심이 강하고 정부에 협조적이다. 어차피 정부의 공무원들도 두세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사이인데, 어찌 돕지 않겠는가? 이렇게 큰 재난이 발생했는데, 참기 힘들다면 죽을힘을 써서라도 억지로 버텨야 한다. 난 이런 우한 사람들이 정말 자랑스럽다. 하지만 이렇게 버틴다 해도 결국 답답함을 참을 수 없는 날은 분명 올 것이다. 우리가 당신들 몫의 짐까지 지고 대신 버틴다면, 당신들도 우리에게 욕할 자유 정도는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p.100)

 

 

2월 17일 봉쇄 26일 차 : 당신 혼자만 힘들고 괴로운 게 아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은 다양하다

 

보라, 나처럼 소설을 쓰는 사람은 매일 사소한 일을 기록할 때도 그 기록을 따라 관찰하고 생각하고 깨닫고 글을 남긴다. 이게 잘못이란 말인가? 어제 위챗으로 올린 글이 또 삭제되었다. 어쩔 수 없는 와중에 정말 어찌할 방법이 없다. <우한일기>를 이제 어디다 올려야 하나, 안개가 자욱한 강 위에서 시름에 잠긴다. 생각하고 깨닫고 기록하는 게, 그게 진정 잘못이란 말인가? (p.155)

 

 

2월 24일 봉쇄 33일 차 :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 바로 약자들에 대한 당신의 태도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다음과 같다. 한 나라의 문명 수준을 말할 때는 국가가 얼마나 높은 건물이 있고 얼마나 빠른 차를 만들어내며 국가의 무기가 얼마나 강하고 군대가 얼마나 위협적인지, 국가의 과학기술이 얼마나 발달했고 예술은 얼마나 수준 높은지를 보는 게 아니다. 국가의 공식 행사가 얼마나 화려하고 불꽃놀이가 얼마나 화려한지는 더더욱 보지 않으며, 심지어 얼마나 많은 여행객이 호방하게 외국으로 나가 전 세계를 휩쓰는지도 상관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다. 바로 약자들에 대한 국가의 태도다. (p.208)

 

 

3월 4일 봉쇄 42일 차 : 공동구매하고, 드라마 보고, 자고,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다

 

지역사회의 서비스가 더없이 세심하고, 마트 사장님의 수고가 만만치 않음이 엿보인다. 많은 우한의 일반 시민들이 현재 이렇게 살고 있다. 공동구매하고, 드라마 보고, 자고. 

 

 

3월 9일 봉쇄 47일 차 : 잘못을 인정하고 물러나는 일은 중신병원의 당서기와 원장부터 시작하자

 

나는 여기서 분명히 요구한다. 후베이성과 우한의 공직자가 잘못을 인정하고 물러나는 일은 중신병원의 당서기와 원장부터 시작하자. 사실 잘못을 인정하고 자리에서 물러난다는 것은 상식이다. 자신의 임무를 다하지 못하고 조직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으니, 양심이 있다면 스스로 마땅히 책임지고 자리에서 물러나 속죄하는 마음으로 부족한 부분을 고쳐나가야 한다. 하지만 중국의 현실에서 이런 사람이나 일을 찾아보기란 매우 어렵다. (p.309)

 

 

3월 14일 봉쇄 52일 차 : 다음 내부고발자는 누구일까?

 

중신병원의 의사 아이편은 스스로를 '호루라기를 건넨 사람'이라고 했다. 인민들은 리원량 의사는 '호루라기를 부는 사람'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이 호루라기는 아이펀의 손에서 리원량의 손으로 전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리원량이 전해 받은 호루라기는 누구에게 가야 할까? 비록 리원량이 처벌은 받았지만, 경찰은 그의 '호루라기'를 압수하지는 못했고, 오히려 그 호루라기 소리를 널리 퍼뜨려주었다. 신종 바이러스가 나타났다는 소식은 2019년 12월 31일에 이미 세상에 알려졌다. 적어도 나는 이날 이 소식을 알았다. 그리고 다음날 경찰이 '네티즌 8명'을 계도 조치했다는 소식이 신문뿐만 아니라 CCTV에까지 전해졌다. 하지만 이 소식도 결코 '호루라기'를 빼앗겼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이 호루라기를 이어받아 계속 불어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 즉, 다음 내부고발자는 누구일까? (p.351)

 

 

3월 18일 봉쇄 56일 차 : 그때의 우리는 딱 지금의 너희와 같았다

 

학생, 지금 열여섯 살이라고 했지요. 내가 열여섯이었을 때가 1971년이에요. 그때 만일 누군가 내게 "문화대혁명은 대재난이다"라고 말했다면 나는 분명 목숨을 걸고 그와 머리가 깨지도록 싸웠을 거예요. 그리고 그 사람이 사흘 밤낮으로 이유를 설명한다 해도 나를 설득할 수는 없었을 거예요. 왜냐하면 나는 열한 살 때부터 '문화대혁명은 좋은 것이다'라는 교육을 받아왔으니까요. 

 

(중략) 하지만 알려주고 싶은 게 있어요. 학생, 학생의 의혹은 조만간 해답을 얻게 될 거에요. 그리고 그 해답은 학생이 스스로에게 주는 거예요. 10년 혹은 20년이 지난 후, 학생이 아.... 내가 그때 유치하고 어리석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날이 있을 거예요. 그때의 학생은 아마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어 있을 테니까요. 물론 만일 학생이 극좌파 인사들이 인도하는 길만을 따라간다면 영원히 해답을 얻지 못할 거예요. 

 

(중략) 학생, 이해했어요? 나는 지금 이 시의 한 구절을 학생에게 보낼게요. "나도 너희 같은 청춘이 있었다. 그때의 우리는 딱 지금의 너희와 같았다." (p.385)

 

 

3월 24일 봉쇄 62일 차 : 나는 훌륭하게 싸웠다

 

고무적인 것은, 중국과 미국의 정치인들이 서로를 질책하며 신나게 원망해댈 때 양국의 의사들은 오히려 연합해서 어떻게 하면 환자들을 구할 수 있을지 의논하고, 어떤 약물이 사망률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며 어떤 치료 방법이 더 유효한지 토론중이라는 것이다. (p.434)

 

 

코로나가 한창인 시기에 코로나 관련 책으로 독서모임을 했다. 뭔가 아이러니했다.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 이렇게 숨 쉴 공간을 제공한 동네 책방 <생의 한가운데>에게 감사를 드린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다시 확산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의 가장 높은 단계인 4단계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강력한 거리두기 지침에도 신규 확진자는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가깝게 지내던 지인도 감염되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점점 옥죄어 오는 느낌입니다. 상황이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습니다. 조금만 참으면 곧 괜찮아질거라는 희망이 옅어지고 있습니다. 

 

중국 우한시에서 코로나가 삽시간에 퍼지자 중국은 봉쇄령을 내립니다. 전업 소설가인 팡팡은 도시가 봉쇄된 60일 동안 도시의 일상을 일기 형식으로 써서 자신의 SNS에 올립니다. 정부는 집요하게 삭제하였지만, 작가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고, 우한의 실상을 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글은 고통을 겪는 많은 중국인에게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 내용이 책으로 나와 이제 전세계의 사람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미디어에서 말하는 우한은 그야말로 무간지옥이었습니다. 그 이미지가 매우 강하게 남아있어서 어떤 지옥도가 펼쳐지려나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지옥도는 커녕 아름다운 일상의 이야기였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먹을 것을 이웃과 나누고, 텅 빈 거리에 환경미화원들은 여전히 청소를 하고,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경찰들이 도시가 붕괴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그런 일상요. 정부가 인민들을 속이고, 속은 인민들은 분노하고 대항하는 그런 이야기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 나름대로 시민 사회가 잘 작동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중국도 역시 사람 사는 곳이었습니다. 중국 사람들의 성숙된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의도적으로 아름다운 시민의 모습을 강조하거나, 정부의 무능력함을 드러내는 글은 아니었습니다. 작가 자신이 보고 들은 것,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이 생각한 것과 깨달은 것을 담담하고 위트있게, 때로는 날카롭게 기록하였습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말이죠. 작가의 시선이 곧 우한 시민들의 시선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책이 나오고 작가는 중국에서 일부 네티즌들에게 '배신자'로 비난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중국이라는 집안의 부끄러운 일을 외부에 알렸다는 이유로요. 저는 오히려 중국 사회도 시민들이 제대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정작 비난 받아야 될 곳은 SNS를 감시하는 당국과 극좌파(울나라 극우랑 하는 짓이 똑같다)로 나오는 일부 상식 없는 민족주의자들, 그리고 중국에서 이 책을 금서로 정한 정부입니다.

 

봉쇄령이 내린 우한에서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글쓰기였다고 합니다. 글을 쓰면서 버텼습니다. 결국 확진자가 0명이 되고 봉쇄도 풀렸습니다. 책과 달리 현실은 아직 어둡습니다. 무엇보다 언제 사태가 나아질지 보이지 않는다는 게 힘듭니다. 공방에 사람들이 오지 않은지가 꽤 됩니다. 일이 없어서 시간은 많지만 무엇을 해야 될지 몰라 허둥거리고 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지금을 되돌아보면 뭘 하기 딱 좋았던 시기라고 후회할 겁니다. 그러니 책에 나온 팡팡과 우한 사람들처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열심히 하다보면 좋은 날이 오겠지요.